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13절 18절 새로워지는 속사람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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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다 속이 더 중요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겉은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건강검진을 해보니까, 속은 건강이 망가져 있습니다.
그러면 겉으로 젊은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겉은 50대, 60대, 70대 이지만, 건강나이를 보니까..아직도 젊은이들 못지 않습니다. 심장, 간, 대장 아직도 팔팔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육체만 그렇습니까? 정신은 더 중요합니다.
육체로는 20살입니다. 그런데 정신이 5살 밖에 않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장성하고 겉으로는 멀쩡하여도, 정신이 육체를 못따라간다면, 그 사람의 육체의 멀쩡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 육체 정신만 그러합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이 중요합니다. 겉으로는 어른입니다. 정신도 어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영은 5살 밖게 않됩니다. 그러면 너무너무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자, 5살 아이는 세상에 혼자 내어 놓을수가 없습니다.
음식도 먹여 주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놀이터에도 부모님이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 5살 아이는 세상에서 혼자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나이가 5살 밖게 않되는 사람은....
기도도 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뜻을 알지도 못합니다.
영적으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혼자 밖에 놓아두면, 이리때 같은 이단들이 그냥 놓아두지를 않습니다.
악한 사탄이 잘되었다고 괴롭히면, 아무 저항도 못하고, 패배할수 밖게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지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속사람이 건강하고, 속사람이 활력있고, 속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속사람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요즈음은 겉사람을 보아서는, 그 사람을 알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자 화장품이 너무너무 잘 팔린다고 합니다.
물론 겉모습을 꾸미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그 사람의 내면이 들통이 납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실력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격도 거짓말을 너무너무 잘 합니다.
옛날에는 재비, 꽃뱀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재비, 여자는 꽃뱀...
겉으로는 신사입니다. 숙녀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분들이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입니다.
저기 급한일이 생겨서, 백만원만 좀 빌려주세요. 며칠후게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겉모습만 보고 의심하지 않고 빌려 줍니다.
그런데 며칠이 아니고, 몇 달이 되어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거짓말만 자꾸 합니다.
무엇이 문제 입니까? 속사림이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고린도후서 4장은 직분자, 사명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자는, 속사람이 예수님 보시기에, 알곡인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식물을 보면, 겉으로는 알곡인지 쭉정이 인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추수때가 되어지면, 알곡은 고개를 숙입니다. 쭉정이는 고개를 빳빳이 듭니다.
그러니까 알곡은 언제가야 판가름 나는 것입니까? 추수때에 가야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추수때가 되면, 알곡와 쭉정이에게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12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슴하십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렇습니다. 알곡은 천국곡간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저 넣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속사람이 믿음으로, 헌신으로, 봉사로, 찬양으로, 꽉꽉들어 차는, 알곡을 향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까?
한가지만 강조를 하자면, 사순절에도, 이 믿음의 공식은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사순절도 그냥 지나가는 절기가 아닙니다.
사순절에는 기도로 꽉꽉 들어차고, 봉사로, 헌신으로, 준비로 꽉꽉 차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속이 꽉꽉 들어찬 사람은, 부활절이 기다려 집니다.
예수님 40일 동안 기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예수님 부활절에 친구를 초청하였습니다. 친척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영혼을 추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부활절을 위하여 이렇게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 앞에 드립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부활절이 되었을때에, 어떤 사람은 부활절인가? 하고 당일날, 그저 아무런 의미없이, 부활절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누가 더 예수님께 추복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꼭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예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할까?
예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무엇을 보여 드릴까?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를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속사람이 건강한, 속사람이 열매로 가득찬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른아이, 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겉은 어른인데, 속은 아이라는 뜻입니다.
겉사람이 자라나는데, 속사람은 자라지를 못합니다.
주위의 환경에 주늑이 들고, 세상에서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내면의 속사람이 움추러 듭니다.
그래서 겉사람은 어른인데, 속사람은 아이인 사람이 있습니다.
키덜트 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어린이 키즈 라는 말과, 어른 어덜트 라는 말이 합성되어, 어른아이입니다. 키덜트가 되었습니다.
다 큰 어른이,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마음에 편안함을 갖습니다.
인형을 모으고, 레고블럭을 쌓고,
그런데 문제는 해마다 키덜트가 점점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젠 키덜트를 위한,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왜 예전같이 부흥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신앙의 키덜트들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겉은 중직자이고, 제직입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6.25때는 교회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장로님들이 많았습니다.
신사참배 하다가 끌려가서 죽은 목사님들이 많았습니다.
개척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천막에서도 밤을 세워 철야기도를 하고,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축복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전체가 부흥하고 발전하였습니다.
요즈음, 예배드리는 것도, 큰 마음 먹어야 드리는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천막과는 비교활수 없이 편리한 시설인데도 불구하고, 믿음은 점점 뒷걸음질 합니다.
개척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희생하는 사람들이 찾아보기 힙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축복도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도 부흥하고 발전하는 것이 예전만 못합니다.
한가지 더 말씀 드리자면,
장성한 성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스스로 힘든일도 척척 알아서 잘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도 잘 받아 들입니다. 잘 먹습니다.
더 나가서 전도도 잘합니다. 죄악에 빠져 있는 생명을 구합니다.
