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4절 16절 믿음 있는 자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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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윤리, 성공의 지혜, 인생의 행복, 물론 그러한 것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에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핵심이 부활에 있음에도, 많은 현대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부인합니다.
학자들 조차도,
기독교 윤리를 강조할때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을 강조할때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 하면, 거북해 합니다. 아니.. 예수님의 부활은 그만 이야기 하자고,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부활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1.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을 보겠습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지난 주 부활절은, 얼마나 은혜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워쉽무용을 할때는, 천사들도 흠모하는 시간이 아니었가? 생각을 해 봅니다.
이사야 서에 보면, 스랍들이 날개를 치며, 하나님을 옹위하면서, 창화로다...창화로다...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난 주일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영광돌리는 원십의 몸짓은, 스랍들 보다가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더 은혜로웠습니다.
찬양대도 멋있습니다. 섹소폰 특송도 은혜로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준비한 만큼 은혜를 받고, 준비하는 만큼, 그 준비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그릇을 준비합니다. 그러면 큰 그릇만큼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그릇을 준비합니다. 그러면 작은 그릇만큼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열왕기하 4장에 이야기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한 제자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집이 너무 가난하여, 집을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부모와 아이들은 종으로 팔려가게 생겼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말합니다.“이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딱, 기름 한그릇 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이웃들에게 가서, ‘빈 그릇’을 빌려 올수 있는 만큼, 힘써서 가지고 오라...
제자의 아내가, 그릇을 준비합니다. 힘써서 그릇을 준비합니다. 수십개..수백개...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준비한 그릇위에, 엘리사 선지자가 딱 한그릇 뿐인 기름을 붙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기름이 가득찹니다. 얼른 옆에 빈그릇을 갖다 대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빈그릇도 기름이 가득 찹니다.
또 옆에 있는 빈그릇을 얼른 갖다 대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빈그릇도 기름이 가득찹니다.
“더 그릇이 없느냐?” 이젠 그릇이 없습니다.
있는 그릇 만큼,....준비한 그릇만큼 기름이 가득차고 그쳤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준비한, 나의 믿음의 그릇 만큼, 은혜를 받게 됩니다.
큰..믿음의 그릇을 준비한 사람은, 큰 은혜를 받습니다.
작은..믿음의 그릇을 준비한 사람은, 작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절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하나도 은혜를 못받았습니다. 하나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부활절이 지났는데, 어떻게 부활에 대한 믿음이 하나도 없을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은혜를 하나도 못받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말씀 14절을 보니까..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것을 꾸짖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이 지나면, 은혜받고, 축복받고, 능력받아도 모자랄판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직접... 믿음이 없다고, 마음이 완악하다고 꾸지람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자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4절 하반절에는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그렇습니다. 소식을 듣는다고,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사람들은,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이 부활 하신 것을 기뻐하여, 예배드리는 날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 소식을 나의 믿음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의 부활과 상관없이 생활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부활하게 될 것을 전혀 감사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고,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 믿음 없이 살아 갑니다.
더 나가서,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을때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앞장서서 부인하기 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믿음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도마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도마는 사도입니다.
도마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무 똑똑해서 그런지, 예수님의 부활을 앞장서서 부인합니다.
정색을 하며 다른 제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을 내손으로 직접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허리에 창자국을 내손으로 직접 넣어서 만저보지 않고서는, 나는 믿지 아니하겠다.” 고 말합니다.
자 이쯤되면, 제자 라는 직분과 명예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마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도 나타나셔서, 책망하고 교훈하여 주십니다.
요한복음 20:27 말씀..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믿음없는 자가 되어서는 않되겠습니다.
믿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부활절, 은혜로운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세희 안수집사님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교회 본당 안에 서 계시는, 꿈을 꾸고 은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관심이 생길수 밖게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옷을 입고 계시던 가요?
언제 나타나타 나셨나요?
어디에 서 계시던 가요?
왜 그런 꿈을 꾸셨나요?
그런데 듣고 있던 최대형 집사님이, 멋있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교회 본당에 계셨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동안 못 봤을 뿐입니다.”
