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어 집니다. 사도행전 10장 24절 35절
2007.08.27 19:46:21 조회5743
사도행전 10장 24절 35절 기억되어 집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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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할머니가, 더위를 피하여 백화점에 갔다고 합니다.
물끄러미, 백화점 로비에 앉아 있는데, 할머니가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자네는 죽으면 어떻게 할건가?, 묘를 쓸건가 아니면 화장을 할건가?’
옆에있는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나는 화장을 하기로 했네. 묘를 쓴다고 자주 찾아오지도 않을 것 같고 해서,
화장하라고 했네’
이 말을들은 할머니도, 말합니다.
‘그런가, 사실은, 나도 화장하라고 했네. 그리고 유골은 백화점에다 뿌려 달라고 했네’
듣고 있던 옆에 할머니가 어이없어 하며, 말합니다.
\"아니, 이 사람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이 어수선한 백화점에 뿌려달라고 하다니....\"
그러자 할머니가 담담하게 말합니다.
‘우리 며느리가, 하루에 백화점을, 일주일에 두세번씩은 가니,
백화점에 뿌리면, 며느리 문상을, 일주일에 두세번은 받을 수 있지 않는가?‘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는
기억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억되고 싶어하는 존재입니다.
나에게, 주위사람에게...특별히 하나님께, 기억되고 싶어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사람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좋게 기억되고 싶어하여,
잘 변하지 않는 돌에다가, 그 사람의 공적을 기록해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사람들이, 그 돌에 써진 기록 데로만, 기억해 줍니까?
벌써, 뜨거운 8월달이 다 지나가고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8월달이 지나갔다고, 8월달은, 이제 영원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억이 영원히 남게 됩니다.
8월달에 하였던, 좋은 일들은, 8월달의 좋은 추억으로, 기억 됩니다.
8월달에 하였던, 뜻깊은 일들은, 8월달의 의미있는 일로,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한주 한주, 좋은 일을 하면서, 보내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치, 한번쓰면, 지울수 없는 물감으로,... 한폭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듯이,
뜻깊은 일, 좋은 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한주 한주 보내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주인공인 고낼료는, 기억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존경스러운 모습이로, 더욱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기억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고낼료의 신앙을 통하여, 아름답게 기억되는 신앙의 지혜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고넬료는, 하나님께 기억되었습니다.
30절 31절 말씀입니다.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기억되는데,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말씀의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고넬로 한 두가지 일로, 고넬료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기도와 구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기도와 구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들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기도와 구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기도를 보겠습니다.
바리세인이 기도합니다. 성전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기도를 합니다.
나는 금식을 하였습니다. 율법을 지켰습니다. 정한 월삭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해 주신것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한편 그 옆에는 세리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저 조용조용 기도합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세리가 되어 죄 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부자가 하나님의 전 모퉁이 연보함에, 큰 돈을 꺼내어 자랑스럽게 넣었습니다.
한편, 한 과부는 두렙돈을 정성스럽게 넣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게 과부의 두렙돈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기억됩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신앙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실되고, 나의 영의 녹아 들어가있는, 그 신앙, 그 마음, 그 생활을...하나님께서는 바라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백이 들어있는 예배,
시간이 남아서 주님의 전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쁘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조절하여,
주님의 전에 나와 아멘~ 아멘~ 하며, 하나님을 뵈오려 할때,
하나님께서 왜 그 애절한 믿음을 아지시 않겠습니까?
지금은 하늘나라가신 한경직 목사님이, 종교의 노벨상이라고 부르는, 템플턴 상을 받게 되었을때, 일입니다.
이제 템플턴 상을 받게 되었는데, 어떤 말을 하실까? 기자들이,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긴장을 하고 촬영을 합니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님이 소감은 말하지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입을 엽니다. “ 여러분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저는 신사참배 했습니다. ”
들떠있던 장내가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좋게 기억되려고, 평생을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순례자의 모습이 무었인지,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 기억되는데,
겉 모양이 아닙니다. 유대에 백부장으로 와서, 혹시나, 유대인들을 박해 하지는 않았나..
항상 조심스럽고, 항상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였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구제하였습니다.
평생을 죄인이 되어, 무릎 꿇을때, 하나님께 천사를 보내어 말씀합니다.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다”
몇일동안 왕창, 빨리빨리 하여, 인정받았던 것이 아닙니다.
매일매일 생활을 마치, 소중하게 산제사로 드려서 받은,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봉사의 자리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기억되었습니다.
34절 35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5 빼기 3 은 2......그리고, 2 더하기 2 는 4 , 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간단한 수식이지만, 그속에는 재미있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5 빼기 3 은 2....즉 오해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
2 더하기 2 는 4... 즉 이해와 이해가 모이면, 사랑이 된다고 합니다.
사실, 베드로는, 고넬료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볼때, 고넬료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인, 즉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 아무리, 신앙생활 한다고 하여도,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겠느냐? 하고,
선입관을 가지고 고넬료를 바라 보았습니다.
거기다가, 고넬료가 구제생활하는 것도, 색안경을 끼고 보았습니다.
