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는 자 빌립보서 3장 4절 12절
2007.09.10 11:48:36 조회5582
빌립보서 3장 4절 12절 달려가는 자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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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혼부부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말합니다. “여보 ‘사랑한다’의 반대말이 뭔지 아세요?”
남편이 한참 생각하다. 대답합니다. “ 미움, 증오, 질투... 이런게 아닐까?”
아내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었다’ 인데 몰랐죠?”
사람은 누구나 현재, 내가 가진것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지 간에, 현재 나에게 그것이 있는가? 살펴보고, 세어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것이 현재 나에게 없을때,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현재 나에게 없으면, 그것이 영원히, 나에게는 없는 것입니까?
현재는 그것이 나에게 없지만, 미래에는 그것이 나에게 있을때에는 어떻습니까?
그것은 영원히 나의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영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현재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살아갔던, 한 사람 바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잘 난 사람이었습니다.
외모가 잘난 것이 아닙니다. 외모로는, 혹자는 바울이 대머리였다고도 말합니다.
또 혹자는 바울이 더듬거리며 말하였다고도 합니다.
심지어는 바울이 간질병을 앓았었다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은 그가 가지지 못한것을 가지기 위하여,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5절 6절에는 바울의 이력에 대하여 간략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잘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율법으로 할례를 받고, 베냐민 지파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 인으로써 살아갔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바리새 파가 되어, 학문적으로는 그 당시 최고랍비로 불리우던, 가말리엘 문하생에 들어갔습니다.
또 세상적으로도 출세하기 위하여 모든 자격을 가추었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 당시, 세상을 호령하던 로마의, 로마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총독이나 왕도, 바울을 함부로 할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 이러한 바울은, 더욱 출세하기 위하여,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는 일에 앞장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젊은 나이에, 유대공회에서 파송장을 받아, 교회를 핍박하는데, 전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자리에 올라서기 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지지 못한것을 가지기 위하여, 피도 눈물도 없이, 노력한 사람이 젊을 때의 ‘바울’이었습니다.
자 이러한 바울이, 원하는 것을 가지려고 길을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없는 것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바울은 젊은 날, 현재 자신이 가지지 못한것을 가지려고, 살았갔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 살아 갔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보다, 더욱더 신뢰할 만한, 자랑거리가 많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육체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신의 건강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몸에 좋은 것이라면, 혐오스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육체를 치장하는 것 까지, 자랑합니다.
금 은 보석, 돈, 그리고 심지어는 자격증, 학벌, 명예, 권력 까지.....
나를 감싸고 치장하는 것으로,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없는 사람은, 없다고 의기소침해 하고, 힘들어 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없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사람은, 없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존재가, 사람입니다.
세상의 돈을, 한 사람이 다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의 금을, 한 사람이 다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의 땅을 한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 가질수 있다는, 거짓된 환상에 속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도 다 가지고, 건강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자녀도 잘 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생각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애쓰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중에 하나만, 없어도, 그것이 없다고, 그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
오늘 우리사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가 없다고 하여서,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바울도, 이런 병에 걸려서, 거짓된 환상을 쫓아서 살아갔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고 갖고 싶었던, 로마 시민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이 제일로 쳐주던, 가말리에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 하는 권력도 얻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 집사님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으면서, 위세를 떨쳤습니다.
자 이렇게 하면서, 가지게 된 것들로, 바울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직도 가지지 못한 것을 쫓아가는, 피곤하고, 힘겹고,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무엇이 나에게 없는지를 셈하며,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으로 살아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를 신뢰하고, 육체의 소유를 위하는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 끝날까지, 아니 세상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0장에는 말씀합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몇일 전, 세계적인 테너 가수인 파바롯티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뉴스가, 세상 사람들을 안타갑게 하였습니다.
지금 인터넷은 파바롯티를 추모하고, 생전의 그의 모습을 나누는 것으로,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파바롯티는 ‘신이 내린 음성’이라는 극찬을 받는 가수였습니다.
그래서 클래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문가나, 초보자나, 너 나 할것 없이,
파바롯티의 음반을 소중하게 구입하여, 듣고 또 듣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전에 파바롯티는, 자신의 음반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음반을 자신이 들을때면......부족한, 자신의 기교와 음색과, 실수가 들리기 때문에, 자신의 음반에는 퀄리티가 없다고 까지 이야기 하였다고 합니다.
모두가 감동받는, 그 노래....그래서 누구나 듣고 싶은 파바롯티의 음반....
하지만 파바롯티 스스로는, 자신의 음반에서, 자신에게 부족하고 없는 것만,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없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오히려 사람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육체를, 자랑거리로 삼는 생활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래서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져야 합니다.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어떤 낚시꾼이 낚시를 하다가, 이상한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잡은 물고기의 비늘이 황금빛으로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물고기는 신기하게도, 사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가쁜 숨을 내쉬며, 낚시꾼에게 말합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소원을 한 가지를 들어 드릴게요.”
그러자 낚시꾼의 머리가 복잡하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되고, 도저히 소원, 한가지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낚시꾼이 황금물고기를 보고 말합니다.
“예야, 너를 살려주는데, 소원 한가지 만이라니....다섯가지 소원을 들어 주면, 너를 살려 주겠다.”
