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갈 길 디모데후서 4장 7절 15절 마지막주일
2016.01.12 10:05:25 조회2481
디모데후서 4장 7절 15절 달려갈 길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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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하나님의 새피조물된 교회’ 라는 목표로, 한해동안 달려온 여정을 마무리하는
2015년을 마감하는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2015년 마지막 이라고 하니까 실감이 않납니다.
하지만 엄연이 이제, 2015년은 저물게 됩니다.
2015년 마지막 주일예배의 자리에 까지 오신, 이 자리에 계신, 한분한분께,
또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우리김포상도교회 성도로 이름을 올린
모든 믿음의 성도들에게
이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칭찬과 축하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한분한분은, 모두 주님 안에서 승리한 성도들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한분한분은, 모두 주님 안에서 상급을 면류관 예약한 성도들입니다.
옆에 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있으면,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이 있습니다.
성경 제일 끝에 말씀,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은 축복으로 끝을 맺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그럼 바로 그 앞에 말씀은 무엇이냐?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이 믿음이 항상 있어야 하겠습니다.
1. 금방 마지막이 옵니다.
개미네집 주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보았더니
허리 도 가늘 군 만지 면 부러지 리...
아무리 개미허리처럼 미모를 자랑하는 처녀도, 언젠가는 아주머니가 됩니다.
아무리 건강을 자랑하는 청년도, 언젠가는 아저씨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빠르게 아주머니가 되고, 너무나 빠르게 아저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우리 박옥자 장로님이 50대에는 새색시 처럼 이쁘고 아름다웠습니다만,
지금 않이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듯 60대 후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속히,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수 없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어떻게 믿음생활 하여야 하는가? 여러 가지로 중요한 권면을 하였는데,
“믿음의 아들, 디모데야, 너는 아직 젊고 청년 같지만,”
“나는 달려갈길을 마쳤다.” 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을 뒤집어 보면, “너도, 나처럼, 달려갈 길을 마칠때가 곧 온다”고 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2015년 시작할 때, 정신없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계획도 다 세우지 못하고, 시작을 했는데
언제 흘러갔는지, 2015년이 다 가고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것하고 저것하고, 제고, 계획하다 보면,
어드듯 훌쩍, 예수님이 가까이 와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스스로,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세상사람들은 너무 자기 일에 매몰되어 살아가서 그런지,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사람이 많지 않는것 같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나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천국잔치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큰 잔치를 준비하고, 잔치 시간이 되자, 청하였던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럴때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나는 밭을 샀습니다.
나를 소를 샀습니다.
나는 장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못가겠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쿨하게 대답합니다. 시원스럽게 대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그만두고, 다른 사람을 데려와서 내 집을 채워라..”
그러면서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우리는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시간표가 나를 기준으로 맞추어 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기준으로 맞추어 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시간은 예수님 오시기 전은 BC, 예수님 오시고 난 후 AD로 표시하지요.
BC는 영어로 비포 크라이스트...예수님 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학생이, 그럼 AD는 무슨말에 준말입니까? 애프터 데스, 죽음 후라는 뜻입니까? 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AD는 라틴어로, 아노 도미니... 즉 ‘주님의 해’ 라는 뜻이지요..
세상에 살아가다 보니, 잊어버릴때가 많습니다만, 예수님이 시간에 기중비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올때도 내맘대로 온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이세상에 보내어 주셔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때도 내맘대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나는 순종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올때도 예수님 뜻대로 왔고,
갈때도 예수님 뜻대로 가기에,
이 세상에서 살아갈때도, 예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면~~~100점 만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셔도, 내 지혜, 내 판단을 앞세울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만,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내 뜻대로 하겠습니다.’