키덜트 신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상처받을까, 낙심할까...그저 열심히 축복기도 해주고, 조심조심 합니다. 그래도 뭔가 배탈이 납니다. 악한 사탄의 궤궤에 병이나서 심험에 빠집니다.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듯이, 말씀도 얼마나 조심해서 연한 말씀을 줍니다. 하지만 그것 먹고도 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힘든일을 척척 하지 못합니다. 봉사와 헌신이 없습니다.
더 나가서 죄악에 빠져 있는 영혼을 구하는 어려운 일은 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고린도전서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믿음의 어른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적으로도, 이제는 유야기, 유년기 를 거쳐서, 소년기, 청년기에 들어간다고 할수 있습니다.
믿음의 활력으로 살아가고,
헌신의 기쁨으로 살아가고,
예수님 앞에서, 속사람이 점점 성장하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성숙한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유머입니다.
어떤 마을에 혼자 사는, 쓸쓸한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서,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세요.....조릅니다.
할아버지가 쓸쓸하게 이야기 합니다.
어느 마을에 한청년이 아가씨를 좋아해서, 청혼을 했단다. “나와 결혼해 주세요”..
청혼을 받은 아가씨가 쎈스 있게 답을 합니다. “두 마리 말 말고, 다섯 마리 소를 가지고 오면, 결혼하겠어요”
그래서, 그 청년은 그때부터, 다섯 마리 소를 사려고, 애쓰다가... 결국 늙어서, 이렇게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구나...
듣고 있던 한 꼬마 말합니다. “에이...할아버지.. 두말 말고, 다섯 마리 소면,, ‘두말 말고 오소.’라는 뜻이 잔아요”...
‘두말 말고 오소.’
할아버지가 마음속으로 말했답니다. “내가 왜 그 뜻을 몰랐을까? ...벌써, 오십년이 흘러 버렸구나”
좀 허무하기도 하고, 좀 안타깝기도 한 유머가 아닐수 없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절 하반절에 보면,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겉사람은 늙어 갑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직분자도, 겉사람은 늙어 갑니다.
하지만, 꽃이 시들고,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듯이.... 겉사람이 낡아 질 때, 비로서, 복음의 열매를 그지라에 훌륭하게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꽃이 목적이 아니라 열매가 목적입니다.
아무리 사과꽃이 아름답다고 해도, 사과가 달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젊음 자체는 과정입니다.
인생의 열매가 없는 젊음은, 허송세월한 젊음이 아니겠습니까?
믿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하나도 남가지 못했다면,
또한 믿음의 성숙해 지지 못하고,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성장하는 것이 없다면,
젊어도 소용이 없는 것습니다. 젊음 그 자체는 아무 자랑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쓴, 사도바울은, 젊음의 꽃이, 활짝 핀 삶을 살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활짝 펴서 만개하려고 노력 하였던 사람입니다.
더 멋있는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하여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잡아서 옥에 넣을 정도로,
앞뒤 안가리고 살아갔습니다.
업적을 남기고, 이름을 남기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기 위하여,
세상의 열매를 위하여 살아갔던 사람이, 젊은 날의 사도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울아...사울아...어찌하여 나를 박해 하느냐?”
사울이 깜짝 놀라서 대답합니다. “누구 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 니라”
사도바울은 그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원을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볼수 없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후로 사도바울은 바뀌어 졋습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업적, 보이는 권력, 보이는 영화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쫓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겉사람은, 점점 낡아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말했을 수 있습니다.
“바울..왜 그렇게 멋없이 살아?”
“바울..똑 같이 늙어 가는데, 세상의 열락을 쫓으면서 살아야지.”
하지만, 사도바울은, 세상에서 낡아지는 것에 대하여, 낙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 지고,
속사람이, 믿음의 열매로 꽉꽉 들어차고
속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쓰는 것을, 더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아침, 그 지역 병원으로부터 긴급한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 목사님 이지요? 우리 병원에 ‘펠릭스 리치’라는 환자가 상태가 매우 않좋아 졌습니다.죽기전에 교회 목사님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이 알겠다고 하고,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실에 가보니 한 환자가 힘들게 말을 시작합니다.
“목사님! 저의 삼촌도 목사님이었는데, 성경 말씀을 할 때마다 듣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가, 늘 저를 교회에 데려가려 했지만 전 일부러 가지 않았어요.
이제 저는 창조주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만날 준비가 전혀 않되어 있습니다. 저의 일생은 죄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하지요?”
목사님이 성경을 펴고, 회개와 용서와 구원에 대한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리치는 울면서 회개하고, 자기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낀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목사님이 ‘펠릭스 리치’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리치씨..당신을 위하여, 내일도 다시 오겠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놀랍게도, 금방 죽을줄 알았는데, 점점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젠 병원에서 퇴원해도 될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펠릭스 리치는, 그 다음 주일에, 예배시간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목사님, 이젠 제가 목사님을 만나기 위하여, 주일날 교회로 나오겠습니다.”
그 후로 8년 동안, 매주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리치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다 되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 대려 가셨구나...”
믿음이 깊어질수록, 영원을 볼수있게 됩니다.
영의 눈이 뜨일수록,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볼수 있게 됩니다.
잠깐 동안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더 나가서 하나님 앞에 설때를 생각하고, 복음의 열매를 알차게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성숙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합니다.
나는 겉사람 뿐만 아니라, 속사람도 성장하고 있습니까?
나는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번 사순절,
나의 영이 성장하고, 나 눈이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그래서 신령한 믿음의 사람으로 또한번 성장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