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를 걱정할까 마태복음 13장 24절 30절
2007.11.05 13:53:07 조회5153
마태복음 13장 24절 30절 가라지를 걱정할까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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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1월 달이 되었습니다.
11월달은 추수의 달로 지키려고 합니다.
한해의 일들을 마무리 하는 달입니다.
한해의 결과들을 추수하는 달입니다.
그래서 셋째주 18일 주일에는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됩니다.
자 우리 성도님들은, 추수의 신앙으로, 생활과 일들을 잘 돌아보고 계십니까?
추수는 단순한 평가를 넘어서는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평가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 열매를 거두는 것이 추수인 것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추수는, 들에 있는 곡식을 거두어 드리는 것이 추수입니다.
현대에는 한해동안 하였던, 일의 결과물을 거두는 것을 ‘추수’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은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한가지 더, 들어갑니다.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이 ‘감사’는 결과물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거두어 들인 열매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것은 추수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나를 추수의 자리에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애완용 거북이를 기르려고, 거북이 한 마리를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산지 하루가 지나서, 그 거북이가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화가 난 이 사람은, 죽은 거북이를 들고 가게에 찾아가 말합니다.
“아저씨, 왜 거짓말을 했어요?”
가게 주인이 정색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다니요?”
이 사람이 더욱 화가나서 말합니다.
“아저씨가, 어제, 거북이는 1000년을 산다고 그러면서, 이 거북이를 팔았잖아요?”
“그랬죠.”
“그러면 이 거북이가 어찌 되었는지 보세요.”
그러자 가게 주인인 천연덕스럽게 말하더랍니다.
“네, 죽었군요. 아마 그 거북이의 천년 수명이, 어제였던 모양이군요.”
자 세상을 살아보면, 꼭 이런 황당한 일을 경험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말도 않되는, 무책임 훼방꾼을 만나게 됩니다.
자 이렇게 되면, 계획하는 일들이, 열매를 거두기는 커녕, 큰 낭패를 당하게 되어 집니다.
이러한 경우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예상할수 있게 됩니다.
잘못된 사업의 파트너를 만나면, 추수는 커녕, 참 힘든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실력이 없는 선생님을 만나면,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합니다.
않좋은 날씨가 이어지면, 밭에 곡식들이 열매를 잘 맺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추수의 주체를,
잘못된 사업의 파트너, 실력없는 선생님, 않좋은 날씨로 여기고,
추수를 잊어버리고,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추수의 결과물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평가하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추수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감사’로 추수를 준비하는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모든 밭에는 가라지가 있습니다.
24절에서 2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오늘 말씀에는 ‘천국에 대한 비유’로써, 특별히 ‘좋은 밭에 뿌리워진 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추수를 준비하는 좋은 밭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밭이 좋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밭’은, 조건이 참 좋은 것을 보게 됩니다.
밭 중에는 척박한 밭이 있습니다. 척박한 밭은, 조건이 나쁜 밭입니다.
걸음기도 없고, 영양분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어도, 열매가 잘 맺을수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밭은, 반대입니다.
걸음기도 있고, 영양분도 풍부합니다. 그러니 좋은 씨앗을 심으면, 열매가 풍성하게 잘 맺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보니,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밭은 좋은 밭이었는데, 군대 군대, 또 곡식사이로, 가라지가 막 자라나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밭이면, 곡식만 풍성하게 자라야 하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2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좋은밭이었습니다. 당연히 좋은 열매가 나오고, 풍성한 추수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시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을 ‘원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원수가 몰래 와서, 밭에다가, 몰래 ‘가라지’를 뿌리며 훼방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러한 훼방자는 항상있어 왔으며, 특히나 믿음의 사람들 앞에는 끊임없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위하여,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내려오시는 데에도,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오래동안 준비하였다는 듯이, 세가지 질문을 예수님님께 쏟아 내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도 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서 나타나서, 예수님의 말씀을 훼방하고 방해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유다도, 사단이 들어서, 예수님을 은 30에 팔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기는 일을 서슴치 않터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해와 훼방 위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큰 역사를 이루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추수할 밭에, 가라지가 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않 될 것입니다.
오히려 가라지가 있지만, 추수를 준비하는,
의연하고, 감사로 준비된,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추수는 알곡을 추수하게 됩니다.
