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드려라 로마서 6장 16절 23절
2008.04.26 22:15:57 조회5579
로마서 6장 16절 23절 나를 드려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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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황당하지만 여자분들을 오리에 비유하는 유머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살림도 못살고, 돈을 물쓰듯 써버리는, 여자분들은, ‘어찌하오리’ 라고 한답니다.
반대로, 능력이 있어, 가계에 큰 보탬이 되고, 성격까지 좋은 여자분들은 요즈음, ‘황금오리’ 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능력이 있어, 큰 재산 모아놓고, 더욱이, 남편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여자분들은, ‘앗싸! 가오리’ 라고 한답니다.
응큼하고 잘못된 세태를 꼬집는 유머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지, 그 삶의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년수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 로,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단순히 오래살았다는 것이, 그 사람의 자랑이 될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달은 ‘생명의 달’로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얻은, 새 생명은 무엇인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생활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생명으로 충만하기 위하여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조용히 살펴 보았습니다.
‘생명의 달’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주일,
로마서 말씀을 통하여, 가치있는 생명, 값진 생명에 대하여 은혜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누구의 종이 될 것인가?
16절에서 18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동양에는 예로부터, 오래사는 것을 복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동물들 가운데, 오래사는 동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개구리 10년, 앵무새 80년, 백조 100년, 쌍각류 조개는 200년을 산다고 합니다.
어떤 북극고래를 잡았더니, 그 등에는, 1790년에 사용하던, 작살이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작살을 등에 꼽고도, 210년을 살았던 것입니다.
나무들은 오래사는 차원이 틀려 집니다.
미국, 요세미티 극립공원에 있는, 세콰이어 삼나무의 수령은 3000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오래사는 나무로는, 브릿슬콘 소나무가 있는데, 거의 5000년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수령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래산다고, 앵무새의 생을 가치있게 여기고,
거북이의 생을 값지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값진 인생, 가치있는 인생의 기준은, 생명의 기간에서 오는 것이 아닐 것 입니다.
값진 인생, 가치있는 인생의 기준은, 생명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살았느냐?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느냐?, 자 이런 기준이 아니겠습니까?
16절 말씀에는, 가치로운 생명, 값진 생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사도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기이하게도, 자기생명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이 목표가 되는 인생은 없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자기 생명을 드리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생명을, 과학에 바치며 살아갑니다.
과학이 그의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과학에 매이게 되고, 과학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과학의 기준을 따라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과학의 가치가, 그의 인생의 가치, 그의 생명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돈에 바치며 살아갑니다.
돈이 그의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돈에 매이게 되고, 돈의 종이 되어집니다.
그 살람은 돈의 기준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돈의 가치가, 그의 인생의 가치, 그의 생명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자존심에,
어떤 사람은, 원망으로...
어떤 사람은, 허망한 꿈에 자시의 생명, 자기의 인생을 드리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무엇에게 순종하든지, 손종함을 받는것의 종이 되는 줄 알지못하느냐? 고, 오늘 우리 심령을 향하여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나는 어떠합니까?
지금,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일매일, 그것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없으십니까?
만일 있다면, 나의 생명은, 그것이 주는 가치정도만 될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값어치는, 내가 메여있는, 그것 만큼만 될 것입니다.
그래서 16절 하반절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돈에 종노릇 하는 사람은, 돈의 가치만큼 그 사람이 평가를 받게 되어집니다.
돈이 많아지면,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돈을 잃어버리면, 무가치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예술에 종노릇 하는 사람은, 예술의 가치만큼, 그 사람이 평가 받게 되어집니다.
예술로 주목받으면,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예술로 주목받지 못하면, 가치없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나의 생명, 나의 삶의 가치를, 내가 평가해 본다면 스스로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내 생명, 내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몇점을 주시겠습니까?
100점입니까?
아니면 70점, 50점, 아니면 30점..... 다양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점수를 주게 되었습니까?
무엇이 기준이 되어, 그렇게 점수를 주게 되었습니까?
17절 18절 말씀에도, 오늘 나를 향하여, 내 인생과 내 생명에 대하여,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나를 향하여, 나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성경에는 나의 인생, 나의 생명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한 점수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나 후하게 점수를 주는지 이유를 알수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는 더 자세히, 나의 인생, 나의 생명에 대하여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우리의 인생, 우리의 생명은 얼마나 가치있고, 값진지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택하신 족속이요...왕같은 제사장이요...거룩한 나라요...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갖은 귀한 표현을 다 사용하고, 점수를 후하게 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나 후하게, 나의 인생의 점수를 주고,
나의 생명에 이렇게 값지게 바라보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로마서 3:2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께 바쳐지고,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보시면서, 우리의 생명을 향하여, 의롭다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말씀하시는 생명은, 얼마나 값지고, 가치있는 생명입니까?
