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14 간절한 애국 십자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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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8년전 3월 1일, 우리나라는 방방곡곡 대한독립만세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학생들도 모두모두 대한독립 만세를 외첬습니다.
아마 지금 우리가 그 자리로 돌아간다면,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같이 만세를 불렀을 것입니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3,1만세운동은 우리민족이 정신적으로 독립국가임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3.1만세운동은 우리민족이 하나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3,1 만세운동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대한민국의 독립을 부르짓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엄청난 교회 부흥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1. 다시 십자가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사도바울의 간절한 고백이 나타나 있습니다.
나는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온통, 나도 세상도 십자가에 못박는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가 보면, 내가 익숙한 길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사도바울도 그랬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않믿을당시, 사도바울은 본래 사울이었지요..
사울은, 내가 익숙한 길로, 너무 깊숙하게 들어갔습니다.
율법속에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세상속에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선입관이라고 하지요, 형식주의라고 하지요. 타성이라고 하지요.
성경말씀을 않읽습니다. 내가 익숙한 율법과 나의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고,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믿음생활 잘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나의 익숙한 것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봄이 되면, 집안을 대청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겨울동안 익숙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꺼운 겉옷, 두꺼운 이불.... 겨울동안은 좋았습니다. 적합하였습니다.
하지만 봄이 되었는데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고, 봄이 되었는데도 두꺼울 이불을 덮고 잠을 잘수는 없습니다.
깨뜨려야 합니다.
오늘날 변화에 적응하지 않는 기업은 퇴출된다고 하지요?
일본에 도시바, 망했습니다. 진단해 보니 세상은 변하는데 도시바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망하기 일보직전입니다.
미국에 코닥 카메라 회사, 저는 코닥 카메라를 좋아합니다. 쨍~한 색감이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코닥 카메라 회사는 망하고 없습니다.
요즈음 같은 디지털 카메라, 누가 코닥 필림 카메라를 사용하겠습니까? 세상이 변하는데도 코닥 카메라는 열심히 필림 카메라만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완정히 망하고 없어셨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당시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는 누가 주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는, 엄청난 구속의 대사건이 나타났는데,
사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편협한 민족주의, 유대인 선민사상, 더 나가서, 고루한 율법속에 빠져서 살아가다 보니,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율법이 얼마나 사람을 얽어매는지,
율법 그러니까 토라를 해석한 것이 미드라쉬입니다. 미드라쉬는 해석하다 연구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미드라쉬도 너무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풀어쓴 것이,미쉬나입니다. 미쉬나란 뜻은 반복하다 가르치다..란 뜻입니다.
이 미쉬나도 딱딱하니까...이야기 식으로 예를 들어서 이야기 식으로 만든책이 ‘탈무드’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탈무드를 유대인의 지혜를 모아놓은 이야기책 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탈무드는 미드라쉬와 미쉬나를 설명하기 위하여,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 진 책입니다.
결국 탈무드에는 율법을 교육하려는 목적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성경은 어디가고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지 않습니다.
만약 마음문을 활짝 열고, 갈급한 심령으로 성경말씀을 바르게 읽었다면, 이사야서 말씀을 보았을 것입니다.
지난 시간 오후찬양예배때, 교리사에서 배웠습니다. 이사야서에는 고난받는 메시야가 나와 있다.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나라를 단순히 물리치고,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단순한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메시야는 단순히 이스라엘 만을 위한 메시야가 아니라, 죄악속에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시는 것입니다.
마음문을 활짝 열고 보면, 이 구절을 보고, 알고 깨달을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결과 미쉬나, 미드라시, 탈무드에서 배운데로,
유대인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는 민족이다.
이방인은 무엇인가? 지옥에 불쏘시개로 쓰여질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창에 찔려도, 나의 죄악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갖은 고초를 당하셔도, 나의 악함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수님이 오셨지만, 예수님을 외면하고,
예수님이 오셨지만, 예수믿는 사람들을 픽박하고,
열심히 교회를 훼방하면, 애국하는 것인 줄,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번더 정리를 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되어서 어려움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독립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율법에 사로잡혀 있다가 보니, 열심히 교회를 픽박하면 나라가 잘될줄 알았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을 옥에 가두면 나라가 잘 될줄 알았습니다.