황금 물고기는 가뿐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너무 숨이 차요. 저는 능력이 없어서, 한가지 밖에는 않되요”
낚시꾼이 한참 생각하다 다시 말합니다.
“예야...모든 것은 삼 세판이라고...그럼 내가 크게 양보해서,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면, 너를 살려 주겠다.”
황금 물고기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말합니다.
“너무 숨이 차요. 저는 능력이 없어서, 한가지 밖에는 않되요”
낚시꾼이 화가나서 황금물고기를 보고 소리칩니다.
“좋다. 내가 두가지 소원으로 양보하겠다.”
그리고 황금물고기를 보았더니, 벌써 죽어 있었더라고 합니다.
욕심은 어떻게 보면, 사람에게 있어서는 없어지지 아니하는, 부분이라고 할수 있게습니다.
그렇기에 더 조심하고, 더 다스려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욕심이 주는, 거짓된 환상을, 잘 구분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여,
선악과 한가지만 더 가지면, 하나님 처럼 될수 있겠다는, 사단이 주는, 거짓된 환상에 속아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딱 한가지 금하신, 선악과 마져 따 먹으려 할때,
결국, 아담과 하와는, 부족함이 없던,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기게 되었습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 같다는, 거짓된 환상...
이것 하나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않된다는, 거짓된 환상을, 쫓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은 그것 하나만 바라보도록,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유하지 못한, 하나에 눈이 멀어서,
어리섞게도, 가지고 있는, 다른 좋은 것들을, 모두 잃어 버리도록, 욕심은 사람의 마음과 눈을 멀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로마시민권을 가졌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생이라는 명예를 가졌습니다. 바리새파가 되어 공회의 신임도 얻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의 생각은 한가지로 더욱 고정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사명은 이제 예수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핍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를 진멸하고, 성도들을 옥에 가두는 일에, 바울은 자신의 모든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을 다 무너지니까. 이제는 멀리, 이스라엘 밖에 있는 교회들 까지 핍박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의 신임장을 받아서, 이제는 다메섹으로 달려 갔습니다.
한가지만 하면 되겠다고, 눈이 어두워져,
육체의 소욕을 쫓아, 심지어는, 주님의 교회까지 박해하는.....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서는, 신앙까지도, 하나님의 교회까지도, 대적하게 되는 바울....
그런데, 이렇게 한 참, 다메섹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갑자기, 꽝~~ 하는 큰 소리가 나고, 땅이 요동치는 가운데,
바울은, 말에서 떨어져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빛이 내려 비치며, 큰 음성이 들립니다.
“ 바울아 바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이 깜짝 놀랐습니다. 정신 차릴틈도 없습니다.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만 있습니다.
“ 누구십니까? 언제 제가 핍박하였습니까? ”
“ 나는 네가 핍박한 나사렛 예수니라”
그리고 바울은 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깜깜한 가운데, 오히려 자신의 진실된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욕심으로, 살아온 자신이, 얼마나 우매하고, 어리섞은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치시면, 그렇게 건강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것 같지만,
한순간에, 다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부질없는 존재인데, 불구하고....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습니까?
감히 자기 욕심을 이루려, 하나님을 외면하고,
또 가지면, 자기가 주인인양, 영원히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인양, 착각속에서
욕심으로 살아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기 몸도, 자기가 주장하지 못하고, 이끌려 이끌려,
자기가 박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의 몸숨과 몸을 맡끼고, 다메섹성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아나니야에게 세례를 받고, 다시 눈을 뜨게 되었는데,
그때 다시 뜬, 눈은, 단순한 시력이 아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다시보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래서 바울은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깝지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배설물로, 아까와 하지 않고 버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명예, 시민권, 권력, 바리새파...자신의 모든 것을, 아까와 하지 않고,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참으로 귀한 것, 영원한 것,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나의 것이 되는....., 그 신령스럽고 참된 것을 향하여, 살아가기로
사도바울, 완전히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본 사람입니다.
거짓되고, 허위적인 이 세상에서, 참되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된 것을 본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참되고 진실된 세상을 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을 위하여 달음질 하여야 합니다.
11절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래서 바울은 지금 현재 없다고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지금 없다고, 내것이 아닌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정되어진, 진실되고 영원한, 참된 자랑을, 소유하려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울은 오히려, 진실로,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부활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
세상 우주 만물을 소유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기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지금 내거 얻고, 지금 내가 가지고, 지금 내가 이룬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얻고 내가 가지고 내가 이루게 해 주실 것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중보하심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11장에는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자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고백합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구원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계십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하고 계십니까?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소유자가 되고, 하늘나라의 소유자가 되어,
영원하고, 정말 나의 자랑거리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는 것을 가진, 소유자가 되어,
제일 큰 하늘상급을 가지기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내것이 되다가, 남에게 빼앗기고, 남의 것이 되다가, 내것이 되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영원하고, 참된 것을, 영원히 빼앗을수 없는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현재 않보인다고,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거리로 셈한적은 없으십니까?
사도바울을 신앙을 따라서,
믿음의 바라보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함으로,
정말 귀한, 참된 것을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