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해야 전진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 21절
2016.01.12 10:14:03 조회2774
고린도후서 5장 18절 21절 화목해야 전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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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둘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둘째날, 궁창과 물을 만드셨습니다.
그전에는 모든 것이 섞여서 혼돈하였는데,
둘째날 물이 모여 있는 곳과 물이 없는 궁창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날은 물질들이 있어야 할, 큰 질서를 만드셨다고 해야 할까요?
새해를 시작할때는, 금방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기쁘게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작하자 말자, 세상은 변함없이
무질서와 근심과 걱정으로 물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국회는 혼란스럽고,
북한은 수소폭탄을 터트렸다고 하고,
세상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뒤에 현수막이 있습니다만,
새해 우리교회 표어는 말씀대로 전진하는 교회입니다.
모든 성도들, 개인개인, 가정가정, 나아가서 교회도, 전진하는 한해가 되자...
라는 의미에서, 전진하는 교회라고 정하였습니다.
전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제자리 걸음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말도 있지만, 세상이 모두 앞으로 나가는데,
가만히 그 자리에 있으면, 바른 모습을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전진하지 못하고, 뒷걸음하면, 그것은 더욱 큰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나의 인격과, 생활과 모든 것이, 발전하고, 성숙하고, 전진해 나갈 때,
올 한해가 보람되고 은혜롭지 않겠습니까?
지난 주는 말씀은 전적으로 순종하여, 꾸준히 전진하는 한해가 되자, 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갈등없이 화목함으로 전진하자고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갈등이 있으면 전진하지 못합니다.
‘갈등’은 한문으로, 칙갈, 등나무 등..입니다.
그러니까 한 나무에 칡과 등나무가 동시에 자라고 있습니다.
칙은 오른쪽으로 돌면서 감겨서 올라갑니다.
등나무는 왼편쪽 돌면서 감겨서 올랍갑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부딪혀서 올라갈수가 없습니다.
갈등한다. 즉 한 나무에 칡과 등나무가 서로 부딪혀서 못 올라가는 것 처럼,
사건마다 일마다 자꾸 부딪히고, 얽히고 섥힐때, 갈등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25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분쟁하고 갈등하면 앞으로 전진하지 못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 이고,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속에 갈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할까? 이렇게 하지 말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전진하지 못합니다.
화목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가정은 전진하지 못합니다.
사회도, 교회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갈등이 없이 전진할수 있느냐?
1. 믿음이 분명해야 갈등이 없이 전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갈등이 생기면, 그 성도는 전진하지 못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과 관계에 갈등이 생길때, 앤돌에 신접한 무녀를 찾아갑니다.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고, 무녀에게 찾아갈 때, 그 사람이 전진할수 있겠습니까?
무녀에게 좋은 말을 들으려고 갔더니, 무녀가 항상 하는 레파토리가 있지요.
‘당신에게 않좋은 일이 보입니다.’
사울이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게 뭡니까? 숨김없이 말해 주세요.’
‘네, 당신이 내일 싸움에서 질 것 같습니다.’
싸움에서 진다고 하니, 마음이 더 급해집니다. ‘더 상세히 말해 보시오’
무녀가 신이 났는지...‘저기...내일 싸움에서 죽을 것 같습니다.’
마음에 엄청난~~ 근심걱정이 더 생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대방이 급하면 급할수록 점집에 가면, 더 큰 댓가를 요구합니다.
‘수 백만원 짜리 부적만 붙이면, 깨끗이 해결 될 겁니다.’
사울은, 순진했는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지도 않고,
바로, 마음에 큰 낙담을 하고, 아예~~~싸울 기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큰 싸움전날, “아멘~~ 믿습니다. 힘을 주시옵소서..” 그래도 모자랄 판인데,
시작부터 죽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힘이 나서, 나가 싸우 겠습니까?
그 다음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중지세입니다. 군사들은 힘을 내서 싸우고 있는데, 정작 사울왕은 싸울맘이 없습니다.
이싸움은 어짜피 질텐데...질텐데...풀이 죽어서 싸우지를 않습니다.
싸움에서 이기자고 해도, 될까 말까인데,
진다고 생각하고 싸우는데, 어떻게 이길수 있겠습니까?
결국 자기가 믿고있는 그대로, 진짜 지고 말았습니다.
져도, 완전히 져서, 정말, 그 싸움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에 갈등하는 사람은, 전진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에는 말씀합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만 바라면, 완전히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매달리고, 바알에게도 매달리고, 양쪽으로 매달리면, 더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너무너무 잘못된 생각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렇게 바알이 좋으면, 가서 바알을 한번 섬겨 보아라...” 그러시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끌려가서, 억지로 우상을 섬기게 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고, 얼마나 괴로운지,....
이사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무슨 날을 잡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벽에 못도 함부로 못밖습니다. 매일매일이 귀신에게 억눌려서 살아가는 날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얼마나 은혜롭고 편하고, 복된지,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전진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성전에 나와서 울며울며 기도하던 한나는,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사무엘’ 이지요.
하나님 앞에 매일같이 기도하던 야베스는,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없이 살아가는, 존귀한 자가 될수 있었습니다.
환란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께 매어 달리지 않고, 설렁 설렁~~ 대충 대충...어떻게 넘어가겠지...... 않됩니다.
나는 그러고 싶어도, 사탄이 설렁설렁 할 때, 그렇게 놔~ 주지를 않습니다.
