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의 메달 로마서 12장 1절 11절
2008.08.23 23:54:13 조회5400
로마서 12장 1절 11절 존경의 메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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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나 등하교시에는 학교앞에서, 차량과 어린이들이 섞여서 많이 혼잡합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안내를 합니다. 그리고 대로의 횡단보도에는 교통순경이나, 의무경찰이 한명씩 배치되어 교통을 통제합니다.
이 학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교 앞에는 자원봉사자들이 교통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횡단보도 중간에는 경찰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서 있었습니다.
신호가 바뀌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갑니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경찰관 아저씨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합니다.
“경찰 아저씨,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이 경찰아저씨 친절하게 대답합니다. ‘그럼 뭐든지 물어 보거라’
그러자 그 꼬마는 경찰가슴에 있는, 경찰휘장의 중심을 가르키며 묻습니다.
\"아저씨, 가슴에 달고 있는, 이 새가 짭새예요?
왜 아저씨를 보고 다들 짭새라고 불러요?\"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존경’이 사라진, 우리사회의 씁쓸한, 한 단면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존경’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을 높혀서 공경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잘못된 권위를 해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계속하여 달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건강한 존경 마져 사라져 버리고, 그래서 우리가 배우고 닮아야 할...그래서 존경받아야 할 것들 까지도, 다 갖다 버리지는 않았는가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존경해야 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나라 역사에는, 특별히 근세사 현대사에는, 존경받을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말입니까?
화재를 진압하려다가 순직하는 소방관들..존경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이 사회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환경미화원들....존경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주위에 있는, 나이많은 집사님 권사님들... 존경 받아야 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주간, 우리 박정옥권사님은 노인정에서 이발하다가 졸도하고 말았습니다. 눈이 침침하고, 숨이 막히다가 정신을 잃어버리고 졸도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침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서 바늘로 손을 따고, 119가 와서 잘 조치를 취하여 깨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금요기도회에 또 나오셔서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연로하지만, 교회 청소도 하시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매일 교회에 나와서 기도의 재단을 쌓는 집사님들, 권사님들이, 우리교회에도 몇분이나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이론이 필요 없습니다.
단순하지만, 군더더기 하나 붙어지지 않는, 그 신실한 믿음들은 존경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같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존경받아야 되겠습니다.
아니,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다 존경받아,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존경받으려면,
1. 나눠주신 분량대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박상길’ 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양반이 그 백정에게 ‘상길아. 고기한근 다오’ 그러면 ‘네’하고 옛날이기 때문에, 당연히 ‘순 우리 한우’ 한근을 썰어 줍니다.
또 지나가던 농부가 그 백정에게 ‘박서방, 여기 고기한근 주시게나’ 그래도 당연히 ‘네’하고 고기한근을 썰어 줍니다.
그런데 어느날 양반이 보니까, 자신의 고기가, 농부고기보다 더 적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양반이 화가 났습니다.
‘야 이놈아. 같은 한근인데, 어째서 이 농부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그러나 이 백정이 대답했습니다.
‘네.. 어르신 고기는 무식한 백정이 자른 것이요, 이 농부아저씨 고기는, 마음씨 좋은 박서방이 잘랐으니까 당연히 차이가 나지요..’
그래서 이 백정은 대접받는대로, 고기 근수로 되돌려 주었다고 합니다.
존경은 억지로 받고 싶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자리에 있어도 존경 못 받을수 있습니다.
존경은 법으로 정한다고 받을 수 있는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이 있어도 존경 못 받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경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로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가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 외양간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공생애 기간동은 두벌옷도 없이 살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존경받으셨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바리새인들도, 백성들이 예수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존경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가진것이 없이 때문에,
권력이 없고, 재력이 없고, 명예가 없기 때문에 존경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돈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재력이 없어도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3절 말씀, 하반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그렇습니다. 나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그 믿음 만큼만 살아갈때에도, 충분히 그것으로 인하여 존경받을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믿음만큼,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구원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지만 구원이 얼마나 귀한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귀한 것을 주었어도, 그것이 얼마나 귀한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예배드리면서도, 예배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기도드리면서도, 기도가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가정을 주셨는데도, 가정이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건강을 주셨는데도, 건강이 얼마나 귀한 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지금 주신것도, 귀한줄 모르고, 무책임 하게 살아가면서,
어떻게 더 귀한 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더 무엇이 있어야, 남들 앞에 존경받을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지금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나눠주신 분량대로 지혜롭게 살아갈 때,
존경받는 길이 열리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서로 존경하며 부지런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0절 11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모두들 기도해 주셔서, 저는 즐거운 휴가를 잘 보내고 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휴가’라고 하면 모든것을 내려 놓고 휴식하는 기간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교회생각만 하면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소문난 식당이라고 해서, 찾아 가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우리교회도 소문난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이곳의 비결은 무엇인가? 하며,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경주 엑스포에 가서도, 우리교회에서 적용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없을까? 하고 지나고 왔습니다.
그런데 한 장소를 지나다가, 슬픈 사연을 듣고, 숙연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바닷가 방파제인데,
포항에서 살던 사람이, 영덕까지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왔습니다.
그런데 기쁨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구두방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구두방이 너무나 않되어 고민을 하다가,
일가족을 모두 차에 싣고, 방파제를 향하여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일가족이 바다에 다 빠져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니 구둣방이 잘되면 얼마나 잘되겠습니까?
