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믿음 에베소서 6장 12절 24절
2007.02.16 19:24:24 조회10906
에베소서 6장 12절 24절 변함없는 믿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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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주머니가 첫 번째 아기를 낳기 위하여,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면서, 산통이 오기 시작합니다.
얼마후에는 산통 심하여, 도무지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묻습니다.
“산통이 너무 심해서 견디기가 힘드네요.... 산통이 이렇게 심한걸 보니,
어려운 고비가, 거의 끝나가는 건가요?”
그러자 간호사가 담담하게 대답하더 랍니다.
“어머니, 이건, 어려운 고비가 아니에요. 앞으로 20년간이 더 어렵답니다!”
그렇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이 요구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낳을때는, 걸어다니기만 해도 좋겠다 싶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장성하고, 심지어는 결혼한 다음에도,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향하여,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을 갖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변함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를 향한 수고와 사랑이 끝나신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지나도, 우리의 믿음의 잘못될까 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또 인도의 손길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가장 성숙한 믿음, 가장 장성한 믿음은,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24절에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
변함없이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사랑,
변함없는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과 같이,
성도들의 가장 아름다운 믿음, 성도들의 가장 성숙한 믿음은,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숙한 믿음의 척도입니다.
그러기에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되기 위하여, 오늘 성경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변함없이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성도가 변함없이 예수님의 사랑하고,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을, 가장 싫어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고, 복을 받으면, 그냥 참지 못하고, 여러 가지 풍파를 일으키며, 시샘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회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리스도인들이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도록, 훼방합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1절 12절 말씀입니다.
겉 모양은 혈와 육과 세상의 일들인것 같은데, 가만히 보니까, 악한영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을 훼방하고, 방해하는 일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세상적으로 풀어서는 끝이 없습니다.
악한영들을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을 어떻게 대적할수 있겠습니까?
힘으로, 멱살을 잡고 넘어뜨릴수가 없습니다.
따귀를 때릴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한영을 대적할수 있는 방법이 있고, 길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로 17절 말씀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믿음의 사람을 훼방하는 악한 영의 어떤 불화살과 같은 궤궤도 소멸하고 이길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진리의 허리띠를 메야 합니다.
그리고 의의 호심경 즉 가슴과 배를 방어하는 흉배입니다.
또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여기까지가 보호장비입니다.
다음에는 무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만, 하면 어떠한 악한 훼방도, 절대로 이길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때, 저의 아버님께, 어떤 권사님께서 해 주신 간증입니다.
제가 어릴때 살던 마을이름은, ‘호명’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지금은 대로가 나서, 금방 다니는 곳입니다만, 옛날에는 얼마나 산골이었는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하여서, 마을이름이 ‘호명’ 이었습니다.
이 마을로 들어오려면, ‘오백제’를 넘어야 합니다.
고개 이름이 많고 많은데, 왜 ‘오백제’이겠습니까? 500명이 모여서 넘지 않으면, 넘을 수 없다고 해서, 이름이 ‘오백제’가 되었습니다.
이 오백제에 대하여, 별별 흉흉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이, 한번은 읍에 갔다가,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는 끊어지고, 밤늦에 혼자서 이 ‘오백제’를 넘게 되었는데....
깊은 산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뒤에서, 파란 눈빛을 번득이는 늑대 두 마리가, 살금살금 쫓아 오더라는 것입니다.
걸어가면 따라오고, 멈춰서면 가만히 서서 기다립니다.
바람이 부니까, 반대편 숲속으로 들어가서, 권사님을 몰기 시작하는데..
찔래덩쿨로, 도랑으로, 권사님을 몰아가기를 1시간 정도...
이제는, 이 권사님도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 몸에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늑대들이, 사람의 정신을 홀려서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그 늑대를, 이 권사님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무섭고 힘이빠져서, 권사님이 턱썩 주저앉으니까, 이 늑대, 두 마리가, 권사님 키를 뛰어 넘어서,
한마리는 바위 올라가서 앉고, 다른 한 마리는, 나무 옆에 앉아서 으르렁 거립니다.
이때, 권사님은 마음속에, 예수님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그렇구나...내가 명색이 권사인데, 죽을때 죽더라도,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죽어야겠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천지 만물을 지으신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지금까지..