씨름을 하듯이, 죽기살기로 하나님께 매어달릴때, 하나님께서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라, 너를 이스라엘 이라 하리라”..축복해주신것 처럼,
내가 하나님께 매어달리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나를 축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두마음을 품지 안는 신앙....너무너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에 인근에 ‘행복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 소식을 전해 드렸습니다만,
행복한 교회는, 지금 완전히 신천지가 접수하고, 그 전 교인들하고 목사님은 쫒겨나서, 조그만 상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 다니던 청년이 성경공부 한다고 해서 갔다가, 신천지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이기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너희 행복한 교회에는, 우리 신천지가 파견되어 있는데, 곧 접수할 꺼다... 그랬는데 정말 그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행복한 교회가 마무리 되면서, 거기서 3~40 명씩, 전원교회, 동행교회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참으로 걱정되는 대목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제는 숨길 일도 아닙니다.
신천지 본부차원에서, 선언을 했습니다.
김포신도시에, 5000명을 이사 시켜서, 김포신도시에 교회들을 접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신천지에서 발표를 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우리교회 밖에서 하는, 어떤 성경공부에도, 참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도사다, 선교사다, 계시록을 잘 아는 목사다. 가보자고 하는 어떤 꾀임에도 절대로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거짓목자 들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 믿음이 갈등하면, 전진할수 없는 것이 아니라, 큰 혼란과 혼돈이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사랑이 분명해야 갈등이 없이, 전진 하게 됩니다.
너무 무서운 말씀을 드려서, 마음이 두근거리실꺼 같은데...
어떤 학교에서 시험을 쳤다고 합니다.
학생이 답안지에... 화이트...글씨 잘못쓰면 희게 덪칠하는 화이트를... 진하게 덧칠해 놓고,
옆에다가 써 놓았습니다.
‘동전으로 긁으면 답이 나옵니다.’
선생님이 채첨하다가 한심하기도 하고, 그런데 은근히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동전을 꺼내어서, 화이트를 끍어 보았더니, 글씨가 나왔습니다.
“꽝~~다음 기회에, 도전 하세요”
황당한 학생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람을 보면, 황당한 사람, 속상한 사람, 화나는 사람, 너무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전진하는 사람은, 사람사이에도 갈등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직분의 의미를 잘 알고, 사람 사이에 화목하는 사람은, 전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직분의 의미를 잘 모르고, 사람사이에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은, 전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사람 사이에 화목하지 못하게 됩니까?
예수님과 화목하려면, 믿음이 바로 서야 합니다.
하지만 햇갈려서, 사람 사이에 화목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듯이, 사람을 믿을때,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내가 너를 믿었는데, 그럴 줄이야..
내가 너를 그렇게 의지 햇는데, 그럴 줄이야.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사람은 믿음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랑해야 할 존재’이지, 믿어야 할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사람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믿고 의지하면 않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전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무가치한 존재인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사람은 사랑을 하면, 무한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하여 말합니다. “여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힘내세요”
그러면 남편은 힘이나서, 남편의 역할을 잘 하게 됩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힘내요’
그러면, 아내는 힘이나서, 아내의 역할을 잘 하게 됩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면, 힘이 납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로, ‘나와 다름을 그 이유로 때가 많습니다.’
사랑 하고 싶어요, 하지만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 거지요?
‘왜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 처럼, 하지 않는 겁니까?’
그러면서 사람을 판단하고, 내가 볼때,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판단은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 잘 되었다 하는 판단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예수님 만이 판단하시고 예수님 만이 정죄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대심판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대심판 전까지는 판단하지 않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판단하고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그 사랑을 본받아, 다른 형제 자매를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3장에 보면 말씀합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믿음에 준비가 않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면,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듯, 그 정죄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나쁨니다. 선악간에 분명히, 나쁜 존재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년조가 작은 사람을, 다른 성도를 향하여 선악판단을 하고,
다른 성도를 정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악판단을 하고, 정죄를 하느냐? 아니면 사랑을 하느냐? 하는 것은,
예수님 자리에 내가 서느냐?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에 내가 순종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쁘다, 잘못됬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예수님께 맡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칭찬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한에 가까운 힘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그 힘으로,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는 사랑할 때, 갈등은 사라지고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소망이 분명해야 전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 사랑, 했습니다. 마지막 소망이 되겠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은, 갈등이 생겨도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가면, 갈등은 사라집니다.
한번 스스로 마음속에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는 어떤 갈등이 있습니까?
그 갈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얼마나 기도하였습니까?”
잠언 16장에는 말씀합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이사야 14장에는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하나님께서 경영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의 경영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나의 경영하는 것과 계획을 맡겨 드립니다. 하나님 이루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새해 시작하며, 기도를 하였습니다.
나라와 국가를 위하여 원장로님이 기도하고
가정과 자녀들을 위하여 박장로님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새해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제가 일일이 기도하였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 기도한 데로, 반드시 이루어 주실줄 믿습니다.
우리교회는 소망이 이루어 지는 교회인 것을 봅니다.
각 가정의 기도의 제목들이, 지금까지 이루어 지며 진행한 것을 보아 왔습니다.
목사님, 결혼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직장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목사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그럼 저는, 금요기도회에, 기도제목을 내고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합심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중보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말씀합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2016년 전진하는 한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갈등은 사라지고, 말씀대로 전진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사람과는 사랑으로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매일매일 소망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전진하는, 올 한해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