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장 23절 25절 칭찬하는 그리스도인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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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속담에
‘친구를 칭찬할 때는, 널리 알리도록 하고, 친구를 책망할 때는 남이 모르게 하라.’
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그 친구의 뛰어난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더라도,
친구의 나쁜 점은 조용히 그 친구에게만 직접 이야기하라는 뜻입니다.
또..‘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칭찬해 주는 사람이, 진짜 좋은 친구다.’
사람들 앞에서 칭찬하여 무안하게 만들지 말고, 내가 없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칭찬해 주는 것이, 진짜 칭찬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회개하고,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다보니, 칭찬에 인색할때가 있습니다.
특히 친한 사람일수록 칭찬하기를 어색해 합니다.
가정에 있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칭찬하기 참 어색합니다.
우리 구역에 있는 집사님 권사님 안수집사님..
내 옆에 있는 집사님 권사님 안수집사님을 칭찬하기가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칭찬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힘을 내어서 칭찬해야 합니다.
열심히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칭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그리스도인이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습니다.
23절에 말씀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리스도인은 서로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책잡기 위하여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흠을 찾고, 가쉽거리를 찾기 위하여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한 것을 찾이 위하여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잘 한 부분을 위하여 찾기 위하여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그 사람에게 직접 칭찬해주고, 그 사람이 없을 때,다른 사람들에게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칭찬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磨斧爲針(마부위침)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갈/마, 도끼/부, 만들/위, 바늘/침 이 되겠습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아무리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도 계속하여 노력을 거듭하면,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높습니다. 거룩합니다.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다른사람을 교훈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오늘말씀 그대로 입니다. 오히려 칭찬해야 합니다. 오히려 격려해야 합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그 사람을 높혀주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6:33 에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다른 사람을, 남을 선대하고 높혀주고 칭찬하는 것에 인색할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높혀주면, 상대적으로 내가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칭찬해주면, 상대적으로 내가 깍인다고 무의식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남을 칭찬해주고, 남을 높혀주기를 주저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칭찬은 사람을 가르치고 단련시키는 도구입니다.
칭찬은 훈련의 중요한 수단이요. 교훈의 중요한 수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27:21 에는 말씀합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칭찬은 나를 낮아지게 만들고 상대방을 높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은 칭찬받는 사람은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사람을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칭찬해 줍니다. “참 잘 했다. 훌륭하구나.”
높은 사람이 낮은사람을 칭찬해 주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낮은사람이 높은 사람을 칭찬해 주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거꾸로 칭찬해주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버지 참 잘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써 행실이 모범고 훌륭하시네요.”
만약 거꾸로 아들이 아버지를 칭찬한다면, 듣는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것입니다.
칭찬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을 칭찬해 준다면...마음속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구나..
또 있습니다. 칭찬은 사람을 단련시키고 교훈합니다.
칭찬을 받을때, 교만하게 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오히려 칭찬 받을 때, 멋쩍어 하고, 내가 이런 칭찬을 받아도 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칭찬한 사람과 칭찬들었던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더 힘쓰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칭찬을 아까워 해서는 않되겠습니다.
칭찬을 어려워 해서도 않되겠습니다.
또한 칭찬하면, 내가 손해보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더더욱 않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2 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칭찬하였습니다.
말씀을 보니까..구체적으로 칭찬하였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내가 전하여준대로 잘 지키므로 칭찬하노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린도교회가 정말 사도바울의 이같은 칭찬을 받기에 합당한 교회인가?
이 질문에는 객관적으로 고개를 꺄우뚱 할수 밖게 없습니다.
성경에는 분명 칭찬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칭찬받았습니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믿음이 부요한 교회이고..사탄의 회당에 미혹당하지 않는 것을 보고..칭찬을 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도 칭찬받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사탄의 회당의 시험을 이길 때,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가 칭찬을 칭찬을 받기에 합당한 교회인가?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고치라고 보낸 서신이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도, 책망을 먼저 꺼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칭찬을 먼저 꺼내었습니다.
