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없는 아홉 누가복음 17장 11절 19절
2015.11.13 16:38:18 조회2566
누가복음 17장 11절 19절 감사없는 아홉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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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천국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나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가보면, 천국에 대하여, 너무나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있는, 길과 시내물과 그 주위에 나무들과...또 형형색색 건축물, 심지어는 어떤 보석, 어떤 재료로 지어졌는지 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불교에는 지옥에 대하여 설명이 아주 자세하고 나옵니다.
어떤 지옥에, 어떤 형벌이 있고, 그곳에는 어떤 마귀고 있는지, 너무나 구체적으로 써 놓았습니다.
한번은 ‘아비지옥’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비’ 라는 발은, 산스크리트어, ‘아비시’ 란 말로, 그 뜻은, ‘고통의 간격이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휴식이 없이, 끝없는 고통이 있는 곳이 지옥이다.
그럼 그나마 좀 나은 지옥은 없는가? 글을 보았더니, 아귀들이 있는 곳이, 계중 덜하였습니다.
아귀들이 무엇이냐?
‘아귀’라는 마귀들인데, 입은 너무너무 큽니다. 그런데 목은 너무너무 가늡니다.
그러니까, 음식을 보는 족족 먹고 싶어서, 아귀다툼을 벌이지만, 그 음식을 차지해도, 목이 가늘어서, 그 음식을 삼킬수가 없습니다.
삼키지도 못하면서, 배가 고파서, 음식을 놓고, 죽자고 다투는 마귀들이 사는 곳이 , 바로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왜 이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오늘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가니까? 좋은 것만 듣습니다.
구원받는 길, 은혜받는 길, 축복받는 길,...
그러니까 좋은 것이, 당연한 것인양,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죄악과 멸망길도 분명히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않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고침받은 열명의 나병환자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나병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도 저주의 병중 하나입니다.
저는 손양원 목사님이 계셨던 여수 애향원에 가본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양성이 아니라, 음성 나병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염력이 없는 나병환자 이지요.
그곳에 도착하여서, 악수를 하는데, 손을 보니까. 손가락이 없습니다.
처음 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대화를 나누는데, 코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눈이 없습니다.
애향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제 마음속에, 혹시 이 자리에 나병환자가 앉았던 곳인데, 나한테 나병이 옮는게 아니야? 하는 께림직함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안전한, 음성 나환자들을 만나고서도,
또 약을 먹어서, 잘 치료가 된 분들을 보고서도 그러는데,
옛날에는 어떠 하였겠습니까?
자 저주받은 병, 나병에 걸릴 때, 세상에 부귀와 영화와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병에 걸리면, 즉시 마을에서 떠나서, 광야에서 살아가야 하며,
사람들이 멀리서 보이면, 즉시, “나는 부정합니다. 나는 부정합니다.”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나병 걸린것도 괴로운데, 내가 부정하다니...하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법입니다.
그런데 오늘말씀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곳에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사랑의 예수님, 어떤 병자도 고쳐주시는 예수님,
나병환자들은 곧, 계획을 짯습니다. 이번 기회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으니,
예수님이 지나가실때, 꼭 우리 병을 고쳐보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한사람이 망을 보는데, 드디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입니다. “자 이제 작전대로 하자...”
12절 13절 말씀을 보니까...멀리서서, 소리를 높혀서,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 나병환자들의 계획이었습니다.
자 우리가 생각하면, 예수님께 달려가서,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하면 않될까? 생각하는데,
아까전에 말씀드렸지요. 나병환자는 사람들을 보면, 건강한 사람이 돌아갈수 있도록, ‘나는 부정합니다. 나는 부정합니다.’소리를 쳐야 합니다.
만약 아무 이야기도 않하고, 건강한 사람과 접촉을 하면, 그 나병환자는 돌에 맞아 죽어도, 하소연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12절 13절 말씀을 보면, 나병환자들이, 멀리서 예수님을 보았을 때,
예수님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려고, 멀리서 서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고쳐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이 여기소서”........
자 나병환자들 너무너무 불쌍하지요?
오늘 우리는, 나병환자들에 비하면, 너무너무 좋습니다.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저주받은 더러운 병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찬송하며,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면 됩니다.
자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축복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축복 받으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에게, 조금만 모자란 부분이 생기면, 불평불만 하고,
그래서는 않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은 분명히 축복이요,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이러이러한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히 감사하는 것이, 바른 믿음의 자세 라 하겠습니다.