이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이렇게 내뜻대로 생활할 때,
예수님께서 오라고 부르십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내 앞에 속히 오라”
그러면, 그때도 “왜 벌써 나를 부르십니까? 예수님은 나를 부르시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으니,
예수님께서 불러도, 조금 있다 갈테니까, 그런줄 아십시요.” 요렇게 될수 있만 있으면 좋겠지만,
기준은 내가 아니지요? 예수님이 기준 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는데, 않가겠다고 해서 안갈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준비가 덜 된체로, 예수님께 앞에 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언제 부르셔도, ‘아멘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 그리고 예수님을 맞이하려고,
열심히 준비하며 생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말씀 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러면서 디모데를 향하여 의미심장한 명령을 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예수님 앞에 가보니,
어떤 사람은, 급하게 짓다가 만, 짚으로 된 집이 덩그렇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은 다 지었습니다. 그런데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곧 불시험이 있을때, 짚으로 된 집은 홀랑 타버립니다.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집도 홀랑 타버립니다.
하지만 어떤 성도는 순종과 헌신과 믿음으로 든든히 세워져 있는 집이 있습니다.
어떤 테스트에도 끄뜩이 없습니다.
너무너무 튼튼하고, 너무너무 아릅니다.
자 이 집이 곧, 네가 천국에서 살 집이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3장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 중간기입니다.
본향을 향하여 가는 임시적인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면류관과 영원한 상급을 예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임시적이고, 없어지는 것을 예비하고 착각하여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임시적입니다.
지식...임시적입니다.
돈...임시적입니다. 스티잡스도 죽을때, 자기 재산가지고 간것 아니지요. 다 내려 놓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35 에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그때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다릴때, 천사들이 구원의 표를 검사하겠지요.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떡 있습니까?
예수님이 주신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까?
놀랍게도, 세상에서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영원한 생명의 떡, 영생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12:2 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아이고, 분명히 구원의 표를 받긴 받았는데, 주머니에 넣어 놓은것 같은데, 주머니에 없습니다...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일 없습네다. 구원의 표가 없는 사람은, 날래날래 저쪽으로 서시라요”
멸망의 줄에 서서, 부끄러움과 말할수 없는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도 그날에는 생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올 한해, 경제 10대 뉴스, 스포츠 10대 뉴스들이 있는데,
올 한해, 나의 믿음의 10대 뉴스는 무엇입니까?
더 나가서, 예수님 받은 칭찬, 상급의 10대 뉴스는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디모데 앞에서 믿음의 10대 뉴스를 꼽아 보았더니 좋은 뉴스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뉴스, 디모데야. 내가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였는데, 이정도 하면, 분명히 예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실것 같구나...
하지만 않좋은 10대 뉴스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며, 심히 나를 대적하였으니, 너도 그를 주의 하라..
예수님께서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그에게 갚을 것이다.
우리교회도 10대 뉴스를 꽆아 보면, 올 한해는 좋은일, 은혜충만한 일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좋은 믿음의 10대 뉴스를, 많이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여건이 항상 좋을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조건이란, 천국에서 맞이하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는 항상 복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적이 처들어 올때가 있습니다.
싸우려고 하는데, 일기가 좋지 않아서, 힘이 들때가 있습니다.
무기가 부족하고, 인원이 부족하여 힘겨운 싸움을 할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올한해 믿음의 생활을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일이 생기기도 하고,
않좋은 조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십자가 군기 높이 들고,
믿음으로 달려갈때
우리 김포상도교회는, 승리하며 오늘 이 자리에 잘 마무리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애석하게도, 주위 어떤 교회는, 이단 때문에 힘겨운 악전고투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는 믿음의 파선한 자가 생겨서 교회가 나누어 지기도 하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사탄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시험에 빠져서 힘겨운 싸움을 하기도 하고
오늘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절대로, 쉬운길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1서 4:4 에는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한1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 순종하며 나가는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승리하도록 인도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2015년 한해동안, 선한싸움 잘 싸우고, 믿음의 여정을 잘 마무리 하게된, 모든 성도님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와 축하를 드립니다.
한 해의 마지막은, 교훈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김포상도교 성도들은 사도바울의 믿음의 본받아서
의의 면류관을 쓰기 위하여,
항상 복음의 길을 달려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