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감사의 사람 골로새서3장 12절 15절
2007.11.10 18:01:21 조회6413
골로새서3장 12절 15절 성숙한 감사의 사람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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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심리학 용어 중에는 ‘어른아이 (Adult Children)\'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어른인데, 그 속을 보니, 아이같이 미성숙하더라는 것입니다.
나이는 어른이지만, 하는 행동은 미성숙한, 어린아이 처럼...
무책임하고, 남을 배려할수 모르고, 욕심을 부리고, 남탓하며, 살아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는 이러한, ‘미성숙 어른’이 너무나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왜 이렇게 ‘미성숙한 어른’이 되어 집니까?
자라면서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른으로써 역할와 마음가짐과 행동함과 사고함을 배우고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하게 살아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1년 5년 10년 믿음생활을 하여, 어른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 보니, 어린아이신앙과 같이 미성숙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섬기고, 헌신하고, 희생하고, 감사하는 것을, 배우고 준비를 하지 않다보니, 섬길줄 모릅니다. 헌신하고 희생할줄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할 때에,
나는 감사할 조건이 없습니다. 내 생활에는 감사할 꺼리가 없다고 불평하며,
하나님께 인색한, 미성숙 그리스도인이, 왕왕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감사’할 때, 필요한 것은 ‘조건’이 아니라, ‘준비’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 ‘으로’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감사하기 위하여서 덧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어떤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뚱뚱한 손님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유명한 디자이너 선생님은, 줄자를 가지고 와서
정성껏 이 손님의 치수를 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디자이너가 자꾸, 이 뚱뚱한 손님의 몸을, 더듬기만 하는 것입니다.
손님이 화가나서,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치수는 않 재고, 왜 자꾸 남의 몸을 더듬어요?\'
그러자 이 디자이너는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손님..... 아직 허리를 못 찾아서 그랬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참 옷에 대하여, 많이 신경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옷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장소나 목적에 맞은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은 더욱 돋보이게 됩니다.
결혼식장에 가려면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려면, 정장을 입어야 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장소와 때에 맞는, 옷을 입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맞는 옷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의 옷이, 바로 이 옷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입으면, 돋보이고, 또, 이 옷을 입으면,
더욱 감사생활 하는데, 도움이 되는 옷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는 뜻입니다.
자비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뜻합니다.
오래참음은 웃음,울음,아픔, 충동, 감정등을, 억누르고 오래도록 견딘다는 뜻입니다.
자 이러한 옷은 덧 입을때, 감사하는 사람은 더욱 돋보이게 되고, 또 더욱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어느 성에 루드비히라는 공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공작은 항상 불평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화를 냅니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불쌍히 여길 줄 모릅니다. 성격이 포악하고, 거만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누구나, 루드비히 공작을 욕하고 저주하며, 싫어하였습니다.
루드비히 공작도, 사람들을 험하게 대하며, 악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루드비히 공작이 숲속을 거닐다가, 한 작은 교회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있는데, 문득, 교회 벽에 글씨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3이라는 숫자는 보이는데, 그 다음 글짜는 희미하게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루드비히 공작은, 순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하!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나쁜짓만 하였는데, 드디어, 이제 3일 후에 죽나 보다...’
집에 돌아와서 죽을 준비를 하니까, 너무너무 서럽고, 답답합니다.
그러면서 뜰에서 일하는 노비를 보니까? 측은한 마음이 들고,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루드비히 공작은 긍휼한 마음으로, 3일동안 노비들을 다 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 죽지 않습니다.
루드비히 공작은 다시 생각합니다. 아 석달후에 죽는가 보다...
그러면서, 다시 죽을 준비를 합니다.
이제는 자비의 마음으로, 성에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불편한 것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석달이 지나도 죽지 않습니다.
루드비히 공작은 다시 생각합니다. 아 삼년후에는 죽는가 보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마음으로, 삼년의 시간을 오래참으며, 사람들을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삼년이 끝나는 날, 죽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나팔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라서 문열 열어보니, 독일 각성의 대표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슨,
루드비히 공작의 착한 행실이, 전 독일에 알려져서,
독일 백성들이, 루드비히공작을, 독일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사절단을 보내었던 것입니다.
감사는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요행과, 욕심과, 태만과, 교만의 옷은 깨끗하게 벗어버리고,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의 옷을 정갈하게 입어야 합니다.
그럴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은혜를,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감사하기 위하여서는 용납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우리를 감사할수 없도록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을 보게 되게 됩니다.
