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 창세기 31장 41절 49절
2008.08.03 07:37:44 조회4359
창세기 31장 41절 49절 이상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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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골에 있는 어떤 교회는 교인이 단, 네명 뿐인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도무지 성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전도되어 와도, 조금 있으면 곧 가버리고, 조금 있으면 곧 가버리고,
그래서 그 교회는 절대로 더 이상 늘지 않고, 항상 4명만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그 소식을 들은, 어떤 목사님이 그 교회에 가서 보고,
왜 그런지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는 교회묘지가 있었는데, 다 쓰고, 남은 묘자리가 네게 뿐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에 다니던 분들이,
사람들이 더 오면, 나중에 그 묘자리에 못들어 갈까봐,
새신자가 오면 쫗아내고, 오면 쫗아내고,
그래서, 그 교회는, 교인이 항상 네 명만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 칼슨목사님은 “사명을 잃은 교회는, 축복이 원망으로 보일때가 있다.”고 충고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릴때, 내가 살아가는 생활의 사명을 망각하게 됩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부어 주셔도, 그 축복을 원망으로 볼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축복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 시각과 그 마음이, 과연 건전하고 올바르다 할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남편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아내의 마음이 병이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내가 아내로 보이지 않는다면, 남편의 마음이 병이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서로가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수단으로 보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도구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때는,
바로 돌아서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모습들을, 세상에서 보게 됩니다.
자 이렇게 마음이 병든 사람들에게는 가정을 주어도, 가정이 축복인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편으로써의 정체성, 아내로써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생활의 사명을 망각하게 됩니다.
남편으로써 어떤 사명이 있는지, 아내로써 어떤 사명이 있는지 망각해 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가정을 주시고, 부부가 되게 해 주셔도,
그것이 축복으로 보이지 않고, 부부가 된 것을 원망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디 수련회라도 나가면, 얼마나 집안이 허전합니까?
남편이 어디 출장이라고 가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허전합니까?
아내가 멀리 친정이라도 다녀오면, 얼마나 모든 것이 허전합니까?
아이들, 남편, 아내...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얼마나 축복입니까?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나의 생활의 사명, 인생의 사명, 사업의 사명, 가정의 사명이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사명이 분명해질 때, 축복이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1. 이상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4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이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향하여 대답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사람, 원만한 사람,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까다로운 사람을 만날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비열하고, 악의적이고,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야곱이 그런 사람이었다.
야곱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젊을때의 야곱은, 마음이 좋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자의 축복’ 즉 대대로 장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도, 도둑질 하려고 하였던 사람이, 바로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야곱이 쫓겨나서 도망가다가, 훨씬 더 심한,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삼촌 라반은, 야곱보다 훨씬 더, ‘야곱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야곱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야곱보다 훨씬 더 더럽고, 야곱보다 훨씬 더 치사한 사람이, 바로 외삼촌 라반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 부분에는, 외삼촌 라반이 얼마나 심하였는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라반은 돈을 아끼려고 딸을 떠 넘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을 공짜로 부려먹으려고, 딸 라헬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야곱을 7년동안 공짤 부려 먹었습니다.
그러고 딸을 주는데, 라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언니인 레아를 아내로 줍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다시 7년을 더 일해주면, 원하던 딸 라헬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공짜로 14년 동안 부려먹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품삯을 열 번이나 무르고,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말씀은 믿음의 조상이 되기전, 자기보다 더 심한 사람을 만나서 고생하던
야곱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야곱은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이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당연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야곱은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던 사람입니다.
야곱은 그래서 믿음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잊어버린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내팽게 쳐 버렸던 사람입니다.
