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성숙되기 요한복음 6장 5절 14절
2007.02.10 21:19:25 조회5272
요한복음 6장 5절 14절 더 성숙되기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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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과, 멈추어 있는 사람과, 뒷걸음질 하고 있는 사람이 그것입니다.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신앙이 멈추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뒷걸음질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은, 이 세가지 중에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신앙은, 이 세가지 중에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하소연 합니다.
목사님, 저는 세상에, 도무지 사랑할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랍니다. 식구들이 있지 않습니까?
집사님은 답답해 하면서 입을 엽니다.
남편은 원수같은 사랑이요.
아들은 떠나간 사랑이요.
며느리는, 사랑 할 수 없는 사랑이요.
딸은 마음의 사랑이라.....
그래서 저는, 우리집 강아지를, 제일 사랑한답니다.....
사랑이 멈추어서 있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과 생활이 멈추어 서 있는 예라고 할수 있습니다.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돌부리를 탓하지 않는 법입니다.
시냇물이 있다고 할때, 그 사람은 시냇물 앞에서 멈추어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과 핍박만 주목하면, 더 이상 나아갈수 없습니다.
시험과 핍박을 넘어설때만이,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제자리 걸음 하는, 제자들의 믿음이 한단계 더 나아가는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오병이어의 사건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하여, 여러 가지로 은혜와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시간에는 특별히 신앙의 성장에 대하여 교훈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주님께 드릴 때 나아가게 됩니다.
5병이어의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광야로 가셨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광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 수가 엄청납니다. 어림잡아 세어보니, 장정만도 5000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큰 무리였습니다.
모인 무리는, 마태복음에 보면, 몇 일씩,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에 골몰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그만 허기가 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 사람들을 먹여야 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제자 빌립이 대답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빌립은, 돈 때문에 안된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직한 대답입니다. 또 어떻게 보면, 사리에 밝은 대답입니다.
200데나리온은 오늘날 1000만원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어쩌면, 빌립에게 1000만원이 있었다 할찌라도, 한끼 식사값으로 1000만원을 쓰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없었을 것입니다.
천만원이면, 차를 한 대 삽니다.
천만원이면, 더 좋은 일을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식사로 천만원씩 어떻게 쓸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솔직한 빌립의 마음이 아니었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쓸데는 써야 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어떻게 결과를 바랄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을 살려야 된다면, 1000만원아니라, 2000만원이라도, 써야 된다며,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자신의 식구들 중에 병이 든 사람이 있다면, 200데나리온을 아까워 했겠습니까?
빌립의 대답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앞으로 나아갈 마음이, 그속에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로 그 이유를 남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않됩니다. 무엇 때문에 않됩니다.
누가복음 8장에는 열매맺지 못하는 땅의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결실이 없는 이유는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이 그늘이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과는 반대로 한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제자들 대답을 들으면서, 선뜻일어서서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 제가 드리겠어요.. 200데나리온에는 턱없지만, 그래도 제가 드리겠어요..저의 도시락을 받으세요... 그리고 그 어린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께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드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송명희 시인이 있습니다. 올해 44세 되시는데, 태어나서 보니, 뇌성마비장애입니다.
온몸이 뒤틀리고, 떨고...그래서 보기에도 흉합니다. 스스로도 마음에 얼마나 상심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점점 마비가 퍼저서, 지금은 전신 마비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눈은 깜빡일수 있으니, 하나님 나의 눈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송명히 시인은 눈을 깜빡여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찬양시를 써서, 제일 은혜를 끼치는 복음송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굴도 예쁩니다. 인기도 있습니다. 노래도 잘부릅니다. 돈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버림받았다면서, 연예인이 어제도 자살을 하였습니다.
얼마전에는 검단, 바로 마전지구에 살던 가수가, 자살하였는데...
어제는 드라마 주인공으로 계약하고 준비하고 있던 연예인이 자살을 하였다고 합니다.
마음이 있을때,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 드릴 마음을 간절히 갖고, 드릴때..
그것이 너무나 모잘것 없더라도, 나의 재능, 나의 상황, 나의 실수..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 드릴때,
한걸음 더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집사님의 간증록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의 남편은 알콜중독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밉기만 합니다. 그래서 너무 원통하여 기도를 하는 가운데, 예배시간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남편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은 했어도, 감사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 때문에 무엇을 감사할까 하고 보니.... 남편이 술은 먹어도, 꼭 집에 들어옵니다.
그렇구나. 술먹고 집에 안들어오고, 아예 집을 나가버리는 사람도 많은데, 이 사람은 술은 취해도, 집에는 꼭 들어오니 그건 다행이구나...