이마에 땀이 송알송알 맺일정도로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늑대가 달려들지 않습니다.
권사님이, 일단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 하고, 정신을 차리고 늑대를 보았더니,
달빛에 자세히 보이는데, 그것이 늑대가 아니라, 이상하게 생긴 고목나무와 바위덩어리 였더다는 것입니다.
이 권사님이 말씀합니다. 목사님, 제가 그때 기도하지 않았다면, 홀려서, 밤세도록, 산을 헤메고, 사고 날뻔 하였습니다.
오늘도 홀립니다. 돈으로 홀립니다. 세상으로 홀립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정신이 홀리고, 생각이 꿰여서,
끝없이 사단이 홀리는데로, 일평생 끌려다닙니다.
그리고 험한덩쿨, 멸망의 계곡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허리때, 의의 흉배,
복음의 신, 구원의 투구를 쓰면, 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말씀을 검으로 내려치면,
어떠한 악한 궤궤도, 그 앞에서는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홀리는 그 어떤 것도, 말씀 앞에서는, 그 본색을 드러내고,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5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신명기 28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나갈 때,
나를, 홀리는 것들은 그 본색을 드러내고,
올 한해 모든 일들은, 승리하게 되어질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깨어 기도할 때, 변함없는 믿음이 있게 됩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요즈음 인기있는 색다른 한자풀이라고 합니다.
원앙부부 : 원한과 앙심이 많은 부부.
천재지변 : 천번 봐도 재수없고, 지금 봐도 변함이 없는 사람.
천고마비 : 천번 고약한 짓을 하면, 손발이 마비된다.
개인지도 : 개가 사람을 가르친다.
한자의 음만 빌려오고, 뜻을 다르게 붙일때,
교훈이 아니라, 유머가 되어,
요즈음 인터넷에는, 이렇게 유행하는 ‘다른뜻 한자’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틀이라도, 그 틀에, 잘못된 내용을 담으면,
겉 모양은 좋아도, 그 내용은 완전히 틀려지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잘못된 정신으로 사용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그 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어서,
아직도 후진국의 굴레를 벗어내지 못하는 나라들이 세계에는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로써 불러주셨지만,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지 못하고,
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 신앙은 불완전한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주셨지만, 내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능력은 사용되지 못하는,
있으나 없으나 한 능력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누가복음 22장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야고보서 1장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할 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그 길을 우리 주님께서는 아시고, 덜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는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옛날에 오딧세우스왕이 전쟁을 하러, 출발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 자신의 친구 멘토에게, 믿고 맞깁니다.
10년 전쟁 끝에,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와보니, 놀랍게도 아이가 훌륭한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딧세우스왕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친구 멘토가, 어떨때는 아들이 친구가 되어주고, 어떨대는 스승이 되어주고, 또 어떨때는 아버지가 되어 주어서, 자신의 아들을 훌륭히 성장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연유된 것이 멘토, 멘토링입니다.
요즈음은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멘토를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그래서 멘토링 해줄, 훌륭한 멘토가 있을때, 사람은 그 사람의 멘토만큼 성장하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펴보면, 자기 스스로, 자기 멘토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소견에 좋은데로 살아갑니다. 자기가 원한는 데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성장할수 있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유명한 위인을 자기의 멘토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위인이 살아간 일생을 본으로 하여,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사람의 인생은, 그 위인 삶, 만큼이 한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에서는 감히 찾을수 없는 제일 좋은 멘토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멘토가 되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의길, 진리의길, 옳은길, 복된길로,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고민이 있으면, 나의 멘토 되신,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가르켜 주십니다.
말씀 드려야 합니다. 진리의 교사되신, 예수님의 응답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멘토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내 지혜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하여야 합니다. 구할 때, 변함없는 믿음, 정금같은 믿음, 온전한 믿음의 길로 나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변함없는 믿음은 성숙한 믿음입니다. 장성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값주를 입을때, 미혹하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변함없는 믿음위에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때, 모든 지혜의 근원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변함없이 지혜의 길, 의의길 진리의 길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래서 올한해, 변함없는 믿음위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
이 말씀의 은혜위에 서게 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또 김포상도교회 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