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신 샹그릴라 누가복음 17장 20절 25절
2007.03.10 22:56:38 조회4748
누가복음 17장 20절 25절 안에 주신 샹그릴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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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남자가 미국의 캘리포니아 해안에 서서, 조용히 묵상하다가 기도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의 간절한 소원 들어주시옵소서\"
그러자 갑자기 이 남자의 머리 위에 구름이 피어나고, 황금빛이 돌면서, 음성이 들려옵니다.
\"너의 변함없는 믿음을 보고, 내가 한가지 소원을 꼭 들어주마\"
이 남자는 너무 신이 났습니다.
\"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여기서, 하와이까지 다리를 만들어 주셔서, 제 아내와 차를 몰고, 하와이 까지 드라이브 갈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음성이 들려 옵니다.
\"너는 어려운 것을 구하는 구나.
캘리포니아에서 하와이까지, 다리를 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철근과 시멘트가 들어가야 하는지, 알고나 구하는 것이냐?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을, 구하도록 하여라“
남자가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기도합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사실은 내일이, 아내의 생일이기 때문에, 급한 마음에, 제가 잘못된 것을 구하였습니다.
저의 아내는 조금 이야기 하면, 토라지고, 어떨때는 눈물 흘리고, 또 화를 내고....종 잡을수가 없습니다.
여자의 마음을, 헷갈리지 않고, 잘 이해할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러자 구름속에서, 당장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합니다.
\"하와이까지 다리를, 4차선으로 놓아주랴, 8차선으로 놓아주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사람의 마음은 변함이 많습니다.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잘 변하는지, 마음의 혼란함을 가르켜, ‘변덕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까지 합니다.
변덕스러운 마음,
혼란스한 마음,
카오스의 마음...
그 마음속에는 정함이 없습니다.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바로 그러한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바리새인들은 마음은 화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구별되었다’는 뜻의 이름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거룩한 사람들로, 율법의 수호자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거룩함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오늘 예수님을 향하여,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질문합니다.
20절 말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즉 이러한 혼란함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다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 나라가 어느때에 임하는지, 예수님께 질문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바리새인들은, 그 마음에 진실함 또한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올물에 걸어, 해 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입니까?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까?
내가 갖고 싶은것이 있게 되는 것이, 하나님 나리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상상하듯, 어떤 장군이 나타나서, 로마인들을 쳐부수고, 멋있게 승리의 축제를 여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0절 21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바리새인들은, 보고자 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나타나는 곳이 어디인지 살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것을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고 싶은것이 나타나듯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할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은 “잃어버린 지평선” 이란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에서는 인도의 폭동이 일어나서, 영국영사와 일행이 소형비행기를 타고, 인도 현지를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죽기 살기로 험난한 히말리야 산맥의, 눈덥힌 봉우리를 넘다가,
그만 실족하여, 비행기는, 티벳의 이름없는 골짜기로 불시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시착하고 보니, 그곳은 눈도 없고, 춥지도 않습니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호수가 있고, 날씨가 봄날 같습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너무나 착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 맞은편에는 어마어마한 금광이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낙원이 없습니다. 상상하였던 모든 곳이 있습니다.
이곳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니까, 그곳 사람들은 ‘샹 그릴라’ 라고 가르쳐 줍니다. 티벳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 이라는 뜻입니다.
“샹그릴라” 란 말은 이 소설에서, 유명하여져서, 낙원, 이상향을 가르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소설속에서는, 영국영사가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곳에서 나오지만, 나왔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찾아가지만, 다시는 샹그릴라를 찾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전 인터넷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떳습니다.
중국정부가 티벳을 면밀히 조사해본 결과, 소설속에 ‘샹그릴라’는 티벳에는 실제로 없다고 공식 발표 입니다.
‘샹그릴라’는 없다고 하는데, 하나님 나라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샹그릴라’에 대한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장 지오노’라는 불란서의 작가는 ‘나무를 심은 사람’ 이라는 책에서, 또 다른 ‘샹그릴라’를 소개합니다.
한 나이어린 소년이, 여행을 하다가, 너무나 황패한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황폐한 곳에서 한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양들을 치면서, 그 척박한 땅에서 겨우 살아가는데, 한 목자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목자는, 양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매일 같이, 도토리를 100개씩 심는 것입니다.
소년은 의아해하면서, 그 척박한 곳을 떠나옵니다.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이 소년은 제1차 세계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적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숲이 욱어지고, 물이 흐르는, 너무나 아름다운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 땅에 있다면 이곳 같을 것이다,고 생각하면서, 숲속으로 더, 들어가보니,
그곳에는 전쟁을 피하여 온,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은 어디 입니까? 지도에는 없는데,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한 사람이 대답해 줍니다.
