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이루는 삶 로마서 5장 1절 8절
2007.04.22 00:19:37 조회6119
로마서 5장 1절 8절 소망을 이루는 삶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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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달은 ‘부활의 달’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지난주간, 세상은, 오히려 죽음의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택-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수업을 받던 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아서 숨지게 되었습니다.
32명이나 되는 학생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범인은, 조승희라는 학생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병든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건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조승희라는 학생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 대다수 사람들이 되고자 하는 것을 이루어 가는 학생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안정적으로 미국에 정착하였습니다.
자녀들을 미국 명문대학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되지 못하여서, 지금도 아이들 교육을 위하여, 기러기 아빠다, 팽귄아빠다 하면서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무작정 미국에 가서, 영주권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렇게 세상적으로는 이루어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조승희 학생은 사실 온통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지 못하고, 비관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저주하고, 분노하였습니다.
그래서 권총을 사서, 교실을 돌면서 32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쏘아 죽이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조승희 학생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었고, 세상에 대한 사명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것을 가지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길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지면,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길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사회는 허망한 욕심을 쫓아서, 또 다른 모습의 조승희 학생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않으면,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1절 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아담은 욕심을 쫓을때,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자기 맘대로 할수 있을것 같았는데, 아담이 하나님과 멀어져서 자기 맘대로 해보니, 그가 맘대로 하는 것이라고는 죄밖에 없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존귀하게, 의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자기 맘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 세상이 미혹하는데로, 온갖 죄를 짓으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죄를 짓는 것이 자유입니까?
욕심으로 살아갈때에 거기에 기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없을때에는, 미국 명문대학교에 다녀도, 자신은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욕심만 쫓아서 살아갈 때, 나보다 잘난, 미국사람은 다 죽여 버리고 싶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욕심은 끝은 죄요, 죄의 열매는 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 사람의 평안과 기쁨과 은혜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저주하며, 죄속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길가는 차를 볼때마다, 저주의 욕설을 퍼붓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마다, 화를 내었습니다.
어느날, 이래서는 않되겠다 생각을 하고, 삶이란 무엇인가? 깨치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가기로 작정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에 가서 1년... 2년... 3년...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도무지 삶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치져, 산에서 내려와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물건파는 아저씨가 지나가며 말합니다.
삶은 계란이요...왔어요.. 소금도 드려요...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요...
이사람이 졸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삶은 계란이라니....어떻게 삶이 계란이란 말인가?
혼자 중얼거리며,
기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데, 골목길에서 아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얼른 인사를 하며, 말합니다.
“아저씨 계란드세요...부활절 계란이에요”
순간, 이 사람 무릎을 치며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구나...나 같은 삶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구나...”
세상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화평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금, 은, 부귀 영화, 권력, 아무리 바라 보아도, 화평이 없습니다.
없는 사람은 없다고, 불평과 불만만 마음속에 가득차게 됩니다.
있는 사람은 만족합니까? 아닙니다. 언제 잃을까 하여, 불안과 의심만 가득차게 됩니다.
세상은 참 평화를 줄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화평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화평은 하나님 만이 주실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화평을 가리켜 특별히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만이 주실수 있는, 진정한 은혜의 자리 ‘샬롬’...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은 만날 때 마다 인사하였다고 합니다. “ 샬롬 ” “샬롬”
그리고 헤어질 때에도 ‘샬롬’ ‘샬롬’ 하며 헤어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사람들은 그 말씀속에서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만 참 평화를 주신다....
하나님만을 바라라......
오늘 우리사회도, 욕심과 허영이 아니라, 하나님 만을 바라 보려는, 믿음의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망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3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보면, 오히려, 유학도 가고, 미국에 명문대학에도 들어가서, 환경과 조건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볼 때에는, 나에게 남은 것은 절망밖에 뿐이라고 한탄하며, 멸망에 길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 입니까?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없는 사람은, 소망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소망 가운데 살아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 이십니다.
