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기쁨 사도행전 13장 47절 52절
2008.04.05 20:09:08 조회6145
생명 기쁨 사도행전 13장 47절 52절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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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뉴스의 제목들을 보면 황당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건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게, 자의적으로 붙혀진 뉴스 제목들을 보고, 한심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를 꼬집는 유머가 있어서 웃은적이 있습니다.
한석봉 어머니가 한석봉에게 말합니다. “불을 끈 후에,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써 보아라”
그러자 그날 신문에, 이렇게 기사가 났다고 합니다.
“불끄고, 글 쓰라고 강요한 지독한 모정, 어머니 자격 박탈해야 마땅...”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려고, \'죄없는 자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러자 그날 신문에는, 이렇게 기사가 났다고 합니다.
“예수님, 연약한 여인을 향하여 돌 던지라고 사람들에게 명령. 어떻게 그러실수가...”
같은 내용도,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래 사건의 앞뒤는 그 뜻이 아닌데,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관찰자는 전혀 다른것을 보게 되고,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곡된 내용은 전달하게 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보려고 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보려고 하고 있습니까?
혹시나,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고, 않되는 것을 더 보고 싶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월달은 생명의 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참 생명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싶어해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참 많은 것이 있는데,
참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1. 참 생명은 기쁨이 넘칩니다.
49절에서 5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전도하였습니다.
참 생명되신 예수님을 전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게 되자,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세상은, 싫어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잘되고, 즐거워 하는 것을 세상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나바와 사울을 쫓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의 반응이 또한 참 이상합니다.
쫓겨나면, 화나가고, 힘이 빠지고, 슬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반대입니다. 52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는 쫓겨가면서, 오히려 기쁨하였던 것 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더욱 충만해 졌던 것입니다.
쫓겨가면서도, 오히려 기뻐하였던 바울과 바나바...이것이, 참 생명의 비밀인 것 입니다.
이 기쁨은 말초적 감성적 기쁨이 아닙니다.
이 기쁨은 상황과 환경에 의하여 좌우되는, 기쁨이 아닙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반문합니다.
‘요즈음 웃을 일이 있습니까?’
‘세상 되어가는 거 보니까 답답한 것 뿐입니다. 사회도, 직장도, 가정도...
그저 답답한 일만 있는데, 어떻게 웃을수 있습니까?‘
사회와 환경에 지배당하며 살아가는 사람 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자신과 환경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환경이 나빠지면, 나도 나빠지고,
일이 않되면,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명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회와 환경에 지배당하는 피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주위에 환경이, 오히려 이 사람 때문에 바뀌는,
살아있는 사람 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생명이 있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쫓아내는 곳을, 바꾸어 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쫓아내지 않으면 않될 만큼, 생명으로 넘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 생명이, 무슨 생명이길래, 그렇게 힘이 있고, 그렇게 능력이 있습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참생명...영원한 생명, 예수그리스도의 생명...
요한1서 5:12에는 말씀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주신 생명은, 너무나 강력하여,
그 생명이 있는 곳에는, 큰 기쁨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황은, 예수님의 생명이 가져다 주는 기쁨을 막을수 가 없습니다.
세상의 조건은,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말미암아 넘치는 기쁨을 막을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 LA 크리스탈쳐지, 수정교회는, 미국에서도 엄청나게 큰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는, 로버트슐러 목사님은 미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목사님 입니다.
그 로버트슐러 목사님이 한국에 온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왔는김에, 옛날에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한국인 동기동창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연결이 되어서 어렵게 만나게된, 한국동창을 만나보고, 눈물이 맺히고 말았습니다.
낡은 바지에 남루한 옷을 입고, 얼굴을 새카맣게 그을러 있었습니다.
“친구야..미국에 까지와서, 공부하고 갔는데, 도데체 어떻게 되었길레, 이런 모습인가?”
그러자 한국동기동창이 말합니다.
“너무 오해 말게나...나는 지금 두메산골같은 거창에 내려가 있다네...
그곳에 있는, 쓰러져가는 조그마한 고등학교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그곳 학생들에게 사람되는 교육을 하려고 힘쓰고 있다네...“
이 한국동창 이름이, 바로 전영창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오늘의 거창고등하교를 있게 한 분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곳, 세상이 기억하지 않는 곳에가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갔더니,
학교가 바뀌고, 학생이 바뀌고....환경이 도리어 바뀌어..
지금은 전국에서 몰려가는, 유명한 거창고등학교가 되어 버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혹시 근심중에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세상에, 되는 일은 없고, 환경과 여건 때문에 근심하며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참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 예수님이 들어오실 때,
환경과 여건에 영향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과 여건에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어 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28절 에는 말씀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세상의 환경을 바꿀수 있는 기쁨이 넘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참 생명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전파됩니다.
