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믿음은 사귐 요한1서 1장 1절 10절
2009.01.10 20:59:11 조회4888
요한1서 1장 1절 10절 깊은 믿음은 사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나무꾼 두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사람은 지혜로운 나무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시기 질투하는 나무꾼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산에 나무하러 갔는데, 지혜로운 나무꾼은 항상 나무를 많이 베어서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시기질투하는 나무꾼이 말합니다.
“자네 나보다 나무를 많이 하는 비법이 뭔가? 오늘 하루 나하고 같이 나무하면서 좀 가르켜 주게나..”
아침부터 두 사람이 나무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나무꾼은 1시간 나무하면, 10분정도 꼭 쉬는 것입니다.
시기질투하는 나무꾼은 이때다 싶어서, 쉬지하고 저녁까지 열심히 나무를 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보니, 역시나 지혜로운 나무꾼이 더 많은 나무를 하였습니다.
시기질투하는 나무꾼이 말합니다.
“아니 자네는 나보다 많이 쉬면서 일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나무를 많이 했단 말인가?”
지혜로운 나무꾼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10분 쉬는 동안에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았다네..”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날이 무디어진 도끼를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에도, 어리섞은 나무꾼 처럼, 쉬지도 않고, 무디어진 도끼날을 가지고,
힘은 힘데로 쓰고, 결과는 결과대로 얻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날 성전에 나오는 것은, 지혜로운 나무꾼이 도끼날을 가는것에 비유할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또 한번 새로워지는, 충전과 회복의 시간 refresh-Time 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회복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주일날, 꼭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내마음이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1. 깊은 믿음은 사귐입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주일날,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고,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하게 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을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깊은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어집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을때, 하나님게서 주시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만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치유와 지혜을 발견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깊은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이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더 풀어서 보자면, 깊은 믿음이란,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깊은 교제라 할수 있겠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과 깊은 만남이 있었던 분입니다.
그 깊은 만남을 1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예수님과 얼마나 깊은 만남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보터 계시던, 생명의 말씀이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중매를 하였다고 합니다.
소개받는 분이 궁금해서 묻습니다.
“목사님 소개하는 사람이, 잘생겼어요? 그 사람 성격은 좋아요?”
그러자 정색을 하며 목사님이 말했다고 합니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알려그래요?
나는 우리 집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아도, 아직도 그 실체를 모르겠어요....
볼래, 사람은 모르고 살아가는 겁니다.
모르고 만날 때 매력이 있지, 알면 정나미가 뚝~떨어져요...“
그 사람의 실체를 안다는 것,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잘 아는것...
사귀어보지 않고서는 알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깊은 사귐있을때.... 같이 고생하고, 같이 웃으며, 같이 생사고락을 같이할때에야..
그 사람의 실체를 분명히 알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과 같이 고생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자리에서, 예수님 때문에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때, 같이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며, 깊은 사귐을 같이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지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할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 이십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예수님과 깊은 사귐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내 입으로, 나의 언어로 고백할수 있게 되어집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하나님 이라고만 부를수 없엇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내가 만난 하나님을, 나의 말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나옵니다.
여호와이래--나를 위하여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닛시--나의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라파--나의 치료자가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샴마--항상 거기 계셔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과 신령한 사귐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사귐이란,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가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말씀에는 요한사도는 예수님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손으로 만졌다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만 끝나고, 좋은 느낌과 감정으로 끝나는 교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귀로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때도, 마음으로만 드려서는 않됩니다.
사도신경을 외워야 합니다. 한목소리로 찬송을 해야 합니다. 성경책을 펴야 합니다.
즉 몸을 움직여서, 직접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는 예배를 드려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좀더 예수님을 깊이 아시려면,
예배 안내를 하시기 바랍니다. 헌금봉사를 해야 합니다.
오후 찬양예배때 특송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아시려면,
찬양대에서 봉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차량봉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식사봉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봉사를 하려면, 힘이 듭니다. 많은 노력을 드려야 합니다. 희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바로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물흘리신 자리...
예수님께서 조롱당하신 자리...
예수님께서 희생하시던 자리....
하지마, 그 자리에 서게 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가 낮아지고, 썩어지는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얼마나 썩어지느냐에 따라서, 열매 맺게 되는 것이, 천국의 윤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한알이 밀이 썩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을것이요,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남편이 않믿는 가정인데, 밤늦게 남편이, 친구들을 대리고 들어왔습니다.
친구들이 미안해 하면서 따라들어옵니다.
아내는 속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식사를 차려주었습니다.
친구들이 말합니다.
“아주머니 우리 집사람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색도 하지 않고, 이렇게 잘 대접해 주세요”
아내가 말합니다.
“네, 우리는 결혼한지 벌써 10년 째랍니다.
그동안 열심히 예수님을 믿자고 졸랐지만, 남편은 아직까지 한번도 교회나아가 않았습니다.
이제 죽으면, 저는 천국가겠지만, 남편은 영원히 지옥을 가게 되는데,
그러니,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대접을 좀 잘 받으라고, 제가 정성껏 이렇게 식사를 차려준답니다.“
그 말에, 이 두사람은 밥맛이 뚝 떨어져 집으로 돌아갔고, 남편도 결국에는 믿음생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나마 형통한 것이,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닙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나를 위하여, 대신 시간을 드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하여 대신, 시간을 드리며,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구역 권사님이, 집사님이 나를 위하여, 수요일날 금요일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유없이 내가 잘되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질때, 이러한 사실들을 자꾸 알게 되어
3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사도요한은,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귀고 교제하고, 만나고, 깨닫게 되는....신령한 누림이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 성도님들도 예수님과 신령스럽고, 깊은 사귐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2. 깊은 믿음은 빛으로 행함이라 하겠습니다.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어떤 목사님이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보세요... 맥주 두 박스 모모아파트 206호로 배달해 주세요...”