가만히 있는 물건이, 감사의 마음으로 빼앗아가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주위에 있는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어렵게 하는 사람 때문에,
‘감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이 싫습니다.
그 사람이 밉습니다.
그 사람이 있으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아무리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산다 할지라도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집은 감옥이요. 그 생활은 고통에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용서와 용납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용서’와 ‘용납’이 없이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용서해야 합니다. 용납해야 합니다.
그럴때, 감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에, 나쁜 시어머니와 성질더러운 며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트집을 잡습니다. 매일매일 언성을 높이며 싸웁니다.
그렇게 서로 미워하며, 싫어하며, 고통스럽게 하루하루 살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용한 의원을 찾아 갔습니다.
“의원님, 시어머니가 미워 죽겠어요..아시지요? 제말 뜻 아시지요?“
그러자 의원은 찡긋하며, 조용히 약을 꺼내줍니다.
“이 약을 일년동안 먹이면, 늙어서 죽는 것 처럼, 표 안나게 죽게 됩니다.
기억하세요..일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먹여야 합니다.”
그날부터 성질더러운 며느리는 성질을 죽이며, 매일매일 시어머니에게 그 약을 넣은, 밥을 차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리 나쁜 말을 들어도, 일년후에는 죽을텐데...하고 생각하며,
용납하고, 받아 넘겼습니다.
한달, 두달, 갖은 구박을 다 받아도,
악착같이, 매일 정성스럽게, 독약이 든 밥을, 차려 올렸습니다.
여섯달, 일곱달..... 시어머니가 문득, 며느리의 지극정성을 보면서, 마음이 찔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홉달이 되면서... 시어머니는 마침내 며느리에게 다가와서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며늘아가...내가 그렇게 악하게 하였는데도,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너를 보니...
내가 그동안 몹쓸짓을 하였구나... 용서해 다오 “
그리고 그때부터, 시어머니가 오히려 며느리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하여 줍니다.
집안에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마을 사람들 만나면, 며느리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합니다.
일년이 다 되가면서, 며느리는 값자기 마음이 심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나에게 잘 대해주고, 나의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시어머니가 없어지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며느리는 의원에게 달려가 말합니다.
“의원님 일년이 다되가는데, 시어머니를 살리기에는 너무 늦었나요? 해독제는 없나요?”
의원 다시 빙그래 웃으며 말하였답니다.
“아주머니, 그럴줄 알고, 밀가루를 드렸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감사하며, 잘 사세요”
상식적으로, 따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할때는...
절대로 먼저, 용서하고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 바라보며, 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해야 합니다.
사람으로는 절대로 내가 먼저 용서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먼저, 죄중에 있는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무조건적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먼저 용서하셨기 때문에, 다음 차례는, 예수님을 앞에서 용서함을 받은,
사람의 차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하심, 용납하심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만이, 이 어려운 용서와 용납을 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와 용납의 고개를 넘어설때, 감사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용서와 용납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3. 감사는 준비해야 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2차 세계대전때, 폴란드에 ‘코리’ 라는 소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독일군이 들어와서는 ‘코리’ 가족을 잡아서 포로수용소에 집어 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죄목은 ‘유태인을 숨겨주고 보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린 ‘코리’는 감옥에서 말할수 없는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몰래 가지고 온, 성경을 읽으면서, 하루하루 위로받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성경을 읽는데, 데살로니카 전서 5장 18절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씀을 읽었지만, 코리는 도무지 ‘감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감옥속에 있습니다. 날마다 고초를 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음날 더 심한 감옥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더욱 열악합니다. 감옥에는 벼룩이 들끓어서, 잠시도 견딜수 없습니다.
그럴때 언니가 기도합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벼룩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코리는 할수 없이 ‘아멘’ 하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곧 코리는 ‘벼룩’ 때문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벼룩이 있기 때문에, 독일군이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기도하고, 마음대로 성경을 읽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대로 옆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코리’는 ‘감사’로, 비참한 기간을 오히려 이겨낼수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화평이 열립니다.
믿음의 사람은,
감사를 준비하였다가, 감사의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감사의 능력은 능히 생활을 바뀌게 합니다.
절망과 비통함에서, 소망과 평화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말씀을 감사로 붙잡고, 감사의 능력을 사용하는
감사하는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수 있도록 옷입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할 조건과 제목이 없다고, 불평하는, 미성숙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낼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