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에서 승리 데살로니가후서 1장 1절 6절
2008.09.06 22:22:14 조회5407
데살로니가후서 1장 1절 6절 낙심에서 승리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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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이나 땅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망가뜨리는 첨단 무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무기는 우리나라에도 비밀리에 배치되어 있는데, 효과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 신무기의 이름? “바로 ‘주식시장’이라고 합니다. ”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각 부분에서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가, 연일 매스컴을 통하여 전해지고 있습니다.
경제의 바로미터라고 할수 있는 주식시장의 주가도 계속하여 떨어지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에 투자하신 분들도 많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환경을 보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럴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에 사도바울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는 사도바울이 감사하는 인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인사는 매우 이례적인 인사라 하겠습니다.
이 인사를 받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던, 대표적인 교회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후서에보면 ‘핍박’과 ‘환란’ 이라는 단어가 계속하여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인사하였으며,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하여 감사한다는 말씀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해할수 없는 인사입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입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은 이 인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오늘 말씀처럼 감사하며, 환란과 핍박을 이기고 승리하는 교회요 교인으로 살아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환란과 핍박에 이기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비결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1.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스펄절 목사님이 신학생들에게 설교자의 자세에 대하여서 특강을 하였다고 합니다.
천국에 대하여 설교할때에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면, 말씀은 훨씬 더, 잘 전달될 것입니다.
그러자 처음부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앉아있던 한 학생이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그러면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할 때에는, 일부러 표정을 슬프게 해야 합니까??”그러자 스펄절 목사님이 그 학생을 보며 대답을 하였습니다.
“학생은, 표정을 바꿀 필요도 없네,
평소의 표정 그대로 지옥을 설교하여도, 되겠네 그려”
표정은 그 사람의 잘 드러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표정이 밝고, 긍정적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위기에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의 표정은 어떠하십니까?
환경을 오히려 이겨나가는 표정입니까? 아니면 환경에 지배당하고, 끌려다니는 표정입니까?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핍박받는 데살로니가교회를 보면서 감사하였습니다.
환란당하는 데살로니가교회를 보면서 감사하였습니다.
아니, 환란을 당하는데,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어려움을 당하는데, 그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감사드렸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서,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을,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나오는 ‘범사’ 라는 말은, ‘엔 판티’. 라는 단어로
‘모든 상황’과 ‘모든 환경’을 뜻하는 단어가 되겠습니다.
조건에 맞는 상황과, 환경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어떤 환경이든지, 가리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하지 않는 사람은 ‘편식’하는 사람입니다.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편식이 아니겠습니까?
반찬에 멸치가 나오면, 맛이 없다고, 골라서, 내놓고 먹지 않습니다.
소세지가 나오면, 맛있다고, 소세지만 먹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칼슘이 부족하여, 뼈가 약하여지고, 피가 원활하게 만들어지지 않아서 머리가 어지럽지 않겠습니까?
편식하기 때문에, 건강에 위험신호가 오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하지 않는 신앙의 사람도, 편식을 합니다.
내 입맞에 맞으면, 감사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감사하게 됩니다.
내가 보기에 맛이 없다고 느껴지만, 감사하지 않고, 골라서 버리게 됩니다.
이런 신앙에는, ‘엔판티’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범사...엔판티 에...감사가 없을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에 위험신호가 오게 됩니다.
기도가 약하여지고, 말씀이 약하여지고, 그래서 조그만 어려움에도, 다리가 휘청휘청 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여, 쓰러지고 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움도 거뜬히 이기고,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엔판티 감사가 평소에도 꾸준히 있어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편식하지 않고, 영향을 골고루 섭취할 때, 뼈도 튼튼하고, 조혈세포도 튼튼하게 됩니다. 그럴때, 건강하게 되고, 어지간히 오르막을 올라가도, 숨이차지 않습니다.
