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의 기쁨 요한복음 16장 21절 22절
2008.03.08 19:15:12 조회5858
요한복음 16장 21절 22절 해산의 기쁨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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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에서, 설교 제목을 길게 잡으시는 목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금요일이 돼서어,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이번주일, 설교 제목이 너무 짧은데,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맞습니까?\"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네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어, 주보를 보고, 목사님이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주보에 보니, 설교 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사시니.. 네,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인쇄소에서는, 목사님이 주보제목을 덧붙인 것으로 알고, 대답까지 제목인줄 알고,
다 인쇄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네,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다보니, 목사님이 그만, 그 제목에 은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보다 더 만족한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럿습니다.
지금까지 주신 것을 돌아볼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주신것 만으로도 족합니다.
나를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그것 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렇게 못보도록, 영적인 시력을 잃게 하는 것이, 사탄의 유혹이요,
믿음으로 눈을 열어 볼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향하여,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예수님께 십자가의 시간이 점점 다가 오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어떤 자리입니까?
채찍을 맞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십자가를 져야 겠다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않된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겉으로 보면, 십자가는, 분명 고난의 자리이고, 죽음으로 자리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십자가는 하나님의 축복이 완성되는 자리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해산하는 것과 같은, 기쁨의 자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자리이지만, 나는 기쁨으로 십자가에 올라간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르셨던, 고난의 십자가,
그러나 해산의 기쁨으로 오르셨던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여정을
이 시간 믿음으로 더듬어 가 보려고 합니다.
1. 해산의 기쁨으로 십자가에 오르신 예수님.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시는 것을, ‘해산의 기쁨’에 비유하셨습니다.
해산은 어머니가, 자녀를 낳는 것을, 해산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그 아이는, 그 부모의 자녀가 되지 않겠습니까?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거듭나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생, Born Again ..
죄악 속에서 살아가던 죄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종노릇 하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낳기 위하여,
십자가에 오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의 십자가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우리들을 볼 기쁨으로,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그 고통의 십자가의 자리도, 오히려 기뻐하며 올라 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다시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다시 낳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머니가,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말하기를...
“저기 아기 낳으러, 병원에 잠깐 들렀습니다. 잠깐 아기 좀 놓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기는, 준비없이 해산 할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해산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초음파로 아이가 배속에서 잘 자리고 있는지 아이의 상태를 채크합니다.
또 아이를 낳고 난 다음에, 아이에게 먹일 우유, 입힐 옷도 준비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이를 어디에서 낳을까? 어디에서 키울까, 신중하게 정하게 됩니다.
어떻게 제가 아이도 안낳아봤으면서, 이렇게 잘아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집에도 아이가 두명이나 있다보니,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놓기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10달 배속에서 아기를 키워내듯,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3년 공생애 기간으로, 키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키우셧습니다.
나는 모르지만, 내가 예수님 앞에 인도 되도록, 예수님께서는 만세전에 준비하셨습니다.
나는 모르지만, 내가 믿음생활을 잘 하도록, 예수님께서는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실 오늘 내가 스스로, 예수믿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믿을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고, 키워 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준비 해주셨습니다.
내가 먹을 ‘영의 양식’...하나님의 말씀을 준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죄많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낳기 위하여,
장소를 정하셨는데,
그 장소가 바로 골고다, 십자가 였던 것입니다.
그곳이 아니면, 우리의 많은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그곳이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릴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통의 자리, 고난의 자리이지만..
그 고통 그 고난은, 해산의 고통, 해산의 아픔이 되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을수 만 있다면,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기꺼이 오르셨던 것입니다.
또한
2. 온힘을 다하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21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반절에,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아기를 낳는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자리에서,
“자기가 알아서 나오겠지요. 뭐...”
그리고 편안하게 누워서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해산하는 어머니는,
온 힘을 다하여, 용을 쓰고, 힘 내고... 그래서 젓먹는 힘까지 내어서,
아기를 낳기 위하여, 애를 쓸 것입니다.
아기는 자기가 스스로 나오지 못합니다.
아기는 자기 혼자서 나오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힘을 쓰고 낳아 주어야,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거듭나고, 스스로 거룩하게 될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아직도, 자기가 힘써서, 스스로 다시태어 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노력한다고,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존재입니까?
아무리, 시간표를 잘짜고, 일일생활계획표를 잘 짜도, 금방,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좌우명을 만들고, 올해의 목표를 정하여도, 금방 본래의 자기 습관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물며, 죄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되는데, 스스로 거듭나고, 스스로 깨끗해 질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위에 예수님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길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산부인과에 가면, 불문율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예쁘게 꾸민 어머니도, 아이를 낳을때는 그 본색이 들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 낳는 고통이 너무나 심하여..소리를 지르는데....
어떤 어머니들은 욕을 한다고 합니다.... 야 이놈아 나죽여라....야 이놈아 나살려라.....
