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장 9절 18절
2007.07.28 21:23:22 조회5622
열왕기상 19장 9절 18절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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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사가 길을 가다가, 거지를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전을 꺼내어 주면서 말합니다.
“아니, 양팔도 멀쩡한데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겁니까?”
그러자 거지는 정색을 하면서 말하더랍니다.
“그럼, 당신이 주는 동전 때문에, 이 양팔을 잘라 버리란 말이오?”
그 말을 듣고, 신사는 황당해 하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사가, 한 말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사용하여, 좀 더 좋은 삶을 모색해 보라는, 충고의 말일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뜻으로 한 말에 대하여,
거지는 왜곡된 생각과 마음으로, 오히려 비난으로, 댓구 하였습니다.
좋은 뜻으로 하였지만, 오히려 뜻하지 아니한, 비난을 받을때,
누구나 당황스러울 것입니다.
심지어는 좋은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 조차 들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비슷한 일을 당하여, 고민하는 엘리야 선지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입니다.
이세벨이라는 여왕이 시집을 오면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풍요와 다산을 주는 우상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잘되고, 많이 거두게 해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 나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 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참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누구나 흥청망청, 미래의 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지금 현제 즐겁게 살도록 합니다.
자 그런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흥청망청 살게 될 때, 과연, 미래가 풍요롭고, 잘 되어 질수 있겠습니까?
곧, 나라 전체에 어려움이 오게 되었습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가뭄까지 들어서, 나라 전체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세벨 여왕이 무서워, 누구도 바알과 아세라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즐겁게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른 생각, 신중한 생각, 더욱이, 말씀에 입각한, 바른 신앙을 버릴때,
사람은 누구나, 수렁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1. 나의 있는 자리는 어디 입니까?
10절 말씀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자 말씀을 이어 가겠습니다.
이세벨이 무서워, 또한, 이제는 너무 깊이, 바알과 아세라에 빠져서,
알면서도,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하나,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우들을 주위에서 보고, 경험하게 됩니다.
“나도 압니다. 하지만 그만 둘수 없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들을수 있게 됩니다.
도박, 마약, 향정신성 의약품, 기호품....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알면서도, 바알과 아세라 때문에, 생활과 나라가 병들고, 가뭄으로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알과 아세라에 취하여, 또 이세벨이 무서워서, 누구하나, 이제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빠져 나와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독이 무서운 것은, 나중에, 어쩔수 없지 않는가? 하는 무력감을 준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죄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죄가 나쁘고, 잘못된 것은, 알기는 압니다.
하지만 지나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죄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마비되어, 죄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 무서운 죄의 고리를 끊어준 사람이,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용감히 혼자 나서서, 이세벨을 향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 850명과 갈멜산에서, 목숨을 건 대결을 벌입니다.
누가 살아있는 참신인지...
바알과 아세라가 살아있다면,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이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질 것이요.
하나님께서 참신이라면, 내가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엘리야선지자를 보면서, 한편으로, 맞는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저러다 화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까....조바심을 내면서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이 아무리 기도하여도, 꿈쩍않던 하늘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할 때, 불이 떨어집니다.
엘리야선지자는, 백성들을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모두 죽이고, 우상을 몰라 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가뭄이 끝나고, 큰 단비가 내립니다.
자 엘리야는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아까워 하지않고, 희생하여, 우상이 버리고, 바른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그래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열주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맙습니다.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렇게 엘리야 선지자가 살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희생하여, 잘못된 모습을 끊고, 희망과 소망의 삶, 섬김과 희생의 삶,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 선지자 앞에 나와, “이제부터는 바른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벨여왕의 명령에 따라, 엘리야 선지자를 잡으려, 몰려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좋은 일을 하였으면, 칭찬하고, 존경하고, 고마워 해야 될터인데...
오히려, 아직도, 죄악된 명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노릇하여,
엘리야 선지자를 잡아서 죽이겠다고 다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 선지자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오늘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오히려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고, 더욱이 죄의 종노릇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려고,
그렇게 희생하고, 그렇게 봉사하고, 심지어는 목숨마저 아까와 하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를 손에서 구하여 주었더니,
고마워 하기는 커녕, 이제는 나를 잡아 죽이겠다고 하니......
하나님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믿음 생활 잘 하려고 할때, 그리스도인들은 꼭 이런 자리에 서게, 되어 집니다.
봉사를 잘 하였습니다. 하지만 칭찬은 커녕, 왜 이렇게 하였느냐고, 핀찬을 들을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양보하고 희생하였는데, 그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것이 경우가 아니라고, 책망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예수믿는 사람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덮어 씌우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아직도, 예수믿는 사람을 제일 큰 적으로 여기고,
현재도 박해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11절,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시골의 고구마와 감자가, 서울구경을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참 서울 구경을 하다가, 공원을 지나는데, 뽀얗고 하얀, 찹살떡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감자가 떨리는 음성을 말합니다. \"고구마야, 저 찹살떡, 진짜 예쁘지 않니?\"
고구마는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뭐가 예쁘냐고~~~”
감자가 다시 말합니다. \"저 찰살떡, 하얀 얼굴 좀 봐, 서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예쁜가 ? \"
이 말을 우연히 들은, 찹살떡이 부끄러워서, 획~ 돌아앉는데, 그만 찹쌀떡에 발라놓았던,
하얀 밀가루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러자 고구마가 그것 보라는 듯이 말했다고 합니다.
