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 24절 성령님과 동행하자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오늘은 성경강림주일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성령님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이라 하면, 레위기 23장, 출애굽기 34장, 신명기 16장에 의하면, 무교절 지난 후 50일 만에 맞이하는 절기가 되겠습니다.
즉 유월절을 지키고 난 다음, 날이 점점 더워 집니다. 밭에 뿌린 보리가 점점 익어 갑니다. 그래서 오순절 쯤이 되어지면, 보리의 추수때가 가까워 지는 것입니다
그해의 처음 익은 양식, 보리를 추수하는 계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순절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빨리 보리를 추수해서, 떨어저가는 양식을 보충하여,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야지...
그런데 제자들은 오순절에 그해의 첫 양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1. 성령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7절에는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성령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를 해 주십니다.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런데 그분이 이름을 ‘보혜사’ 라고 말씀 하십니다.
‘보혜사’란 한문입니다. 지킬보..은혜 혜..스승사.. 즉 은혜롭게 지켜주시는 분..사랑으로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영어성경은 ‘컴퍼터’ 위안을 주는 분..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헬라성경으로는 파라클레토스.. 위로하고 격려하고 불러주시는 분 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성경에는 많은 이름과 설명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5장에는 여호화의 신,
요한복음 14장에는 진리의 영
로마서 8장에는 그리스도의 영
고린도전서 2장에는 하나님의 영,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성령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설명할 때,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파라클레토스...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주고, 불러주시고, 도와주시기 위하여, 성령님이 제자들을 차아갈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찾아오십니다.
이자리에 계신 김포상도교회 성도들 한분 한분에게, 성령님은 찾아 오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성령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자들에게 찾아오셨는가?
사도행전 2장에 그 장면이 잘 설명되어 져 있습니다.
오순절이 이를때에, 세상사람들은 빨리 보리를 추수해서, 배부르게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순절을 기다렸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빨리 오셨으면 좋겠는데...그리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이기를 힘썻습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럴 때,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하늘로부터 마가의 다락방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불꽃 같은 모습으로, 제자들 사람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실 때, 제자들은 마음이 뜨겁게 되었습니다.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제자들을 잡아 가두고, 협박을 하고, 전도하지 못하도록 금하여도,
성령충만하게 되기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기도하니까..응답을 받습니다.
아픈사람을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까..낫습니다.
사도바울이 기도하니까..옥문이 열립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니까...죽었던 아이가 살아납니다.
성령님께서는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권능을 주시고, 위로와 기쁨을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하고,
고린도전서 12:3, 말씀 합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도 착하고 행동하는 것도 얼마나 착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딱 한가지는 도무지 이해가 않된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을 잘 하여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양심도 있고, 지성도 있고, 교육도 잘 받았는데, 제일 중요한 한가지가 없습니다.
그 심령 가운데 성령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다른 모든 것은, 다 이해가 되고 받아들이는데,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9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래서, 아무리 훌륭하고 지성적으로 온전한 사람이라도, 그 속에 성령님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구원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2.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19절 말씀보니까..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령님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나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의 믿음생활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활기차고 활력있게,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해 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성령 충만에 물을 끼얹어, 불을 꺼뜨리고,
성령님의 역사에 귀를 닫고 마음을 닫아버리고,
심지어는 성령님이 나가버리도록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24절 25절 26절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면서, 그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 이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성령님을 모셔 드려야지요.
이제 깨끗하고 새 사람이 되었으니, 성령님 찾아오셔서,
예수님을 잘 믿게 해주시고,
예수님 말씀대로 믿음생활 하게 해주시고,
그래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문제가 해결 되었으니 끝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가 해결 되엇으니 예수님을 볼일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과의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아프리카에 동물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린 코끼리가..어린 들소가...아니 다큰 코끼리, 다 큰 들소 라도, 절대로 혼자서 다니지 않습니다.
엄마 코끼리 옆에 붙어 있습니다. 아빠 들소 옆에 붙어 있습니다.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무리와의 관계성이 끊어져서, 떨어지면, 엄마 코끼리 한테서 떨어지고, 아빠 들소에게서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하이에나들이 딱, 거리를 두고, 쫓아 옵니다.
그러다가 혼자가 되는 순간...떼로 덤벼들어, 물고, 뜯고, 죽여 버립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초원에서, 관계성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어 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시면, 이젠 예수님과 관계성을 튼튼히 해야 하는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예수님은 전혀 모른척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 때문에 쫓겨갔던 귀신이 돌아다니다, 돌아다니다, 언뜻 그 사람을 봅니다.