더나가서 예수님을 핍박하면, 식민지에서 빨리 해방될 것이라는, 잘못된 애국, 잘못된 나라사랑의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자, 이것은 사울 한사람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지 않던 대부분의 유대인들 생각이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이러한 잘못된 애국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져 왔느냐?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독립은 커녕, 오히려 더 큰 화를 자초하여,
당시에는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이 살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사울과 같은 잘못된 애국을 할 때, 로마에서 군대를 보내어,
예루살렘을 완전히 예수님 말씀그대로 돌하나 돌위에 남지 않도록 불태우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은 커녕, 이스라엘에도 못 살도록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떠도는 유랑민족, 나라가 없는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건이 있고, 2천년이 지나서, 1948년,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에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독립이 된 것이, 스스로도 이상하고, 아직도 독립이 맞는지, 아니면 다시 나라가 없어질지 불안해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애국을 하며
예수님을 픽박하고, 교회를 훼방할 때, 이스라엘 나가 망하는 모든 것을 직접 보면서,
사도바울은 그래서 절규하는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나를 못밖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도 십자가에 못밖겠습니다.
이젠 제로 포인트에서...나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이제는 십자가 앞에서, 출발하겠다고, 갈급한 심정으로, 고백 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잘못된 애국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잘못된 애국은, 율법속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잘못된 애국은, 율법속에 빠져서, 예수님을 훼방할 때,
그결과 예루살렘이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2천년 동안이다. 나라를 되찾지 못하는, 멸망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른애국은 무엇입니까?
2. 바른애국은 십자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유머 한가지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한 방을 들어가보니, 사람이름이 써있는 있는 시계들이 가득 걸려 있습니다.
얼른 눈에 뛰는 시계를 보았더니, 베드로, 라고 쓰여있고, 시계가 3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시계인가요? ”
“아하 그건 시계가 아니고, 세상에서 사람들의 거짓말을 기록한 ‘거짓말 계수기’입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때마다 화살표가 한칸씩, 돌아갑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였기 때문에, 화살표가 3을 가르키고 있지요?”
“네 그렇군요...그럼 일본의 아베총리의 시계도 있나요? ”
천장을 가르키면서 말합니다.
“네, 그건 천장에 달아놓고, 선풍기 대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3.1 독립선언문에는 민족대표 33인이 이름을 연명 하였습니다.
그중에 우리기독교가 제일 많습니다. 16명, 불교는 1명, 카톨릭은 없습니다. 나머지는 천도교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 초대교회가 얼마나 3.1 만세운동에 열심을 다하였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3.1 만세운동 이후에, 기독교가 제일 많이 잡혀들어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들이 3.1운동 이후애, 신사참배를 않한다고 옥에서 죽어갔습니다.
저는 독립문을 비롯하여, 서대문 형무소, 그리고 유관순 누나가 잡혔 있었던 감옥을 가본적이 있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햇빛에 않들어 오는, 지하에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 감옥에 내려가보니, 문이 있는데, 그 안쪽에는 방이 없습니다. 딱 문만 있고 그 안쪽에는 사람이 겨우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하는 조그마한 공간만 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햇빛도 못보고, 고문만 당하다가, 결국에는 죽었습니다.
물론 유관순 누나도 교인입니다. 매봉교회에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다가 매봉교회로 내려가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매봉교회도 많은 고초를 당하였습니다.
저는 매봉교회도 가 보았습니다만, 지금 매봉교회는 유관순 기념교회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찌 매봉교회 뿐이겠습니까? 재암리교회는 교인들이 만세운동을 한다고, 전체 교인들을 교회로 불러 놓고, 교회에 불을 놓아서, 교인들이 모두 교회에서 불타 죽었습니다.
밖에는 일본순사들이 총을 겨누고, 교회에서 나오는 교인들은 총을 쏴서 죽였습니다.
자, 누가 승리한 것입니까? 당시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본이 승리한 것입니까?
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3.1 만세운동을 한 사람은, 엄청나게 고초를 당하였습니다.
