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목자 요한복음 10장 26절 28절 대강절2
2016.01.12 09:54:21 조회2182
요한복음 10장 26절 28절 양의 목자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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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목적이 구체적이고 뚜렷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목자가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양의 목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의 목자....
양이 어떻길레 양의 목자가 되시려 하는가?
오늘은 양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양은 목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고 마태복음 9장 36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무리를 보시고 뿔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세상의 사람들을 보니까, 마치 목자없는 양과 같습니다.
고생하고 기진하며 죽음의 길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번 강원도 양떼 목장에 가서, 양을 자세히 살펴본적이 있습니다.
양떼 목장 양의 모습을 교회 기타게시판에도 올려 놓았습니다만...
처음 양을 보면,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양이구나...
왜 이렇게 어리섞고 교활하지 못할까?
가만히 보면, 개하고도 틀립니다. 고양이 하고도 틀립니다.
고양이는 눈치가 빠르고 몸놀림이 빠릅니다.
탁~~ 움직이면, 뻘써 알아차리고 달아나 버립니다.
개는 꼬리치면서 주인의 사랑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은, 몸이 날쌔지도 못합니다. 사람 보다가도 더 느립니다. 사람이 쫓아가면 금방 양을 잡을수 있습니다.
또 양은 꼬리칠 꼬리가 없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받고....이런거 없습니다. 그냥 매~~~ 하면서 걸어다닐 뿐입니다.
목자가 돌보지 않으면, 그냥 혼자서, 숲속에 있다면,
맷돼지도 아니고, 살쾡이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한주일도 살지 못하고 죽을수 밖에 없는 가축이, 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마치 양과 같이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스스로 똑똑한척 하여도, 뛰는놈 위에, 나는놈이 있습니다.
제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고 하는데,
스스로는 똑똑하고, 스스로는 지혜롭게 생각을 해도, 결국에는 죄악의 수렁에 빠질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제가 부목사 시절, 상도동에, 어떤 할머니에게 심방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갈 때 마다, 이 할머니께서 얼마나 퉁명스럽게 나를 대하시는지...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오래 살아서 뭐해요.. 빨리 죽어야, 자식들이 편하지...”
\"할머니 예수님 믿고 천국가야 되지요..“
“글세...모르겠어요”
그런데, 얼마후에, 누가 알려줘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찾아갔더니, 눈물을 글썽글썽 하면서, 이 할머니가 저의 손을 꼭 잡습니다.
“목사님, 집에 돌아가고 싶어.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않되는데.... 날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물끄러미 보았더니, 그 기개, 그 자신감은, 다 어디가고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빨리 죽어야 되겠다고 하더니만,
죽으면 않되겠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말씀합니다.
그렇게 자신있어 하던, 자존심, 자기확신은 어디로 가고 없습니다.
우리는 어리섞은 자기 확신속에 살아갈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 할때는 이것이 제일입니다.
내가 볼때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최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때는, 정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죄악세상속에서, 방황하는 것으로 밖에는 않보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말씀 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양은 자기목자를 따라 갑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왜 그 길은 도움이 되지 않고,
그길로 가면 않된다고 하는데도,
끝까지 듣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굽히지 않고, 그 길로 가느냐?
예수님께서는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래서 목자를 멀리하고, 자기 맘대로 갈 때,
절벽으로 굴러 떨러집니다.
산골짜기에 가서, 울며울며 헤매다가 늑대에 물려서 죽습니다.
어릴 때, 교회사택에서 닭은 기른기억이 납니다.
닭을 길러 보신분들은 알지만, 밤이 되면, 닭들을 닭집에 다 넣어 놓아야 합니다.
않그러면, 큰일 납니다.
그런데 닭 가운데, 흰장닭 한 마리가 끝까지 속을 썩입니다.
다른 닭들은 대충 먹이로 유인을 하면, 알아서 닭집으로 들어옵니다.
심지어는 제가 날쎄게...이래뵈도 어릴때는 제가 상당이 날쌨습니다...
동생들 하고 합동작전을 펼쳐서, 닭을 몰아서... 잡아 넣으면..됩니다.
그런데 흰장닭은 얼마나 고집이 대단하진....끝까지 도망가버리고, 닭장에 않들어가고..
결국은 한날, 잡다가 잡다가 지쳐서, 놓아 두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닭 모이를 주는데,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몇일후에 보니까, 앞에 고랑 사이에서, 목이 물어 뜯겨서 죽은체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흰장닭이 아무리 쌔도, 쪽재비를 어떻게 이길수 있겠습니까?
양이 목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목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양이, 죄악에 수렁에 빠지지 않고,
양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고,
양이 영생하기 위한,
양의 선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양은 무리를 지어 갑니다.
옛날에 고집쎈 사람과 똑똑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고집쎈 사람은 4×7=27 이라고 주장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4×7=28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참을 다투던 둘은, 답답한 나머지, 마을원님에게 찾아가서, 시비를 가리기로 하였습니다.
