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함으로 지키는 명절 고린도전서 5장 7절 13절
2008.09.13 23:09:57 조회5021
고린도전서 5장 7절 13절 순전함으로 지키는 명절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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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크리스챤 두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교통경찰관이 금방 쫓아와서 오토바이를 세웁니다.
‘다 아실만한 분들이 왜이러십니까?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속도 위반입니다. 면허증 주십시오‘
그러자 뒤에 타고 있는 친구가 말합니다.
‘우리 걱정은 안해주셔도 됩니다. 이 오토바이에는 예수님 타고 계시기 때문에 괜찬습니다.’
그러자 교통경찰관이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두분 말고도, 한분이 더 타고 계신다고요..
그러면 교통위반스티커를 하나 더 추가입니다.
오토바이에 정원은 두명입니다. 세명이 타면, 정원초과입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회개하고, 기꺼이 스티커 두 개를 끊었다고 합니다.
먼저, 추석에 주님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리고 추석 여휴를 보내는데, 예수님과 동행하지만,
예수님을 모시고, 절대 과속을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추석도 은혜롭게,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1. 순점함과 진실함으로 명절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7절, 8절을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더라도, 믿음으로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추석도 믿음으로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가족예배를 드리고, 또 추모예배를 드리면서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명절을 지키는데, 묵은 누룩으로 하지말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하지 말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에 나오는 명절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유월절 명절이 되겠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가장 중요한 명절이라 하겠습니다.
유대인이 유대인, 되어진 날이, 바로 이 유월절인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유대인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맞이하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출발한 날이, 유월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이 유월절, 명절을 지키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이제는 새 유월절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날 애굽에서 벗어난 것만 기억하지 말고, 우리가 죄에서 벗어난 새 유월절을 바라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죄로부터 해방되고, 유대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그래서 유월절과는 비교할수 없는, 새 유월절 바라볼때에,
옛날 죄에 관습으로 상징되는, 묶은 누룩과 악의에 찬 누룩이 아니라,
이제는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새 유월절을 지켜 나가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석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추석을 어떻게 보내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 오곡백과 뿐만 아니라, 더 귀한 복음의 열매도, 영생의 열매, 구원의 열매도,
예수님께서는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추석만 바라볼 뿐만, 추석에도 예수님을 더욱 바라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8절 말씀을 더욱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명절을 지킬때, 묵은 누룩으로도 하지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펴보면, 명절을 맞이하면, 꼭 묵은 누룩과 악의에 찬 누룩을 꺼내는 경우들을 종종 볼수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친척들과 가족들이 만나면, 꼭, 지나간 일들을 꺼내서 이야기 하면서,
사람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전에 이렇게 하였는데, 형수는 그 사실 아세요..
아무개가 이렇게 뒤에서 험담하고 다녔는데, 형님 그 사실 모르시죠....“
묵은 누룩을 꺼내서, 결국은 명절의 기분과 분위기를 부패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악의에 찬 악한 누룩을 꺼내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악의적인 말로 비방하며,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예요... 술 한잔만 받으세요...
예수믿는 사람들은 위아래도 없어요. 절 하면 누구 잡아갑니까?..“
그러면서 악의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런거 안하는줄 뻔히 알면서, 그것으로 비방거리를 삼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에 사람들은 절대로 묵은 누룩과 악의에 찬, 악한 누룩을 꺼내서는 않되겠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거기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7절에는 말씀합니다.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유월절을 세우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바른 명절, 믿음으로 보내는 명절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예수님을 본받아, 복음의 희생을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잠잠 하셨던 것 처럼, 침묵하고,
주님께서 용서 하셨던 것 처럼, 너그럽고,
주님께서 십자가 지셨던것 처럼, 희생할 때,
그곳에, 복음의 향기, 전도의 향기가 가득하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명절을 맞이할때에, 세상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0절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
미국에서는 요즈음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페일린’ 따라하기가 열풍이라고 합니다.
‘페일린 후보’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자 부통령 후보입니다.
남편은 에스키모 원주민 출신입니다.
맡아들은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딸은, 고등학생인데 미혼모가 되어 있습니다.
막내 아들은 아기인데, 다운증후군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억척스럽게, 살림을 하고, 알래스카 주지사가 되고, 지금은 대선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페일린이 입는 옷, 구두, 안경, 헤어스타일을 따라는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40대의 억척주부가 뭐 그렇게 모델처럼 아름다워서, 따라하겠습니까?
자신의 맡겨진 생활에서 자리에서 억척스럽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감동을 받고,
그 정신을 아름답게 보기에, 호감을 갖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처음 페일린이, 부통령 후보가 되었을때에는, 딸의 미혼모 이력이, 스켄들이 되었습니다.
막내아이의 다운증후군 병력이, 루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막내 아기의 병 간호를 하고,
아이를 잘 되게 하려고, 공부를 시키는, 평범한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외모가 아닙니다.
맡겨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순전하고, 진실된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10절 11절에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볼때에는 온통 죄로 관영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음행하는 사람, 남을 속이는 사람, 우상 숭배하는 사람....
죄만 본다면, 자 이런 세상 사람들과는 상종하지 않고, 멀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멀리하려고 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방법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지 않는, 산중에...광야에...세상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도의 열매는 어떻게 맺을 수 있겠습니까?
죄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세상밖에 있지 않고, 세상 안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 밖에 있지 않고, 세상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상 안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 우리를 파송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치, 가시덩쿨 같은 곳이라도, 거기에서 복음의 꽃을 피울때,
마치 백합화가 가시덩쿨로 상할 때, 더 진한 향기를 발하게 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백합화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통 가시덩쿨 같은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복음의 꽃을 피울때,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를 비방하고, 희화하 하고, 조롱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치 지목된 아이를 마음놓고 왕따시키듯이..
