아버지께 축복받는사람 마태복음 21장 30절 31절
2016.01.23 17:59:50 조회2694
마태복음 21장 30절 31절 아버지께 축복받는사람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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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들어서 최강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난로를 틀어 놓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믿음의 식구들은, 올한해, 따뜻하게 보호해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세상은... 날씨의 온도가 내려가고
경제의 온도가 내려가고
각종 지표들이 내려가고
그렇지만, 믿음의 가정들은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성도들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떼의 주인입니다.
주인은 자기 양떼를 지킵니다.
나쁜 것으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킵니다. 또 잘 자라도록 보살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나를 지켜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 가정을 돌보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바울서신을 보면 꼭...‘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라고 하는 말은, 주인 이라고 하는 뜻이지요. 영어로 ‘로드’
‘예수’는 예수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이지요. 히브리어 말로는 ‘메시야’
정리를 하면, 나의 주인되신 예수님 구원자...라는 말이 되지요.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았는가? 나를 보호하여 주시고, 나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확실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자 요즈음 경제지표가 걱정스럽습니다.
사회적으로 여러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성도들은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이해, 확실한 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1.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를 하나님 아버지는 좋아 아십니다.
오늘 말씀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첫째면 어떻고, 둘째면 어떻습니까?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핵심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하나님은 누구를 좋아하십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좋아하십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한단계 더 나가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해 주십니까? 답은 오늘 말씀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아버지의 분부로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말하였습니다. “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때, 아들들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맏아들이,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저도 맏아들입니다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맏아들은, 성격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니까? 서글서글 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성격이 좋은 사람은 성공할수 밖게 없습니다.
성격 나쁜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지요.
한편 둘째 아들을 보니까, 당장에 ‘싫소이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성격도 나쁘고, 말도 참 못하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말이, ‘아’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말이라도, \'아버지 저는 가고 싶은데, 사실 오늘 일정이 있어서 죄송해요, 내일 제가 일하겠습니다. ’ 이렇게만 말해도, 듣는 사람이 얼마나 듣기가 좋습니까?
똑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기분 않상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재주가 없어서, 그저 ‘싫어요~~~’ ‘못하겠어요’ 툭툭 내뱉어서, 듣는 사람 기분을 팍~~ 상하게 하고,
자기 점수를 스스로 깍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언 25:11에 말씀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모두, 말을 잘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맏아들은 말을 잘했는데, 나중에 포도원에 가보니까 펑크를 내고 말았습니다.
참 황당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포도원이 저절로 잡초가 없어지고, 포도는 저절로 가지치기가 되어서 잘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가 일일이 잡초를 뽑아 주고,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런것 같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절로 이모든 것이 다 스스로 정리가 되고, 반듯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떨어진 주보하나도, 줍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떨어져 있습니다.
의자하나도 매주, 닦지 않으면, 먼지가 하얕게 뭍어 납니다.
점심도 그렇고, 설거지도 그렇습니다.
누가 손을 걷어 붙이고 하지 않으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맡아들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포도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록, 잘 알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어찌 된일인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둘째아들은 반대입니다. 말은 똑바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을 썩히는, 불효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가보니,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세한 상황과 이유과 결과를 잘 물어보실것 같은데,
놀랍게도, 거두절미 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 하십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 말씀을 들을때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어디를 보시는지, 무엇게 관심이 있으신지, 짐작을 할수 있게 됩니다.
잠깐 구약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구약에 창세기에 보면, 야곱과 에서가 나옵니다.
에서는 맏아들이고, 야곱은 둘째 아들입니다.
누가 축복을 받았습니까?
누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둘째아들 야곱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자~~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이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야곱은 잔머리를 얼마나 굴리는지...형을 속여서 골탕을 매깁니다.
축복을 받을때도, 형 에서 행세를 하면서, 속여서 축복을 가로 챕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은 아주 질이 않좋은 사람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반전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로, 우선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가장큰 욕심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야곱이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쫓겨가는 와중에 벧엘에서, 자다가 깨어나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릴때는, 그 잔머리로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며,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매어달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제일 욕심을 내는 야곱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모습을 나쁘다고 하지 않으시고,
둘째아들 야곱에게 축복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어떤 모습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다 알수는 없으되, 오늘 말씀을 보면, 힌트를 찾을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것 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사람을...하나님은 관심있게 봐 주십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축복에 욕심을 내고,
하나님께 매어달리고
심지어 조금 전까지 말은 못한다고 했지만, 행동만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봐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믿음의 식구들은, 예수님께서 관심있게 봐주시고, 하나님께서 좋게 봐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던 둘째아들 처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열심히 감당하는 헌신을 예수님께서는 칭찬하시며, 봐주십니다.
주일마다~~~ 주님의 전에 나와서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의미있게 봐주십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귀찮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귀뜸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불의한 재판장 비유가 있지요,
불의한 재판장이 있는데, ‘내 원한을 풀어달라’고 과부가 자꾸 찾아갑니다.
너무 자주 찾아가서, 성가시게 자꾸 구하니까...불의한 재판장 마저도 두손을 들어 버립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들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고.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이 말씀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하물며,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매어달리는 것을 나쁘게 보시지 않으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것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는 참지 않고 속히 응답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관심있게 봐주시고
어떤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는지, 이제는 윤곽이 들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신효식 집사님 칭찬하고 싶습니다.
한번은 토요일 성전청소를 하는데, 그날 따라 날씨가 매우 추웠습니다.
‘집사님 날씨가 추운데 어떻게 오셨어요. 오시는데 애잡수셨지요?’
‘날씨가 추워도 와야지, 그럼 안와?~~~”
‘네 그렇쵸...’