또 어떤 어머니들은 고통에 겨워, 옆에 사람을 막 꼬집과 할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서는 아이 낳을때에야, 그 어머니의 본성이 들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여집사님들은 자녀들을 낳으실 때, 어떤 본성을 들어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예수님의 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그 한량없는 사랑의 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실 때, 너무나 고통이 심하여 혼절하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더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신포도주를 주어, 다시 깨웁니다.
고통이 절정에 이르자 예수님께서는 소리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너무 고통이 심하여, 온 힘을 다하여, 참고 참으며, 정신없이 소리 지르신 말씀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런데 이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말씀이 아니셨습니다.
바로 시편 22편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셨던 것입니다.
시편 22편 1절 말씀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2편 마지막 31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그렇습니다.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백성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걸어나올, 거룩한 백성들을 바라보며...
고통의 자리에서 온힘을 다하여,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서, 예수님...오히려,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십자가에서도, 끝까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목 마르다...”
인스탄트적인 문화가 일반화된 현대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동전만 넣으면, 음료수가 나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면, 온갖 음료가 다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편하게, 손 쉽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온힘을 다 쏟으시고,
피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받아야할 고난의 값을, 치루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징벌의 량을 갑기 위하여 위하여,
예수님께서 감당할수 없는 고난을 오히려 달게 생각하며, 끝까지 지고 또 당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이 끝날 때, 힘이 빠진 예수님께서는, 축 늘어지며, 말씀하셧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죄많은 이백성들을.....하나님의 양자녀로, 이제 다 낳았습니다.”
이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죽기 직전이었지만. 아마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나 컸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는 대신 짊어지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으셨기에,
사람난 기쁨으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죽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3. 해산의 은혜를 통하여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칠복이란 사람의 일기라고 합니다.
오늘의 일기...꿈을 꾸었는데, 내 이름처럼 7이란 숫자가 나타났습니다.
깨어서 시계를 보니, 7시 7분 7초입니다.
그래서 얼른, 뭔가 되는 날이구니 싶어, 은행에 가서, 예금을 모두 찾아 가지고 나오는데..
마침 7번 버스가 와서, 얼른 집어 탔습니다.
그런데 이 버스가 경마장 앞에 정차합니다.
내려서 경마장에 들어가보니, 때마침 일곱번째, 경기가 시작되려고 합니다.
얼른 7번 말에, 은행에서 인출한 전액을 몽딸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일곱 마리 중에...7등을 하여.. 돈을 몽땅 날리고 말았습니다.
칠복이의 오늘의 일기 끝....
자 이런 자식이 있다면, 그 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애를 쓰고 해산한 자녀들 가운데에도, 여러 유형의 자녀가 있겠습니다.
먼저, 듬직하고, 믿음직한 자녀의 유형입니다.
모든 일을 믿고 맡길만한, 자녀입니다.
이사야 6장에는 말씀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어려운 일, 힘든일이 생길때, 누가 이일을 담당하랴..? 질문하신다면,
하나님은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까? 믿음으로 대답하는 성도가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또 에베소서 4:13 에는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잘 성장하는 자녀는, 또 얼마나 부모님의 기쁨이 되겠습니까?
더욱이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성장하면, 얼마나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어렵게, 전도되어 나오더니, 얼마나 신앙이 빨리 성장하는지 모릅니다.
주일성수, 말씀생활, 찬송생활, 기도생활, 봉사생활, 헌금생활....
모든 부분이 금방 금방 자라납니다.
그럴때,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며, 우리를 낳으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성장하는데, 신생아들은 눈맞춤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눈맞춤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는, 지적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또 옹알이도 중요합니다. 엄마 아빠...그러면서 언어능력이 점점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걸음마가 중요합니다.... 뒤뚱 뒤뚱 거리지만. 걸음마를 시작하면, 그제서야 부모님들은 한숨 돌리게 됩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맞춤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예수님 만나러, 예배드리러 가야지...
생활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구역예배드려야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믿음의 옹알이도 중요합니다.
아직 서툴지만,...찬송을 따라 부릅니다. 말씀을 따라 읽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을 따라 외우고....아직 온전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기도도 하고,...
자 이렇게 될 때, 금방 신앙이 자라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걸음마가 잇어야 합니다.
뒤뚱 뒤뚱하지만....저도 찬양대 봉사해보고 싶어요.. 저도 주일 안내 해 보고 싶어요..
실수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신앙에 걸음마를 내딧일때..
건강하고 온전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자 이렇게 성장하고, 믿음직 하게 되어, 기쁨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그것만큼, 예수님 앞에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낳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건강하게 자라나. 세상에 있을때, 교회에서, 기둥같이 섬기며 헌신하다가, 왔습니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병약한 믿음으로 커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힘들게 낳으셨지만...
눈맞춤도 하지 못하고,
옹알이도 하지 못하고,
걸음마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다시 죄악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번 고난주간, 또 부활절에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귀한 체험을
다시한번 더 기억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믿음에 장성한 모습이 되어, 예수님을 대면하는, 은혜도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생각하며,
고통의 십자가가 아니라, 해산의 기쁨으로 받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은혜로 보내는, 한주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