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랑 로마서 9장 1절 8절
2008.08.16 23:51:04 조회4474
로마서 9장 1절 8절 민족사랑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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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여자가 편의점에 들러서 로또를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골목길을 돌아서 집으로 들어오는데, 문득보니, 로또 추첨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무심코 가만히 보니까...글세, 자신이 산 로또가 1등에 당첨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여자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를 쳤습니다.
“여보, 어서 가방 싸세요. 내가 로또 1등에 당첨 됐단 말이예요.”
거실에 앉아 있던 남편이 말합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군. 짐은 어떻게 챙길까? 해변용으로, 아님 등산용으로?”
그러자 이 여자분이 말했다고 합니다.
“알아서 싸세요. 그리고 당장 여기서 사라지세요. 당신은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아무리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 하더라도, 설마 그일 때문에 결혼마저 소용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로또는 경제적인 문제요, 부부는 운명적인 관계라 하겠습니다.
경제는 선택의 문제요. 부부는 필연의 관계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가, 운명의 관계인 부부의 사랑보다 더 우선시 될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운명의 문제요 사랑의 관계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여건이 않되어서 그렇지, 기회만 되면,
한국 국적을 버리고, 이민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나라사랑’이란 말은 교과서에서나 듣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사람’이란 출신, 즉 시작을 뜻하는 단어이지, 현제의 나를 규정하는 단어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호주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은 시골 고향과 같은 곳으로 느껴집니다.
심지어는 한국사람이지만, 한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고,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글로벌한 시대의 한민족이 겪고 있는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사도바울의 민족사랑의 신앙이 나오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써, 자기민족인 이스라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고백이 되겠습니다.
광복절을 가까이한 오늘은, 민족사랑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믿음의 사람들은 민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1절 2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사도바울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민족, 이스라엘만 생각하면, 마음에 큰 근심이 일어 났습니다. 또 마음에 그치치 않는 고통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전자는 민족적 고난이요, 후자는 복음에 대한 배척이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똑같은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나라입니다.
역사를 보면, 항상 두 세력사이에서 고난받아 왔습니다.
고대에는 바벨론 세력과, 에굽 세력 사이에서 고난 받았습니다.
직전에는, 그리스세력과 바벨로니아세력 사이에서 고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도바울 시대에는, 로마의 변방이 되어, 로마와 이민족 사이에서, 고난 받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서구세력과 아랍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습니다.
자 이러한 위치 때문에, 이스라엘은 한순간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계속하여서 외세에 고통을 당하고, 또 종이 되어, 고난 당하며 살아 왔던 것입니다.
자 이런 위치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국민이 단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빨리 적응하여, 시대를 앞서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단결하지 못하였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얼마나 나뉘어 있었는지, 심지어는 로마로 부터 독립하자고 하여도,
모두가 다 제각각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칼로 독립하여야 된다고, 열심당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두 망해버려야 된다고, 에세네파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헤롯왕의 말을 들어야 된다고, 헤롯당을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사두개파는 모두 필요없고, 성전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바리새파는 모두 필요없고, 율법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무엇을 할수 있었겠습니까?
거기에가, 시대의 흐름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파악은 커녕, 이스라엘민족은 시대에 역행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에 까지 퍼져나면서,
세상에 모든 나라가, 예수님을 믿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로마는 다른 모든 것은 우상이요, 로마는 예수님만 섬기겠다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모든 민족은, 예수님을 믿는 민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직접 오신 이스라엘은, 오히려 거꾸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복음을 배척하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바울의 살던, 이스라엘을 정리를 하자면, 망하는 길로 힘써 달려가고 있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모두가 다 마음을 합하여, 일치 단결하여도 될까말까인데...
얼마나 마음이 곧은지,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힐 줄 모릅니다.
거기에다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예수님 때문에 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만에,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음에도, 복음에 귀를 닫고, 신앙을 핍박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침몰하는 나룻배에 타고 있으면서도, 서로 옳다고 싸우는 샌님들 처럼...
망해가고있는 나라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들은 계속 싸우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뒤통수라도 처주고 싶은, 상황이 아닐수 없습니다.
자 이런 이스라엘에 태어났다면,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태어난 나라가, 지금 나라사정은 엉망인데도, 시대의 흐름을 살펴서, 일치단결하기는 커녕, 국민들이 서로 헐뜯고 싸우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하오, 오늘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즉...내 민족이 잘된다면, 내 민족대신에, 내가 저주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라도 된다면, 오히려 나는 저주를 당하고, 민족이 잘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이스라엘이지만,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바라보면 속이 썪을 수밖에 없는, 답답하고 못난, 민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의 민족을,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똑같은 기도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는 모세의 기도가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제일 사모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때에,
모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생명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서라도,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는 길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나라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이고, 잘났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려고, 나를 한민족으로 태어나게 하셨기에,
우리나라를 보면, 부족하고, 답답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나라를 사랑해야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의 사람들은 바른 신앙의 전통을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
어떤 한 주부가 백화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백화점 안내데스크에 가서, 물어 봅니다.
“남편 생일이 되어서요...남편한테, 멋진 선물을 사주고 싶은데요. 도와주시겠어요?”
