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란트 마태복음 25장 15절 23절
2007.06.17 06:54:11 조회5304
마태복음 25장 15절 23절 두달란트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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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말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기분 나쁘게 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 꼭 백살까지 사셔야 되요..
하지만 연세가 아흔아홉인 할머니는, 들을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참석해 주셔서 자리가 빛났습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없는 분들은, 듣기가 좀 거북할 것입니다.
\"당신의 화끈함이 맘에 듭니다!\"
하지만, 화상으로 입원한 환자라면, 기분이 많이 나쁠것입니다.
사람이라면, 겉으로는 말하기 힘든 속사정을, 누구나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자신의 체면과도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너무나 절박한 사항일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겉으로는 드러내기 어려운 속사정을,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런 속사정을, 어떻게 대면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삶을 틀려진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있게, 인생을 원만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거치는 것이 되어, 아주 괴로워 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달란트를 받은 청지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에 보면, 각각 재능대로, 금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청지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특별히 두달란트 받은 청지기의 행적을 쫓아,
속사정을 지혜있게 해결해 나가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의 삶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속사정에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가 되기 위하여서는,
1. 자족할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6절에는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빌립보서 4장 11절에는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말못할 속사정에 승리하기 위하여서,
믿음에 사람들에게는, 자족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런 의미에서, 자족함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달란트는 순금 20kg 으로 이루어진 돈의 단위입니다.
장정 20년 임금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즈음으로 따진다면, 한 5억에서 10억 사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큰 가치의 달란트를, 똑같이 다섯달란트 씩 주시면 좋겠는데, 말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각각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를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두달란트 받은 사람을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두달란트........... 물론 한달란트 보다는 많습니다.
그러나 다섯달란트에 비한다면, 너무나 적은 달란트 입니다.
떼어놓고 볼때에 두달란트는 분명히 큰돈입니다.
하지만 이 두달란트를 받은사람은, 그렇게 기쁘지 만은 않았던것 같습니다.
겉으로 이야기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섭섭하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섯달란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능이 없다고 하지만, 다섯달란트 사람에 비하여, 내가 그 반도 않된다는 것인가?
한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러한 마음이 분명하였던것 같습니다.
이 한달란트 받아서 뭐 하나 하고, 18절 말씀에 보면, 그 돈을 땅에 파 묻어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자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달란트 보다는 많습니다.
하지만 다섯달란트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달란트에 받은 사람을 보아서는, 어디가서, 불평하기가 뭐하지만,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에 비하면, 너무너무 속상한 것이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어디가서 말할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편하게 일할 있는 조건도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두달란트 받은 청지기의 속사정이라 하겠습니다.
두달란트 받은 청지기의 자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자리라 하겠습니다.
제일 힘들고, 제일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루하루, 은혜를 찾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섯달란트 처럼, 넘치고, 풍족하고, 남아도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말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들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위치라 하겠습니다.
자 이러한 위치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한달란트 받은 사람은 분명히 하였습니다.
갖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한달란트를 땅에 파뭍어 버렸습니다.
감정대로 하여서, 마음은 후련하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땅에 파뭍어 버리는 것이, 좋은 지혜가 되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달란트는 책망받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와서 셈할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속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주인이 와서 셈할 때,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과 똑 같이, 칭찬을 받았고, 인정받고,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사실을 볼때에,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게 보면, 가장 효율적으로, 멋있게 산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받기는 두달란트지만, 칭찬은 다섯달란트로 받았습니다.
일을 한 것은, 두달란트 더 남기는 것이었지만, 대접은 다섯달란트 남긴 사람과 똑 같이 받았습니다.
그런의미에서 믿음의 사람은, 두달란트 받은 청지기의 지혜를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달란트 주신, 주인의 결정을 순종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맞게 주신것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재능과 형편과 삶을 용납할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믿음을 용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는 동기목사님 중에 한분은, 젊을때에, 40일 금식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 하며서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분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까지 기도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39일을 하고 짐을 싸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다고 합니다.
“아니 성도님, 그렇게 고생하였는데, 이제 하루만 하면 40일이 되느데, 왜 그만두세요”
그러자 그 성도가 대답하더랍니다.
“예수님이 40일 기도하셨는데, 저같이 부족한 자가, 어떻게 40일을 체울수 있겠습니까?
저는 예수님 보다 하루적은, 39일로도 족합니다.“
그런면서 충고하더랍니다.
“절대로 40일을 넘기지 마십시오.. 40일 하니까 할만하다고 하루, 이틀, 더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다가 죽어나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의 모습을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왜 나를 미국에서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내가 부자게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나를 절대미인이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에는 아직도 이렇게 한달란트 가진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굴은 잠언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두달란트 받은자 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두달란트를 귀하고 소중하게 받는 믿음의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칭찬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얼마전 인터넷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본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는 “수다스러운 여성이 성공한다”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기자생활만 10년 15년한, 베테랑 여기자들이, 성공한 여성들을 인터뷰하였는데, 성공한 여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수다스러웠다고 합니다.