윌리엄 아더 워드 라고 하는 저자는 “보람있는 인생의 일곱 가지 길” 글을 통하여, 현대인들에게 보람있게 사는 인생의 지혜에 대하여 조언을 하고 있는 데, 그 가운데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점이나, 불리한 점을 부풀려 생각하지 마라.-- 가장 위대한 설계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음을 생각하라.’
즉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께서 나의 결점을 모르실리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점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면, 쓸모 있어서 주셨을텐데, 그렇다면, 나의 짧은 생각으로 결점에 집착하여, 오히려 선용될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통찰력이 있는 글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이보다 더 분명하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은, 나에게, 나의 인생에, 가득부어 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증거는 십자가에 예수님입니다.
아직 연약하고 경건하지 못한 나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는데....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얼마나 귀한 인생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생명만큼 귀한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인생이라면....
나는 잘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존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그만 환란이 과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나를 넘어뜨릴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래서 환난중도 기뻐할수 있습니다.
오히려 인내를, 또 연단을...그래서 소망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있는 사람은, 소망을 삶을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신바람 박사님이신 황수관 장로님은 간증합니다.
예수님을 모를 때에는, 화나는 얼굴, 괴로운 얼굴이었는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다음부터는, 신바람 나는 생활이 되고 말았습니다.
월요일은==월래웃는 날이입니다
화요일은==화사하게 웃는 날입니다
수요일은==수수하게 웃고 수요예배드리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목요일은==목이 터지도록 웃으면서 찬양을 드리는 날입니다
금요일은===금방 웃고 또 웃는 날입니다
토요일은===토실토실하게 웃으면서 주일날 받을 은혜를 생각합니다
주일은=== 주의 일을 하면서 웃는 날입니다
그래서 저의 한주간은 웃으면서 사는 신바람 한주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하나님 밖에서 소망을 찾으려고 하기에, 욕심과 이기적인 주장과, 끝없는 성토만 이어질 뿐입니다.
그래서 조승희 학생은 자신이 범죄가 남의 탓이라고 하면서 세명을 지명하였습니다.
빈라덴, 부시,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 이 세사람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입니까?
정도만 다를뿐, 우리사회에서도, 이런식의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듣게 됩니까?
시련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할 때, 소망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조그만 시련에 오히려 절망하며, 저주하며, 넘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4절 말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때, 소망 가운데 이루는 삶을 살게 되어 집니다.
3. 예수님만이 산 소망입니다.
7절,8절 말씀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시련 속에는, 반드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인생의 성패가 갈리는 것입니다.
미국에 백만장자 중에 하이디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잘 나갈 때,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업에 실패하고, 10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되면서,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이디는 10만달러의 빚에 대한 십일조를 드립니다.
직원들이 맹렬한 공격을 퍼붓습니다. “우선 빚부터 갚는 것이 원칙이다. 당신의 태도는 위선적이다. 기업윤리에 맞는 행동을 하라”
그때 하이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도적질한 것을 상환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업이 잘 될 때, 하나님의 십일조를 무수히 훔쳤고, 예수님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낮은 자리에 서고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보이고,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래서 훔친 것을 되돌리는 것이, 부채를 상환하는 것보다 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그때부터, 하이디의 인생의 자세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업에 조금 성공하게 되어, 돈이 생겼다고, 흥청망청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헌금과 구제생활을 실천하며, 사회의 환원하는 새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믿을만한 기업,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 크게 성공하는, 모범적이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산 소망이십니다.
어떠한 자리에서 있더라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은 소망이 있게 됩니다.
아직 죄인되었을때에도,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그 거룩한 사랑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쫓아가는 사회는 소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상의 있는 어떤 것으로도, 화평을 이룰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때,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을 사랑안에 거할 때,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은 산 소망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산 소망있는 우리사회,
참 평화, 기쁨과, 희망이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