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장막 요한계시록 7장 9절 17절
2008.09.27 23:38:33 조회5640
요한계시록 7장 9절 17절 예배의 장막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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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교사님이 몽골의 베르흐 지방에,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를 시작하는데, 벌러르 라는 이름의 소녀가, 땀 범벅이 되어 들어왔다고 합니다.
예배를 다 드리고 난 다음 선교사님이 물어보았습니다.
“벌러르야..왜 땀 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니”
“네, 오늘 아침에 소를 잃어 버렸어요. 잃어버린 소를 찾다가, 예배 시간이 되어서, 소 찾는것을 그만두고 뛰어 와서, 땀 범벅이 되고 말았어요”
그 말을 듣고 이 선교사님은 마음에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벌러르의 손을 잡고 기도하였습니다.
“소 대신 예배를 선택하는 이 귀한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소 대신 예배를 선택하는 마음....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 예배가 2등이 되어서는 않되겠습니다.
9절에서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오늘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난 일들과, 하늘의 모습이 기록되어져 있는 말씀이 바로 요한계시록이 되겠습니다.
사도요한은, 환상을 통하여 마지막 때에 되어질 일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시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구원의 도장을 찍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구원을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도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도장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도요한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을 다 찍으시는데, 그 숫자가 14만 4천명이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그 숫자를 보면서 뒤를 돌아서는데, 돌아서서 보니, 숫자를 다 셀수 없습니다. 14만 4천명 까지는 세었는데, 그 다음, 너무나 많아서 수 세는 것을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각나라와 백성와 방언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표를 받고, 뛸뜻이 기뻐하며, 하늘에 늘어서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깜짝 놀랐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참으로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입니까?
9절 말씀에는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그렇습니다. 모두 희 거룩한 가운을 입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가운을 입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찬양대, 가운을 입습니다. 헌금위원들도 가운을 입습니다. 저도 가운을 입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양드리고,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사람들은 거룩한 가운을 입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 있는 모든 성도님들도 가운을 입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로 씻어 거룩하게 된, 천국의 예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가운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누구도 설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9절 하반절에는 또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이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 앞과, 예수님 앞에 서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0절에는 이 사람들이 부른 노래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바로 찬양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럴때,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1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천사와 장로와 네 생물이, 하나님 앞에서, 경배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두 합창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자 정리를 하면, 사도요한은 천국에서 구원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직접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하늘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요한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도, 천국에서 구원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직접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그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예배에 참석할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사랑으로 자격을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시간 김포상도교회의 지붕을 여시고, 천국과 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시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도 내려다 보시며, 우리들의 예배를 기뻐받으시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어떤것 보다 2등이 될 수 없습니다.
예배보다 1등 되는 것이 있을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한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형제는 너무나 열심히 예배를 드리기에, 항상,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은, 이 목소리 때문에, 놀라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부담스러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이 형제를 불러서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 주일 조용히 예배를 드리면 내가 좋은 구두를 사주겠네”
이 형제는 너무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구두 한컬레가 얼마 입니까? 이 형제 소원이 멋있는 구두를 신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다음 주일 예배시간이 되었습니다. 왠일인지 이 형제가 조용합니다. 모두들 이상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반대로 신이 났습니다. 열심히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은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이 형제가 큰 소리를 외첬다고 합니다.
“아멘! 구두가 문제야! 나, 구두 필요 없어요! 할렐루∼야!”
그래서 목사님은 크게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 이 교회는 더욱더 열심히 “아멘”을 외치며, 예배드리는, 은혜로운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모든 것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만나는 이 시간..
구두가 있고 없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 보다가 예배가 중요한 줄 아는 믿음...
오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예배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15절로 17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사도 요한이, 보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휘황 찬란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거룩한지 모릅니다.
온 천군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예배를 드리자... 15절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드리는 성도들 위에 장막을 쳐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예배드리는 성도들 위에는 하나님께서 장막을 져 주셨습니다.
그 장막은 어떠한 장막입니까?
16절 말씀을 보니, 그 장막은 보호의 장막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보호의 장막을 져 주십니다.
어떠한 뜨거운 기운도, 어떠한 사악한 기운도, 어떠한 나쁜 기운도,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상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보호의 장막을 져 주십니다.