자기 분야에 대하여, 할말이 많습니다.
자기 고객에 대하여, 친절하게 말을 많이 해 줍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하여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적극적인 사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이 성공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여집사님 권사님들은, 모두 수다스러워, 다 성공하시기를 축원드립닌다.
두달란트 받은 사람이 바로 그러하였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좋은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한달란트를 보는 것으로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다섯달란트를 보면서, 의기소침해 하지 않았습니다.
달란트를 내가 적게 받았더라도, 칭찬은, 똑같이 받으리라...
그리고 주눅들지 않게 도전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말못한 속사정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주인에게서 받을 칭찬을 사모하고, 적극적이고, 좋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우기 두달란트 받은 사람이 이룬 결과를 살펴볼때, 더욱 신앙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주인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달란트를 남겨 총, 열달란트를 거두었다면,
나는 두달란트니까? 다섯배나 더 열심히 해서, 나도 총 열달란트를 남겨야 되겠다~~가 아닙니다.
다섯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달란트를 더 남기는 것을 보고 있지만,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옆에, 뒤에, 돌아보지 않고,
두달란트에 두달란트 더 남기는 것으로, 목표를 정할줄 알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강소국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네델란드, 필란드, 이런 나라들은 작은 나라들입니다.
한 나라의 전체 인구가 500만명........우리나라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필란드에는 노키아 라는 세계적인 핸드폰 회사가 있어서, 전세계를 제패하고 있습니다.
네델란드는 금융 물류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이, 개인소득으로는, 오히려, 미국, 러시아를 훨씬 앞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적지만 강한나라, 그래서, ‘강소국’ 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또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강소국’에서 배우자 라는,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강소국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다섯달란트 처럼 되어야 하고, 그래서 나도 다섯 달란트를 남겨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맞게, 자신만의 목표를 향하여, 지혜있게 도전할줄 알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생활 할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사정이 없을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욕심으로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나는 찬송으로 더욱 하나님께 영광돌릴리라....찬송만은 나의 것...
또 어떤분은 나는 봉사로 하나님께 영광도릴리라.... 봉사만은 나의 것...
또 어떤 분은, 기도로, 교회학교 교사로, 성가대로...
맡겨주신 자리에서, 갑절로 남길때,
하늘나라에서 받게되는 상급과 같은 칭찬은 똑 같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의 즐거움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래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세상의 열락과, 세상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이 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취미생활을 하고, 자신만이 즐거워 하는 것을 할때,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 사모해야 할 즐거움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즐거움 이라 하겠습니다.
또 믿음의 사람은, 믿음생활을 통하여 즐거움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가고,
오늘에 살고
내일이 다시 온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어제는 추억이 있어 좋고
내일은 희망이 있어 좋고
오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젊은 사람이 쓴 글이 아닙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생활속에서, 즐거움을 비로소 발견하고,
그래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너무 즐겁다고,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한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한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버리고,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았고, 자신이만의 즐거움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즐거움과 만족이 아니라, 내어 쫒기는 슬픔이요 후회뿐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달란트 받은 사람이 하는 행동을, 옆에서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땅에 파뭍고 맘대로 살아가면서,
아마, 너도 두달란트 가지고 뭘하려느냐, 땅에 파뭍고, 나와 같이, 맘대로 살아보자~~는 말을, 들었을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섯달란트라면, 많아서 책임감이라도 있기에, 선뜻 하기 동의하기 어렵지만,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귀가 솔깃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주인에게서 받은 칭찬과 기쁨에서 즐거움을 찾고, 신실한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달란트에서 두달란트 남기는 것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았던 것입니다.
무엇에서 즐거움을 찾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활은 그곳을 향하여 이끌려 갑니다.
그래서 현대의 ‘성장상담’에서는 ‘즐거움’, ‘창조적인 놀이’가 매우 중요한 차원에서 연구되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과 교제함으로, 즐거움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라면은 라면인데 매운 맛이 아니라, 달콤하고, 즐거운 라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 라면의 이름은 “그대와 함께라면” 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에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아갈 때, 참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성도들이 서로 만나고 나눌때, 참 기쁨이 있습니다.
그럴때 마음속에 속사정은 달아나게 됩니다.
생활속에 속사정은 넘어서, 더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갈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자족하는 믿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실 상급과 칭찬을 귀한 것으로, 사모하는... 긍정적인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만 참 즐거움이 있음을 고백하고,
적극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 지금, 말못할 속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기쁨으로, 규모있게 감당해 내는, 믿음의 지혜로 이겨낼수 있습니다.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말씀에 주인공이 되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