이만하면, 우리교회에서 내가 제일 믿음이 좋아,
우리교회에서 내가 제일 기도를 많이해...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닙니다.
더 열심히 둘째아들처럼,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하였다고, 칭찬하시는 분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아버지는 자녀들을 사랑해 주십니다.
상자에 든 초콜릿을, 혼자 다 먹어버린 동생에게, 엄마가 화을 냈습니다.
“아니, 그 많은 초콜릿을 혼자 다 먹었단 말이야? 도대체 형 생각은 안 한 거냐?”
그러자 동생이 울먹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계속 형 생각했어요. 형이 오면 안 되는데…형이 오면 않되는데,
그렇게 형 생각하면서 하면서, 먹었단 말이에요.”
그 생각이 그생각이 아닌데, 동생하고 엄마하고 관점이 틀린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점이 틀려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변치 않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50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요한1서 4:4 에는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부모님은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나의 자녀가, 다른 아이들을 이겼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사탄을 이기고, 사탄의 자녀들을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사탄과 싸움이 붙으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응원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기기를 응원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위를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않계시니까 그틈을 노리고, 사탄이 장난을 첫는지 알수는 없습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제자들은 그 짧은 시간에 세상에 험한 일은 다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노를 저어도 배가 나가지 않습니다.
배가 뒤집힐것 같고,
온갖 절망감과 무서움을 다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얼마나 급하셨던지, 제자들 생각에, 제자들을 구하려고,
물위를 걸어서, 성금성금 제자들에게, 한걸음에 달려 오셨던 것입니다.
참 예수님도 얼마나 급하셨으면, 그 사이를 못참고, 물위로 걸어서 오셨을까?
예수님의 마음을 누가 급하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제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제일 급해 하십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려움에 빠지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힘들어 할때, 급해 지십니다.
‘내가 빨리 가서 힘을 주어야 겠다.
내가 빨리 가서 도움에 손길을 만들어 주어야 겠다.’
내가 근심하고 내가 힘들어 하는 것, 못지 않게, 하나님께서는 더 급해 하시고, 더 걱정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유령이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베드로는 진짜 예수님이면, 나도 물위로 걷게 해주십시오... 이상한 부탁도 드리고,
온갖 해프닝이 다 일어납니다.
하여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진정시키시고 배에 올르자,
순식간에 바람이 조용해 졌습니다.
배가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급하게 물위를 걸어서 오게 만들었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타신배는 잔잔하더라
광풍 아무리 몰아처도 잔잔하더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로 경제가 어렵지만, 예수님 바르게 모신 가정은 경제가 않어렵습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나의 중심에 예수님이 없는 사람이 우왕좌왕하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을 나의 중심에 바르게, 모시고, 예수님께 매어 달리는 사람은, 결국 바람이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승리 하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실어 주시고,
않되면, 급하게 찾아와 주셔서도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플로리다 해안은 미국에서도 이름난 휴양지입니다.
여름이 되면 세계에서 플로리다 해변으로 모여 든다고 합니다.
관광객들은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고, 수영복을 입고, 모래가 잔뜩 뭍은 맨발로 음식점과 마트를 돌아 다닙니다.
그러니까 음식점과 마트에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청소하기도 힘들고, 젖은 수영복으로 의자에 앉으면 의자도 더럽게 되고,
그래서 입구에, ‘맨발은 출입금지’
‘슬리퍼를 신지 않거나 수영복을 입은 분들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큰돈을 번 식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식당의 문 앞에는 이렇게 팻말이 달려 있습니다.
‘맨발 환영, 수영복 환영, 모래와 물기는 우리가 청소하겠습니다.’
역발상으로, 손님을 위하여 희생할수 있다고 하는 팻말을 보고, 사람들이 편하게 여기고 들어오니까...그 가게는 항상 사람들이 가득 하더라는 것입니다.
조건과 상황은 절대로 불변의 기준이 될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몹시 가난하면서 믿음을 지키며 십일조를 드리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성실과 바른 믿음이 인생의 성공을 가져온다고 굳게 믿고,
어려운 현실을 절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현실과 싸워 나갔습니다.
그 결과 30세에 ‘모빌런치 서비스 회사’를 만들고 도너츠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청년의 이름은 ‘로젠버그’입니다.
로젠버그는 도너츠를 팔면서 그가 파는 도너츠를 상표로 등록하였습니다.
이름하여 ‘던킨 도너츠’...
72세에 생일축하를 받으면서, 로젠버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가난과 교육부재의 환경에서 자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늘 제 짐을 맡아주셨습니다.
성공은 ‘지식’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고 믿습니다.”
로젠버는 어려운 상황과 조건에 맞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왔는지 짦막하게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국은 타락했다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미국이 쉽게 넘어지지 않는것은
아직도 바른믿음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성경말씀을 제일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잘 되기를, 진실로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자녀가 걸음마를 떼면서, 넘어질때, 아파서 울면... 한 걸음에 달려오셔서 안아 주십니다. 쓰다듬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준행하고,
하나님 앞에 몸부림 치며, 매어달리는 성도가 있으면,
어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성경말씀 그대로 찾아와서
응답해주시고, 우리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여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위에 광풍 때문에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중심에 모셔드리고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꼭 승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즈음 날씨가 매우 춥지만, 이제 대한은 뒤로가고, 곧 입춘이 다가 옵니다.
동장군이 아무리 거쌔도, 봄소식을 전해주는 버들강아지 새싹을 이기 못하는데,
세상에는 광풍이 왔다 갔다 해도,
성도의 찬송소리,
성도의 기도소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 뒤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평안하고, 잘되고, 이기는 것을 바라십니다.
어떨때는 직접 오른팔로 도와 주십니다.
우리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자녀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