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일한 강물 에스겔 47장 1절 7절
2007.01.20 18:09:32 조회6483
에스겔 47장 1절 7절 창일한 강물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
어떤 환자가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갔다고 합니다.
환자가 질문합니다. 이 하나 빼는 데 얼맙니까?
의사 담담하게 이야기 합니다. 이 하나빼는데, 2만원입니다.
환자가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단 일분도 안 걸리는, 2만원이나 받아요?
의사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그러면 천천히 이빨을 뽑아드릴까요?
환자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답니다. 아니요. 빨리 뽑아 주세요...
생활속에서 살펴보면, 빨리 해결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빨 빨리 뽑아야지, 천천히 뽑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또 아프면 빨리 병원에 가야지, 천천히 병원에 가면, 얼마나 더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빨리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있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일들, 귀중한 일들은 빨리 하고 싶어도, 빨리 되지 않습니다.
밥을 빨리 먹으면, 채하지 않겠습니까?
또 공부도 절차와 단계가 있어서, 절차와 단계에 맞게 차근차근 공부해야, 잘 이해 됩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사람은, 빨리 할수 있는 것은 빨리하더라도,
천천히 될 수밖에 없는 일은,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 것은, 천천히 기다릴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에스겔은, 맘이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빨리 않되어, 맘이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민족 이스라엘을 바라볼때, 맘이 새카맣게 타는 사람이 에스겔선지자 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 지금의 이라크 에게 종이되고 말았습니다.
자유스러울 때는,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죄를 저질럿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섬기고, 방종하다가, 바벨론의 종이 되고 난 다음 보니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모릅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때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으로 잡혀와서 보니, 가나안 땅이 얼마나 복되고 좋은 땅이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그립습니다.
돌아가고 싶습니다. 회복되어 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70년이 되어도 이스라엘은 풀려날 기미가 없습니다.
에스겔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 긍휼을 베푸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에스겔이 드린, 이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오늘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생활속에서도 에스겔과 같은 경우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벌써 몇년 동안 기도하여왔습니다.
빨리 일루어지고, 해결되면, 좋겠는데,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은 너무 조급해 집니다.
자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1. 성전문지방에서 흘러 나오는 은혜의 물을 보아야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바벨론의 포로가 된지 10~20년이 아닙니다.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나안땅은 가꾸는 사람이 없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 황량하게 변하고 말았다는 소식이 들려 옵니다.
급한 마음으로 한다면, 칼이나 창을 들고, 바벨론의 군인들에게 달려들고,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급하지만, 어떻게, 그 많고 잔악한, 바벨론 군인들에게 달려들 수 있겠습니까?
도데체 어떻게 할수 있겠습니까?
에스겔이 마음이 새카맣케 타면서,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십니다.
천사를 통하여, 기도하는 에스겔을 데리고 가시는데, 바벨론을 떠나 그렇게 가고싶어하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십니다.
천사를 따라서 날아가면서, 에스겔이 내려다 보지 않았겠습니까? 소식으로만 들었지만, 무너지고, 척박하게 변한, 황무지 같은 고향마을을 보지 않았겠습니까?
에스겔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저 황무지로 변한, 고향마을, 사막과 같이 변한 가나안 땅.....이제는 정말 망했구나, 이제는 소용이 없구나...
그런데 천사가 에스겔을 성전에 내려놓는데, 에스겔이 내려서 하나님의 전을 이리저리 다녀보았더니, 하나님의 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퐁~퐁~퐁~퐁~ 솟아 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땅은 광야가 되고, 물은 하나도 없을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전 문지방에서는 물이 퐁~퐁~퐁~퐁~ 솟아 납니다.
이물을 보면서 아마 에스겔을 눈물을 왈칵 흘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갖은죄악을 짓고,
우상을 섬기고, 심지어는 성전에서, 담무스를 위하여 축제를 벌리고,
방종하며, 하나님을 버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맘대로 방종하여, 이스라엘 땅은, 황무지와 사막이 되어버렸는데,
오히려 이스라엘을 살릴 생수를, 하나님께서는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솟아나게 하시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나는 이스라엘을 살리려 한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27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출애굽기 34장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
희망의 물, 소망의 물을 오늘 나에게도, 솟아나고 있습니다.
어디서 솟아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전 문지망에서 퐁~퐁~퐁~퐁~, 희망의 물, 소망의 물을 솟아나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전 문지방에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그 물에, 목을 축일때,
갈함이 해결됩니다. 생기가 솟아납니다. 용기와 소망과 담대함으로 일어설수 있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작년여름, 남녀선교회로 교회위에 화단을 청소하는데, 물이 많아서 그런지, 교회화단에 옹달샘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난 맑은물이 솟아 나는지....
손을 넣을수 없을 정도로, 물이 차갑습니다.
과일을 담궈 놓으니까, 냉장고에 넣었던것 보다, 더 시원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큰 물컵으로 떠 마시고 싶었습니다만, 수질검사가 않되었고, 식당에 지하수를 바로 연결해놓은 생수기가 있어서 참았습니다만....
그럿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에도 시원한, 은혜의 생수를, 솟아나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에스겔과 같이,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때에, 하나님께서는 간구하는 그 심령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의 생수, 은혜의 생수, 능력의 생수를 터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2. 물을 측량하여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던 여객선이 좌초하여, 세계토픽이 된 적이 있습니다.