“네... 이곳은 본래 척박한 땅이었답니다. 그래서 지도에는 황무지로 나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저 할아버지께서 떡갈나무, 참나무를 심어서, 이곳은 낙원이 되었습니다.“
군인은 그 할아버지를 찾아가 보았더니, 그 할아버지는, 황무한 땅, 매일같이 도토리를 심던, 바로 그 목자였던 것입니다.
‘엘 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은, 그렇게 ‘프로방스’지방을 살기좋은 곳으로 바꾸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하게 하고, 본인은 1947년에 조용히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안에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
보고싶어도, 겉으로는 않보입니다.
찾고싶어도, 찾을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갑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갑니다.
2.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인자의 고난과 죽음위에 세워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우리나라에는 ‘몰입의 즐거움’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에서, 시카고대학의 ‘미하이’ 박사님은 사람의 불행에 대하여 좋은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이 가장 불행할 때를, 두 가지 경우로 소개합니다.
만날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도, 귀찮아 할까 봐, 전화 걸 친구나 이웃이 없습니다. 또 누구를 찾아가고 싶어도, 반가워 할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 찾아갈 친구나 이웃이 없습니다.
군중속에 고독이라는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사람,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을 불행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고독해 하고, 우울해 하고, 혼란스러움과 상처가 마음속에 쌓이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나머지 한가지는, 할 일이 없을 때 라고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때, 사람은 할 일이 없어진다. 그래서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이제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하이’박사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하여서는, 어떤 고매한 사상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어떤 일에 몰입할 것임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찮은 일이라도, 어떤 일이 몰입할때에, 즐거움이 시작 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나름대로의 고매한 사상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스스로를 고매한 사람으로,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규칙으로 남을 판단하고, 세상을 저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날카롭고, 자기의로 살아가는 바리새인을, 사람들은 어려워 하고, 무서워하고, 싫어하고, 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진정으로 바리새인들과 함께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정작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가 하소연할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같이 멍애를 함께 져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하여서는..... 인자가 먼저 많은 고난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은 몰입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일에 몰입하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일에 몰입하셨습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고난을 받으시기 까지 하십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바 되십니다.
죽음의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마지막 내시며, 기도하십니다.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은 저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아가페 사랑의 몰입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희생과 사랑의 몰입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가정에서, 나의 직장에서, 심지어 믿음 공동체에서,
쪼금도 나는 손해보지 않고, 쪼금도 나를 낮추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 가정에 사랑이 만발하겠습니까?
어떻게 그 사업장에, 사람들이 몰려오겠습니까?
또 어떻게 그 믿음의 공동체에 예수향기가 풍성하겠습니까?
논리정연하고, 똑부러지는 말솜씨로,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멋있고 우와한, 외모로, 하나님 나라를 세울수는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창인이 창진이하고 목욕탕에 갔습니다.
한참 탕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앞에 어떤 아저씨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몸이 보통이 아닙니다.
온몸에 얼룩얼룩, 문신이 어깨로, 등으로 대단합니다.
이 아저씨가 무개를 잡고 앉아 있는데,
상황파악이 않되는, 우리 창인이 창진이가, 드디어 물장난을 시작합니다.
“창인아 창진아 조용히 목욕해야지...”
그래도 막무가내로 물을 티기고, 물장구를 칩니다. 제가 마음이 조마조마해 있으려니....
이 아저씨가, 못참겠다는 듯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소리를 지릅니다.
저는 깜짝 놀라 바라보니..... “때밀어 줘요... 여기 때미는 사람없어요. 맛사지도 해주세요”
저는 놀란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마음속으로 다짐 하였습니다.
“이 목욕탕은, 당분간 사용하지 말아야 되겠구나...”
힘으로도, 하나님 나라를 절대로 세울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완력은, 오히려 사람들은 멀어지게 합니다.
자 나는 무엇에 몰입하고 있습니까?
나의 의를 세우고, 나를 세우는 일에, 어리섞게도, 몰입하고 있지는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나를 낮추는 일에 몰입해야 하겠습니다.
나를 내어주는 일에 몰입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버릴때, 하나님의 나라는 비로서, 그곳에서 세워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
하나님 나라는 여기,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유혹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곳에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날에 함께 하시는 곳에, 하나님 나라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말씀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린도후서 6장에서는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청지기들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 42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곳에, 언제 세워집니까? 라고 예수님께 가르쳐 달라고 질문합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고난받고 십자가 위에 달리는 인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세계반도체 역사를 다시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한 CEO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미래는 예측되는 것이 아니고, 창조되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가 아닙니다.
바로 이곳, 김포상도교회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위에,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가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하나님 나라는 세워 가시고 계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든든히 설때, 혼란스럽던 나의 마음은 평안해 집니다.
혼란스럽던 나의 생활은 은혜로 바뀝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혼란스러운 생활이 있었다면, 자리를 잡고,
선한 청지기가 되어,
예수님께서 세워가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사순절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