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성숙한 믿음 시편 23편 1절 6절
2015.11.13 16:41:40 조회2339
시편 23편 1절 6절 감사는 성숙한 믿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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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보니까
새우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드라마도 있나? 제목을 보았더니,
그 드라마는, “대하드라마” 랍니다.
대하철도 지나고, 꽃개철도 지나고, 요즈음은 꼴뚜기와 싱싱한 바다회 그리고 동해에는 , 꽃개가 아니라, 홍개철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시기에는, 그 시기를 대표하는 의미있는 이름이 붙혀집니다.
이제 11월 달이 시작되었는데, 11월 달은, 감사의 달의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특히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벌써 한해가 지나가고 있습니까? 라고 놀라는 분이 있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엄연히 이제는 한해를 마무리 하는 계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마무리 할때는, 마무리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해야 할때, 이제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계절을 잘못 보내고 있는 것이지요?
1.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1절에서 3절을 보면, “인도하시는 도다, 인도하시는도다”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왕은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목자와 같이 나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어떻게 하셨느냐?
인도하셨습니다.
인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왕은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것입니다.
현대에는 정착생활이다. 유목민이다. 이런 구분이 사실상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적 배경속에서 살아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유목민이라면, 양을 치면서, 움직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않됩니다. 양들이 그곳에 풀을 다 뜯어 먹었는데도,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양들이 굶어 죽게 됩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적절한 때가 되면, 미련없이 훌훌털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새 땅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량적인 감사 보다는, 인도하시는 생활, 그 자체 때문에 감격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정량적인 접근에 더 친숙해 집니다.
똑같은 논에서, 올해는, 벼가 더 많이 나왔습니다. 아니면, 덜 나왔습니다.
이 정량적인 결과에, 호불가 갈리고, 감사와 아쉬움이 뚜렷하게 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양을 치면서 살아가는 생활은 다릅니다.
훌훌털고 일어나서 가다가, 곰을 만났습니다. 양들이 죽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괴롭습니다.
그런데 새땅에 갔더니, 양들이 새끼를 놓았습니다. 더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양을 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일 일을 알수 없습니다.
지금 않좋아도, 그것이 변하여, 감사의 제목으로 바뀔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다윗왕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이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2절 말씀 보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구마가 두가마 나올것이, 세가마 나와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속에서 나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주시고,
생활속에서 나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는, 그 생활, 그 여정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3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잘못하면, 주늑들고, 의기소침해지고, 상처받을 뻔한 나를, 그때 그때 마다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섭리하여 주셔서,
내 영혼이 소생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윗의 감사는 점점 확대 되어, 3절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의의길, 옳은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하고 감사하고 높혀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감사를, 깊히 주목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칼 쿠스타프 융 이라고 하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융은 사람의 심층적 내면을 연구하면서, 인성발달 4단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4단계를 거친다고, 융은 말합니다.
아동기, 청소년,성인기, 그리고 중년기, 노년기..
그런데 똑같이 성장하지만, 성숙한 사람이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아동기에는 자아가 성장해야 됩니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는, 외부를 향하여 자아가 성장해야 합니다.
중년기에는 내면을 향하여 자아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죽음을 넘어서 그 다음세계를 향하여 자아가 나아가야,
건강하고 행복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참 그런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년이 되어서도, 자기 내면을 탐색하고, 깊은 사색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중년기의 위기(미드 라이프 크리시스)에 봉착하게 된다고, 융은 이야기 하였습니다.
누가 그럽니다.
사람의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는 언제 입니까? 청년기, 중년기? 아니랍니다.
“철들때” 랍니다.
오늘 말씀에 다윗왕은,
어렵게 내가 왕이 되었으니, 세상 열락을 마음껏 누리고,
죽기전에 하고 싶은것, 끝까지 다 해보고 죽어야 되겠다. 이런 미성숙한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생 여정여정을 되돌아보고
내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로라”..그리고,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하였습니다.
열왕기 상하, 역대 상하를 보면, ‘누구누구 만큼 악했더라, 누구보다가 더 완악하였더라,’
나쁜 사람을 가르킬때, 비교 당하는 왕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억울할수 있습니다.
내가 그때, 한순간의 실수를 한것 가지고, 두고 두고,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하니,
나는 억을합니다.
