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고백 시편 119편 66절 72절
2015.10.12 10:49:04 조회2724
시편 119편 66절 72절 고난의 고백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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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진정한 축복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틀릴 것입니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바라는 것을 얻게 된다면, 그것이 축복이 아니겠느냐? 막연히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세계의 가장 큰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오래오래 장수하였으면 좋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는 것, 또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내게는, 천천의 금은 보다 좋으 니이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골드바, 인기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중국이 골드바를 많이 사들인다고 하지요.
경제상황이 불투명하고 어려우면, 사람들은 안전자산에 투자하게 됩니다.
금은, 어디가지 않습니다.
계속하여서 금은 금 그대로 있지요
그래서 세계경제가 어려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요즈음, 골드바를 구입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을 보니까, 천천의 금 은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가치있고, 더 귀하고, 더 좋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니님의 말씀에는 귀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문자적으로 생각합니다.
글자이고, 또 기록된 문서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4:12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의 특징은,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며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케냐에 가면, 고로고초 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곽희문 선교사...평신도 선교사입니다. 영어학원을 하던, 곽희문씨가 굳네이버스에 프로그램에 참여하여서, 케냐에 고로고초 라는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입구에 가보니, 쓰레기가 가득한데, 아이들이 그곳에 놀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뒤지면서 먹을 꺼리를 찾아고,
쓰레기를 뒤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불행하고, 나는 한국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케냐에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불행 그 이상이고,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최악이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쓰레기 더미에서 놀다가, 무엇인가를 주워서, 곽희문 씨에게 웃으면서 건네 줍니다.
아이가 건내 주는 것을 마다할수 없어서, 받아 보았더니, 눈알이었던 것입니다.
놀라기도 뭐하고, 버리기도 뭐하고, 엉겹결에 주머니에 넣고, 돌아와서 보았더니,
사람의 눈입니다. 어린아이의 눈 입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고, 내가 이곳의 검은슬픔을 걷어내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어렵게 컨테이너 박스를 구해다가, 유치원을 만들었습니다. 말이 유치원이지, 유치원이 아닙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아이들이 놀지 않도록, 불러 모우는 움막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엘토토, 엘은 하나님, 토토는 케냐 말로, 어린이..
하나님의 어린이 라는 이름으로, 그 컨테이너 유치원을 ‘엘토토’ 라고 불렀습니다.
곽희문 선교사는 그 곳에서 살아가면 한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것을 책으로 썼는데, 책 제목이 “복음이면 충분 합니다.”
사실 검은 슬픔을, 한 사람이 어떻게, 다 걷어 낼수 있겠습니까?
케냐의 그 거대한 고난을, 한 사람이 어떻게 다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말씀대로 어린이를 대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이 있어, 그들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 소박하고, 겸손한 믿음의 자세로, 케냐의 컨테이너, 엘토토 유치원에서 살아갔습니다.
지금은 그 유치원이 소문이 나서, 우리나라 정부에서 직접 지원을 하고,
케냐정부, 아프리카 전체 선교사들에, 큰 동기를 부여하는, 유명한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요즈음은 엘토토 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성경공부를 하는, ‘북음학교’가 6개 까지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민일보에서는, 이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면서, 제목을 달았습니다. “역경의 열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역경속에서도 열매가 맺혀 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 67절에는 말씀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하기 전, 어려움이 오기 전에는, 내가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내 믿음이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나 중심적으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부인합니다.
하지만 고난을 겪으면서, 바뀌게 됩니다.
괴로움의 자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되세기게 됩니다.
옛날에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참지 못합니다. 그냥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고난을 받고 성숙하게 되면, 미소를 짓게 됩니다. 믿음의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하여 연단을 받고,
깊은 자리에게 까지, 가 보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끝없는, 깊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 생활속에서 하니님의 말씀을 만나야 합니다.
7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어떤 선생님이, 바보학교에 부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바보들인가?하여, 테스트를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계란’을 꺼내들고, 선생님이 질문을 합니다. “자 이것이 무엇인지 대답해 보세요”
네, 선생님, 호박입니다.