그 말에 다들 무릎을 치고,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대답에 너무너무 은혜를 받았습니다.
말 한마디 조차도 ..믿음 없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의심을 일으키고,
믿음이 아니라, 상처를 주고,
하지만, 믿음은 반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다른 성도들의 믿음을 깊게 만듭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부활절이 지날 때...믿음이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성숙해 져야 하겠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깊은 사람으로 더욱 성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2. 내가 만난 부활의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까?
15절 16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지난 달, 대전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50대 남자가,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황소개구리, 다섯마리를 잡아서 왔다고 합니다.
이젠 완연한 봄이 되었는데,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를 먹고, 몸 보양 좀 합시다.
황소개구리를 요리해서 맛있게 먹고 난 다음...호흡곤란이 옵니다. 속이 뒤틀립니다.
너무너무 괴로워서 병원에 갔더니, 병원에서도 손을 쓸수가 없습니다. 바로 죽고 말았습니다.
경찰이 와서 찬찬히 조사를 해 보았더니...황소 개구리 인줄 알고, 먹었던 것이, 황소 개구리가 아니라, ‘두꺼비’였다고 합니다.
‘두꺼비’를 잘 먹고, ‘두꺼비’의 독이 몸속에 퍼져서, 결국에는..몸 보양이 아니라, 먼저 하늘나라고 가고 말았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위선과 형식주의와 불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야고보서 2:26 에는 말씀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도 그러 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을 보니까.. 겉으로는 살아 있는 믿음 같았습니다. 하지만 속을 보니까... 행함이 없는 것이, 죽은 믿음 이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잘 이해 하셔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설명을 해 드리자면...
살아있는 것은 움직입니다.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죽어 있는 것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죽어 있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움직임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단순히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생각과 의지와 결심이 없습니다.
반대로 살아있는 것은,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피곤하면 좀 쉬었다가 또 움직입니다.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힘듭니다.
눈도 깜짝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오히려 더 괴롭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믿음의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결심을 합니다.
믿음의 대화를 합니다.
믿음의 행동을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 15절에서, 부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그렇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행동을, 활발하게 하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열심을 가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22 에 말씀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초대교회는 직분자를 세우는 제일 목적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부름받은 제일 목적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전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33 에는 말씀합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예수님의 부활을 활발하게 증거할 때, 은혜가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능력과 권능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복음을 전하는 믿음입니다.
부활 신앙으로 충만한 믿음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활발하게 증거하며 생활하는 믿음입니다.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고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를 세웠습니다.
칼빈은, 나에게 주신 삶에는, 목적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내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그냥 뜻 없이,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제일 목적이요, 그 목적대로 생활할 때, 가장 아름다운 생활, 목적을 이루는 생활로 보았습니다.
칼빈을 중요한 부탁을 합니다. “내 무덤에는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 주십시요” 사람들이 너무 아쉬워서, J, C 라는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칼빈이 왜 이렇게, 자기의 흔적을 없애달라고 할수 있었습니까? 철저하게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다가 보니...
예수님의 영광에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봐...마지막 까지 자신을 낮추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매일매일,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다 보니, 예수님께서 나를 기억 하여주시고,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시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지 아니하고
예수님께서 씌워주실 생명의 면류관을 최고로 소망하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 3. 다음 부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부활하신 다음에, 우리를 데리러 오시겠다 약속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실때에는, 믿고 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 곡간에 모으시고...
믿지 않고, 죄악중에 살아갔던 사람들은, 정죄를 받고,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을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너무나 엄중하기에,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11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그 다음 차례는 이제 나 인줄 알고...
어떻게 해서든지....예수님을 본받아...부활에 이르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부활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 복음 전하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의 부활에, 자동적으로, 끼워넣기가 되어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부활의 자라기 아닙니다.
철저하게,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로, 의인과 악인으로, 생명책을 보시고, 분명하게 나누시다보니...
사도바울은 어떡게 해서든지..부활에 이르려고,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이 되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전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이제는 다음번 부활에.... 주인공들이 되시는...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