점원이 말합니다. “실례지만 결혼하신지 얼마나 됐습니까?”
주부가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네, 결혼한지, 한 15년 정도 됬습니다.”
점원은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주부에게 안내 해 주었다고 합니다.
“손님, 염가 상품매장은 지하에 있습니다. 지하코너로 가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시간이 지난다고, 사랑이 시들해 져서는 않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세월이 흐르면, 사랑도 식어지겠지 잘못 생각할 지라도,
우리 김포상도교회 식구들은, 더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고,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래서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라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사랑한다면, 사랑이겠습니까?
이유없이 사랑할 때, 신실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나라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복된 나라사랑은 전통이 되고,
나라사랑의 전통은, 아름답고 고유한 문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백성은 그런 의미에서 ‘전통’이 잘 세워져 있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전통’이 잘 세워져 있다보니, 세계역사상 유래를 찾을수 없는,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렸다가, 2000년 후에 다시 나라를 되찾는
기적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전통’에 대하여 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배와 약속과 율법과 언약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 불러주셨다는, 민족에 대한 믿음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민족에 대한 믿음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한 망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언약과 약속이 되었고,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철저하게 예배드리고,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 사랑의 전통으로 지켜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없습니다. 일제 36년 정도가 아닙니다.
로마이후,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렸지만, 민족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7년 이스라엘은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잠깐 우리나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광복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광복이 있기 전, 어려운 시대에도,
나라를 사랑하며, 일제의 탄압에 끝까지 맞섰던
선열들의 나라사랑의 희생으로, 오늘 우리가 있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교회는 특별히 더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일본 헌병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한다고, 교인들을 예배당 들어가게 하고, 교회를 불태워, 성도들이 모두 순교한 재암리 교회는 유명합니다.
이렇게 기록에도 없이, 죽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그나마, 일제헌병대에, 기록이 된 것으로도,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된 교인이, 대략 2000명이나 되었고, 폐쇄된 교회가 200여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옥중에서 고문당하다 순교한 성도들도, 50명이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독립선언서’를 만든 33인 대표 중에도, 기독교인이 제일 많습니다.
33명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고, 15명이 천도교인, 2명이 불교인이 되겠습니다.
기독교 인이 반이 넘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자랑인가 할수 있겠습니다만, 독립선언서를 만들던 그 당시,
기독교인은, 그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 1. 5 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 인구의 1.5 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지만, 독립선언서에서도 알수 있듯이,
교회는 독립운동에, 제일 열심으로 참여 하였습니다.
그래서 3.1 운동이 일어나자, 일본헌병들에게, 기독교인이 제일 많이 붙잡히게 되었고,
여성수감자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65.5 퍼센트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다른 단체들에서도, 이제 나라사랑의 모습이 일반화 된 것 같습니다.
불교도, 길에서 절을 하며, 나라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도, 정의구현 사제단이라고 하면서, 나라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60년전, 일제 폭앞 앞에서는, 다른 단체들은 조용할 때,
전 인구의 1. 6프로 밖에 되지 않았지만,
기독교는 제일 열심히, 나라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순교당한 많은 성도들...
투옥된 많은 성도들...
왜 그렇게 하였는가? 물어볼때, 답은 한가지입니다.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견디었는가? 물어볼때, 답은 한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이겨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제일작은 기독교가, 제일 열심히 나라를 사랑할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며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사랑의 전통은
믿음으로 설때에,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위에 설때에,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나라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작지만, 그 기도위에
우리나라가 든든히 서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신앙의 나라사랑의 전통 위에, 우리민족의 소망에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복음이 전파되는 우리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8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지만, 육신의 자녀, 즉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후손이라 하여, 믿음없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서, 믿음으로 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 하나님의 복음의 선민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절히 예수님을 믿을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되었다고 언제까지나, 자동적으로 경제강국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2015년에는 중국이 경제규모로 일본을 앞지른다고 합니다.
미국이 되었다고 언제까지나 자동적으로 세계강국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2050년에는 중국이 경제규모로, 미국도 앞지른다고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이 언제까지나, 자동적으로 만년 약소국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2050년에는 1인당국민소득이, 일본을 앞지를수 있다고 합니다.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 골드만삭스의 미래보고서에 있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불변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누구를 의지할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누구를 믿겠습니까?
일본을 믿겠습니까?
중국을 의지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만, 담대하게, 여호수아가 그러했던것 처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복된 땅을 향하여 나아갈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상나라를 의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돈으로 평화를 살수 있는 것인 양,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북한에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도 변하고, 북한이 의지하는 중국도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계에는, 공산주의 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만은 아직도 공산주의가 세계 최고라고 허세를 부리면서,
속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청빈이야 존경 받지만, 나라가 가난한 것이 무슨 자랑이 되겠습니까?
더욱이 북한에서는, 현재도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도, 죽이면 않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우리 총회에서는, 지난달에 북한에다가 봉수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북한은 억지로라도,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데올로기도, 종주국도, 의지하고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북한이 살길도, 예수님 외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아름다운, 나라사랑의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이 잘 사는 길은, 예수님 외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믿음위에서, 기도하며, 이나라, 이민족을 세워나가는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