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 창세기 42장 6절 10절
2007.09.22 21:32:49 조회4776
창세기 42장 6절 10절 꿈꾸는 자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 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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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앞두고 있는 주일날 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전을 찾아, 하나님 앞에 나아온, 김포상도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특별히, 가정이 잘되고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명절들은, 각각, 고유한 이름과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에 앞서서,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명절은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만나려고 갈때에, 처음에는 기쁨과 즐거움과 기대를 가지고, 고향을 찾아 갑니다. 하지만, 정작 만나고 나서는, 사소한 일로 인하여, 서로가 언짢아 지는 경우들을 흔히 겪게 되어집니다.
헤어졌다가 만난다는 기쁨에 비한다면, 마음 상하는 일의 원인은, 보잘것 없는 것에서 시작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잘것 없는 일이라도, 그 일로 인하여, 점점, 오해가 생기고, 기분이 상하여 지면, 나중에는 가족들 간에 언쟁을 벌리기도 하고, 결국에는 언짢은 기분으로, 헤어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오래동안 헤어졌다가 만나게 된 가족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셉 가족이 그 주인공입니다.
요셉의 가족은, 오래동안 만나지 못한 정도가 아닙니다. 생이별을 하여, 죽은 줄 알았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싸안고 가족간의 정의 나누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 만남이 이상한 것을 보게 됩니다.
형들은 동생요셉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딴 사람처럼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요셉의 가족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오래만에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냉냉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꿈의 차이’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성경에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꿈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
자 오늘 서먹서먹한 요셉가정의 만남에는 이렇게 밖에 될수 없었던, 배경이 있습니다.
요셉의 가족은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형제가 12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많은 가정이었습니다.
형제가 12명이나 되니, 부모님께는, 얼마나 든든한 자식들이 되었겠습니까?
무엇을 하여도, 12명의 형제들이 힘을 합쳐서 나서면, 못하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형제들 마다, 꿈이 서로 틀렸습니다. 특히 11번째 동생인, 말째 바로 위에 있는, 요셉의 꿈은 그 중에서도 유별났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합니다.
형들의 묶어놓은 밭에 곡식이 자신이 묶어 놓은 곡식에게, 절을 합니다.
자 이러한 꿈을 꿀때에,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들이, 다, 너에게 무릎을 꿇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어떻게 그렇게 허왕된 꿈을 꾸느냐고..? 야단들 이었습니다.
자 이렇게 될 때, 결국에는 형들이 모두다, 요셉을 미워하여, 부모님 몰래, 노예상인에게, 노예로 요셉을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께는, 들짐승이 물어갔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진실되게 믿을때, 그 꿈으로 인하여, 형제들로부터 노예로 팔리는 험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꿈 때문에.......특별히 하나님께서 주신, 꿈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들을,
성경에서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믿음의 조상’이 되고, ‘민족의 아비’가 되리라는,
그 꿈을 쫓아갈때, 결국에는 고향 ‘우르’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크기는, 꿈의 크기 만큼, 정하여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꿈이 클수록,, 인생의 크기는 커집니다.
꿈이 작을수록, 인생의 크기, 또한 작아 집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 꿈을 따라서, 담대히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을 향하여,
꿈을 이루려 떠나갔던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의 가정은 서로 다른 꿈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활에서, 꿈은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꿈 때문에, 요셉의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리어,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각 가정을 들여다 보면, 그 가정속에, 꿈이 한가지씩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가정은, 그 가정 고유의........, 그 가정만에 꿈이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그 가정의 꿈이 희미합니다. 어떤 가정은, 그 가정의 꿈이 분명합니다.
우리가정의 목표는 이것이고, 우리가정은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정의 꿈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구성원들은, ‘가정의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열심히 힘을 합하여 살아갑니다.
또 오래간만에, 대 가족이 모이면, ‘각 가정의 꿈’들은 거기서 더욱 분명하게 들어나게 됩니다.
말씨와 사고방식, 그리고 목표와 신앙에서..... 각 가정의 꿈들이 분명하게 들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 하십니까?
나의 가정에는 어떤 꿈이 있으십니까?
요셉은 꿈 때문에, 노예가 되어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형제들이 모이게 되었을때,
요셉은 그 꿈대로 이루어져, 형제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높은 의자에 앉아서, 형제들에게, 엄한 말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꿈대로 이루어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꿈이 다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향하여, 출발하기를, 두려워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향하여, 출발하는 사람은,
그 꿈대로 이루어져, 만나게 되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2. 믿음 안에서 꿈을 품어야 합니다.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
이경규라는 개그맨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경규씨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영화에 출연도 하고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은 커녕 실패만 하여, 웃음 꺼리만 됩니다.
한번은 쑈 프로그램에 출연하였을때, 사회자가 말합니다.
“이경규씨, 후배들이, 왜 그렇게 힘들게 영화를 하느냐고, 다 말리는데, 왜 영화를 합니까?”
