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는 교회 마태복음 4장 18절 25절
2008.12.27 18:36:17 조회4639
마태복음 4장 18절 25절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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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해동안 우리교회의 표어 말씀은, 마태복음 4장 20절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
4장 2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008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을 시작하던 새해 첫날, 2008년이 언제 다 가겠는가? 하면 바라 보았는데,
벌써 2008년은 흘러 마지막 주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 한해동안 살아왔던, 우리들의 모든 모습을,
이제 하나님앞에 드리고, 그 앞에 서 있습니다.
올 한해, 살아왔던 나날들이 생각이 납니다.
어떨때는 힘든때도 있었습니다.
어떨때는 보람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떨때는 아쉬운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 앞에 내어 보이기, 좀 부끄러운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 내려 놓아야 합니다.
2008년은 이제 마무리 해야 할 시간이 다가 온 것입니다.
한해동안 푯대를 삼아 달려왔던, 말씀을 다시한번 펼쳐보며,
2008년 전체의, 나의 생활, 믿음,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1.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18절에서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이 되겠습니다.
처음, 첫 번째 라고 하면, 얼마나 신경쓰이는지 모릅니다.
자동차도 처음 살 때, 얼마나 마음이 설레입니까?
살림을 장만하여도 제일 먼저 사는 살림이, 제일 애착이 가게 됩니다.
자녀들도 첫 번째 아이가 제일 정이 가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첫 번째,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마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첫 번째 제자라면, 다른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첫 번째 제자라면, 예수님을 든든히 따라올 믿음직한 성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교우들은, 예수님께서 처음 부르실 만큼,
예수님 앞에, 믿음직하고, 신실한 신앙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일 믿고 맡기실수 있는, 믿음직한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말, 믿고 맡길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약삭빠르지도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머리가 비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떨때에는 우직하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철저하였습니다.
예수님 따라가는데, 예수님 말씀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뒤 따라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려고 잡혔을 때에도, 다른제자들은 흩어져도, 베드로만은
홀로 마지막 까지 가야바의 뜰에 까지 쫓아 들어갑니다.
십자가에서 부활하셨다고 할때에도, 제일 먼저 달려가서, 예수님의 무덤에 가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교할때에도, 예수님과 처럼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영광스러워 하며 순교하였던 분이, 바로 베드로 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베드로 사도의 신앙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왜 베드로사도를 처음 제자로 부르셨는지, 알수 있게 되어집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떤 제자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우직스럽게
제일 열심히 순종하였던 제자였다고 합니다.
올 한해, 지나오면서, 베드로 사도와 같은 예수님 따르는 믿음이 나에게 있었는가?
살펴보게 됩니다.
예수님 말씀이라면, 약삭빠르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이라면, 이것 저것 따져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기 때문에, 순종하며, 따르던 신앙이 있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성탄절 얼마나 은혜롭게 잘 보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탄절, 우리교회 장영자 권사님은 하늘나라도 가셨습니다.
장영자 권사님이 앉아계시던 자리....
장영자 권사님께서 봉사하시던 자리...
장영자 권사님께서 기도하시던 자리...
를 돌아보면, 예수님 말씀을 따르던 자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항상 분명하셨습니다. 예수님 말씀이라면, 우직하리만큼,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힘쓰셨습니다.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구역예배를
제일 열심히 지키는 권사님 이셨습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그 자리를 지켰겠습니까?
예수님이 만나 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계시기 때문에...
나에게 맡겨주신 자리인줄 알고, 지켰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베드로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제자였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얼마나 어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단어와 내용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갈수 없다고, 말씀하실 때,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말씀을 어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의 말씀이 듣기 좋다고 따라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 병고쳐 주시는 것이 좋다고 따라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나라에게 갈 길이 없다고 하는 말씀을, 들을때에는
모두들 마음에 거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힘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로만 천국에 갈수 있다는 말씀을 들을때,
사람들은 그만, 어려워 하고, 싫어하고, 힘들어하며,
자기좋을데로, 자기의 기분을 따라서,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66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그럴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얼마나 든든한 대답입니다. 얼마나 믿음직한 대답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 베드로는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어렵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면, 세상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길이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21절에서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지난주 각 학교들은, 방학이 시작 되었습니다.
방학이 되자, 한 아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요즘 뭐하니?”
친구가 대답니다. “방에서 놀아”
궁금해서 묻습니다. “뭐하고 노니?”
그러자 친구가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누워 있으면, 엄마가 와서, 가끔 한번, 뒤집어줘”
자 방학이 되었다고, 이렇게 게으름 부리는 자녀를 보면, 어머니는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학생이라면, 학생의 활동을 해야, 학생이 아니겠습니까?
