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만이라도 누가복음 10장 38절 42절
2008.11.22 19:33:03 조회4961
누가복음 10장 38절 42절 한가지 만이라도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한 학생이 음악시험을 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슈베르트’가 지은 ‘숭어’ 라는 곡의 제목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외워지지가 않습니다.
한참 외우다 보니 한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슈베르트’ ‘숭어’ 그래 둘다 ‘ㅅ’ 으로 시작하는구나. 같은 ‘ㅅ’ 으로 되어 있는 ‘슈베르트’‘숭어’
그리고 시험지를 받고 보니, 문제가 다르게 나와 버렸습니다.
‘베토벤’이 지은 곡은 무엇인가?
같은 걸로 시작한다고 외웠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베토벤..붕어... 그리고 시험장을 나왔다고 합니다.
한가지라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 한가지를 잘해서, 소문나는 맛집이 됩니다.
그 한곡을 잘불러서, 인기 가수가 됩니다.
그 한가지 이론을 발견하여, 유명한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만이라도 잘하는 것,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가지라도 예수님 앞에 드릴수 있는, 믿음....얼마나 귀한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것만은 제가 자신있게 내놓습니다. 저의 신앙을 받아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길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수님 따르는 길은, 복잡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한가지 만이라도, 붙잡는 신앙이 있으면, 성공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은혜중에 잘 보내었습니다.
70생명 잔치로 하나님 앞에, 드리자고 하였는데, 정말 70여명의 사람들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에 있는 가족들, 될수 있는데로, 다 출석하고,
단지, 두밀마을에 이웃들이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70여명의 생명이 되어, 추수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기 맡은 부분을, 잘 감당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르듯이 진행되는, 은혜로 충만한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습니다.
안내를 잘 하였습니다.
찬양도 잘 하였습니다.
여선교회도 암송을 하는데, 얼마나 잘 하는지, 17명 정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홈페이지에 다 올려놓았는데,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김포상도교회 여선교회가 이렇게나 은혜롭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한가지라도, 드릴수 있다는 것,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마을, 동네 어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동네에 사는 ‘마르다’라는 여자가 선듯 나와서,
예수님을 자기집으로 영접하여 드렸던 것입니다.
마을이라 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동네가 아니겠습니까?
큰집도 있고, 작은집도 있고,
나이 많은 어른도 있고, 또 가족이 많은 집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 예수님께서 가시니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니까?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마을에 오셨네~~”
그런데 거기 까지였습니다.
밤은 늦어지고, 예수님은 어디서 쉬셔야 하는데, 구경만 할뿐,
누구하나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셔드리는 사람은 없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한 힘없는 여자, 마르다는, “예수님 우리집으로 오십시오.”
“제가 예수님을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셔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경만 해서는 않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모셔 들려야 되겠습니다.
구경꾼과 영접하는 사람...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경꾼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이 마르다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셨네”. 계속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바로, “구경꾼” 인 것입니다.
그런데 영접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님과 관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드립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대화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도 보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도 하시고...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나를 아시고, 나도 예수님을 아는 되는,
나와 너의 관계....
서로 아는 관계....
관계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 드리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만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좋아하시는지.... 청량음료를 좋아하신는지...
그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경꾼에서...영접하는 사람...
이 변화가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시고,
내가 예수님을 분명히 아는 관계는,
2차적으로, 엄청난 ‘권능의 역사’를 일으키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옵니다.
마르다에게는 동생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마리아.. 그리고 오빠, 오라버니도 있었습니다. 이름이 나사로...
그런데 어느날 오라버니되는 나사로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한창 결혼도 하고, 세상에서 잘 살아가야할 젊은 나이 인데, 이 오빠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아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때, 마르다의 생각속에 떠오르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지, 예수님..권능의 예수님...병든자고 고치시는 예수님...예수님께 부탁드려야 되겠다.
급하게, 마르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예수님, 오라버니가 죽었는데, 빨리 오셔서, 살려 주십시오”
이 소식을 전해듣게 된 제자들이 반대합니다. “예수님 방금도, 그곳을 지나오나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 했는데, 또 다시, 그 동네로 가시렵니까?
마르다의 일은 딱하지만, 예수님, 안전을 생각하셔서, 가지 마십시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서 나사로를 꼭 살려 주어야 하겠다.”
누구 때문에 예수님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가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마르다 때문에...
구경꾼 마르다가 아닙니다. 너무나 잘 아는...예수님을 영접해 주었던 ‘마르다’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셔서, 힘들텐데, 식사도 차려주고,
사람들이 많아서, 힘들텐데, 한번 내색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모셔서 대접해 주던, 마르다의 수고...
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마르다를 분명히 아시기에,
힘들지만, 위험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부탁을 들어 주시려고, 마르다가 사는 동네로 찾아가셨습니다.
가셔서,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아는 관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분명히 아시고, 기억해 주시는 관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소에 예수님 이름도 한번도 부르지 않고, 기도 한번 하지 않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던 사람들이,
죽어서 마지막 날에, 심판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심판대에 서고 보니,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천길 낭떠러지, 이글거리는 불지옥이 기다리고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발버둥을 칩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도, 대접하지 아니하더이까....
그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가”
예수님을 모셔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 나를 기억하시도록...예수님께서 나를 분명히 아시도록,
나의 가정에, 나의 기도의 골방에, 우리교회에서, 예수님을 모셔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에는 매주 토요일, 성전청소반이 청소를 합니다.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모릅니다.
신효식 집사님, 장영자 권사님, 박정옥 권사님...
