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속에 얻는 성공 빌립보서 6장 15절 21절
2007.10.27 16:42:29 조회4475
빌립보서 6장 15절 21절 고난속에 얻는 성공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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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학생들은 중간고사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후반기의 학업을 중간 점검하는 것이, 중간고사가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점검할줄 아는 삶은, 건강한 삶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이 정검을 하지 않을때,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 집니다.
어떤 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생물시험시간인데, 문제가 나왔습니다.
\"다음은 어떤 새의 발 모양인가?\"
문제를 풀어나가던 한 삭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감독하시는 선생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선생님, 도대체 발 모양만 보고 어떻게 새를
알아맞히란 말입니까? 머리를 보면 몰라도...\"
선생님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공부도 안하는 녀석이, 뭘 그리 따지고 드냐! 너 이름이 뭐야?\"
그러자 그 학생이, 양말을 벗더니, 발을 교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제 발을 보고, 제 이름을 맞혀보세요!\"
참 어처구니 없는, 당돌한 학생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 학생이 당돌하게 지혜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범 된 학생이라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담대한 사람, 당돌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성공한 사람....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왜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지혜있지만, 존경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담대하고, 당돌하지만, 왜 손가락질 받고 있습니까?
그 삶은 성공하였다고 하겠지만, 모범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당돌하고, 지혜있지만, 그 삶이 거룩하고, 선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올라가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하지만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전도에 큰 도움이 되고, 복음의 큰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성공은 하였을지 모르지만, 모범되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갔지만,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게서는 성공하고, 높은 곳에 올라간 그것으로, 칭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보범되이,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사람들 칭찬하고 귀하게 여기시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는 세가지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선택하여야 할, 삶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고난을 피하여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18절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어떤 공직자가 있었습니다.
이 공직자는 평생 조심하며 살아갔습니다.
잘못된 일에 휘말릴까? 잘못된 송사로 손해를 볼까?
항상 조심하며 살아갔습니다.
이 분의 목표는, 점점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무사히,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삶은, 고난을 피하여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고난을 무서워 합니다.
고난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피하여 살아갔습니다.
고난속에 휘말리지 않기 위하여서 살아갔습니다.
불의에도 눈감고,
거룩한 생활이란, 꿈도 꿔 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 남들은 생각 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편한 생활, 고난없이 평탄한 생활을 살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활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생활이, 모범된 생활이요, 특히나 하나님께서 귀하게 바라보시는, 거룩한 삶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19절 하반절에는 이러한 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신은 배요...”
먹고 마시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잘 먹고, 남들보다 잘 입고,
기름진것 먹고, 비싼 옷 입는 것을 목표를 삶고,
그렇게 생활하는것을, 신처럼 떠받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불행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것 먹는것, 비싼 옷, 입은 사람들 선망의 대상으로, 신처럼 바라보는 세상이,
오늘 우리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자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이요,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라.”
자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요 부러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수치요 부끄러움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을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오늘 이시대는 거룩한 삶이, 핍박받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난을 싫어합니다.
편안한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러한 풍조가 신앙에 까지 들어오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드리되, 헌신하지 않는 교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말씀은 가까이 하되, 전도하지 않는 교인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헌신, 전도, 봉사, 희생...이러한 고난은, 않좋은 것이요..
복받고, 은혜받고, 능력받고, 잘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세상풍조가
교회에 까지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여 살아갈 때, 성공할지 모르겠습니다. 높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한 생활,
세상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모범된 생활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는 생활은, 편안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고난을 넘어서서 살아가는 삶이 있겠습니다.
15절 1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어떤 연구원이 있습니다.
면밀하게 연구하여, 새로운 과학기기를 완성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예상하였던 이론대로 작동을 하지 않습니다.
과학기기를 일일이 분해 합니다.
그리고 혹시 잘못은 없는지, 부속품 하나하나 점검을 합니다.
몇날 몇일, 밤잠을 설치면서, 계속하여 반복을 합니다.
자 이러한 일이 반복될때, 얼마나 고달픈 생활인지 모릅니다.
편안한 생활은 커녕,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나사 하나가 잘못된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잘 맞추었더니, 과학기기가 너무나 잘 작동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드디어 사회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삶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맞서는 생활의 상징이라 하겠습니다.
고난은 나쁜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있을때, 목표한 것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가까이 하며 살아갑니다.
이사람의 고난은, 목표가 있는 고난이요, 선한것을 이루기 위한 고난이요,
그래서 의미있는 고난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병든우리사회가 회복되고, 진정으로 세계를 향하여, 소망을 던져주는, 민족이 되기 위하여서는,
선한 고난, 의미있는 고난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회복되어야 할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또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하여서는,
거룩한 고난, 복음의 고난을 귀하게 여기는, 신앙이 새로워 저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노회교육대회는 거문도 거문교회에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거문도에 가기 위하여, 여수로 내렸습니다. 여수로 내려가니, 멀리 애양원이 보입니다.