또 구두방이 않되면 얼마나 않되겠습니까?
하지만 자기가 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을 할때,
가족이 다 죽게 되는 참변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이 좋은날, 가족과 함께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교회에 나오니, 모두 기쁨 마음으로 인사하며,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존경에 비결도 다름 아닙니다.
11절에는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그렇습니다.
부지런히 생활하고, 예수님만 열심히 믿어도, 존경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활속에 주신 것을 은혜로 알고, 열심히 웃는 모습으로 살아가도,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습니다.
교회에서도,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하며,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여도, 주위 교우들에게 존경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10절에는 말씀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그렇습니다. 더 많이 더 빨리 존경 받고 싶으면, 한가지 비결이 있는데,
먼저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먼저 사랑하고, 먼저 우정을 나누고, 먼저 존경해 줄때...
더 빨리, 더 많이, 존경받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믿음에 식구들은, 꼭 이 비결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존경해 줄때, 나도 존경받게 되어 집니다.
먼저 사랑해 줄때, 나도 사랑받게 되어 집니다.
어느 나라에, 존경받기를 기다리는 왕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아도취에 빠진 왕은,자기가 제일인줄 압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어느날 왕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신의 모습이 왜소하고 화려하지 못하여서 존경을 못받는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왕은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큰 거울 앞에 서서, 화려한 옷을 고르는 일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서는, 이리 저리 거울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 하였습니다.
자 이 모습을 본, 지혜로운 신하가,
어느날, 왕이보는 그 거울을 없에고, 그 거울이 있던 자리에, 유리창문을 달아놓게 되었습니다.
왕이 일어나서, 여느때와 같이, 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려고 갔는데,
그런데 그곳에는, 거울대신 유리 창문 있습니다.
유리창문을 통하여 보이는 것인, 화려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백성들의 모습이었다.
근심하는 모습, 초라한 모습, 굶주림에 허덕이는 모습...
왕은 유리창을 통하여,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 때부터, 창문으로 보이는 백성들이 입는 옷을 그대로 따라서 입고,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백성들의 근심을 내 아픔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전에는 원망만 하던 백성들은, 이 임금님을 존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망받던 왕이었는데, 존경받는 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울을 통하여서 나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을 보지 못합니다.
남의 말을 들어줄줄 모릅니다.
남에게 배려할줄 모릅니다.
거울만 보는 사람은 존경받을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존경받는 사람은,
유리창을 통하여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유리창 문을 활짝 여는 사람입니다.
다른이의 근심을 들어줄줄 압니다.
다른이의 아픔을 아파할줄 압니다.
이렇게 먼저 사랑하고, 먼저 나누고, 먼저 존경해 줄때,
다른이들에게 존경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속에서 거울을 치워버리고, 유리창문을 달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에서, 나의 유리창을 활짝열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나로 인하여, 다른이들이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존경이 오가는
귀한 은혜가 넘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존경을 받으려면,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차세계대전 끝나고, 유럽은 복구의 손길이 시작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서는, 그 마을에 있는 예수님상 때문에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대대로 예수님 상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인자하고, 온화한 예수님상...그런데 전쟁으로 인하여 예수님 상이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조각을 다시 맞추어 보아도, 예수님의 손과 발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한 쪽에서는 말합니다.
손과 발이 없는 예수님상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참에 새롭게, 시멘트콩크리트로 튼튼하게 예수님 상을 다시 만들어 세웁시다.
다른 쪽에서는 말합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예수님상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상이 무너진것은, 우리의 잘못이니, 있는 그대로 복원하여, 우리의 잘못을 잊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손과 발이 없는 예수님상이 마을에 서게 되었습니다.
손과 발이 없는 예수님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마을 사람들이 불평을 합니다.
흉물스러운 예수님상을 어서 빨리 바꾸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청년이 이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손과 발이 없는 예수님상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보기 않됬습니다. 손과 발이 없는 예수님의 모습...
이 청년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전쟁으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망가져서 없으시군요.
예수님 염려마십시오.
이제부터, 제가 예수님의 손이 되어 살겠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예수님의 발이 되어 살겠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감동을 받고,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은혜의 마을로 유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이들이 감동을 받고, 또 존경을 받게 되는 길은
겉모습이 온갖 세상의 것으로 치장된다고, 되어지는 것시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곳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위에도 똑같은 음식점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더 건물도 더 현대식으로 잘 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은 다른곳으로는 가지않고, 허름한 이집으로만 몰립니다.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고 갑니다.
들어가보니,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주님의 평화가 있을지어다.”
늙은 할머니가, 수십년, 만들던, 그 손맛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음식의 맛을내는 그 손은, 기도하던 바로 그 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그 마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어린아이 하나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대하는, 그 믿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이들을 감동시키고, 존경을 받는 것은, 단시간이, 벼락치기로 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그대로인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올림픽도 끝나갑니다.
선수들이 딴, 금메달에는, 정성스럽게 보내었던, 4년간의 눈물과 정성이 묻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생에도 금메달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의 존경과 선한 청지기가 받는 칭찬이 아니겠습니까?
더 무엇을 가져야 존경받고 고귀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눠주신 분량대로 살아가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존경해 주고, 나의 자리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단순하고도, 진실한 생활이 있습니다.
세상을 기쁘게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생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올림픽에서,
존경을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복음을 대표선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