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께서 사도행전 2장 1절 21절
2006.06.03 18:14:46 조회5227
사도행전 2장 1절 21절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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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남한과 북한이 쓰는 말들이 많이 틀려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제를 한번 내겠습니다. 이 말을 북한에서는 뭐라고 할까요?
여름입니다. 시원한 냉면 - 찬국수
어린이들이 여름에 좋아합니다. 아이스크림-어름 보숭이
우유 - 소젖
각선미 - 다리미
허튼소리 - 개나발
그래서 저 여자 각선미 멋있네요..라는 말을 북한에서는..
저 녀성동무 다리미 왔다구만~ 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허튼소리 하지마세요→ 라는 말은 북한에서는
개나발 불지 말라우~ 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자 한 민족인데 왜 남한과 북한은 서로 하는 말을 알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남북으로 분단이 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남북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사회는 요즈음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양극화가 되어서, 기업인, 노동자로 계층이 나누어져서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국민과 정부가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자식간에, 가족 구성원 간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반대로 오늘 말씀에는 말이 통하게 되는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에 오래동안 나가서, 이제는 각자 외국어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순절이 되어서 모두 예루살렘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한 민족이지만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집트 말을 합니다. 한쪽에서는 로마의 말을 합니다. 뜻이 통하지 않고, 생각이 통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한가지 말을 하는데, 듣기는, 동시통역이 되듯이, 각 나라의 언어로 들리는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 통하게 되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 통하게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생각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고, 삶이 통하는 사건...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우리 가정에 있어야 할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이시간에는 이렇게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하여,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에 교훈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다같이 한곳에 있어야 합니다.
1절 말씀에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에서 3위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즉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이제는 진리의 성령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부하십니다.
사도행전 1:4 에서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순종합니다. 박해의 땅, 예수살렘을 떠나지 않고, 다같이 모여서 기도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기를 오순절 절기가 이를때 까지 기도할때에, 성령님이 불같이 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때에 성령님은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가정에서 부모님과 자녀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할때에 성령님은 그곳에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이 모여 기도하는 그곳에, 말이 통하게 되고, 마음이 통하게 되는, 통하게 하시는 성령충만이 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선교회도, 여선교회도, 교회학교도, 함께 모여서 기도할때에, 통하게 하시는 역사, 뜻을 이루게 하시는 역사,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난 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에 나타 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성령님 충만하면 증거가 나타납니다.
성령님 충만 하면, 꼭 증거가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는 교회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는 가정에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는 사람에게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의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남편을 전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여집사님은 평생 소원이 예수님 않 믿는 남편을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남편을 교회에 데리고 나왔으니,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이 여집사님이 남편과 함께, 의자에 앉아서, 주보를 보는데, 은혜가 싹 가십니다.
설교말씀이 창세기 5장입니다. 창세기 5장은 내용이 족보입니다. 누가 얼마를 살고 죽었다는 것만 지루 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모처럼 남편을 데리고 나왔는데, 하필이면 왜 재미도 없는 족보에 대한 부분이 오늘 말씀일까?
그런데 예배가 끝난 후, 남편이 진지하게 말합니다. “여보 나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했오”
이 여집사님이 깜짝 놀랍니다. “ 아니 왜요?”
남편이 말합니다. “오늘 성경말씀보니, 모든 사람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오. 나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 나에게도 구주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오”
성령님이 역사하면, 증거가 나타납니다.
아무리 재미없어 보이는 성경말씀이라도, 성령님이 역사하면, 그 사람의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매주 먹는 점심식사에서도, 성령님이 역사하면,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해하고, 인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고, 체험하고, 말씀의 진리속에 내가 들어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든, 개인이든, 가정이든, 부서이든, 직장이든..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에는 말씀대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이 나타납니다. 찬양이 나타납니다. 기쁜과 감사가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3. 다른것을 보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충만 하면, 보는 것이 틀려입니다.
똑 같은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나를 주장하여 살아갈때에는, 세상이 답답하게만 보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짜증이 납니다. 화만 납니다.
그러나 성령님으로 살아갈때에는, 소망이 보입니다. 은혜가 보입니다. 말씀이 보입니다. 예수님으로 찬송할수 있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혼부부가정에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새댁은 결혼하기 전에는, 너무나 속을 섞였던 자매입니다.
그런데 예수잘믿는 총각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음에는 완전히 틀려 졌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하는데, 예배를 다 드린후에, 음식을 준비하면서, 찬송가를 부릅니다.
목사님이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말합니다.
“음식을 준비하는데도, 찬송을 부르는걸 보니, 보기가 너무 좋습니다..”
그러니까 새댁이 대답하더랍니다. “목사님 그러세요.
이 찬송은 계란 삶을때 부르는 찬송이랍니다.
계란을 반숙하고 싶으면, 3절까지 부르면 되고요.
계란을 완숙하고 싶으면, 5절까지 부르면 되거든요. 찬송을 보르면 참 편리해요“
성령충만하여 살아갈때에는 생활속에 기쁨이 넘칩니다.
찬송이 생활속에 일상화 되어 집니다.
말씀이 생활속에 일상화 되어 집니다.
생활 곳곳에서 신앙의 즐거움을 발견할수 있게 되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입니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계획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은혜의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찬송할 때, 기도할 때, 말씀볼때, 심지어는 식사할때에도...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과 기쁨을 발견하고, 사용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은혜시대입니다.
지금은 성령님의 시대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럴때,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이 보이게 되어 집니다.
자 6월 한달은 이렇게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은혜, 기쁨으로, 통하고, 바뀌고, 새롭게 되어지는 가정과 신앙과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