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
2015.12.04 11:17:20 조회2093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 십자가의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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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달은 ‘영적추수의 달’의 달로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 추수하시는, 알곡영혼이 될수 있느냐?
겸손하고 성숙한 믿음, 감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또, 명품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주제가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슨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켜 주신 길이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좁은길 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찾는 사람들이 적은 길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로 가야, 천국에 도착할수 있습니다.
1. 넓은길은 보암직 하지만 선악과와 같습니다.
겉은 멀정하지만 독사과 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동화에 나오지요?
마녀가 백설공주에게 찾아와서 독사과를 줍니다.
그것도 모르고, 백설공주는 겉모양만 보고, 맛있어 보이니까, 좋아하며 그 독사과를 받아 먹습니다.
한입 먹는 순간, 사과의 단 맛 속에 들어있는 독이, 백설공주의 몸에 퍼지면서, 백설공주가 잠이들게 됩니다.
겉은 멀쩡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치명적인 독은, 동화속에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보암직 하고 먹음직도 하고, 겉은 너무너무 화려하지만 그 속에는 죄악의 독, 멸망의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설탕 !!!
겉은 너무나 순수하게 보입니다. 하얀 순백색 가루....맛도 좋습니다. 하지만 설탕을 많이 먹으면, 성인병에 걸립니다. 이빨이 상합니다.
음식 뿐이겠습니까?
생활할 때, 순간순간, 우리는 마치 독사과를 받아드는것 같은, 긴장감이 필요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겉모양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합니다.
뱀이 주는 선악과가 그렇지요. 이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선악도 알게되고,
생활이 업그레이드 되고, 2%, 3% 안에드는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유혹에 빠지는 순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듯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넓은길은 보기가 좋습니다.
다니기도 편합니다. 하지만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 순식간에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8 에는 말씀합니다.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알곡영혼을 추수하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넓은길로 들어서고, 선악과를 따먹듯 내 맘대로 살아가면, 알곡영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에는 어리섞은 한 아들에 대하여 말씀이 나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당당히 말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살아있지만, 어째든 그 유산을 나에게 줄것이니, 지금 주세요”
그리고는 아버지의 유산을 빼앗듯이, 받아서 먼나라로 관광을 갑니다.
요즈음도 해외에 나가서, 도박장에서, 전재산을 탕진하는 뉴스가 빠지지 않습니다만,
이 아들도 허랑방탕하게 세상열락을 쫓아서 재산을 탕진하니까, 곧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 아들은 오갈데가 없는 몸이, 하는 수 없이 돼지 치기가 됩니다.
또, 너무나 배가고파, 돼지가 먹는 쥐염열매를, 훔처먹으며 배를 채우게 됩니다.
자, 돼지,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냄새나고 불결한 동물로 생각 하지요.
하지만 유대인들은, 불결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정한 동물로 규정을 짓습니다.
그러니까 부정한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한다는 것은, 이미 자존심은 커녕 신앙의 지조도 버린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더하여, 사람이, 동물이 먹는 사료를 먹는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도 망측한 장면이 아닐수 없습니다만,
그런데 이 아들은 그냥 사료가 아닙니다. 부정한 돼지가 먹는 사료를, 움쳐먹는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참 답답하고 어리석은 말로가 아닐수 없습니다.
넓은길의 끝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 넓은길로 달려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지,
가지가 줄기에서 떨어져서 무엇으로 열매를 맺을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급해주시는 말씀과 권면과 인도해주심을 받지않고,
내 맘대로 보암직한것을 하고, 먹음직한 것을 먹고,
그러면 그러면, 복음의 열매가 아니라 불순종의 열매, 죄악의 열매를 맺을수 밖에 없습니다.
자 그런 열매를,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알곡창고에 거두어 들이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히브리서 6:8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고린도후서 13:5 에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어떻게 보면,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것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바로 있는가 없는가?
내가 예수님 말씀대로 좁은길로 가고 있느냐?없느냐?
스스로 시험하고, 스스로 확증하고, 살펴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자동차를 훔쳐서, 붙잡혔습니다.
경찰이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남의 차를 훔쳤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억울한듯, 대답합니다.
\"훔친 게 아닙니다요.
묘지앞에 차가 서 있길레, 차 임자가 죽은 줄 알았다니까요!!!\"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라도 않지, 말은 너무너무 잘합니다.
하지만 남들이 들을땐 순, 억지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알곡영혼은, 넓은길로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2. 십자가의 길은 좁지만 생명의 길입니다.