목사님이 너무나 황당하여, 어쩔줄을 모릅니다. 아마도, 전화를 잘못 하였나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입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바로 자기교회 교인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아무아무개 성도님...저 모르시겠습니까? 교회 담임 목사입니다.”
그러자 잘못 전화한 그 교인이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아니...도데체, 거기 술집에서, 지금 뭐하고 계세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 전화를 잘못한줄 모르고, 오히려 목사님이 술집에 있다고 착각을 하였지 뭡니까?
깊은 믿음은 빛에 비유될수 있겠습니다.
빛에는 여러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빛이 비취면,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깜깜한 방에 촛불하나만 밝혀도, 그 방에 있는 어두움은 물러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은 조금도 없으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녁에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고 합니다.
별이 총총 뜹니다. 물소리가 졸졸 흐릅니다. 숲속에서는 이름모를 풀벌레가 울고 있습니다.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강가에 털석 주저앉아서,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문득, 달빛에 조그만 자루가 옆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열어보니 돌맹이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잊어버리고 간 모양이구나..
그리고 공기돌 하나를 끄집어내어 물에던져 넣었습니다.
“퐁당” “퐁당”
그 소리가 너무나 상쾌합니다.
그래서, “퐁당” “퐁당” 공기돌을 하나씩 던지면서, 새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침해가 떠오르는데, 마지막 돌을 던지려고 돌을 끄집어 내어 보다가,
그만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의아해 해서 묻습니다. \"왜 그렇게 슬퍼합니까?“
“보십시요. 보석입니다. 조금전까지만해도, 이 자루 속에서 수백개의 보석원석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두워서, 돌맹이인줄 알고, 그많은 보석을 강물속에 던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겨우 한 개밖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두움은 무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많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보석과 같은 능력이 있는데로,
죄의 어두움으로, 무지함으로, 다 없에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에서는 발견할수 없는, 각양 아름다운 지혜와 능력의 말씀이 가득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읽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에 빛이 비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요한은, 빛되는 예수님과 깊은 사귐을 통하여, 빛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럴때,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사단은 자동적으로 물러 갑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악한 생각들은 자동적으로 물러갑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나쁜 것들은 다 물러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타짜... 저는 화투에 그렇게 많은 기술들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여 끝까지, 점부 다 속이는 것입니다.
그 속이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늙어서 다 버리고 난 다음, 인터뷰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돈을 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돈으로 살수 없는, 소중한 것들은,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되돌릴수 없지만, 남은 인생은 거짓인생으로 살기 싫어서, 이렇게 보여 드립니다.
화투기술만 쫓아서 살다보니, 가정도 없이, 자녀도 없이, 도망치며 보내버린, 모든 젊은날을 아까워하며, 남은 인생이나마 의미있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빛이 없으면, 어둡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 길이 낭떠러지인줄도 모르고, 열심히 낭떠러지를 향하여 걸어가게 됩니다.
빛이 없으면, 어둡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길이 멸망의 길인줄도 모르고, 열심히 멸망의 길을 향하여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죽음과 멸망의 길 인줄로 모르고, 허탄한 것들을 쫓아서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통하여, 빛으로 충만한, 새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 “기뻐하며, 이소식을 전하니...하나님은 빛이시다” 라고 힘있게 외쳤던 것입니다.
보람되고, 의미있는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
진실되고, 복된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
거룩하고, 은혜로운 구원이 길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깊은 믿음은, 빛되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3. 깊은 믿음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보스톤에서 목회를 하는 ‘콘라드’목사님의 고백글 입니다.
10여년 목회기간중에,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히던 한 교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교인이 서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인이 이사가는날, 콘라드 목사님은, 시원한 마음으로, 배웅을 잘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매일 편지가 오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교인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목사님, 있을때는 몰랐는데, 이사오고 보니, 제가 그동안 목사님께 잘못 해드렸던 것들이 생각이 납니다.
목사님...이것도 잘못했던것 같고, 저것도 잘못했던것 같고... 목사님 용서해 주시는 거죠“
......끈질기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래서 목사님 재빨리 큰 글씨로, 그 교인에게 전보를 쳤다고 합니다.
Forgiven, Forgotten, Forever....
“용서했습니다. 잊어버렸습니다. 영원히.... 그러니 다시는 편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시원해 했다고 합니다.
좋은일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쁜것들은 빨지 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반대입니다. 좋은 일들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반대로 나쁜일들은 잊어버리지 못하고, 두고두고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깊은 믿음은, 않좋은 것은, 빨리 버리는 것입니다.
속시원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좋아하며, 갖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믿음에 사람은 회개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나쁜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갖다 채울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나쁜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내가 새로워 지는 것을, 내가 스스로 막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회개할것이 없다고, 하는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깊은 믿음은, 회개를 즐거워 합니다.
죄는 멀리하고, 빛되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깊은 만남과 교제를 가집니다. 동행하며, 동고동락하는 것입니다.
올 한해, 예수님과 동행하셔서, 이 세상이 줄수 없는,
행복과 은혜와 능력속에 살아가는 날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