신앙도 잃어버리고, 사명도 팽개치고, 야곱은 야곱답게, 속이고, 거짓말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축복을 도둑질 하려고 하면서,
철저하게 하나님이 아니라, 나 중심적인 사람으로, 살아갔던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에는 야곱같은 사람은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신앙을 외면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인생에 주시는 사명도 부정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나 중심으로 살아가니, 홀가분 하고 성공지향적으로 살아갈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만족과 행복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갖다 주어도, 원망하고 불평을 하면 하였지,
감사하다는 말 한번 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나’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만족과 행복은 커녕, 불평만하다 쫓겨났던, 야곱이
흘러 흘러 가다가, 만나게 된 사람이, 바로 ‘외삼촌 라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생각할수도 없는, 온갖 악한 일을, 그때부터 다 당하게 되기 시작합니다.
자 자기보다 더 나쁜 외삼촌 라반에게서 온갖어려움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얼마나 화도 났을 것입니다. 나도 한다면 한다는 사람인데, 사람이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정직하게 해도, 억울한 일만 당합니다.
또 얼마나 서러웠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도둑질 하려다가 쫓겨나서, 오갈때도 없는데,
해도해도 너무한,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 야곱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심한 외삼촌 라반...하지만 그 라반의 모습에서, 야곱은 오히려 야곱 자신의 모습을, 그제서야, 있는 그대로 볼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형처럼 분장을 하고, 늙은 아버지를 쏚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형 에서를 놀리고,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넘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잘못한것 하나 없고, 부모님과 형님이, 괜히 나를 미워하고 쫓아낸다고,
원망하였었는데...
외삼촌 라반에게 당하면서, 야곱은 자신이 잘못됬고, 자신이 믿음을 잃어버렸고, 사명도 팽개쳐 버린것을, 그제서야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십년을 고생하며,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수십년을 억울하게 당하면서,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섬겼던 하나님을, 다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42절에서 야곱은 라반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사람들은 제각기 각자의 어려운 상황속에 힘들어 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나 중심적인 병든 모습,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하나님 중심,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축복을 주셔도, 원망만 할 수밖에 없는
죄와 병든 자리에서,
사명의 자리로 회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럴때,
2. 두번째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42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리더쉽에 관한 많은 글을 남긴 ‘존맥스웰’은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과 경쟁해야 한다.’ 고 말합니다.
세상을 이길수 있는 길은, 세상보다 더 영악하고, 더 지혜로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 밑에서 고생을 하면서, 그제서야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서, 야곱은 자신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야곱과는 분리되어야 할, 못된 야곱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일만시키고, 댓가는 주지않으려는 나쁜 외삼촌 라반밑에서,
야곱은 나쁜 야곱으로 외삼촌과 맞서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을 어렴풋이 알게 되어 집니다.
그래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옛날에 잘못된 방법들은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양보합니다.
왜 라헬은 주지않고, 쏙이고 레아를 주십니까? 이런 법이 어디있습니까?
그렇게 대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항변한다고, 고개를 끄득이며 선선히 물러설 라반도 아니지요..
야곱은 그래서 댓구한번 하지 않니하고, 라반의 말대로, 다시 7년을 더 일하기 시작합니다.
삯을 받을때에도, 열 번이나 무르지만, 오래참습니다.
분깃을 줄때는 보기싫은, 얼룩지고 아롱진 양과염소를 주겠다고 하여도, 선선히 받습니다.
그리고 혹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야곱은 자기의 것으로 몇배로 물어주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그렇게 악착같이 야곱의 것을 빼앗으려는 라반보다 잘되기 시작합니다.
야곱의 재산이 무럭무럭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라반의 두딸이 모두 야곱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라반도 이제는 무턱대고 야곱을 무시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시샘하는 라반을 뒤로하고, 거부가 되어, 큰 무리를 이끌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손해만 보는것 같고, 빼앗기는 것만 같은데, 어떻게 재물이 쌓이고, 잘될수 있었는가?