이 믿음의 자세가 없고, 이 믿음의 자세가 잘못되면,
그 다음 단계로 나갈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깊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은혜의 세계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지금 나에게 주신, 축복을 분명히 알고,
또 그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객관적 믿음, 감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2. 감사하는 것은, 신실함과 겸손함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말씀 17절에서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어떤 학생이 버스 정거장에서 스마트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야구경기, 준플레이오프, 진출 하느냐? 마느냐?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때, 버스가 왔습니다.
버스 문이 열렸는데, 학생이 타지를 않습니다.
버스기사가 답답해서 말합니다. “학생 안 타니?”
학생이 아쉽다는 듯 말합니다. “아니요.. 안타가 아니고 아웃 인데요....”
오늘 성경말씀에도 엉뚱한 곳에 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홉명의 나병환자들, 이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계획을 잘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 보일 때,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겨서, 나병환자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레위기 13장에 보면, 나병의 여부는 제사장이 판단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병이 걸리면, 제사장이 환부를 보고, 나병환자라고 판단합니다.
반대로 나병이 만약에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그 사람은 다시 정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는 말씀은,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고, 나병이 나아 정한 사람이 됬다는 것을 인정함을 받으라...는 말씀이지요.
10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직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나병이 쉽게 나을 병이 아니지요. 과연 나병이 나은 것인자?
하지만 믿저봐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제사장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발걸음을 옮기고 걸어가는데, 걸음걸이가 틀립니다. 발에 힘을 탁탁 들어 갑니다.
손을 보니까...손가락이 있습니다.
옆에사람 얼굴을 보니까? 눈 코 입...머리카락, 모두 정상입니다. 나병이 나은 것입니다.
야호~~~~~신난다. 진짜 나병이 나았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내가 급할때는,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간구하였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이 여기소서”
문제가 해결되면, 최소한, 처음과 똑같이라도, “예수 선생이여, 감사합니다.” 그런말 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 문제가 해결되니까? 이제는 예수님을 볼일이 없습니다. 언제 봤느냐는 듯이, 돌아보지도 않고, 야호~~ 신난다. 제사장에게 가기 바뻤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보면, 이 상황에서 딱~~한 사람이, 발걸음을 돌려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15절 16절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출신 성분이 비천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나은것을 자각하고, 먼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시고,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감사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좋은 선물, 우리가 꼭 받고 싶어하는, 제일 큰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모든 것을 얻고도, 구원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능력있고 축복받았지만, 구원과, 관계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엔돌에 신접한 무녀....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불리고...
신령합니다. 하지만 신령하면 뭐 합니까? 이 무당이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민수기에 보면, 발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면 않된다고 말리시는데도, 기어코,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고, 그 댓가로 재물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 그가 얻은, 큰 재물은,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였는데,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보면, 신령하여도, 재물을 많이 모아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아옵명의 나병환자들는, 몸은 고쳤습니다.
하지만, 감사는 커명, 언제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느냐?고 뒤로 돌어보지 않고, 바쁘게 자기길로 갈 때,...제일 중요한 축복이지요.... 구원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구나?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찾아와,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리는,
한명의 돌아온 나병환자는,
그 영혼이 구원받는, 제일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릴수 있겠습니다.
감사는 예수님을 찾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그 앞에 무릎꿇고,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바로 감사의 과정입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이 과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이 무엇이 있으며,
나는 지금 세상일로 바쁜데.....빨리 가서, 내 할일 해야 되겠다.
바로 아옵명의 나병환자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멕시코에 어떤 마을에는 온천과 냉천이 바로, 옆에서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솟아 납니다.
바로 옆에서는 얼음물과 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 납니다.
이 희안한 온천냉천을 그 마을 에서는 무엇에 사용하느냐?
동네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하나가득 광주리에 이고 와서, 온천에 부어 넣습니다. 그리고 휘휘 젓으면, 자동적으로 빨래가 쌂아 집니다.
그 다음에는 꺼내어 이번에는 냉천에 넣는 답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행구어 집니다.
관광객이, 이 희안한 모습을 보고, 안내원에게, 부럽다는 듯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곳 아주머니들은, 더운물 찬물을, 거져 쓸수 있으니까, 좋겠습니다.”
안내원이 “천만에요, 이곳 아주머니들은,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들이 많습니다.”
“아니 뭐 왜요?”
“비누가 나오는 샘이 없다고 불평들이 많습니다.”
“아 그렇군요. 온천, 냉천은 있는데, 비누가 나오는, 비누천이 없으니, 불평할만 하군요”
불평이 과하면, 스스로 불평의 눌리게 됩니다.
불평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를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축복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않되겠습니다.
감사는 예수님께 나아가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감사의 과정을 통하여, 한 나병환자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도,
감사를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가고
감사를 통하여 제일 좋을 것을, 얻게 되는
감사의 한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