또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도토록 보호의 장막을 져 주십니다.
시편 37편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앞에 열심히 예배드려서, 그 사람 몹쓸 사람이요. 망하였다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정성스럽게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꼭 보호해 주신다고, 성경에는 몇 번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장막을 쳐 주십니까? 17절에는 인도하시고 위로하심에 장막을 쳐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그래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어 주셔서,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는 그 눈에 눈물을 씻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제 남선교회가 교회화단 가꾸기를 하였습니다. 여선교회에서 맛있는 월남쌈을 주셔서 잘 먹게 되었습니다.
월남쌈을 잘 먹고, 김재남 성도님이 재미있는 월남이야기를 하시다가, 월남에 파병되었을 때에 경험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월남에 파병되어, 도착하였는데,
자대 배치 되려고 트럭에 올라 타다가, 차출이 되어, 내려서,
다른 곳으로 배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여 보니, 말합니다.
야 너 왜 그렇게 운이 좋아.... 아까전에 너가 타려고 하였던 그 트럭이 가다가, 월맹군 습격을 받아서 큰 사고가 났는데, 너는 아느냐“
만약 그때 우리 김재남 성도님이, 그 트럭 탓더라면, 아마 오늘, 박현선 성도님도 못만나고,
오늘 예배도 드리지 못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누가 그때 그 트럭을 타지 못하게 했는지 모릅니다.
어떤 손길이 인도하여, 사지의 트럭에서 내리도록, 은총을 배풀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손길의 인도함으로, 간발의 차이로, 사지에서 벗어났고,
오늘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예배의 자리에, 김재남 성도님이 설수 있도록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는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을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예배와는 거리가 먼, 어떤 가정이, 추석날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술을 잔뜩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상속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네 이놈, 얼굴이 한 개로 되었다, 두 개로 되었다 하는, 너 같은 놈에게 이 집을 물려줄수는 없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술에 취해 댓구합니다.
“아버지, 저도 역시 이렇게, 빙빙 도는 집은, 상속받기 싫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모습입니까?
추석날, 설날에 가족들이 화목하게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올 한해도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새해 한해도, 복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이 신앙이 분명이 있어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예배드리는 사역이 되겠습니다.
13절 14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천국에서, 천군천사들과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직접 예배드리는
그 거룩한 예배에 직접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너무너무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거룩한 예배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 그렇게 정성스럽게 예배드리기에,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장막을 쳐 주시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호하시는 장막, 위로하시는 장막...
사도요한은 너무너무 좋습니다.
너무나 신이 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렇게 귀한 예배, 능력이 있는 예배기에, 아무나 참석할수 없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물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하늘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고 있는 흰 예복은 무엇입니까?
그럴때, 장로중 한명이 14절에서 대답해 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래서 예배는 성도들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성도들이 예복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하였듯이,
오늘날도 성도들은, 예배드리기 전에, 정결하게 하는 준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준비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예배드리기 전에,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한주간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의 눈물을 씻어 주시옵소서..
예배드리기 전에, 하나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오늘은 꼭 응답을 받고 싶습니다.
슬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을 옷자락을 붙잡는,
상한심령의 시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배의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시간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을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귀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음성만 듣고 보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볼수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것만 바라보고, 보내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사역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의 전을 향하여, 출발할 때 부터가 예배의 시작이라 하겠습니다.
또 예배의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은, 예배위원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무엇인가? 먼저 찾아 놓는 것도, 준비하는 사역입니다.
오늘 찬송가는 무엇인가? 먼저 찾아 놓는 것도, 준비하는 사역입니다.
안내 위원, 헌금위원으로 봉사하는 것, 얼마나 귀한 사역입니까?
오후 찬양예배, 기도, 특송...얼마나 귀한 사역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사역은, 예비되어 준비되는
거룩한 예배의 사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배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천국이 열리는 시간이라 하겠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것은 없습니다.
또, 거룩한 예배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들 위에, 하나님께서는 장막을 펴 주십니다.
보호의 장막, 인도의 장막, 위로의 장막, 능력의 장막....
자 오늘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거룩한 예배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장막속에서 살아가는, 한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