14절 말씀 보겠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신약성경에 보면, 생명의 길을 갔던 사람...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오늘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천막을 만들고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데, 사도바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바울사도를 열심히 돕기로 하였습니다.
천막 일을 하면, 천막에도 때가 있습니다.
봄철이면, 비가 오는 여름을 대비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가야, 장사가 잘 되지 않겠습니까?
또 가을에는 눈이 오는 겨울을 대비하기 위하여 북쪽으로 가야, 장사가 잘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은, 바울과 함께 다니며, 바울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천막일을 하지만, 천막과는 관계없이 다닙니다. 전도하기 위하여서 데살로니가를 갔다가, 아덴에 갔다가 고린도에 갔다가..
천막의 때와는 관계없이 전도하러 다닙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을 따라가면, 천막하는 사람으로써는 참 난감합니다.
그런데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분는 그때부터 바울사도를 돕고, 바울사도와 함께 다니고, 바울사도와 동역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디모데후서, 고린도전서, 로마서에, 너희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라....
성경에 그 이름이 거룩하게 기록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브리스길리와 아굴라는, 세상에서는 천막장이 가죽장사여서 천대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초대교회에서는 반대입니다. 사도바울을 돕는, 존경받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여차 하면, 30대 지나갑니다.
아차합니다. 40대 지나갑니다.
어 그러면 50이고, 벌써 60 70 대가 됩니다.
하지만, 바쁘지도 않는데, 정신없이 살다보면, 하나 한것 없이 금방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 한것 없이, 금방 시간이 흘러, 예수님 앞에 셈을 할때가 오는데,
어떤 분은, 생명의 길을 갔습니다. 훌륭한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오늘날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김연아 선수, 금메달 땃습니다. 뭐 그까지 피겨스케이팅...쯤이야.
아무개 성도가, 안수집사님 되셨습니다. 권사님 되셨습니다....뭐, 그까지 안수집사, 권사쯤이야...아닙니다.
예수님 께서 주시는 안수집사님 권사님, 절대로 작은 자리가 아닙니다. 쉬운자리가 아닙니다.
그까짓 천국가는거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손바닥 뒤집듯,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천국 들어갈수 있다, 그렇게 쉽게 말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남은 구원받고, 나는 도리어 버린바 될까봐 항상 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9:27 말씀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사도방울은 일평생을 갖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복음전하며 믿음의 삶을 산 후에야, 나중에 디모데에게 “이제 나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을 확신한다”고 기뻐하였습니다.
좁은 문입니다. 절대로 넓지 않습니다.
생명의 문이기 때문에, 구원의 문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마태복음 19장, 마가복음10장 누가복음18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큰 면류관, 황금같은 의의 면류관을 바라지는 못하더라도,
구원의 면류관,
한가지 열매만 잘 맺어도, 그 한가지로 인하여 칭찬받습니다.
이것저것 벌려놓고 한가지도 마무리 못했던 마르다 보다가,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듣는 일, 그 한가지라도 잘 할 때,
마리아는 그 한가지 일로 인하여서 예수님께 칭찬 받았습니다.
나에게 시간 주셨을 때, 그 시간 허송하여 없어지기 전에, 한가지 사명이라도
확실하게 붙잡고 살아가면, 그 한가지 사명으로 인하여서도, 예수님께서는 돌아봐 주실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지난 추수감사절 때, 우리교회는 과일 한개씩, 가지고 나옵시다.
어떤 분은, 한상자, 어떤 분은 한개 하니까, 큰 호박 하나....
그런데 에게~~~ 목사님 사과하나 달랑, 귤 하나 달랑....남사스러워서, 아예 안가지고 왔습니다.
아닙니다. 한 가지라, 결실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복음의 열매가 있다면, 그것 하나로 인하여서, 칭찬의 길이 열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일 1개씩 가지고 와서, 내가 직접 감사단을 꾸민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 믿음의 길로 간다는 것은, 이렇듯 순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좁은길입니다.
광야 같은 길입니다.
척박한 길입니다.
그 길로 가면, 않될거 같고, 손해볼것 같지만, 아닙니다.
몇년 가지 않아 뒤바뀝니다.
좋은길로 갔던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홀랑 다타버리고, 동굴에서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반대입니다. 광야를 선택하였더니, 축복받는 자리가 되어서, 양과 낙타와 염소가 크게 번창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겉모양은 좁은길입니다.
겉모양만 볼 때,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 생명이 있고,
그곳에 은혜가 있고
그곳에 인도하심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넒은길은 보기는 좋지만, 그곳에는 열매가 아니라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보기는 좁지만, 아닙니다. 그곳에는 생명이 있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인생이되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알곡 영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