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질문한다면. 사도행전 4장 1절 10절
2007.06.09 19:25:36 조회5555
사도행전 4장 1절 10절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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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택시가, 주택가를 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골목길에서 갑자기 할아버지 한분이 나오셨습니다.
너무나 갑자기 나와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어차 어차 하는데, 택시가 급정거를 겨우하여, 사고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택시 문이 열리면서, 택시기사가, 화가나서 나옵니다.
\"할아버지, 누구 신세망칠 일 있어요?, 저는 5년 무사고 운전사란 말입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할아버지도 질세라 소리첬다고 합니다.
\"5년 무사고 운전 ....이 사람아! 나는 70년 무사고 보행자야?\"
사실 골목길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사고가 나면, 자기가 잘못했는줄 알고, 걱정하다가 손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기의 권리는 찾아서, 행사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 오늘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으로써의 권세를 찾아서, 바르게 행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믿음의 사람에게는 엄청난 권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손해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사도들이 성령충만하게 될 때, 믿음의 권세를 사용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사람은 권세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1절 2절 말씀입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1절 말씀에는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복의 내용은, 2절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 죽은자의 부활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때에, 하늘소망이 있고, 죽음에서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사도들은 전하였습니다.
자 이렇게 담대하게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참 재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절 하반절에는 그반응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성전 맡은자와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싫어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사도들이 예수님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죄인은 좋아하고, 갖은 열락과 온갖 죄 짓는 것을 즐거워 하면서
예수님은 싫어합니다.
더 나가서, 세상사람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까지도 싫어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갖은 이유를 갖다 대면서, 어쨌던, 예수님을 전하는 것까지도 싫어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면, 괜히 싫어합니다.
길가에서 찬송가라도 부르면서 가면, 괜히 심술을 부립니다.
지하철에서 성경책을 펼쳐서 읽으면, 괜히 심통을 부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는 복음전하는 것에 대하여, 훼방하는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누가 하라고 했느냐..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은....이러한 세상의 억지스러운 이야기에,
믿음의 사람들이, 주눅이 들어,
스스로 권세를 잊어버리고, 잠잠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 하겠습니다.
사도들은, 세상사람들 앞에서 담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에 권세가 있음을 알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더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세상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의 권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 1:12에는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행 4:12에는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을 전할 때,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제일 권세 있을 때에는, 예수님 전할 때입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분명하게 예수님의 사람으로, 티를 내며 살아갈 때, 높혀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친한 어떤 사람이, 저를 보고...
아니, 이씨....이씨가 목사님었어요... 아~ 이것 참...오늘 처음 알았네...
이러면, 얼마나 제가 부끄럽겠습니까?
10년, 20년 믿었는데도....
아니 집사님이었어요... 교회 집사님이 뭐 그래어.... 라고 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예수믿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모습은,
세상에, 주눅들어, 믿지 않는 자처럼, 흉내내고 살아갈 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예수믿는 사람 티를 팍~팍~ 내어야 합니다.
자가용 탈때, 일부러 찬송가 크게 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식사할 때, 일부러 식사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사람들을 이길 방법은, 믿음의 권세 외에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입이 더럽게 욕함으로, 세상사람을 이겼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주먹다짐으로, 세상사람을 이겼다고 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말씀전함으로 세상사람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찬송함으로 세상사람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권세로 살아갈 때,
세상과 싸울수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나타나야 합니다.
8절에서 10절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관원들고, 장로들과 백성들이, 베드로를 향하여, 묻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느냐...
그럴때, 베드로는 담대히 전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이 일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그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외칠때에, 마귀는 두려워 떨며 떠나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라는 멜테리라고 하는 분의 책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원주민 마을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원주민 추장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한태는 수십명이 넘는 신이 있소... 우리 신보다 약하면 썩 물러가시오...
아닌게 아니라, 그 마을에는 곳곳에 무시무시한 가면들이 걸려져 있습니다.
혀가 쑥~~ 나온 가면, 얼굴이 무시무시 한 가면...
이뿐색기 가면, 그리고 험상궂은 동물 가면.....
선교사 일행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두 손을 들고 외첬다고 합니다.
이마을을 덮고 있는, 악한 사단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당장 물러갈 지어다...
혀가 쑥~ 나온 사단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거라...
험상궂은 사단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이쁜색시 처럼, 유혹하는 사단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런데 조금 후에 웅성웅성, 난리가 났습니다.
마을 뒤편에, 무시무시한 집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더니만, 추장에게 뭐라고 말을 합니다. 추장이 당황해 하며,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그 사람은 그 마을에 영험한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무당이 보았더니, 기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외칠때...
마을에 있던, 귀신들이, 몸을 뒤틀며 괴로워 하더니,
예수님께서 오신다. 예수님께서 오신다, 그러면서, 두려워 하며, 물러가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은 성경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 생활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나타날 때, 병마는 물러가게 될줄로 믿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홀란하게 유혹하는, 악한사단은 물러가게 될줄로 믿습니다.
10절 하반절에는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생활속에서 나타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건강하게 변합니다.
생활이 건전해 집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이런 복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충만할 때, 담대하게 됩니다.
8절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어부이다 보니, 베드로는 아무래도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몸에 배였을 것입니다.
관원과, 장로들과 백성들 앞에서기만 하여도,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자 이런데에서, 어설프게, 아는척 하였다가, 잘못 보이면, 봉변정도가 아닙니다.
곧, 관원들과 사두게인들과 서기관들이,
코웃음을 치면서, 베드로를, 체포하여, 감옥에 들어갈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예수님 믿는 척,
티를 내기 조차, 무서운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히려 담대하였습니다.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관원들과, 사두게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합니다.
4장19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5장 29절에는 말씀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리고 지금 말씀에는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매어달아, 죽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대답할때, 관원들이 꼼짝하지 못합니다.
사두게인들도, 꿀먹은 벙어리입니다.
서기관들이 누구입니까? 요즈음으로 보면, 검사, 변호사들입니다.
하지만 서기관들도 할 말을 모르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볼,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세상에서 권세있던 이 사람들에, 오히려, 베드로 앞에서,
쩔쩔매게 되었습니까?
8절은 그 해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충만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120명과 함께 모여서, 열심히 합심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럴때,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충만하게 됩니다.
말씀 볼때 성령충만하게 됩니다.
찬송 할때 성령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할 때,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의 권세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말씀을 맺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오늘날도 세상사람들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왜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무엇이,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는지....
그럴때, 대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까지 나는 살아왔노라..
오늘도 나는 찬송하노라...
생명책에 내이름이 기록 되었노라....
이렇게 예수이름으로만, 살아가는,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