매주 토요일 마다, 아침 9시 30분이 되면, 슬슬~ 교회로 나오십니다.
커피 한잔 마시고, 딲습니다. 유리창도 닦고, 의자도 닦고, 식당에 식탁도 닦고...
그런데 화장실 청소는, 박정옥 권사님이 하십니다.
그전에는 매주 제가 하였는데, 어느날 박정옥 권사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화장실 청소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서 빼앗겼습니다. 화장실 청소의 영광을, 박정옥 권사님에게 빼앗겼습니다.
작은 일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억해 주십니다.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 박정옥...
주일날, 제일 일찍 나오는 사람 박남규....
매일 성경 한 장 읽는 사람....
눈물로 매일 기도하는 사람....
이름도 빛도 없이, 세상에서 믿음생활 열심히 하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
김포상도교회 교인..아무개...아무개...아무개
예수님께서 다 기억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 다음에 저가 어려울때, 내가 꼭~ 도와 주어야지...
이 다음에, 나에게 예수님 급합니다. 와서 도와 주시옵소서...기도할 때.
내가 꼭~ 가서 도와 주어야지...
예수님을 모셔드려, 예수님께서 기억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사람을 보며 근심해서는 않됩니다.
40절 41절 말씀..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몇 년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려, 드디어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들을 다 불러서 작품을 공개하였다. 모두 축하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한 친구가 말한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예수님의 손에 들린 저 광채나는 유리잔을 보세요..”
사람들이 보니까, 예수님이 들고계신 유리잔의 광채가 정말 대단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칭찬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빈치가 붓을 들더니, 물감을 잔뜩 뭍혀서, 유리잔을 뭉개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작품은 실패한 작품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시선이, 예수님의 얼굴에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에 시선이 모이다니, 그래서 유리잔을 없에 버렸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 예수님 뿐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집에 모셔드렸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예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평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불평이 나옵니까?
우리도, 이런 경우들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복음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평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평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마르다가 그랬습니다.
열심히 예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평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가 제일 잘아는 사람, 바로 자기 동생, 마리아 때문에 불평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우들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가정에서 누구 때문에 불평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일 가까이 있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남편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도와 주지도 않고 말이야...”
아내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내 마음을 알아 주지도 않고...”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이녀석들 벌써부터...”
자녀들을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말이 않통해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구역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같은 여전도회에 회원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그랬습니다. 마을 사람들 때문에, 같이 온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동생 때문에, 마음이 상하였던 것입니다.
“동생 인대도, 언니가 이렇게 바쁜거 눈에 않보이나..
어떻게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아무일도 않하고 예수님 말씀만 들을수가 있지...“
그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다.“
그 한가지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되겠습니다.
이 중심에 있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을때, 주변적인 것이 보이게 됩니다.
주변적인 것만 보일때, 마음에 풍랑이 일게 되는 것입니다.
딱, 한가지, 예수님만 바라 보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만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으로만 바라볼때, 감사가 있게 됩니다.
그래도, 내 남편,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내 아내, 세상에서 최고입니다.
뭐니뭐니 우리교회, 검단에서 이렇게 좋은 교회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니, 우리나라에서 최고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크리소스 톰’ 이라는 교부를
로마 황제가 체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말했습니다.
“그놈을 당장 독방에 쳐넣어라!” 신하들이 말합니다.
“아니되옵니다. 기독교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런가?”
“조용한 기도실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잔인무도한 악당들이 있는 곳에 집어 넣어라.”
“그것은 더욱더 아니 되옵니다. 악당들을 전도하여 기독교인들을
만들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끌어내어 목을 쳐라”
“폐하! 그건 더 아니 되옵니다.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헛일이옵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러면 그놈을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야”
결국 황제는 두손을 들고 말았다고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예수님으로만 바라보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다 승리할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3. 한가지로 시작해야 합니다.
42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한가지만 붙잡고 있는, 마리아를 보시고,
하는 행동은 밉지만, 그래도 마리아는 그것으로, 자기 은혜를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가질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서, 한가지만 붙잡게 되면, 그 은혜로,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부산에 가면, 세계에서 제일큰 주일학교가 있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부산서부교회...교회학교 학생들만 많이 나오는 때면, 3만 2천명..이나 모인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큰, 교회학교가 되었는가?
그 교회학교, 선생님들은, 다 석박사가 아니겠는가?
아닙니다.
그 교회, 교회학교 선생님이 되는 조건은 딱 다섯가지 만이라고 합니다.
이 다섯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누구나 교사를 세워줍니다.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 교사들의 기준...다섯까지
1.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날마나 하나님과 교재하는 사람.
2. 어린이들을 위하여 하루 1시간 기도하는 사람.
3. 일주일에 세 번, 아이를 심방하는 사람.
4. 공과공부 내용을 30번씩 읽어서, 다 외우는 사람 사람
5. 주일에는, 아침 6시에 교회에 나와서, 아침부터 뛰는 사람
이 조건만 되면, 서부교회에서는 누구나 주일학교 교사를 세운다고 합니다.
이 조건대로, 교사활동을 할때에, 부산서부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학교가 세웠질수 있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올해도, 이제 한달만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 초, 시작할때는, 얼굴이 탱탱하는 분들이..
벌써 주름살이, 하나씩 지신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여도, 세월은 어짜피 흘러가게 되는데...
나는 한가지, 무엇을 남기게 되었습니까?
예수님 앞에서, 한가지를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한가지를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한가지로, 예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그 한가지로, 세상이 나를 알아주는,
그 귀한 한가지 붙잡는 믿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