3.1만세운동을 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3.1만세운동을 한 교회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고, 3.1운동때 죽인 사람의 몇배가 죽고,
무조건 항복을 하고 무릎꿇고,
대한민국은, 3.1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그래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기뻐하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나타날수 있습니까?
기도외에는 유가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가 없는데,
성도들의 간절한 간구가 없는데, 저절로 될리는 없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초대교회는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일본순사들 눈을 피하여, 몰래 모여서,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일본순사들 눈을 피하여, 몰래 모여서, 죽기를 각오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당시 기록을 보면, 요한계시록 읽기 운동이 벌어져서, 100독을 하고, 1천독을 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죄악은 무너지고, 예수님의 승리하여, 천년왕국이 세워지듯이,
일본의 압제는 무너지고, 예수님이 승리하게 하셔서, 우리나라가 독립하게 될 것이다.
간절히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일이 열심히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자, 이시간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예배드리는 것이 더 간절하겠습니까?
3.1운동 당시 예배드리는 것이 더 간절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더 간절하겠습니까?
3.1운동 당시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더 간절하겠습니까?
질문을 바꾸어서 한번만 더 질문을 해 보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나라가 더 희망이 없습니까?
3.1운동 당시 우리나라가 더 희망이 없습니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헤이그에 밀사를 보내어, 만국박람회때,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려고 하여도, 세계 여러나라들이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요, 수출대국이요, 군사비도 세계 10위...
하여간 모든 부분에서 세계 10위 나라가 되었었습니다.
심지어는 UN 사무총창도 우리나라에서 배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간단히 잘못되었다 잘되었다. 희망이 있다 없다고 말하기 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십자가 앞에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더욱 열심히 예배드리는, 신앙의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사도바울이 빠졌던 함정에 똑같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율법이 없습니다. 미드라시도 없고, 미쉬나도 없고, 탈무드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율법속에, 생각과 마음이 붙잡히게 됩니다.
또 다른 미드라시, 또 다른 미쉬나, 또 다른 탈무드에 마음이 예속될 때가 있습니다.
또 다른 율법의 정체는, 세속주의요, 인본주의 가 되겠습니다.
기준이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세속주의를 오히려 더 중요한 기준으로 우뚝 세웁니다.
기준이 십자가가 아닙니다. 인본주의를 오히려 더 가치있게 여길때가 있습니다.
세속주의는 세큐러리즘 secularism ..세상적 가치, 세상적 방법, 세상적 관습, 세상적 행동을 믿음생활에 끌고 들어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있지만 천국의 가치, 천국의 방법, 천국의 관습, 천국의 행동을 실천하고 배우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이렇게 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데, 그런데 그 기준이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요즈음 세상 물정을 좀 모르시는것 같은데....이래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법을 가지고 교회에서 행하려고 합니다.
또한 인본주의 앤드로포센트리즘 anthropocentrism는. 인간중심적 가치, 인간중심적 방법, 인간중심적 관습, 인간중심적 행동을...믿음생활에 끌고 들어 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나 중심이 될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됩니다. 내가 생각할 때 합리적이고, 내가 생각할 때 좋아 보이고, 내가 생각할 때 옳게 보이면,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선이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유대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미쉬나 미드라시 탈무드 속에서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고, 애국의 길을 걸어갈 때,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는데,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적 가치와 방법과 합리성 속에서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고,
세속주의적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애국을 속단할 때, 대한민국은 마음이 나누어 지고, 생각이 나누어 지고, 비전이 나누어 질수 밖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애국, 바른신앙은,
나의 선입관, 나의 생각을 버리고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나를 부인하고 회개할 때,
십자가 앞에서 다시, 희망차게 시작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그런의미에서, 십자가 앞에 서는 시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실은 매주일 마다, 내가 십자가 앞에 서고,
매일매일, 내가 죄에 대하여 죽고, 십자가에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하지 못하다 보니, 일년에 최소한 한번 만이라도, 절기를 정하여, 십자가 앞에서...완전히 십자가 앞에 다시 서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 앞에 서지 못할 때, 바른 애국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세속주의 인본주의적 율법을 버리고,
이번 사순절 절기에는, 다시 십자가 서서,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