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길 창세기 47장 7절 10절
2006.12.30 18:42:24 조회6455
창세기 47장 7절 10절 세월의 길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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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이 갓 넘은 한 청년이 상담실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자기의 이야기를 쏟아 놓습니다.
그녀를 정말 이대로 보내기 싫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의 고통의 나날을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정말 보내기 싫습니다.
이렇게 라면, 저는 자살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상담가 물끄러미 보더니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내기 싫으면, 가위나 바위를 내세요.
이미 결정된 일을 바꾸려 하는 것 만큼, 어리섞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일에 되어진 것을 돌아보며, 교훈을 삼는 것이 지혜있는 자세라 하겠습니다.
2006년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날을 지금, 보내고 있습니다.
올 한해 돌아볼때, 아쉬워서, 보낼수 없다고 안타까워 하시지는 않으십니까?
올 한해 돌아볼때, 후회스러워, 보낼수 없다고 속상해 하시지는 않으십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시간속에서 살아가게 하셨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처음에는 귀하게 쓰이는 천사였습니다. 사단은 시간 밖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시간 밖에서 살아가던 사단은 욕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옳타구나, 우주의 모든 것을 내가 가져야지.... 그리고 욕심을 가지고, 교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내어 쫓겨 사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는, 시간속에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기한이 있습니다.
그 기한이 차면,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100년도 않되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아갈 것인양, 착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아직도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다 아직도 교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06년 올해의 마지막 31일을 주일로 보내면서,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시간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인도하심을 찾아가는 믿음의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세월속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7절,8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하나님께서는 세월속에 지혜가 숨겨 두셨습니다.
상담의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처음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 아기는 전능감 속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뜻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합니다.
배가 고파서 울면, 당연이 어머니가 젖을 줍니다.
쉬를 해서 찝찝하면, 또 앙~~하고 울면, 당연히 어머니가 새 기저기로 갈아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다는, 전능감 속에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5살, 6살이 되면, 자신이 전능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왕자나 공주쯤은 되는줄로 알고 살아갑니다.
부모님들이 항상, 우리집 왕자님, 우리집 공주님 하고, 좋은것 사주고, 맛난것 사주니...
어린아이들은 최소한 자기가 왕자나 공주 쯤은 되는 줄 알고, 살아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세울속에서 자신의 실재모습을 알아가게 됩니다.
실수도 하게 됩니다.
마음먹은 데로 일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녀들도 나의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월속에서, 사람은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무엇인지.....인생이 무엇인지.....더우기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세월속에서,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야곱도 젋을때는, 얼마나 약아 빠진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형이 받을 하나님의 복도, 야곱은 도둑질 하였습니다.
형님을 속이면서 시작한 인생은, 계속하여 남을 속이는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겪게 되었습니다.
열두아들들이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야곱이 막내를 사랑하니까, 다른 형제들이, 이 막내 아들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리는, 악한 짓을 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막내아들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러한 자녀들 틈바구니에서...
야곱은 기도가 무엇인지, 신앙이 왜 필요한지....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되어갑니다.
야곱은 이제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 저의 부덕과 죄의 결과입니다. 형님이 받을 복을, 도둑질 하였더니,
제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짐승에게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다 저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엄청난 기근까지 겹쳐져, 모두가 죽게 생겼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이제 우리 가족은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양식을 사러 애굽에 갔더니, 죽었다고 하던 막내 아들이, 애굽의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총리대신 되어, 황금옷을 입고, 아버지 야곱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충격속에서, 죽었다던 아들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서 만나게 되면서,
야곱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월속에서 사람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세월속에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존재이구나.....
세상에는 아직도, 이 세월에 지혜를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에 머물러서, 자신이 세상의 최고이고, 세상은 자기 맘대로 되어야 한다는, 유아적 욕심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월은 보내고 있으되, 그 세월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두 번째로
2. 세월은 주인을 굳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야곱은 세월속에서, 뭔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속이기도 하였고, 두둑질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하여도, 결국에서 자신이 이룬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왕 ‘파라오’가 묻습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뇨?”