무거운 짐을 져도, 거뜬히 지고 옮길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의 조그만 어려움과 괴로움이 닦칠때, 이기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편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소에 골고루 신앙....엔판티 감사...범사에 감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조그만 어려움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뜬히 이겨내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에, 엔판티 감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모두, ‘범사에 감사’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려움 능히 이기시기 바랍니다.
2. 인내와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올림픽이 끝났습니다만...올림픽 종목에서 ‘권투’만큼 손에 땀을 쥐고 보는 경기도 없다 하겠습니다.
권투는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경기입니다. 그래서 권투는 참 간단합니다.
권투에는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때리든지, 아니면 내가 상대방에게 두드려 맞든지, 이 두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권투선수가 승리하기 위하여, 무슨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상대방을 때리는 연습을 많이하면, 당연히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권투 선소들의 연습내용을 보면, 때리는 연습보다, 맞는 연습을 더 많이 한다고 합니다.
내용인 즉슨, 권투경기를 하면, 내가 상대방을 때리는 때도 있지만, 상대방이 나를 때리는 때도 분명히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맞는 연습을 하지 않은 선수는, 급소를 방어를 하지 못하여, 상대방에게 두드려 맞을때에, 급소에 충격을 받으면, 한방에 넉다운 되게 되어 집니다.
그래서 권투는 때리는 경기입니다만, 오히려 선수들은 맞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손을 올리며) 팔을 올려 앞면을 방어하고, (허리를 궆혀) 또 허리를 궆혀서 명치를 방어하면서, 맞을때, 나를 온전하게 보호하고, 그 다음 상대방이 허점을 보일때, 결정타를 날리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어려움 하나 없이, 만사형통, 하는것 마다 승리하는 것을 바라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에 사람들은, 먼저, 인내 연습도 해야 하겠습니다.
절제의 연습도 해야 하겠습니다.
오래참음의 연습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우는 사자와 같이, 믿음의 사람이라도 할수만 있다면, 넘어뜨리려고,
시기 질투하며, 핍박과 환란을 일으킬때...
신앙의 훈련이 되어 있으면, 믿음의 방어를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소 연습한데로, 오래 참습니다.
절제 합니다. 인내합니다.
자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과 환란이 올때, 인내와 믿음으로,
신앙을 지켜나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백성들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어제는 종인데, 오늘이 자유인이 되어, 애굽에 금은 보화를 가지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그 지긋지긋 하던 애굽을 빠저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 뒤에서 화가난 애굽군대고 총출동하여 쫓아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담이 서늘하여, 막 도망하기 시작하였는데, 가다보니, 앞에 바다가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 까지는 세상에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이 기뻐하였는데,
이제는 통곡을 하며, 죽게 생겼다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들 모세에게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변함이 없습니다. 애굽에서 나올때에도 변함이 없었고,
또 앞에는 바다요, 뒤에는 군대가 죽이겠다고 달려와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머리를 땅에 숙이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한참 기도하다, 바다를 향하여, 손을 드는데, 글쎄 그 바다가 갈라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다는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살았다고 좋아하며, 그 바다 가운데로 도망칩니다.
반대편에 도착하자 또 걱정과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옵니다. 애굽군대도, 그 갈라진 홍해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또 모세는 조용히 기도합니다.
그럴때, 27절에 말씀합니다.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그래서 바다 물이 다시 몰려 와서, 애굽군대는 바다에서 다 빠져 죽고, 이스라엘은 평안이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도데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합니다.
이겼다고 좋아하다가, 금방 죽게 되었다고 울다가...모세 때문에 살았다고 하다가, 모세를 원망하다가....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합니까?
믿음의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믿음의 훈련을 하게 되고, 그 훈련에 합격한 다음에야, 가난복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는 말씀합니다.
“너희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지니라 “
고난당한다고, 너무 한숨 내쉬고 절망하면 않되겠습니다.
조금 잘된다고, 가볍게 자기 기분을 주체 못하는, 경솔함을 보여서도 않되겠습니다.
믿음의 훈련을 한데로, 신앙의 사람들은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내할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고난당하면, 조용히, 고개숙여 기도하고,
즐거워 할 일이 있으면, 내 기분으로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하겠습니다.