보니까..집이 청소되고 깨끗해져입니다. 그속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령님도 없습니다.
잘 되었다. 성령님도 없고, 예수님과 관계도 없고...
지난 번엔 혼자 있다가 쫓겨났으니, 이젠 더악한 귀신, 일곱을 같이 데리고 들어가서,
단단히 버티면서, 괴롭힐수 잇을 만큼, 끝까지 괴롭혀 봐야 되겠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다행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 성령충만의 계기로 삼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성숙해 져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성령님을 소멸하지 말자.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삶을 살자.
(각 두 번씩)
내가 믿음생활 안하고, 아무리 죄를 지어도, 성령님은 무조건 내속에 계시고,
나는, 믿음이 없어도, 나를 무조건 구원해 주신다.
그런 생각은 만용이요, 너무 나간 생각이 아닐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이방인은 아무리 예배를 잘드리고 말씀대로 생활하여도 구원받기가 힘들도,
유대인은 아무리 잘못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무조건 구원 받는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니까...나는 무슨 죄를 지어도, 무조건 천국가고, 구원을 받습니까?
에스겔서 10장 18절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인지 보느냐?”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중에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나오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않드립니다.
그나마, 성전에 나온 사람들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우상에 가입니다.
심지어는, 성전에 나와서 우상이 있는 쪽을 향하여 앉아서,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슴아파 하시는, 잘못된 예배를 드리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갑자기 에스겔 선지자가 보니까..
성전에 계시던 하나님의 영광이...성전에서 떠 오릅니다. 성전 문지방으로 나와 버립니다.
“어....어.....하나님의 영이 성전에서 나오시면 않되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서 움직이 시더니, 동쪽문으로 나와 하늘로 올라 거립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에 계시던 하나님의 영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예배생활을 하자..
참다가 참다가..괴로워 하시다, 괴로워 하시다...더 이상 계시지 못하고, 성전에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가 버리셨습니다.
성령님이 없에서 떠나가시자..
곧, 파도같이 바벨론 군대가 처들어와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립니다. 성전을 무너뜨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 앞에 모여들어 아무리 외처도, 그것은 비명이지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들을 때 기도가 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면, 혼자서 소리치는 비명이지, 더 이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이 무너진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불고 해도..
바벨론 군대는 좋다고, 성전에 들어가, 성전기물을 가지고 나갑니다.
성전안에 맘대로 돌아다녀도, 괜찬습니다.
성령님이 계실때는,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벼락이 떨어지고, 불꽃이 나와서 사르고,
거룩함과 신령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않계니까... 신령함, 권능과 거룩함이 없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신령합니까?
성령님이 내속에 계실 때,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저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당당하고 희망차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기도하면, 새힘을 주십니다. 위로함을 주십니다. 찬송과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 속에 계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하여 주시니까, 세상 어려움을 만나도, 까딱없이, 오히려 세상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약에, 성령이 내게서 떠나가시고, 성령님 더 이상 내 속에 거하지 않으면, 어떤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때도 아무일 없었던것 처럼, 용기백배로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겠습니까?
세상 어려움을 만나도, 오뚜기 처럼 일어서서, 찬송하며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님이, 가슴 아파하시고, 괴로워 하시고, 나중에는 역사하는 힘을 소멸해 버리시고, 떠나가실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님이 내속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멀리하시는 악한 것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것을, 열심히 취하여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열심히 맺기를 힘쓰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 였던, 무디목사님이 전한, 예화입니다.
유리컵을 들고 질문합니다. “이 유리컵은 비어 있는 것 같지만, 유리컵 만큼, 공기가 차 있습니다. 그 공기를 어떻게 빼낼수 있습니까?”
들고 있는 유리컵에, 담겨있는 공기를, 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 주전자에 물을 유리컵에 가득 부었습니다.
“보십시요, 유리컵은 물로 채워지고, 공기는 사라졋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속에 있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방법도 잘 보이지 않는, 그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수 있습니까?
성령님이 내속에 충만하게 가득차면, 내 속에 있던 문제들은, 마음의 상처와, 해결되어야 할 나쁜 것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나를 온전하게 하고, 나를 유익하게 하고,
나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 충만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6월달은 성령강림절로 시작됩니다.
6월달에는,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열심히 하는 달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의 영혼과 삶이 온전하여지고,
나의 생활과 계획이 다시한번, 새로워 져서,
성령님 안에서, 상반기를 알차게 잘...마무리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