\"것봐, 화장발이잖아!, 서울 사람 예쁜것, 다 화장발야....\"
서울 찹살떡 예쁜것은 화장발인지 몰라도,
우리 김포상도교회, 맛있는 점심식사는, 겉과 속이 똑같은, 무공해, 유기농 점심식사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억울하고 서글픈 엘리야선 지자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의 마음을 아시고, 엘리야 선지자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 서라”
엘리야 선지자는 아마도 눈물을 훔치면서, 하나님 앞에 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엘리야 선지자 앞에는, 엄청난 힘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큰 바람이 나타나는데, 그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어 버립니다.
두 번째로, 지진이 나타나는데, 온땅과 산이 흔들리고 갈라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이 나타나는데, 얼마나 강한지, 온 세상을 태워 버립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라면, 그때 외쳤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
바로 내가 원하던 그 힘들, 입니다.
산과 바위를 부수어 버리는 큰 바람과 같은 힘...
온땅과 산을 흔들어 버리는 , 큰 지진과 같은 힘...
온 세상을 태워 버리릴, 큰 불과 같은 힘을 주셔서,
저렇게 완악하고, 삐뚤어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무서운 줄, 똑똑히 보여주겠습니다.
그 능력의 모습을 볼때에, 얼마나 멋있습니다.
바람, 지진, 불..
이렇게 멋진 능력을 보이면서 나타나면, 사람들이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신중하게, 그 힘들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크 큰 힘들이 지나가고, 마지막에는 세미안 음성이 지나가는데, 그 힘없고, 조용한....
그래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귀를 귀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그 세미한 소리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사람들을 이길, 더큰 힘, 더 큰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미한 음성, 바빠서 지나치면, 발견될 수도 없는, 조용하고, 낮은, 세미한 음성이 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세미한 음성이 조용조용,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렇게 기세 등등한, 이세벨여왕과 그 무리들을 이기는 방법은,
더 큰 힘과 더 큰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세미한 말씀을 듣고,
그 세미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때,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조용히 말씀보시기 바랍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참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미한 음성으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세미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가서, 두명의 왕을 세우고, 엘리사를 제자로 맞아 들입니다.
이후에 일어난 역사는, 하나님 말씀 그대로 였습니다.
그렇게 악의 세력이 등등한, 이세벨여왕...하지만, 엘리야가 세운, 예후 앞에서, 비참하게,
이세벨을 떠받들던, 신하들, 내시의 손에 떠밀려, 떨어져 죽고, 무덤도 없이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남김없이, 예후의 명령으로 죽게 됩니다.
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은, 상을 준다는 말로 불러 모아, 남김없이 죽게 되었고,
심지어는, 바알과 아세라의 제당은, 헐려, 거름더기로, 만들어 지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아프리카의 최남단에는, 남아공-남아프리카 공화국- 이란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소수 백인들이 정권을 잡고, 70%가 넘는 흑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흑인민권운동가 ‘만델라’는, 바른 사회를 만들자고 하다가, 백인 정부에 의하여, 잡혀서,
26년이간이나,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젊을때, 잡혀 들어가, 백발이 히끗히끗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만델라는 원망하거나, 낙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중노동도, 자연을 볼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즐겁게 일했다고 합니다.
그럴때, 그의 생활이 세상에 알려져, 감옥속에 있는 만델라가, 오히려 감옥밖에 있는 흑인들에게 힘을 주게 되었습니다.
히끗히끗 노인이 된, 만델라가 감옥을 나오자,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맞이 합니다.
만델라의 소망은 헛되지 않아, 남아공 대통령이 되어, 남아공의 역사를 세롭게 세우게 되었습니다.
혼자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닙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나를 지켜보고, 나의 섬김과 봉사와 바른 신앙을, 사실은 다 지켜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선지자는 이제 나만 남았다고, 서러워하며, 하소연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바알과 아세라 앞에, 무릎꿇지 아니한 사람들을, 칠천명이나, 남겨 두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의 예배생활, 봉사생활, 전도생활, 제일 열심인것 같지만,
아닙니다. 우리교회 못지 않게, 어떤 면에서는 우리교회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바로서려고, 몸부림 치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 거울의 내모습도 웃습니다.
그러나 내가 찡그리면, 거울의 내모습도 찡그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 하려고 보면, 열심히 믿음생활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띱니다.
저 앞서 서도, 하늘상급을 기뻐하며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전하고도, 믿음에, 뒤처질까하여, 자만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에, 앞서 가는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세미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믿음에 앞서 가는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홀로 낙심하던, 엘리야 선지자에게, 찾아오셔서,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말씀하시던,
그 음성을 듣고,
또 한번 새 힘을 얻고 일어서서,
복음의 달음박질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