자 이렇게 성숙하고, 장성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3.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5절 6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사업가 두 사람이 서로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사업가가 먼저 물었습니다.
“당신은 광고로 효과를 본적이 있습니까?”
그러자 반대편 사람이 한탄하며 대답했다고 합니다.
“있다 뿐이겠어요? 지난 주에 야간 경비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냈는데,
신문에 광고가 나간, 그 날 밤에, 도둑을 맞았답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악한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두밀마을에도 좀도둑이 돌아서, 얼마전에 좀도둑질 하는 현장이 발각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좀도둑질 하면서, 잘 되고 존경받으면 사는 경우를 보셨습니까?
결국은 부끄러운 짓이요, 항상 발각될까? 불안해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데살로니가교회를 핍박하는 황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겉으로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핍박하였지만, 황제는 불안해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핍박당하는 교인들은 의연하고 당당하게 맞서 나갔습니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 교회를 핍박하던 황제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신앙을 높이 들고 나온,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로마는 전체가, 기독교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 그럴때, 총회를 열게 되자, 각지에서 감독들과 장로들이 회의장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대단하였습니다.
어떤 감독은 팔이 하나 없습니다.
어떤 장로는 두 눈이 없습니다.
어떤 감독은 다리가 없습니다.
어떤 장로는 귀가 없습니다.
핍박 당할 때, 잡혀서 고문 받고, 다리를 잃고, 팔을 일고, 눈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스런 징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변절하고,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사람들은 고개를 들수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환란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기고, 승리하는가? 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려움을 모면하고, 넘어간다면 무슨 보람과 감사가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이기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겨 나갔을때, 거기에 보람과 감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어려움과 핍박 당함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공의로운 징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될 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욥이 그러했습니다.
욥은 동방의 알부자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밑에 말과 소와 낙타와 양이 어마어마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단이 하나님께 와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까? 욥이 신앙생활 하는 척 하고 있는 것이지.
실상 욥은 속이 시커먼 사람입니다.
욥의 재산을 빼앗아 보십시오. 욥의 하나님의 배반하고, 금방 신앙을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의 재산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욥은 한순간에 산적과, 재앙을 만나서, 모든 재산을 잃고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욥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자 사단이 와서 또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 욥의 건강이 남아 있으니까. 저러는데, 건강을 빼앗가 보십시오.
욥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금방 신앙을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의 건강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욥은 온몸이 헐고, 몸이 쇠약하여 재에 앉아 기왓장으로 몸을 긁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불쌍하고 너무나 애처로와 욥의 아내마저도
이제는 신앙을 버리고, 저주하며 살아가라고 말 할 정도였습니다.
자 그럼에도 욥의 신앙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럴때, 사단은 부끄러워 꼬리를 감추고, 하나님께서는 욥을 기뻐하시며,
욥에게 건강을 돌려 주셨습니다.
재산을 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갑절로 돌려 주셨습니다. 양이 사천마리, 낙타가 육천마리, 소와 나귀가 각각 천마리에 이를정도로 셀수없이 돌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경험하였던 욥도 기도하였습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낸 사람은, 세상의 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도 성장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고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의미있는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고난입니다.
내가 더욱 잘되고 성장하는, 은혜의 기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에는 말씀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
앞으로 가야하는 길, 누가 알겠습니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욥은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또 좋은 일이 있으면, 힘든 일도 분명히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힘든 일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
말씀을 맺습니다.
인생길은 좋은일도 있지만, 어려운 일도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떻게 승리하며 나아갈수 있겠습니까?
엔판티 감사--범사에 감사하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또 너무 즐거워 하고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좋으면 찬송하고, 힘들면 기도하면서,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 나갈 때,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 싸운데로,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하나님께서 더욱이 믿음도 더 성숙하게 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요즈음 세상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가정들은, 이 믿음으로, 승리하고,
때가 찰 때, 하나님 앞에서 크게 세워지는
귀한 귀한 신앙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