애양원이 어떤 곳입니까?
손양원목사님이 나병걸린 성도들을 위하여 평생 봉사하다, 북한군에게 순교한 곳이 아닙니까?
2시간 배를 타고, 드디어 거문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너무 피곤하여,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돌렸더니,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왜이러나, 보았더니, 수도꼭지 위에 팻말이 있습니다.
“물이 귀한 곳이니 물을 아껴 쓰시오”
뭐 나와야 아껴 쓸텐데, 아예 물이, 나오지가 않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쫄쫄 나오는데, 소금기가 있어서 그런지, 물이 찐득 합니다.
아 정말 물이 귀한 곳이구나... 온 얼굴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거문도에, 마을이 11개가 있는데, 각 마을에 모두 교회가 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모두 우리교단 교회입니다.
그 중에 제일 큰 교회가 거문교회입니다.
옛날에는 300명이나 되었는데, 인구가 줄어들어, 이제는 70명 정도가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선교를 하고, 미자립교회를 돕고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교회에서 성지순례를 보내드려서, 마침 않계시고,
장로님이 대신 나오셔서 맞아 주시는데, 모든 사람들이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이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러게 힘든 여건이지만, 하나님께 영광돌리려고,
최선을 다하여, 신앙생활하는 교회가
이곳에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권사님들이 나오셔서, 안내를 하시고, 대접을 하시는데,
다과가 목에 넘어가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엘리야선지자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다고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하나 도와주는 사람없이, 모두가 다, 우상을 섬기고,
이제는 나 혼자 남아서 죽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아직도 바알과 아세라 앞에 무릎꿇지 아니한 성도 7천명이 있느니라”
나만 고생하고, 나만 고달푼 것이 아닙니다.
이시대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결하게, 거룩한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이시간에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시간 이후로, 거룩한 고난을 가까이 하는, 도전이 있이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고난을 무서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룩한 고난은 나쁜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열달, 산고 없이, 아이를 낳을수 없는 것 처럼..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이,
헌신, 전도, 봉사, 희생이 없는 교회는 세워질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사람은, 고난을 피해가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하여 성공을 얻는 사람이요..
성공을 얻기 위하여,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3.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살아가는 생활
20절 21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도바울은 고난중에 있었지만, 하늘나라를 바라볼줄 알았습니다.
고난중에 있는 사람은, 가까이 있는 고난 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고난을 무서워 하고 싫어 하며, 어떻게나, 이 고난에서만 벗어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고난을 벗어나려고 하다가, 더 큰 고난으로 뛰어드는 우를 범하게 되어 집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달랐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고난을 두려워 하고, 무서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룩한 고난으로 담담하게 맞아 나갔습니다.
더욱이 이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목표를, 분명히 바라보고, 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난중에 얻으려는 것은, ‘하늘시민권’ 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받을, 구원을 제일로 기뻐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시민권’ 주실 때는, 고난 중에 있는 지금과는 비교할수 없게,
우리의 낮은 몸이, 예수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되어 질것을 소망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하’, 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만,
‘바하’는 ‘음악의 아버지’인 동시에, ‘종교개혁음악’, ‘개혁교회음악’의 머릿돌이 되었던 ‘음악가’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바하의 아버지는 ‘거리의 악사’였습니다. 하지만 바하는 음악을 사랑하였습니다.
바하가 10살 때, 아버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결혼하고, 13년 후에, 아내를 잃게 되었습니다.
바하는 눈도 아프게 되었습니다.
또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고난이 연속적으로 ‘바하’에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바하는, 이러한 고난 가운데에도, 계속하여, ‘교회 지휘자’로서 봉사하였고, ‘교회음악가’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바하’는 고난 가운데에도, 교회에, 음악으로 봉사하는 것은, 목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작곡을 한 음악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말을 반듯이 기록하였습니다.
‘바하’는 ‘고난’ 가운데에도, 굴하지 않고, 교회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음악을 놓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는, ‘바하’를, 많고 많은 음악가 중에, 한 음악가가 아니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위대한 음악가’가 되도록 해 주셨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고난을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고난을 통하여 성공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고난을 피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고난을 무서워하며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성공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쓰시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하여, 이방인에 사도가 되어, 복음의 열매를 맺었던 사도바울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들의 고난을 통하여, 가정의 살리고, 자녀들을 살리고,
교회를 세워나가고,
그래서 세상사람들에게, 거룩한 은혜, 예수님의 사랑의 널리 전하는,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