칭찬을 함으로, 칭찬을 통하여 교훈을 받게 하였습니다.
칭찬이 없는 책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책망을 할때는 먼저 칭찬하고, 이것만 고치면 더 없이 좋겠다고, 칭찬 뒤에 책망할 내용을 더 붙였습니다.
칭찬하지 않고 책망만 하는 것은, 매우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칭찬을 많이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칭찬으로 교훈이 되게 해야 합니다.
2. 성숙한 성도 일수록 칭찬하게 됩니다.
유머입니다.
야구라면 사죽을 못쓰는, 열혈 야구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구 결승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야구장에 갔더니, 앞에 빈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저렇게 좋은 곳에 빈자리가 있다니...얼른 가서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저기 이 자리 비었습니까?”
"네~ 우리 집사람과 같이 오려고, 두장을 샀는데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나혼자 왔습니다."
"아이구..그랬군요! 결승전 표가 아까운데, 가족중에 아무나 데려 오지 그랬어요?"
그러자 그 남자가 말합니다.
"그럴려고 했지요~ 그런데 모두..병원에 문병 갔으니... 데려올 사람이 있어야 지요. 그래서 나혼자 왔습니다"
참 황당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중요한데 열심을 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 열심이 엉뚱한 열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에는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리스도인의 칭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적으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향하여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즉 칭찬을 통하여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을 버리도록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모이도록 하기 위하여 칭찬을 해야 합니다.
그 날이 가까우면, 마지막 때가 되면,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늘어 납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막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늘어가면, 그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돌아보며, 격려하며, 열심히 모이기를 힘쓰도록, 칭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칭찬해야 합니까?
23절에 말씀합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미쁘시니 라는 말은 믿음직 하다 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또 약속하신 이는 믿음직 하시니.. 예수님은 믿음직 하십니다.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움직이지 말고, 소망 가운데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하겠는데,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각 칭찬하고, 격려하고, 높혀주고,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집사님은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박집사님은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이집사님은 예배를 잘 드립니다.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열심히 칭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3 에는 말씀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 받은 청지기가 갑절로 10달란트 남길 때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두 달란트 받은 청지기가 갑절로 4달란트를 남길 때, 칭찬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산수를 해본다면, 두 달란트를 갑절로 남겨도, 다섯달란트가 되지 못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열달란트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까?
두달란트를 네달란트 만드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무리 두달란트를 네달란트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지만, 열달란트에 비하면, 반도 않됩니다.
다섯 달란트를 열달란트 만드는 것은, 보통 열심과 재능이 아니고서는 달성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비례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두 달란트 받은 청지기가, 칭찬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두달란트 남기고, 다섯달란트 남긴만큼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객관적으로 반 밖에 되지 않는 두달란트 청지기를, 다섯달란트 청지기에 버금가는 칭찬을 해 주셨습니까?
어떻게 보면, 열심을 칭찬을 해주신 것입니다. 미래의 가능성을 칭찬을 해주신 것입니다.
당찬 용기에 칭찬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결과에 칭찬을 하지 말고, 가능성에 칭찬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과정에 칭찬을 해야 하겠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가능성을 칭찬 합시다. 과정을 칭찬 합시다. X 2
가능성은 지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래가지입니다.
과정은 일율적으로 결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소망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가능성을 외면할때 성과는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결과가 좋지 않을수 있습니다. 객관적 평가로는 적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달란트 청지기의 열심과 과정과 노력까지 꿰뚫어 보시고, 앞으로 잘 하라는 격려의 차원까지 합하여,
다섯달란트 청지기와 똑같이 사랑을 듬뿍 담아서.. 칭찬을 해 주신 것입니다.
금방 태어난 아이는, 눈만 깜짝 하여도 칭찬을 받습니다.
금방 태어난 아이는, 웃기만 해도 칭찬을 받습니다.
눈을 감짝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큰 칭찬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됩니까?