네, 선생님, 사과입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대답합니다. “네 선생님, 계란입니다.”
선생님이 깜짝놀랐습니다. “어떻게 맞추었지...?”
그러자 옆에있던 학생이 선생님에게 고자질 해 줍니다. \"선생님, 제는, 과외 받았어요”
공부에는 과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는, 과외가 없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는 유익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니, 고생한 것이 무슨 유익이 되는 것입니까?
고생 안하는 것이 유익이 아닙니까?
고난 안당하는 사람을 봅시다.
어제 ytn 뉴스를 보니까, 북한에서 70돌 기념 군사 퍼레이드를 하는데, 20만명이 동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20만명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뉴스를 보니까, 퍼레이드 하는 사람들 중에 웃는 사람을 한사람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다 얼굴은 찌푸리고 있습니다.
당연하지요....잘못하면 벌을 받습니다. 잘못하면, 총살을 당합니다.
죽지못해서, 정신없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걸어 갑니다.
그런데 딱 한사람, 웃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김정은입니다.
고생한번 안하고, 고난을 안 당한하고, 갑자기, ‘지도자 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짓을 하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고...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불행을 끼칩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주위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끼칩니다.
다윗이 만약, 고난당하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얼마나 갔겠습니까?
하지만, 온갖 고난을 다 당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괴로움 속에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겪은 고난은, 다른 고난과 차이점이 있었는데,
고난 당할 때 마다,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절히 갈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이 괴로움으로만 끝나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아니요, 죄악세상의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
사탄의 올무,
죄악의 댓가가 가져오는 고난은, 하나도 얻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괴로움 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을 틀립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고난받을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깊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때 유명한 농담 아닌 농담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 유명한 목사님들은, 모두다, 죽을 병에 안걸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폐렴에, 각종 중병에 걸려서, 침상에서 죽을날만 기다리면서,
“하나님 한번만 살려 주시면, 이제는 하나님 영광만 위하여 살겠습니다.
그러고 기도하다가, 생명이 연장되면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큰목회 하려면, 최소한 폐렴은 기본이다.....그런 말이 있었습니다.
고난은 괴로움의 자리가 아니라, 믿음이 깊어지는 자리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자리요,
더 나가서,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지난 여름, 너무나 조용하였습니다.
바람도 불지 않고, 태풍도 오지도 않고,
해뼡만 쨍쨍 비치고,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태풍이 않오면, 얼마나 좋습니다.
물바다가 되어, 벼가 물에 잠기고,
나무가 뽑히고,
도로가 무너지고, 이런 일이 없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지나고 보니까 아니었습니다.
비가 너무 않와서, 벌써부터 우리나라 일부지역에서는 제한급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태풍이 않왔으면, 계속 날씨가 좋았으면.....그것은 인간의 단편적이 생각이요,
세상의 이치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단편적으로 피하면 나에게 유익할것 같지만, 아닙니다.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내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한 아들이, 나옵니다.
전에는 얼마나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쓰면서, 불효를 저질러도, 그것이 죄 인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고난을 받으면서, 돌이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속에 들어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중에 회개하게 되었고, 고난중에 마음이 낮아지게 되어,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멋있는 말을 합니다. “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만약 그가 고난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멋있는 고백을 할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그가 고난 가운데 돌이키지 않았다면, 그는 효도하는 아들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집에 남아있는 맞아들은, 아직도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아들에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71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또,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오늘 내가 가는 길은 사실 나도 잘 모릅니다.
내일 일은 커녕, 한치 앞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면 잘 될지....
또 나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가슴답답 할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답이 않보인다..그래서 영어로, 노... 한글로 답..
노답 이다... 요즈음 인터넷에서 답이 않보여서 답답할 때, 노답이다. 그런답니다.
맞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노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 에는 말슴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저는 ‘노답’이라고 답답해 하는 사람에게, ‘아멘답’이라고 말해 주시고 싶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역경 속에서, 결실을 하게 합니다.
고난 가운데, 소망을 이루어 가게 합니다.
김포상도교회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한주간 동안도,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고난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체험하고 고백하는
은혜의 한주간으로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