그러자 야곱이 대답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 니이다 ”
그러면서 덪붙입니다. “그런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세월의 길’이 아무리 길어도, 돌이켜 보면, 어떤 ‘세월의 길’도, ‘험악한 세월’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나라가 걸어온 ‘세월의 길’은 어떻습니까? ‘정말,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북한은 핵미사일 쏘고, 위정자들은 남 탓만 하고, 경제는 어렵고, 땅값은 오르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험악한 세월’의 연속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지금까지의 우리 성도님들, 한분 한분의 인생의 길은 또 어떠 하십니까?
나의 세월을 길을 정의해 보라면, ‘험악한 세월’ 외에 달리 무슨 표현이 있겠습니까?
야곱이 지금, 그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세월의 길’에서 뭔가 이룰려고 달려왔지만, 나의 ‘세월의 길’은 험악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가 보기에, 야곱은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아들이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편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야곱이 이룬 것 입니까?
아닙니다. 죽었다고 거짓말 하여, 마음에서 잊어버렸는데,
다시 만나고 보니, 총리대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지혜를 주시고, 꿈을 해몽하게 하시고, 또 풍년과 기근이 있게 하셔서,
야곱의 아들 요셉을, 총리대신이 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세월속에서, 야곱이 이룬것이 아닙니다.
세월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의 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세월의 길’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인되셔서, 섭리하시고, 나는 인도하시는데로, 따라갈 뿐입니다.
하나님, 진리의 길, 복음의 길, 복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백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있어야 하겠습니다.
전남 담양군에서, 농업에 종사하시는, 올해 41살 되시는, ‘김인찬’ 이라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7살 때, 놀다가 눈을 다쳐서, 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꿈 속에, 학교의 모습도 나오고, 노는 모습도 나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꿈에서도, 더 이상, 시각적인 것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깜깜하게 되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3년간은, 방안에서 자기를 저주하면서 보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사준 소를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뿔에 받치고, 뒷발질에 채이면서도 열심히 돌보았더니, 소가 새끼를 놓아서,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용기를 얻어,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다시 세상을 보게 해 주세요..
하나님...나도 가정을 이루게 해 주세요....
이루어 질수 없는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그렇지만, ‘세월의 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기도하며, 그 길을 묵묵히, 걷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어느날.....이분이 다니는 교회의 자매교회되는, 중국교회에서, 중국교포 여자분과 연결이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올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시력 회복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지 27년만에, 한줄기 빛이, 오른쪽 눈으로 들어오는데,
처음 본 것은 , 아내와 세명의 자녀들의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김인찬’씨가 말합니다.
“그렇게 예쁠 줄 몰랐는데...... 아내와 아이들 피부가 너무 뽀얗고 고와서,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에, 해가 구름위로 떠오르는데, 얼마나 예쁜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날아가는 새도, 세차게 몰아치는 눈보라 마져도,
그리고 밤 하늘에 반짝이는 달과 별도
모든 것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은혜이고, 모든 것이 다 아름답더라는 것입니다.
‘김인찬’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올해 저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 두가지, 다 이루어졌는데, 제가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세월의 주인되신, 하나님과 만나게 되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파란 하늘, 떠오른 해를 보며, 감사하게 됩니다.
눈으로 보고 있는것 때문에...
걸어가고 있는것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 때문에, 감사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사람은 축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0절 말씀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어떠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고 하는 그 장면입니다.
아브라함 역을 맡은 아이가, 이삭의 역을 맡은 아이를 꽁꽁 묶어서, 제단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칼을 높이 듭니다.
이때 장면을 보고, 한 어린이가 말합니다.
“너무 무서워.. 이삭이 너무 불쌍해...”
그러자 옆에 친구가 으쓱하며 말하더랍니다.
“걱정하지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끝이 다 좋다구....
이삭은 잘 될테니 무서워 하지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끝이 다 좋습니다.
그래서 욥기에는 고백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리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갔던, 믿음의 사람들은, 끝이 다 좋고, 복되게 변화되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반대입니다.
처음에는 갖은 감언이설로, 잘될것 같이 속입니다. 유혹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은 멸망이요, 후회요, 실망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시작할때는, 미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길’ 가운데에서 변하여,
애굽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야곱 스스로도, 이제는 하나님의 진리에 길, 복된길을 바로에게 힘있게 전하는,
‘세월의 길’에서 주신 말씀의 지혜로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월의 길’을 걸어와, 2006년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걸어온, ‘세월의 길’ 속에서 지혜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세월의 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신것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끝이 좋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의 사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