27절에서 29절 말씀입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추수는 알곡을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무리 가라지가 많다고 하더라도, 추수의 목적은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입니다.
그래서 추수의 주인공은 수와 관련이 없습니다. 양과 관련이 없습니다.
추수의 주인공은 바로 알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7절 38절에는 이 비유에 대하여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래서 가라지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가라지는 추수의 주인공이 될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라지가 많기 때문에, 추수할 때, 실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라지가 너무 많다고, 감사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실망하고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까?
추수의 주인공이 되는 알곡을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추수의 바른 신앙위에 서야 되겠습니다.
추수할 때 알곡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서부에는 감비아 공화국이 있습니다.
인구가 약 160만명 정도 되고, 인구의 90% 가 회교도인, 이슬람 국가가 바로 감비아 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전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도를 받고, 자매 한사람이,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자 일이 크게 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자매를 때립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 자매를 마을에서 내어 쫒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선교사들은 너무나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너무나 적습니다.
더욱이 전도받은 자매는, 마을에서 내어 쫒기어, 큰 고통을 받고 말았습니다.
자 돌아보면, 알곡안 딱 하나요. 나머지는 모두 다, 가라지가 아니라 가시덩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 하지만, 이 자매는, 오히려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성경을 보고,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는데, 그 남편이 나중에 감비아 공화국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감비아 공화국의 영부인이 된, 이 자매는, 남편에게 강권하여...
감비아 공화국에 선교의 자유가 선포되었고, 그리고 매주 토요일 마다, 텔레비전에서는, 예배실황이 방송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비아는 이 자매로 인하여, 복음의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추수할 때, 가라지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기 바랍니다.
아무리 가라지가 많아도, 추수의 주인공은 알곡이요.
추수는 알곡을 위하여 예비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알곡을 바라보고,
알곡을 추수할 때, 알곡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알곡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추수하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입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추수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추수가 있기 전에는,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습니다. 표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라지의 세력이 더 왕성하기 까지 합니다.
자, 가라지의 모습이 왕성해 보인다고, 가라지가 알곡이 될수 있겠습니까?
가라지는 알곡인척 합니다. 그래서 생기기도, 알곡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벼 처럼 생겼다고 하여서, 논에 나는 잡초가, 나중에 추수할 때 벼처럼 쌀을 열매 맺겠습니까?
그런데 분명한것은 추수할 때, 이 모든 것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추수를 하게 되면, 알곡와 가라지가 들어나게 됩니다.
알곡 믿음과, 죄악의 가라지는 분명하게 들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구별되어 질때, 알곡와 가라지는 그 목적지가 달라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알곡은 주인의 곳간으로 소중하게 옮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거두어 불살라 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힘든 겨울을 나고, 옥수수 농사를 지어,
처음 거둔 곡식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영국에 살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척박합니다.
의식주 생활하는 모든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바른 믿음, 바른 신앙속에서 살아갈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추수한것이 보잘것 없지만, 믿음으로 볼때, 너무나 감사하여,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날, 사람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
그 당시 마을에 한 모퉁이에는 또 사람들도 모여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도 없습니다.
거둔 옥수수로 술을 담고,
그 옥수수 술로, 부어 마시며,
인사불성이되어, 물건을 부수며, 행패를 부리며,
추태를 부리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두 전통이 미국에는 오늘날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은 구별되어, 경건하게 믿음으로 오늘날 미국을 신앙위에서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은 어글리 어메리칸이 되어, 마약과 중독과, 무기 밀매와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세계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수는 구별되어 지는 것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로,
감사와 불평으로,
하나님의 사람과, 죄악된 사람으로,
구별되어 지는 것입니다.
자 우리 성도님들은 이번 11월달을 어떠한 달로 보내시겠습니까?
알곡신앙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와 은혜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라지만 바라보고 불평하고 낙담하며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바라보고, 감사와 소망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잘 말씀을 맺습니다.
11월달, 추수의 달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셋째 주일, 추수감사주일, 초청감사잔치로 보내려고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세상과 구별되어 지는 주일입니다.
알곡의 자녀로,
감사의 사람으로
추수의 주인공으로
구별되어지는 주일입니다.
말씀위에서 11월달, 추수의 신앙위에 보내는
귀한 한달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