47절 48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바울과 바나바가, 예수님을 전할 때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문제가 해결됩니다.
기분이 좋아 집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불안해지고, 짜증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야기 하는 것 마다, 남을 괴롭게 하는 이야기 만을 합니다.
똑 같은 말이라도, 나쁜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어떤 사람이 생일을 맞아 절친한 친구 네 명을 초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명이 도착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오늘의 주인공이 말합니다. \"꼭 와야할 사람이 왜 이렇게 안오는 거지?\"
이 말을 들은 친구 한명이 화를 냅니다. \"꼭 와야 할 사람이 아직 안왔다니?
그럼, 우린 오지 말아야할 사람들인가?\" 그리고 화를 내며 가버립니다.
그것을 보고, 어이없어하며, 주인이 말합니다. \"어휴,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이 그만, 가버렸군.\"
그러자 이번에는 남아있던 다른 친구가 화를 냅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그럼 가야할 사람은 바로 우리란 말인가?\" 그리고 나가 버립니다.
더 황당해서 주인이 말합니다. \"내 말을 모두 오해한 것 같은데. 그 친구들에게 한 말이 아니었는데...\"
그러자 마지막 남은, 친구마저 화를 냅니다.
\"뭐야! 그렇다면 나를 두고 한 말이란 건가? 정말 기가 막히는군.\"
그리고 그 친구마저 화를 내며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합니다.
정말 ‘말’이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게 이야기 하여도,
듣는 사람이 잘못 들을때,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수습한다고, 설명을 하는데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오해가 생겨서,
더 난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럴때, 기쁨이 전파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말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지혜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말로 위로를 받으려 해도, 오해 만 생길 뿐입니다.
나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넘치게 하고,
참 기쁨이 충만하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게되면,
힘이 들때,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괴로울때,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서, 생명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며, 일곱 살 먹은 아들과 엄마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스코리아선발대회’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미인대회가 뭐예요?”
엄마가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대회란다.”
그러자 일곱 살 짜리 아들이, 엄마를 돌아보며, 진지하게 묻더랍니다.
“그런데 엄마..... 왜 저기 않나갔어요?”
바보스러울 만큼, 너무나 순수하게..
어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미인으로 알고 있는. 이 아이의 말이...
어떻게, 어머니에게 힘이 되고 감동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감동시키고, 힘을 주고, 위로를 주는 말은...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갖은 수식어가 다 붙어있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너무 미련하게도...나를 믿으시고,
나를 위해서라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
왜 나에게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왜 나에게 감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러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에...사도바울은 오직 예수님만을....붙잡고, 전하며, 살아갔고...
이 믿음으로 나아가기에, 사도바울이 있는 곳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역사가, 넘치도록 일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대화할 때, ‘예수님의 말씀’으로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오해가 생길때, 예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힘들때,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예수님의 기쁨이 전파되는, 복의 근원되는 생활이 시작될 줄 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참 생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51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오늘 예수님의 생명으로, 기쁨으로 살아갔던, 바울과 바나바,
이 두사람, 목표가 있는 발걸음이 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딱 한가지...바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이 두 사람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쫓껴날 때, 쫓겨났다고 그 자리에서 억울해 하였던 것이 아니라,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바쁘게 다시 ‘이고니온’을 향하여 출발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특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바쁘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쫓겨났다고 슬퍼할 여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않좋은 말을 들었다고 마음에 담고 되쇠길, 한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명의 자리에서, 더욱 열심히, 다음 단계를 향하여, 출발하는
신앙의 여정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의 모습이요. 순례자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제 저는 뉴스를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의사가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였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병을 고치는 사람이 의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의사가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울증은 병증이 무엇이고, 치료의 절차가 무엇이고, 도움을 주는 약물은 무엇인지...
이 의사는 지식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우울증 때문에,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사하여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세상을 이길 것 같지만, 절대 지식으로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실력으로 세상을 이길 것 같지만, 절대 실력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의 목표가, 우리 삶의 방향이 바르지 못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헛된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결국에는 병을 고치는 의사도, 권력을 가진 권력자도...
늙고 병들고 후회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것
바로...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길을 떠났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복음의 길로, 출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쫓겨나도 슬퍼할 겨를이 없습니다.
여기서 전도하며, 곤하게 몸을 추슬려, 다음 마을로 바삐 갑니다.
그랬더니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며,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그날에,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예수님께서, 씌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은..
바로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이깁니다.
그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요..
그의 삶은, 의의 면류관이 예비된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일로 고민스러우신 적은 없으십니까?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기쁨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오히려 세상에 영향을 주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따라서, 세상을 이기는, 승리자의 이름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자...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