인터넷 언론 타종교...아니 사회전체가 교회를 마음놓고 비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처음에는 보수 세력을 수구라고 하고, 조롱하다가..
그 다음에는 호주산 소고기는 되지만, 미국산 소고기는 않된다고 하다가...
이제는 그 배후에 기독교가 있다는 식으로
교회를 향하여, 갖은 이유를 다 달아서, 조롱하고 비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얼마전 까지, 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만큼 인기를 못얻는 것도 없었습니다.
설교시간이 되면, 교인들도 조차도, 반쯤 졸면서 듣는 것이,
점잖은 모양인냥 보여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동네 골목의 조그마한, 구멍하게 같은, 허름한 교회의 목사님, 설교도
언론과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런 구멍가게 같은 교회의 목사님들의 설교도 일일이 녹취록을 떠서
신문과 인터넷과 신문에서는 방송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전체는 볼수 없이, 전체적인 내용은 거두절미하고,
한 단어나 구절만 꼬투리가 잡혀서 방송 되어지고 있습니다.
또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어떤 단체들은, 국가로 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비방과 조롱은 목사님들에게 푸는 경우를,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나, 목사님들이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는데...
성도들은 가슴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다.
명절날, 모이면, 세상이야기, 정치 이야기, 할때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비방하는 뉴스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러면, 성도들의 얼굴도 뜨겁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때일수록 10절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도무지 사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죄가 교회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다는 뜻이지,
세상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는 뜻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분명, 교회는 세상안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빛이 없고, 소금기가 없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이 빛으로 가득하고, 소금기로 가득였다면,
이 귀한 사명을, 성도들에게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빛이요 소금이라 하겠습니다.
빛이 그냥 나겠습니까? 초는 자기 몸을 태워 빛을 내게 됩니다.
소금도 자기 몸이 녹아서, 소금맛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몸을 희생하게 될 때,
세상을 빛을 보게 되고, 소금맛을 얻게 되고,
세상은 빛과 소금맛으로 감동을 받고 변화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길은 하루에도 열두번 더 바뀌는,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칭찬받으려고 가는 길이, 신앙의 길입니다.
믿음은 인터넷과 신문으로 인정받으려고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가는 길이, 바로 믿음의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톤벅이라는 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스톤벅은 세계적인 그림을 그려서 유명하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십자가에 못밖히신 예수님을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밖히신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그리면 최소한, 인정받고, 쉽게 그림을 팔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서,
십자가에 못밖히신 예수님을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반쯤 그리는데,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신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쎄러, 시내에 나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너무나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아가씨가 이렇게 아름다우니, 이 아가씨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면, 유명해 지지 않을까?
아가씨에게 화실로 모셔와서, 아가씨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런게 그 아가씨가 옆에 있는, 그리다만 예수님 그림을 보고 묻습니다.
‘저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니, 엄청난 죄인인가 봐요?’
스톤벅이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온 세상을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입니다.‘
아가씨가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합니다. ‘그럼 저분이 선생님을 위해서도 죽었겠네요’
그 말을 듣는순간, 스톤벅은 가슴은 쿵 하고 맞는 는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저분이 선생님을 위해서도 죽었겠네요’
스톤은 그리던 그림을 조용히 멈추고, 다시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여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스톤벅음, 그때부터,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려 나갔습니다.
한동안, 스톤벅은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톤벅을 가식적이라고 비방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고 난다음, 사람들은 다른 그림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스톤벅이 그린 그림에서 발견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톤벅이 무릎으로 그린 그림으로 인하여,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주님께 돌아오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속에서 복음으로 살아가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12절 13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빠, 만원만 주세요.”
아버지가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안돼, 오늘은 돈 없어.”
그러자 아들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합니다.
“아빠, 만원만 주시면, 오늘 아침에 우유배달부 아저씨가 엄마보고 뭐라고 말했는지,
가르켜 드릴께요.”
그러자 이 아버지가 만원을 얼른 아들에게 주면서, 말합니다.
“뭐, 우유배달부가 뭐라고 말했는지. 얼른 말해봐라!”
아들은 냉큼 돈을 챙겨서 도망가면서 말했습니다.
“우유배달부가요...아주머니, 오늘은 우유 값 좀 주세요. 지난 달 우유값 언제 주실래요..라고 말했대요”
우리나라 처럼 부풀려지는 것이 많은나라도 없다 하겠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신문기사 제목을 열자 정도로 줄여서 다는데,
독자들이 많이 읽도록 하기 위하여, 엄청난것 처럼 제목을 과장하여 다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제목만 보고, 기사를 읽다보면, 정작 다른 기사를 옮겨쓴 기사나,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속았다는 댓글이 달리게 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 기자의 공신력을 떨어저서, 다른 기사를 다시써도 읽지 않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신문기사의 평가는, 독자들이 하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오늘 12절 13절 말씀에는, 신앙생활 할때, 교회에는 죄가 있지 않도록, 잘 살피고 판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잘 살피고 판단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판단해서는 않되겠습니다.
요나는 죄의 도성 니느웨를 향하여, 회개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요나는 맘속으로, 니느웨가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망할 도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힘있게 전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대충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도성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대충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도, 니느웨는 전심으로 회개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는 회개하고 구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2장 말씀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워주신 세상의 자리에서,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명절도, 세상과는 다른,
순절함과 진실함의 누룩으로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기뻐하는, 은혜로운 명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