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의 신비 요한복음 17장 21절 26절
2008.05.17 21:56:04 조회5695
요한복음 17장 21절 26절 삼위일체의 신비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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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학생들의 실력을 어떻게 올리느냐? 선생님 별로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채소가게 주인형 선생님은, 학생들의 실력을 쑥쑥 올린다고 합니다.
성형외과 의사형 선생님은, 학생들의 실력을 몰라보게 올린다고 합니다.
백화점 사장형 선생님은, 학생들의 실력을 파격적으로 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총알택시 기사형 선생님은, 학생들의 실력을, 항상 따불로 올린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것 처럼, 신앙의 깊이도 늘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신앙은 그렇게 쉽게 성숙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단순간에, 깊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든든해 집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확실하게, 잘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잘 알지 못합니다.
호세아 4장 1절에는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4절에는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없을때, 이스라엘 민족은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서울 용산에 위치하는 ‘청파교회’라는 곳에는, 29살에 ‘문형진’이라는 사람이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고, 일간지, 월간지, 심지어는 KBS 뉴스에 방송이 나갔습니다.
미국 하바드대학교 비교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청파교회’ 라는 곳에 부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그렇게 젊은 나이에, 부임하는 것에 대하여서, 또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것은 방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통일교주 문선명의 막내아들이고, 청파교회는 통일교의 총 본산이라는 것은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통일교는, ‘평화통일가정당’이라는 간판으로 내걸고, 국회의원 한 자리라도 따려고 엄청난 돈을 투입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통일교도 군대에, 군목을 보내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통일교가 돈이 많으니까 막연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교는 가정을 강조하고, 승공을 강조하니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통일교는, 예수님이 실패하였고, 문성명교주가 예수님이 실패한것을 완성한 참메시야, 참부모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삼위일체의 바른 신앙을 모를때, 이런 혼란스러운 사람을, 오히려 세상의 뉴스들은 대단한 사람이 온것처럼 방송할 수밖에 없고,
많은 사람들은, 솎아서, 통일교에 빠져든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삼위일체는 교회의 근원적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21절,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삼위일체라는 문자적 단어는 성경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임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에는 빌립이 예수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누구나 한번쯤, 하나님을 직접 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이 있을 것입니다.
빌립이, 바로 그 질문을, 예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놀라운 대답을, 9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안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말씀이, 바로, 방금 읽은 21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2절에서는 “우리는 하나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는 계속하여, 26절에서, 성령님에 대하여도 말씀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래서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늘 우리에게 오신, 성부, 성자, 성신, 삼위 일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삼위 일체가 되어서, 함께 일하십니다.
천지창조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을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그리고 2절에는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서는 천지창조 때, 성부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한편, 잠언 8장 27절에는 말씀합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렇습니다. 성자하나님께서도, 천지창조 때 성부하나님과 함께 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함께 하셨습니다.
천지창조 때부터, 지금까지...삼위일체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나 주셨기 때문에,
성자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령하나님을 마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하시는 것을 볼때는, 도무지 구별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동일본질’, ‘호모우시오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분되어 지지 않습니다.
단지, 계시하여 주시기 때문에, 알수있을 다름입니다.
자 어렵습니다. 도무지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있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없는 교회는, 잘못되었다 할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죽었습니다만, 박태선 교주는 삼위일체 중, 성령 하나님이 자신이라고, 말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러자, 삼위일체에 대하여 잘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말을 듣고, 신앙촌으로 들어가서,
큰 고생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감히,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자신이 감히, 성령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이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에 다니게 된 사람이, 않믿는 그의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않믿는 친구가 말합니다.
“자네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데, 어디 좀 들어나 보세...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데, 설명을 좀 해 보게나.“
믿는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합니다. “글세, 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데, 도무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가 없네”
않믿는 친구가 또 묻습니다. “그럼 수많은 사이비종파들은 어떻게 된건지 설명을 해 보게나”
그러자 믿는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또 말합니다. “글세, 나도 가슴이 아프기는 하지만, 잘 설명 할 수가 없네...하지만 하나 이야기 해 줄수 있는것이 있다네..”