파도가 너무 높아서, 배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조선이 밧줄을 던져서, 사람들을 구하느라, 구조하는 속도가 빠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희생이 컷던 것은, 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 여객선에는 아프리카의 영국으로 보내어 지는 금이 화물로 실려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배가 가라앉는데도 불구하고, 금을 가지려고, 승객들이, 가라앉는 배의 화물실로 내려갔습니다. 또 몸에 금괴를 가지고, 바다에 뛰어들다보니, 가라앉아 버립니다.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금 때문에, 희생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금이 귀합니다. 하지만 생명보다 귀할수야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금보다 얼마나 더 귀한, 생명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양손에 금괴를 붙잡고, 죽음의 바다로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금 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상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세상것이 더 귀한 것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도 그럴뻔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샘솟게 하시는, ‘은혜의 생명수’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뻔 하였습니다.
퐁~퐁~퐁~퐁~ 솟아나는 올달샘...이것으로 무엇을 하겠느냐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에스겔을 보고, 천사가 일천 척, 그러니까 약 한, 303 미터를 지난 후에 그 물을 건너보게 합니다. 그랬더니 그 옹달샘물은 흘러서, 발목에 차는 조그만, 도랑물이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콸콸 양수기로 퍼내는 것 처럼, 주시면 좋을텐데..... 하나님께서는 조그만 옹달샘물을 주셨습니다. 일천척이 지나도, 겨우 말목만 적실 정도입니다.
얼마나 실망스럽습니까? 이것 주셔서, 무엇이 변한다는 것입니까?
에스겔이 실망할 틈도 주지않고, 천사는 다시한번, 일천척일 지난 후에 물을 건너게 합니다.
이번에는 무릎에 차는 시냇물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일천천을 지나서 물을 건너보니, 물이 갑자기 깊어져서, 허리를 이루는 강이 되고 말았습니다.
천사가 한번더 일천척을 지난후에 물을 건너게 하는데, 에스겔이 건너려고 하였더니, 물을 건널수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강을 이루어, 사람이 건널수 없는, 창일한 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이스라엘 마른 모든 광야를, 옥토로 만들고도 남을만한 엄청난 양의 물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이 많이 간것이 아닙니다.
처음 옹달샘으로부터 4천척, 1km 만 갔더니, 옹달샘은 엄청난 큰, 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는 받는 은혜가 너무나 적은것 같습니다. 뭔가 퍼런 불이 뻔쩍뻔쩍 하고,
하늘이 꽝꽝 울리는 기적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그저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을 들으면, 아무리 귀를 귀울여도, 옹달샘 은혜입니다.
그저 위로와 용기를 주는것이, 말목을 적실만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온 몸을 쩌릿쩌릿 하게, 눈물이 콸콸 쏟아지고, 꼿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저 발만 겨우 적실 은혜를 주시는가? 하는 마음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방법입니다.
1년이 지나면 겨우 발목만 적질 정도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나고 보면, 무릎에 차게 될 것입니다.
3년이 지나면, 허리에 차게 될 될 것입니다.
4년이 지나면, 헤엄처도 건너지 못할 정도로, 창일한, 바다와 같은 은혜가,
나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욥기는 말씀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일천척만 가다가 멈추어, 돌아섭니다. “저기 발목밖에 않차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함부로 복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은 우상을 만들고 살때는, 세상적으로 오히려 편하고, 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았다면, 이름없는 촌부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말씀을 따라, 믿음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100살에 아이를 주십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아이마져 하나님 바치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을 쫓아갑니다. 70살, 80살, 90살, 100살....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십니다. 1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늘아래, 사람이 받을, 말로 다할수 없는 복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시고, 그 자손들이 대대로 그 복을 받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믿음에 합격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스케일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상급을 즐거워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3. 그 물로 복이 시작됩니다.
6절 7절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렇습니다. 4천 척이 지난 후, 창일한 물이 흘러 가는데, 그 사막같은, 이스라엘 땅이 옥토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바라보니, 그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그 강 옆에 나무가,
그냥 많은 것이 아닙니다. 빽빽하게~ 심히 많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예수님께서는 시작하시면 반드시 이루십니다.
나에게, 내 속에, 예수님께서 착한일을 시작하셨다면, 예수님께서는 반듯이, 그 일을 이루어 내십니다.
사도바울을 그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우리는 ‘확신’ 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나에게서 이러이러한 일을 시작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나의 가정에 이러 이러한 일을 선하게 시작하여 주시옵소서...
그럴때 하나님께서 시작하실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합니다. 옹달샘 같습니다. 하지만, 일천척이 지나면, 발목을 적십니다.
일천척이 지나면, 무릎을 적십니다.
일천척이 지나면, 허리를 적십니다.
그리고 일천척이 지나면, 창일한 강물을 이루어, 그 강이 굽이치는 곳 마다, 생명이 가득차고, 나무가 빼곡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선지자가 받은 이 응답에 대하여, 이사야선지자는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은혜의 옹달샘에서부터, 착한일이,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시면,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눈동자 처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일천척을 걸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일천척.....
그렇게 진리의 길위에서, 걸어 갈때마다,
올해에는 은혜가, 더욱더 넘치게 될줄로 믿습니다.
올 한해, 하시는 모든 일들과 사업과 가정과, 신앙위에,
이렇게 세워주시고,
강같이 넘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