하지만, 순간의 실수가 아니지요.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성숙하지 못하고,
저속한 욕심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다 보니,
그의 인생을 마무리 해야 할때, 마무리 할 것이 없습니다.
욕심이 이끄는데로 아무렇게나 살다보니
역사에는, 나쁜 사람을 가르킬때, 비교당하는 사람으로 기록되게 되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감사와 아쉬움도 사실은 너무나 작은 차이입니다.
똑같은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다윗왕은 감사의 시를 썻지만,
또 다른 왕은 죄악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의 시를 쓰고,
감사의 기회를 만들고,
감사의 생활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구체적이고 긍정적으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치면서 옮겨다니는 생활을 살았는데,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순례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순례자는,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나의 본향이 아닙니다. 내가 자리를 잡아야 할 터전도 아닙니다.
때가되면, 훌훌털고,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데로 출발해야 합니다.
자 이렇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면, 욕심과 아쉬움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뭔가 좀 부족한것 같고, 마음에 차지 않는것 같아도, 순례자는 곧 출발합니다.
그래서 괜찬습니다.
내가 좀 실수를 하고, 어떨땐 일이 않풀려도, 괜찬습니다. 순례자는 곧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가다보면, 곧 더 좋게 바뀔지 모릅니다.
그래서 홀가분 하게, 앞을 향하여, 순례자는, 걸어가고, 또 걸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니까,
다윗왕도 상당히 어려운 때가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
쉽게 표현하자면, 죽을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자 보통사람 같으면, 이 정도 이면, 감사가 아니라 원망이 나올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박복 합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고, 너무너무 인생이 힘이 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영어로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
자 그런 골짜기를...누가 행복해 하겠습니까?
감사의 상황이 아니라, 분명히 저주의 상황입니다.
그 상황을 정량적으로 본다면, 분명히 나쁜 상황이요, 않좋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순례자의 관점에서, 보면, 달라지게 됩니다.
그 골짜기를 지날 때, 물론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그 여정은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해 주시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통하여 나는 더 성숙하여지고, 믿음이 더욱 깊어 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내면과 인생을 깊이 성찰 할때,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는 사람,
인생에 성숙함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시편 119:71 에는 말씀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은총이 나와 함께하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침울해 지지 않고,
어려움 가운데 우울하게 되지 않고,
구체적으로 감사하는, 긍정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난 당하지 않고, 내 잘난 멋에 살아갔 더라면,
아직도 내가 최고인줄 알고,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살았을 텐데,
이제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 무릎꿇을 줄알고,
사망의 골짜기로 지나가도 낙심하거나 낙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5절 6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인터넷에 보니까... 우리나라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섬이 있다고 합니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는 섬이라?? 그 섬 이름이 무엇인가? 보았더니
“아마도” 아...마...도 라고 한답니다.
내가 앞으로, 잘 될수 있을까? 잘될 수도 있고, 않될 수도 있겠지요.
내가 하는 일이, 성공할수 있을까? 성공할수도 있고, 않될수도 있겠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불확실성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성공확률을 높이려고, 무한에 가까운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보니까? 다윗은 어디에서 온 자신감인지...
6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께서 내 평생토록 반드시...
어떻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확신, 할수 있습니까?
혹시 이 자리에, 이런 확신이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목사님...저는 평생에 반드시 무조건 잘됩니다.
목사님...저는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도와주셔서, 무소건 성공합니다.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다윗은, 온 몸으로 체득하였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 내려가 보니까...거기는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붙잡았고,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 그 체험은, 단순한 언어로 전달할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때 만난 하나님,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그 믿음, 그 신뢰는, 사람의 언어로 설명할수 있는 차원을 넘어 선 것입니다.
그저,....살아있는 믿음, 간증하는 믿음, 감사하는 믿음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 차원까지 가 보았기 때문에, 다윗은, 앞으로도, 아니 내 일평생 동안,
하나님은 반드시, 반듯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자신있게, 고백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번 들어도 무엇하겠습니까?
십자가 아래에 가서, 직접 예수님을 발에, 박힌 못을 만저보고...
십자가 아래에 가서, 직접 예수님의 못밖힌 손을 만져 볼때,
제자들은, 그 사랑, 은혜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일평생, 예수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감사의 믿음은, 확신의 믿음으로 연결 됩니다.
정량적 판단이 아니라, 순례자 살아갈 때,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반듯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며,
감사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