그 비결에 대하여, 야곱은 라반에게 42절에서 말씀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tu서 내가 이렇게 잘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려는 라반과 싸울때, 라반과 같은 방법으로 싸운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여 싸웠습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고난과 수고를 보시고, 야곱은 잘되게 하시고, 오히려 라반은 책망받는 사람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길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신앙을 회복하고, 사명의 자리에 설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과 선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기 위하여서는, 세상의 간교한 지혜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갑주를 입어야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복음의 신, 그리고 말씀의 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이길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소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중풍병자이고, 어머니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살기위하여, 미국으로 가려고, 미국행선박에 몰래 올라탔습니다.
그러다가 틀키고 말았습니다.
선장 앞에서 소년은 울면서 말합니다.
“저를 미국에 보내주십시오..세계적인 부호가 되어, 조국에 보답하겠습니다.”
선장이 이 소년을 딱하게 여겨, 양아들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그 배에서 열심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선장이 죽자, 이 청년은 그 배를 팔아서 그 돈으로 치약회사를 차렸습니다.
바로 자기 이름을 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게이트 회사인 것입니다.
회사가 너무너무 잘되어도, 골게이트는 어렸을때, 고생하였던 것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려울때, 힘이 되었던, 순진하지만 강력한 무기가 있었는데, 바로 그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골게이트는 참 단순하였다고 합니다.“하나님, 나의 십일조가 점점더 늘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골게이트 사장의 경영철학은 딱 한가지입니다.
‘나의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담는다.’
오늘날, 골게이트 회사에는 회사원들의 십일조를 관리하는 직원만 3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손가락질 받을만큼 너무너무 단순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 단순한 믿음이, 오히려 세상에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
치약으로 세계를 석권하는 회사가 될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라면 역사상 가장부자로 기록되는 록펠러, 하지만 어린시절에는 너무너무 가난하였다고 합니다.
너무너무 가난한 록펠러는, 어릴 때 어머니 한테서 우리돈으로 200원 정도씩 용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용돈을 줄때, 어머니는 록펠러의 손을 잡고 말했다고 합니다.
예야. 200원을 절대로 작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중에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여라.
그래서, 록펠러의, 십일조는 20원씩 드려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보잘것 없는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록펠러의 십일조는 나이가 먹어도, 멈추어 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어렸을 때 20원이던 십일조는, 어른이 되고 보니, 2000억원도 넘는 돈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 그 방법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세상을 이길수 있는, 제일 강력한 방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5000천명을 앞에두고 먹을것이 없다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듣고, 한 어린아이의 자신의 도시락인...5병2어를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걱정하신다고 자신의 도시락을 바치는 너무나 단순하기까지한 믿음...
그러나 너무나 초라합니다. 5000명이 먹어야 하는데, 도시락 하나....
제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던, 5병2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용하실 때,
어린아이의 믿음은 큰 능력으로 증폭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 5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게 되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방법으로 세상과 선한 싸움을 시작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미스바의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49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야곱은 변하였습니다.
라반 앞에서, 야곱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그럴때, 야곱은 라반과 의기투합하여,
신앙의 증거석을 세우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름은 ‘미스바’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하지만 그 광경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만큼, 쩨쩨하고 교활한 외삼촌..
그 외삼촌에 지지 않을 만큼 한가닥 하는, 거짓말 장이 조카가...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고..‘증거석’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가당치도 않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두가지로 볼수있겠습니다.
그렇게도 형편없는 사람들이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고 증거석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신앙의 발전이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두 사람이 변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지켜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만 더 그러면, 내가 그냥두지 않겠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쩨쩨하고 교활한 두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사이를 살펴보고 계신다고 하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신다는
시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스바의 증거석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한 신앙
하나님께서 나를 살펴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겠다고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의 증거석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믿음의 조상으로써 신앙으로 점점 성장였고,
라반과의 갈등은 해결되어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고민스러운 세상의 바로 그 자리에...
미스바의 신앙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복잡하게 꼬여버린 세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있겠습니까?
나를 괴롭게 하는 상황속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자 그러한 자리에 들어갈 때,
믿음의 사람은, 오히려 신앙을 획복해야 하겠습니다.
사명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미스바 신앙으로 살아가는 8월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