원님이 이야기를 듣고는, 고집쎈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4×7=27이라 말하였느냐?\"
\"네....당연한 사실을 말했는데, 자꾸 이 사람이 28아라고 우기지 뭡니까?\"
고을원님이 선고를 하였습니다.
\"27이라 답한 사람은 풀어주고, 28이라 답한 사람은 곤장을 쳐라!\"
고집쎈 사람은 좋아하며 돌아갔고,
똑똑한 사람은 곤장을 맞게 되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억울해서 원님에게 하소연 합니다.
그러자 원님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4×7=27이라고 말하는, 아둔한 사람과 싸운 네가... 더 어리석은 사람 이니라!\"
사람만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양도 지혜로운 양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양은 어떤 양인가? 오늘말씀 27절에 말씀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지혜로운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내 양인지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 위에 있는, 올해, 교회표어 플랭카드에도 양사진이 있습니다만,
양은 무리행동을 합니다.
무리를 지어서, 목자를 따라갑니다.
앞에서 목자가 가면, 지혜로운 양들은 목자 인지 압니다.
그래서 목자가 휫파람을 불고, 목자가 소리를 내면,
목자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는 양들이 있습니다.
다른양들은 지금 목자를 따라서 푸른초장으로 가는데,꼭 뒤쳐저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양들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 저는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서울지역 교회연합 헨델의 메시야 전곡을 듣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헨델의 메시야는 총 53곡에 이르고, 전체를 들으려며, 1시간 30분이 넘는 대곡입니다.
특히 유명한 곡은 44번째 곡인, 할렐루야 이지요.
런던에서 연주할 때, 조지2세가, 일어서서, 들었다고 하여, 특히 유명합니다.
왕의 왕, 주의 주, 예수님께서 친히 다스리린다.. 라는 노래 가사를 들을 때,
조지2세는, 너무나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아서, 왕관을 벗고, 길입해서, 할렐루야,가 끝날 때 까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 할렐루야가 시작되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정중하게 찬양곡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제일앞쪽 제일 첫번째자리...그러니까..A일번 자리, 제가 바로 그뒷자리인 A6번 자리에 있었는데,
세종문화회관 제일 첫 번째 자리. A1번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리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5백명이 넘는 찬양대가, 왕의 왕, 주의 주, 예수님이 친히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찬양을 하고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딱 한사람이,
그것도 제일 첫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할렐루야 노래가 끝날 때 까지, 혼자서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물끄러미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천국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 아니겠는가?
용기라는 것은 앞장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뒤쳐져서,
죄악의 수렁에 빠져지게 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멸망이지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지혜로운 양은, 목자를 알아차립니다.
지혜로운 양은, 목자를 따릅니다.
하지만, 지혜없는 양은, 자기 목자을 모르고, 다른 목자를 따라갑니다.
새해에는 성경공부 교재를 선정하여, 성경공부를 하려고 준비중입니다만,
성경공부 좋다고, 아무 성경공부나 하면 되느냐? 아닙니다.
새문한 교회에서, 장로교 성경 세미나를 합니다.
모르고 따라가서, 성경공부 했더니, 용이 어떻고 신천신지가 어떻고...열심히 배웁니다.
교회에 있는 목사들은 다 용이고, 없어져야 한다고.... 열심히 배웁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드리고, 오후찬양예배때 성경특강 듣고,
수요예배때, 성서주해 공부하고,
금요기도회때, 기도훈련 받고, 집에가서 성경통독 하고, 매일 기도생활만 잘 해도,
신앙생활하는데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무리에서 벗어나서, 다른곳에 가서, 다른 꼴을 먹습니다. 다른 샘물을 마십니다.
다른곳에 가서, 성경공부 하고
다른곳에 가서, 기도회에 참석을 합니다.
얼마전에는 파주쪽에서, 금식기도원이 유명해진 적이 있습니다.
금식기도만 하면, 모든것이 다 해결됩니다.
교회에서 않되는 것도, 우리한테 와서 금식기도만 하면, 일주일이면, 모든 문제가 싹~다 해결 됩니다.
기도가 그렇게 간단하고 인스턴트적인 것이라면,
왜 예수님께서 새벽마다,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시고
바쁜 와중에도, 따로 시간을 내어, 그렇게 기도하셨겠습니까?
구원의 무리를 떠나면 않됩니다.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안전한 양의 무리에 있을 때, 은혜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이제 겨울이 되면서, 여름철새는 떠나고, 겨울철새가 도착하는데
가만히 보면, 철새들은 무리를 지어 날아갑니다.
질서정연하게 V자나 한줄로, 대형을 이루어서 날아갑니다.
바쁘다고 결코 나혼자, 휙~ 가는 법이 없습니다.
상식이지만, 무리를 지어, 대형을 이룰때,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을수 있습니다.
또, 한 마리가 날 때 보다, 저항을 적게 받아, 힘들이지 않고, 날아갈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에 보면, 사도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구원받은 허다 큰 무리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성도들을 인도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도들은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무리를 낙오됨 없이, 그속에 있을 때, 무사히 천국에 도착할수 있습니다.
자 그렇게 살아가는, 김포상도교회 모든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