로마사람으로써, 유대인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술수를 부리는 것으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심방을 해 주시고,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때,
주저하고, 싫어하였던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성도들 간에 신앙생활입니다.
성도들 간에 신앙생활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것이,
5 빼기 3 은 2.. 요,
2 더하기 2 는 4 인 것입니다.
혹시 오해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는 용납하고 이해할수 있는 마음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해하려고, 할때, 결국에는 그 성도를 위하여 기도할수 있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을 이해하고, 위하여 기도할 때, 기억되어 집니다.
좋은 신앙인으로, 덕스러운 신앙인으로, 그리고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기억되어 지는 것입니다.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에게 기자가 묻습니다.
“뛰는 동안 가장 힘들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호흡입니까? 갈증 때문입니까? ”
그러자 마라토너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저를 힘들게 한 것은, 호흡도 갈증도 아닙니다.
신발속에 들어간,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 다니며, 저를 가장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소한 것이,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몇주동안, 내 마음을 쓰리게 합니다.
본인은 잊어버렸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렇지 않게 나누었던 행동가 말이,
마치 마라토너 신발의 돌맹이 마냥, 계속하여 아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성도간에는, 그리스도안에서 조심하고, 예절을 지키는 것이 매우 필요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하여, 얼마나 조심하는지 모릅니다.
25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세상으로 보면, 고넬료는 백부장이요, 베드로는 이름없는 어부입니다.
배운것으로나, 세상의 직책으로 보나, 고넬료는 베드로가 처다볼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믿음안에서는 반대입니다.
베드로는 사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넬료는 얼마나 조심스럽게, 배려하고, 신경쓰고, 존경해 주는지 모릅니다.
악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껴안고 포응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자 이렇게 될 때, 베드로는 고넬료의 마음을 이해하고, 은혜의 말씀이 전파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넬료의 아름다운 지혜요, 성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수 있었던,
고넬료의 비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북 금산에는 1908년에 세워진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이 금산교회는 그지역에 만석군인 ‘조덕삼’이라는 분의 열심으로, 교회가 나날이 부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여, 장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로를 세우고 보니, 조덕삼집사에서 마부로 일하는, 머슴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도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으로 보면, 주인과 머슴이요, 유지와 소작농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내가 머슴보고 장로님이라고 할수 있느냐고 하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조덕삼 집사님은 역시 믿음이 된 분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깍뜻이 장로님으로 대우하고, 모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자익 장로가 기도하면,
제일 앞에 앉아서 아멘~ 으로 화답합니다.
더욱이 자비를 드려, 이자익장로를 평양신학교에 보내어, 안수를 받게 하고, 다시 금산교회 담임목사님으로 모시고 오기 까지 합니다.
자 이렇게 훌륭한 성도간의 신앙의 모습이 있을때,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제시대때, 모진 박해 속에서도, 금산교회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금산교회 이자익 목사님은 세 번이나 총회장을 하시면서, 어려운 때, 한국기독교를 붙드는 귀한 일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금산교회는 조덕삼장로님의 아들, 그리고 손자가 장로님이 되어, 금산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가 어떻게 하면, 든든히 서 나갈수 있습니까?
고넬료와 같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성도들을 섬길줄 아는 신앙이 있을때,
성도들에게 좋게 기억되어집니다.
또한 교회는 든든히 세워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고넬료는, 주위사람들에게 기억되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이 기억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사람으로, 고넬료를 기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하고, 자리를 마련하여, 초청할 때,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그 초청에 기뻐하며, 함께 다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친척들에게, 친구들에게 인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만큼 값진것도 없다 하겠습니다.
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까?
“옛날의 친구가 아니야...이제는 얼마나 열심히 예수 믿는지,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
자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 아빠, 우리 엄마가 변했어요. 옛날에 좋아하던 것 다 버리고,
이제는 집에 있을때에는, 찬송가만 부르고요, 성경읽고, 기도해요. 정말 대단해요. 존경스러워요..“
저는 우리교회에서, 이렇게 자랑하는, 한 아들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키가 큰, 인도 농구 선수, 스베틀라나 싱 선수가, 최근에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생아의 키가 63㎝, 몸무게가 5.5㎏이었다. 이 정도 체격은 신생아가 아니라, 생후 6개월된 아이의 키와 몸무게라고 합니다.
아버지 한사람의 키가 크기 시작하니까, 키크는 유전자가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한사람이, 십자가 지는 것이, 힘듭니다. 하지만 그 한사람이 십자가 질때,
가족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영향력이 미치게 됩니다.
말씀의 유전자, 신앙의 유전자가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십자가를 질때,
이웃들간에, 가까운 사람들 간에, 예수그리스도의 영향력이 퍼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그 일을 하였습니다.
로마인들 사이에서, 어색하고, 오히려 오해받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넬료가 십자가를 질때, 예수그리스도의 영향력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친천들과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때,
모든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이 성령님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이 터져 나옵니다.
베드로는 성령님께서 임한것을 보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세례를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누구에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기억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 사이에 좋게, 기억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기억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흘러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복음으로 기억되는,
복된 삶, 알찬삶, 귀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