그러자 이경규씨는 참 재미있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저기, 개그맨은 제 직업이고요. 영화는 제 꿈입니다. 꿈을 가지고 살아야, 삶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답을 듣고, 참석한 사람들이 적잖케, 고개를 끄득이는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허망한 꿈이라도, 소중하게 품고, 그 꿈을 이루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의 꿈, 자녀의 꿈, 나의 꿈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꿈을 향하여, 각기 다르게 살았던, 요셉의 형제들은 다시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이게 되었을때, 그동안, 꿈을 향하여 어떻게 살았는지, 금방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8절,9절에는 말씀합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그렇습니다.
요셉을 꿈을 이루려 살았습니다. 꿈을 품으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럴때, 그 형제들을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그 꿈을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30년이 넘게, 만나지 못하였던 형제들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은, 반대였습니다.
그 꿈은, 잊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꿈 때문에, 화도내고 질투도 하고, 심지어는 그 꿈 때문에, 동생을 팔아버리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곧 꿈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꿈을 버린채, 살아 가다가, 요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쪽은 꿈을 품으며, 살아왔습니다.
한쪽은 꿈을 버리고, 살아왔습니다.
그럴때, 꿈을 품었던 요셉은 총리가 되었고, 꿈을 버렸던 형들은, 요셉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서 천사의 안내로, 하늘 창고를 구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참 가다가, 한 창고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보화가 조금 밖에 없고, 썰렁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무슨 창고 길래, 이렇게 썰렁하게 비어 있습니까?”
천사가 대답합니다. “이 창고는 성도들의 기도를 쌓아 놓는 창고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기도하는 성도들이 줄어들어, 이렇게 썰렁하게 비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참 가다가, 한 창고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 창고도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이 창고는 또 무슨 창고 이길래, 이렇게 텅텅 비어 있습니까?”
천사가 대답합니다. “이 창고는 응답의 보화가 쌓여있던 창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응답 주셔서,
그렇게 많던 보화는 다 내려가고, 창고는 이렇게 텅 비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꿈을 품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미움받고,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꿈을 품으로 살아갔습니다.
요셉은 먼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사나운 팔자를 탓하고, 자신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꿈을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럴때, 시위대장은, 모든 일을 요셉에게 믿고 맡기게 되었습니다.
자 요셉이 모습을 흠모하여, 시위대장 보디발의 부인이 유혹을 합니다.
그럴때에도, 요셉은 믿음으로 꿈을 품으며 한눈팔지 않았습니다.
시위대장 부인에게 잘보여야, 내가 더 잘되지 않겠는가 하고, 죄를 짓는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누명을 쓰더라도, 믿음의 사람으로써 잘못된 일은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자 그럴때, 요셉은 노예가 아니라, 이제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왕의 감옥에 죄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꿈을 이루기는 커녕, 더욱도 꿈과는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요셉은 끝까지 믿음으로, 꿈을 품으며 살아갔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내팽개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요셉을 향하여, 성령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렇습니다.
상황의 굴곡은 있었지만, 요셉의 믿음은 굴곡은 없었습니다.
요셉의 믿음이 굴곡이 없을때, 성경은 요셉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형통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자 옥중에서라도, 요셉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럴때, 요셉의 꿈은, 점점 이루어지는 때가,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부화되어, 달걀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마냥, 요셉의 꿈은 꿈틀거리며, 이제 세상속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옥중에 같이 잡혀있던, 관원장의 어려운 꿈을, 요셉이 풀어 줍니다.
이 소식이 임금님에게까지 들어가, 꿈 때문에 고민하던 임금님이, 드디어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은 임금님의 꿈도 무슨 뜻인지 풀어줍니다. 그리고, 장차 그 꿈대로 임할, 엄청난 가뭄에서 살아남을 길을, 알려 줍니다.
그럴때, 임금님은 요셉을 죄인에서 풀어, 오히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였고
요셉은 애굽을 가뭄에서 구한, 훌륭한 사람으로, 존경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4장에는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
그렇습니다. 믿음은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꿈을 품을 때, 바랄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그 꿈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꿈대로, 형제들은 무릎 꿇고,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꿈을 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품을때, 하나님께서 꿈은 이루게 해 주십니다.
우리 가정의 소망,
나의 삶의 소원....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꿈꾸게 하시는, 모든 꿈들은.....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는, 믿음이,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약속이,
하찮게 보일수 있습니다. 방해하고,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믿음으로 품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꿈을 통하여 사람을 구하여야 합니다.
창세가 45장 4절 5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자 요셉가정의 만남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창세기 45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형들은 무서워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요셉의 꿈을 미워하여, 핍박하고, 노예로 팔았는데,
이제 그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어, 살아서 돌아 왔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혹시 우리를 옥에 집어 넣으면 어떻하나?
혹시 우리는 노예로 팔아버리면 어떻하나?
그러나 요셉은 울면서, 형들을 진정시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애굽에 팔았지만, 그것으로 근심하지 마시고, 한탄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이 기근 가운데 우리 가정을 살리려고,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서, 애굽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꿈이, 가정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요셉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꿈은 좋습니다.
하지만 그 꿈이 나만 잘되고, 나만 성공하고, 나만 높이되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꿈일수 있겠느냐 ?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셔서, 영광받으시고,
나의 꿈을 이루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나의 꿈을 이루셔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나에게 이 꿈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자 이러한 고백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나의 가정에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나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그 꿈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틀립니까?
요셉의 믿음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든든히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꿈을 품고,
한주간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