나를 값지게 보지 못하도록 하는 기준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에 마음이 가 있었다면, 얼른 다시 예수님께로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힘있게 예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마음,
나의 인생
나의 생명,
예수님께 기쁘게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때, 나의 생명은, 세상 그 어느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가장 값진 생명이 되어 질것입니다.
마지막날 하나님 앞에 섰을때, 의롭다 칭찬받는, 가장 가치있는 인생이 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나의 생명, 나의 인생을, 확신하며 기쁘게, 예수님께 드리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무슨 열매를 얻을 것인가?
21절 2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생명은 또 무엇을 남기게 되어 집니다.
63빌딩에서, 어떤 가족이 가정불화로 다투다가, 투신을 했지만, 한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한사람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는가 조사를 해보았더니,
아버지는 제비족입니다.
어머니는 치맛바람이 센 주부였습니다.
아들은 비행청소년 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명 다 날아서, 가뿐이 땅에 내려왔다고 합니다.
자 이런 가정이 있다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후회와 안타까움만 남을 것입니다.
생명의 특징은 또한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식물들은 열매를 남깁니다.
동물들은 족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게 된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목회담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어느 한적한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데, 이름이 ‘한심란’이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름 만큼이나, 모든 것을 심란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분과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심란해 지는지 모릅니다.
이분이 일을 일으키면, 얼마나 교회가 심란해 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 교회 성도들은 이분이 나타나면, 긴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그래서 사람은, 이름처럼 열매를 맺더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의 열매를 떠올리게 됩니다.
손양원목사님...사랑의 원자탄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주기철목사님...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성도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열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열매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름은 아버지인데, 전혀 아버지의 열매를 맺지 않고, 청년의 열매를 맺을때,
정체성에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정이 혼란스러워 집니다.
이름은 어머니인데, 전혀 어머니 같지 않습니다. 아가씨의 열매를 맺을때,
정체성에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정이 혼란스러워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지 않을때, 정세성에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소금의 맛을 내지 못할 때에는, 밖에 버리워 지게 되고,
빛을 발하지 못할 때, 말 아래 놓이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에는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2절 하반절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거룩함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때, 그 사람은 영생을 이루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에는 말씀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어떤 집사님이, 시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도와 달라고 하더랍니다.
한두 번이지, 자꾸 그러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시장바구니를 보니까, 한쪽이 썩은 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언른 썩은 무를 주고서,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낮잠을 자는데, 꿈에 천국문이 열리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외칩니다.
“자 시간이 되었으니, 모두 천국으로 올라 오시오..”
옆집에 있던 박집사님도, 올라갑니다. 앞집에 있는 홍집사님도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아무리 애를 써도 올라가지 않습니다.
급해서 천사를 향하여 소리를 첬습니다.
“나도, 예수님이름으로 착한일을 한것이 있는데, 왜 나는 불러 올리지 않습니까?”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데, 가만히 보니까, 반쯤 썩은 무가 달려 있습니다.
급해서 얼른 잡았는데...하늘로 올라가다가,
썩은 무가 뚝~ 부러지면서, 이 집사님은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 나살려요..~” 소리지르며 땅에 떨어지는데, 땅에 큰 지진이 나서 갈라지면서
그 속으로 쑥~ 들어가다가,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깨어나서 보니, 아들이, 이 집사님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무슨 나쁜 꿈 꾸셨어요”
그래서 이 집사님은 회개를 하였다고 합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사람들은 두가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불순종의 열매, 거룩한 열매가 그것입니다.
불순종의 열매는 그 마지막이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의 열매는 그 마지막이 영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다고만 안도할 것이 아니라, 거룩함의 열매,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는,
더 큰 안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열매를 맺어갑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열매를 맺어서는 않되겠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복음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그럴때, 그열매로 기억되어 집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기억되어 집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십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쓸, 예수님의 사람으로, ‘생명책’에 기록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이번 일주일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만, 4월달에는
힘있게 생명의 열매, 거룩함에 열매, 예수그리스도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은사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23절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비유를 들어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돌감람나무는 돌감람나무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돌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젖붙여질때는, 참 감람나무의 양분을 받아서,
참 감람나무 열매를 맺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로 살아가면, 세상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열매, 영생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세상의 방법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법,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열매을 맺어야,
복음의 열매, 은혜의 열매,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는 두가지 대비되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죄와 하나님의 은사,
사망과 영생이 그것입니다.
죄의 방법은 아무리 지혜로워도, 사망을 낳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낳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남녀 선교회에서, 구역에서, 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할때, 꼭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꼭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생활 전체에서...우리가 하는 살아가는 모든 날동안,
동일한 고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만 열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무엇을 따라 살아가시렵니까?
무엇을 이루며 살아가시렵니까?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고 계십니까?
자 이렇게 거룩한 고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값지고, 복되다 하시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