조금지나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남편이 없는 사람도 많은데, 속은 썩여도, 큰 사고없이 아직껏 살아 있으니 그건 다행이구나...
그리고 조금지나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교회나가는것 핍박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이 사람은 그래도 내가 교회나가는거 핍박하지 않으니 그건 감사하구나....
그러면서, 살아가던 어느날 남편이 말하더랍니다.
“마약중독된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났는다는데, 나같은 사람도 고치게, 교회 좀 대려다 주구려...”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드려야 합니다. 그럴때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
2. 주님께서는 축복해 주십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아주 짦은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을 보면서, 그 당시의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불러서,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남자만 5000명이라니까, 세상은 반은 여자인데, 그러면 여자도 5000명정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어르신들, 아이들 하여, 1000명, 1000명 하여, 2000명 잡으면,
모두 합하면, 1만2000명....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한 1만 2000명 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제자 한사람이, 한 천명정도의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떡을 나누어 주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이 들고 있는 광주리에, 얼마 만큼의 떡을 주셨겠습니까?
1000명이 먹을수 있도록, 떡을 1000개를 주셨겠습니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떡이 1000개라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한 사람이 다 들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광주리에 받은 떡은, 조그마한 떡조각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떡조각을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인데, 않따를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떡 한조각으로, 1000명 앞에, 무엇을 할수 있었겠습니까?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나누어 주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 떡 조각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고보니, 광주리에는 아직도 떡조각이 남아 있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남은 떡조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광주리에는 떡조각이 남아 있습니다.
1000명을 주기까지, 광주리에는 떡조각은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사건이 구약에도 있습니다.
선지생도의 아내가,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우리는 이제 망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마을의 그릇을 다 빌려고 오게 합니다. 그리고 선지생도의 집에 남아 있는, 기름병을 빌려온 그릇에, 붙게 합니다.
붙고 보니, 또 나옵니다. 다음 그릇에 붙고 보니, 또 나옵니다.
그래서 그 많은 그릇에 다 붙도록, 기름이 끊어지 않니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세상의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복의 근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누어도, 나누어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부어도 부어도, 마르지 아니하는, 복의 근원을,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광주리에 떡을, 처음에 바로, 1000개나 주셨다면,
다 들고 가기는 커녕, 무거워서, 쏟아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가볍게 들수 있도록, 주신 떡은 한조 뿐입니다.
그런데 그 떡은 보통떡이 아닙니다. 복의 근원된 떡입니다. 그러기에, 나누어 주어도, 나누어 주어도, 마르지 않는, 복의 근원된 떡조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때,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주신 응답이, 너무 적습니다.
믿음의 그릇에 꽉~ 꽈~ 차게, 넘치게 주시면 않되어서, 왜 이렇게 조금만 주십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꽉~차서, 힘에 버겁게 주신다면, 감당할수 없어서, 쏟아 버릴수도 있습니다.
분에 넘친 것으로 인하여, 패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아니주십니다.
내가 잘 간수할수 있게, 나에게 가볍게 하여 주십니다....하지만 주신것은 아무리 목을 축이어도 갈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나누어도 모자라지 않는 복의 근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 2절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 이렇게 주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주실 때 이렇게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렇습니다.
오늘 이시간 우리성도님께, 하나님께는 복의 근원을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생수의 근원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가득차게 됩니다.
12절 13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떡 조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부족한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누어 주라고 하셔서,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순종하고 보니, 제자들 마다,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의 열매는, 가득차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근심은 물러가고, 소망이 가득차게 됩니다.
답답함은 물러가고, 화평이 가득차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전쟁에 나가려는데 부하가 말합니다.
“각하, 군목이 있으니, 기도를 하고 나가시지요”
나폴레옹이 대답했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냉철한 전략과, 대담한 결단에 의하여 되는 것이지, 성경에 의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승승장구 하였습니다만, 나중에 결정적인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어, 쓸쓸히 삶을 마쳤다고 합니다.
반대로 영국의 해군제독 넬슨은 그의 좌우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편 127편이 바로 그 좌우명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프랑스의 무적함대 앞두고, 전 장병을 갚판에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목을 불러 예배를 드리며, 꿇어 엎드려,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 프랑스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 주시옵소서”
얼마나 전투가 치열하였는지, 엄청난 희생이 뒤 따름니다. 군함들이 가라앉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하고, 영국을 지켜낸 바다의 영웅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통하여, 믿음이 한 차원 더,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순종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수셨습니다. 우주의 목수, 구원의 목수이십니다.
못고치는 것이 없으십니다.
금이가고, 한쪽이 없더라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면,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십니다. 복의 근원을 주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복의 근원된 한주간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