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역사 에스겔 37장 1절 10절
2006.06.10 17:32:08 조회5789
에스겔 37장 1절 10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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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가정이든, 또는 사회이든지, 가장 절망의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6월을 나라사랑의 달로 지키려고 할때에, 특별히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집니다.
어느 시대나, 근심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특별이 우리나라는 가까운 현대사에서, 심지어는, 나라를 빼앗기고, 광복을 기다리는 때도 있었고, 또한 6.25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상자로 눈물 흘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요즈음도 많은 국민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를 걱정합니다.
경제를 걱정하고, 또 심지어는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를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한마음 우리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나라를 사랑하였던, 이스라엘의 선지자 에스겔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나라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는 길은 성령충만 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 같은 길은, 1. 고백하는 신앙. 이 있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선지자 에스겔을 성령님께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에스겔이 그곳에 가보니, 그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에스겔은 뼈들이 가득한 것을 볼 때에,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그곳에서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사건은 큰 전투가 아니었겠나..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뼈들이 가득하게 되었다면, 이 뼈의 주인공들이 소속되었던 군대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큰 패배하였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러한 큰 패배의 사건은, 더욱이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전투로 생긴 뼈들은, 긴 세월 동안 그곳에서 마르고 말라서,. 아주 말라있었다고 에스겔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저질러진 일들을 어떻게 되돌릴수 있겠습니까?
승리의 사건이 아니라, 완전한 패배의 사건...그리고 완전히 말라버린 뼈와 같은 과거의 일들을 어떻게 회복시킬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낙심에 빠질때가 있습니다.
이 나라를 진실되게,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이 사회를 위하여 희생하는 사람도 없고, 우리 사회를 생각할 때, 낙심에 빠질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생각을 좁혀서, 우리 교회를 바라볼때, 우리 부서를 바라볼때, 또 나의 가정, 심지어는 나를 바라볼때,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통절한 심정으로 바라 보는것과 같은 심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바라볼때,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똑같습니다....
최선을 다하였지만, 참으로 이제는 어떻게 할수 없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에스겔 선지자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바싹 말라 뼈로 변해버린, 군대의 모습을 볼때, 가슴이 아팧을 것입니다. 마음이 너무나 답답햇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에스겔 선지자는 매우 다른 고백을 하게 됩니다.
3절 하발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
무슨 말씀입니까? “해답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해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소망있는 사회, 복음이 바다와 같이 뒤덮게 되는 은혜의 나라가 되겠느냐? 라고 질문할 때,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정이 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겠느냐? 라고 질문할 때, 해답은 하나님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이 넓은 들에 가득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훌륭한 교회가 되겠느냐? 하는 질문에 해답은 하나님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해답을 찾는 사람입니다.
나의 인생의 문제, 신앙의 문제, 우리 사회의 문제,...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 그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말씀을 대언하는 신앙.
에스겔의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5절 6절 말슴에서,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뼈들을 향하여 외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뼈들이 살아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믿기 어려운 사실입니까?
그런데도 이 말씀대로 대언하여, 그대로 왜쳤더니, 그 말씀이 메아리치는 곳에 있는 뼈들이 말씀대로 변형되기 시작합니다.
새살이 돋고, 피고 돌고, 힘을 써서 일어나서는, 크고 강한 군대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2 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 구내식당에는, 아주 옛날에 한국인 주방장으로 일한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하버드 학생들이 이 한국인 주방장을 평소에 얼마나 멸시를 하는지 모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이름도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해서, 하버드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우리는 신앙위에 세워진 학교있는데, 어떻게 가난하고, 이름모를 한국이라는 곳에서 왔다는 것 하나 만으로 이렇게, 사람은 무시해서는 않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학생회장이 대표로, 구내식당으로 찾아 갑니다. 그리고 키도작고 볼품없는 한국 주방장을 불러 냅니다.
\"그동안 당신을 이유도 없이 모욕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이제 우리학생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을 우리의 한 형제로 받아드립니다.\"
그말은 들은 주방장은 너무나 감격하여, 겸손한 자세로 모자를 벗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 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앞으로는 더 이상....스프에 비듬을 털어 넣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들과 함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말씀을 들을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사회, 우리 나라, 또 사람의 마음속에...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이면적인인 문제가, 사실은 얼마나 크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내면적인 마음의 불신과, 신뢰하지 못하는 생각들이 우리의 생활을 병들게 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제일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않을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듣지 않고, 그래서 생기가 들어오고, 새살이 돋고, 큰 군대로 일어서는 기회조차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외칠때에, 마른뼈들을 일어납니다. 그리고 큰 군대를 이루는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신앙.
10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또 그래서 9절 상반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
하나님의 성스러운 영의 역사할 때, 살아서 일어나서 서게 되고, 큰 군대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향하여 간구하여야 합니다.
월드컵이 시작되었습니다..우리나라 국가선수들이 독일에 가보니, 우리는 잊어버렸는데, 그곳 독일에는 오히려 아직까지도 차범근 선수가 유명하더라는 것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차범근 선수를 갈색의 폭격기라고 기억합니다. 마치 골을 터트리는 것이, 폭격기가 폭격하는 겉과 같이 시원하다고 하여...차범근 선수의 이름도...독일어로 차붐..그러니까 폭탄이 터질데..의성어인 붐~ 이라고 하면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구, 차범근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 실력으로 경기를 하는, 메너가 좋은 스포츠 신사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렇게 인기가 좋으니까, 한번은 상대편 수비가 악의적인 반칙을 하여, 차범근 선수 척추에 금이가는 큰 부상을 입게 된적이 있습니다. 또 무릎이 크게 손상되어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성공의 정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실패의 골짜기도 깊은 것이 아니겠습니다.
그 실패의 자리에서 차범근 선수는 부인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차범근 선수는, 그제서야 삶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 철저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님께서 일어서게 하시는데, 놀랍게도 완쾌되어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지금도 기도하는 감독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원도의 예수원에 봉사하는 대천덕목사님의 할아버니는 유명한 토레이목사닙니다.
토레이목사님은 아침에 꼭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이 나의 하루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이 주장하시지 아니하시면, 나는 오늘도 넘어집니다. 실수합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의 나의 마음과 생각과 길을 지켜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사람은 그의 삶속에서 고백할 것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서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해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곳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이 나를 세우지 아니하시면, 나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고백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실 때, 또 그 고백대로, 굳건히 서게되고, 승리하게 되는 한주간, 특별히 이번 한달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