“믿기 전에는 내가 주정뱅이였고, 가정은 산산조각 나고, 세상에서 버림받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지금은, 소망중에 살아가고, 가정은 화목하며,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간다네..
이렇게 나를 바꾸신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 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비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고백할 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이신것 처럼,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성품과 경륜에 하나가 되어, 복되게 그의 삶이 예수님을 쫓아하게 되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삼위일체 성삼위 하나님은 성도의 근원적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23절 24절 말씀입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4:8절에는 말씀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과 같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일본질의 비밀은 어쩌면, 그 한량없으신 아가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랑이 넘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기 까지, 우리들도 사랑해 주셨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총각이 아내를 대려오려면, 결혼지참금으로 소를 한 마리를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변변찮은 한 처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처녀는 자기 모습을 보며, 소 반마리만 주어도, 가겠는데... 소 반마리 주는 사람도 없다고 한탄하고 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흐르는 사이, 이 처녀는 노처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마을에 추장의 아들이 청혼을 해 온것입니다. 더욱이 지참금으로는 소를 여덞마리나 가지고 왔습니다.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기 시작하는, 신부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졌습니다. 모두들, 오히려 이 신부를 부러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신부는 신랑에게 조용히 물었다고 합니다..
\"왜 소를 여덟 마리나 가지고, 나와 결혼하였습니까?“
신랑의 싱긋 웃으며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니까.\"
사랑에는 원인과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사랑은 목적이요, 현재입니다.
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까?
왜 독생하신 성자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면 까지, 나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해 주셨습니까?
이유가 없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냥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실수합니다. 나는 실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토록 나를 사랑하십니까?
찾을수 없지만, 그래도 이유를 찾으라면, 베드로 전서 4: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그럿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의 허다한 죄도 덮으시고, 오늘날, 제일 행복한 사람, 제일 복된사람, 제일 귀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마지막 노년이 되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보편적으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산 사람이든, 부유하게 산 사람이든, 늙어가면 다 소용없게 되어지는데,
왜 좀 더 나누어주지 못했고,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둘째는 \"참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좀 더 참을 수 있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참았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좀 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빡빡하고 재미없게 살았던가?
왜 그렇게 짜증스럽고 힘겹게 살았던가?
얼마든지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는데...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한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
후회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사랑의 후회가 있어서는 절대로 않되겠습니다.
“왜 그때,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지 못하였던가? ”
자 이러한 후회가 남아서는 않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23절에는 말씀합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성삼위 하나님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어 집니다.
예수님을 본받을때,
자녀들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베풉니다.
부부간에도, 온전한 사랑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웃간에....., 사회에도..... 세상에 사랑의 그늘속에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을 베풀때,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24절에는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래서 삼위일체 신앙이 있는 성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3. 삼위일체 성삼위 하나님의 파송은, 세상을 향한 사랑의 모델이라 하겠습니다.
25절 26절 말씀입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쓰는 말은, 겉다르고, 속뜻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 사람, 사람은 참 좋아\"라는 말 뒤에는
\"다른 건 다 별로지만\" 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요..\"라는 말 뒤에는
\"친해지고 싶어요\"라는 말이 숨어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연락할께요\"라는 말 뒤에는
\"연락을 기다리지 마세요\"라는 말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구차해 지고 싶지 않다면,
들어난 말 뒤에 있는, 뒷말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25절에는 말씀합니다.
세상은 알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부하나님께서 성자하나님을 보내신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상으로 파송하시고, 또한 찾아오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찾아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순절날 찾아오셨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이 찾아오심에는, 우리를 또한 다시 보내시는, 은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잘 19절 20절에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삼위일체 신앙이 있는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교회라 하겠습니다.
모든 민족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가르치고, 또 지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파송되어질때, 보내어질때, 삼위일체 하나님과 오히려 연합되어지는 비밀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삼위일체 신앙이 있을때,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되어 집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지식적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하나님의 성품이신, 아가페 사랑도 본받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신앙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렵습니다. 분명히 신비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신앙으로 건강하게 믿음생활하시고,
또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한량없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건강한 가정, 건강한 성도들이 다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