웃기만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큰 칭찬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됩니까?
어른들은 아무리 눈을 깜짝 해도, 칭찬받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아무리 웃어도, 칭찬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금방 태어난 아이는 칭찬을 받습니다. 아니 칭찬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격려와 사랑의 차원에서..칭창받을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칭찬과 격려를 힘입어, 어린아이는 더욱 열심히 눈을 깜빡입니다. 더욱 열심히 웃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건강하게 어린이로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교회에 궁이, 찬영이, 수호, 오직이 많이,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모든 성도들이, 서로서로, 보이는데로 만나는데로, 서로 칭찬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3. 칭찬은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칭찬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흉보는 것은 잘합니다. 다른 사람의 않좋은 이야기는 잘 전합니다.
우리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한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에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은근히 옆에 있는 사람을 흉을 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않좋은 이야기를, 무슨 큰 비밀이나 되는것 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흉을 잘 보고, 다른 사람의 않좋은 것을 쉽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속이, 긍정적이지 못하고,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잠언 12: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마음이 부정적이다 보니까...부정적인 것이 눈에 잘 들어옵니다.
마음이 부정적이다 보니까...남의 흉을 보고, 남에 대하여 않좋은 말을 쉽게 합니다.
이렇게 굽은 마음을 가지면, 남에 대한 흉만 보는가? 아닙니다.
스스로도 멸시를 받고, 스스로도 흉을 잡히고, 스스로도 않좋은 이야기가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칭찬하는 사람이 자기도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남을 높혀주는 사람이 자기도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울효과’라고 하지요..
거울을 보면서 내가 손을 들면, 거울속에 나도 손을 듭니다.
거울을 보면서 웃으면, 거울속에 나도 웃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이 곧 나에게 돌아오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 곧 나를 향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들을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세상에서는 성공한 아들이요, 제법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아들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둘러보니까..아들에 눈에 별에 별일이 다 보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다른 사람 흉을 보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서, 다투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집에 와서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교회에 가서 보니까..세상과 틀린것이 없는것 같애요.
다른 사람 흉을 보는 사람들도 눈에 보이고,
마음이 않맞아서 다투는 사람도 눈에 보이고, 세상과 다를게 없습니다. 그런 교회를 왜 나가세요? ”
어머니가 조용히 대답합니다.
“얘야..나는 평생을 교회 다녀도 못본 것을, 너는 딱 하루만 교회에 나갔는데도, 많이도 보았구나..
그렇다면 너는 교회에서 예수님을 보았니? 기도하는 집사님은 보았니? 봉사하는 집사님은 보았니?
교회에는 분명히 기도하는 집사님도 있었고, 봉사하는 집사님도 있었고, 예수님도 계셨는데... 그 분들은 못보고, 험담하는 것만 보았구나. 다투는 것만 보았구나.”
그 말을 듣고,이 아들이 마음이 철렁하여 깨달은 바가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보는 수준과, 내가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구나..
나는 새상의 기준으로 교회에서 세상일을 보았고, 어머니는 믿음의 눈으로 거룩한 것을 보았구나..
그래서 그 다음부터 아무 이야기도 않하고, 고개 돌리지 않고, 십자가만 바라보며 예배드리는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10년 다녀도 예수님을 못보면, 예수님과는 관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을 신앙생활하는데, 다른사람에게, 한번도 칭찬하지 않고, 보냈습니다.
따듯한 말 한번 건내지 않고,
화사한 미소로 인사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겸손하고 섬기는 믿음과는, 한참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닐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내가 무엇과 가까이 있는지?
나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냉냉하고 차가운, 쌀쌀한 향기가 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히브리서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조그만 사랑과 선행과 봉사와 착한 일을 발견해도, 바로 칭찬하고 격려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칭찬꺼리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일부러 찾아서라도 칭찬해 주기를 힘 써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칭찬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성도일수록, 칭찬을 잘 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야 칭찬할수 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열심히 칭찬하며, 보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먼저 칭찬하며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