이름만 학생인데, 방학을 했다고, 게으름을 피우면, 참 보기 딱한 학생이 아닐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보면, 또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제일먼저 순교를 하였습니다.
형제인데, 동생 요한사도는,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전례에 따르면 90살 까지 사셨다고도 합니다.
요한사도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랑의 제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제일 많이 사랑받은 제자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열심히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요한사도는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유명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께 사랑받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전하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쓴 서신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의 설교는 온통,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 뿐이었다고 합니다.
나이늙어 90살이 가까워지자, 사도요한은 혼자서 움직이기도 힘들어,
제자들이 사도요한을 들것에 실어, 설교단으로 갖다 올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합니다.
사도요한은 사람들을 향하여, 겨우 손을 들고 ‘세마디’ 설교만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부축을 받아서 내려와서 들것에 실려 나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세마디 설교에도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바로 그 제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손을 만지며, 예수님과 함께 걸어갔던,
그 제자를 직접 보았기에,
사람들은 너무나 감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요한의 손은 상처투성이 었습니다.
사도요한의 얼굴과 몸은 너무나 보기 흉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끌려가서,
갖은 고문과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는 끓는 기름속에 던저지기 까지 하였기 때문에,
사도요한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상처 때문에, 더욱 사도요한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전한 증거이기 때문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자면, 어떨때는 마음에 상처가 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자면, 어떨때는 몸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갔던 사도요한은, 예수님께 받은 사랑 그대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벌써 지난 통계입니다만, 2006년 통계로 볼때에,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헝가리에 이어 세계 2위 자살국이 됐었다고 합니다.
한해 1만688명이 자살을 한다니 하루 28명이 자살로 죽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51분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얼마전에는 연예인들이 줄줄이 자살을 하여 충격을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미움당한다고 생각할 때,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살’ 하지만, ‘자살’이라는 두 글자의 앞뒤를 바꾸면, ‘살자’ 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자녀는,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때에,
그 사랑을 자녀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줄때, 비로소 건강한 스스로 건강한 어른이 되고, 건강한 부모가 되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은 만큼, 또한 사랑을 나누어 줄때,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유아적 인격을 가진,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려서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받기만 하고, 나누어 줄줄 모른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직 어린아이 신앙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자라나는,
성숙한, 예수님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는 어떻게 되어 집니까?
23절에서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무엇을 하셨는가? 오늘 말씀에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제자들 우리교회가,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23절에는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루 다녀야 합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셨습니다.
그러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적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두루다니면서, 작게는 두밀마을, 많게는 검단신도시...더 멀리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려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도 미약하지만, 전도도 하고, 노방전도도 하고, 심지어는 우리는 직접갈수 없지만, 볼리비아 계시는 최상락 목사님을 통하여,
볼리비아 땅에 있는 분들에게 복음을 대신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대로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자 이렇게 될 때, 교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24절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루다니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면,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우리김포상도교회도,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자고, 외치던, 원인류의 욕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애쓰는 잘못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검단에도 있습니다.
뵈뢰아 선교회 성락교회--이단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보다가도, 자기들의 잘못된 주장을 더 열심히 전합니다.
귀신이야기를 얼마나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열심히 믿으려는 선량한 사람들 까지도 미혹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더 알리기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이 전하여 질때, 귀신들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 크게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럴때, 심지어는 병중에 있는 사람들이 났게 되었습니다.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병이 떠나갑니다. 근심, 분냄, 절망...분노... 다 떠나가고, 예수님의 참 평안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몸에 병도 당연히 떠나갑니다. 무기력, 소화불량, 마비, 그리고 각종 고질병이 고쳐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몸만 고쳐지겠습니까? 가정이 건강하여지고, 사회가 회복되고, 나라가 일어서는
신바람나는, 더 큰 역사도,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에 일어나느냐? 예수님 이름이 높혀지는 곳에..
이러한 큰 권능의 역사가 일어 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게 될 때 결론적으로 25절의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우리 김포상도교회의 성도들 중, 예수님을 따르는 한사람 한사람으로 믿음으로,
이러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큰 변화를, 제자 한사람 한사람을 부르심으로, 일으키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
베드로가 예수님 따르므로...요한이 예수님 따르므로, 이러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원장로님이 예수님 따르므로, 우리 박장로님이 예수님 따르므로,,
우리 홍두표 성도님이 예수님을 따르므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따르므로
이러한 큰 변화가, 우리교회에 일어나게 되어 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한해로 살아왔습니다.
부족합니다만...2008년 한해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따르는 믿음의 길은 멈출 수 없습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에, 제자들 처럼.. 예수님을 따라감으로,
더욱 새롭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성숙한 신앙....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우리김포상도교회 다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