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마태복음 1장 18절 24절
2005.11.27 05:31:34 조회5431
마태복음 1장 18절 24절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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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만혼이 유행입니다만, 데이트 한번 하지 못한, 두 사람이 맞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먹 서먹,
멀뚱 멀뚱 앉아 있으니 시간이 지나갑니다. 또 너무나 어색합니다.
그러던 차에 남자가 용기를 내어서 말을 합니다.
\"제 이름은 [철] 입니다.\"
“그런데 성씨가 [전]씨입니다. 그래서 제 이름은 전철입니다.\"
그러자 여자가 까르르 웃으습니다.
남자가 긴장이 되어서 묻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 웃어요?”
여자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네 제 이름은 [이 호선] 이거든요~\"
그래서 전철씨와 이호선 씨가, ‘전철 이호선’이 되어 천생연분으로, 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름은 어울리는 이름이 있습니다.
딱 맞는 좋은 이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오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두 가지 이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와 임마누엘이란 이름입니다.
이 두 이름은 얼마나 좋은 이름이요, 어울리는 이름인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이름은 동전에 양면과 같이 딱 붙어서, 오실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인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라는 뜻입니다.
오늘부터 이제 대강절이 시작 됩니다. 대강절은 네 번의 주일을 보내며, 그 다음 성탄절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즉 성탄절을 준비하기 위하여 보내는 한달 동안의 절기를 대강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강절 기간동안 그리스도인들은, 한해를 마무리 하며, 또 한해를 돌아보며, 버려야 될것, 정리해야 될것, 들은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전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고, 예수님과 함께 새 해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대강절, 성탄절, 그리고 신년예배는 매우 중요한 절기들이라 하겠습니다.
자 이 모든 절기의 중심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오늘 마태복음은 그 이름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뜻이 있습니다.
저의 이름은 지원 입니다. 뜻은 가르킬 지, 으뜸 원....가르키는데, 으뜸 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름마다 귀한 뜻이 있는 줄로 압니다.
자 그런데, 이름의 뜻은 좋은데 과연, 그 이름의 뜻처럼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물은 이름과 그 사물의 정체성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숟가락이면, 밥을 먹는 숟가락으로써 역할을 합니다.
이름이 자동차이면,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자동차의 역할을 합니다.
이름이 꽃이면, 열매를 맺고 꿀을 담고 있는 꽃으로서, 피고 집니다.
그러나 사람만이, 그 이름과 그 사람의 삶이 단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인’이라고 이름을 붙혀도 진실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보람’이라고 이름을 붙혀도 보람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에는 아예 뜻도 모를 음가만 붙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장하나’ ‘프르지오’ ‘하리수’
또 심지어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기도 합니다.
이름 뿐만 바꾸는게 압니다. 국적도 바꾸고, 성별까지 바꾸어 버립니다.
수술을 하여서 남자가 여자가 되어 버립니다.
이경엽, 씨는 자신의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에 성별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리수’라고 이름도 바꾸고, 수술하여 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름데로 사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하는 것이, 너무나 힘겹고, 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서, 바꾸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름데로 살아가실 때, 사람들에게 배척 당하시기도 하셨고,
또 고난 받기도 하셨습니다만,
하지만 예수님은 이름데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십자가 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게 되셨다고, ‘예수’라는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 힘들다고,이름을 바꾸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름데로 살아가셨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름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희생하고, 섬기며,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어떤 사람은 이름을 바꾸어 버립니다. 신앙을 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름을 버리고, 자연인으로 살아갑니다.
자 이렇게 바꿀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은혜의 길이요, 영생의 복된 길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도로, 집사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좋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거추장스럽다고
바꾸고, 버리다면...
그것은 신앙의 지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을 귀하게 생각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임마누엘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는 뜻입니다.
이름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때에 얼마나, 큰 권세가 있습니가?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까?
6.25때 어떤 목사님이 피난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앞에서 인민군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인민군들이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총을 쏘아서 사람을 죽입니다.
총을 맞은 사람은 뻘건 피를 토해내며, 쓰러집니다.
이 목사님이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도망치자니 너무 늦었고, 앞으로 가봐야, 인민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인민군이 이 목사님을 보고 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그때 목사님의 마음이 흔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거짓말을 둘러댈까...아니면 정직하게 말할까....’
목사님은 마음을 잡고 말하였습니다.
‘네 저는 목사입니다.’
인민군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입니다.
‘목수 나중에 막사지을때 쓸모가 있겠구먼, 저리로 가시오..’
그래서 목사님은 감사하면 도망칠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목수로 일하신 예수님께서, 목사인 나를 목수로 알아듣게 하셔서,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겠습니다.’
임마누엘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의 권세와 능력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할때에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때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예수님을 사모할수록,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왕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왕후 와스디는 쫓겨났도, 왕후 에서더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지만, 다니엘은 살아났어도, 다니엘을 음해하던 사람들은 멸망하고 말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옥중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오히려 찬송하고 기도할때에, 감옥이 흔들이고, 옥문이 열리게 되어 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능력이요, 권세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미국에는 ‘엘리자베스 머레이’ 라는 소녀 이야기로 떠들썩 한적이 있었습니다.
머레이의 부모는 마약중독자였다고 합니다.
마약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마약은 영혼을 좀먹는 악마의 약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과 가정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병이 바로 마약 중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증인지, 머레이의 어머니는 나중에 딸의 옷들까지 팔아버리고 마약을 살 정도로 중증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레이는 9세 때부터 생활하기 위하여 주유소에서 일하여야만 했다고 합니다.
얼마후 머레이의 부모님은 둘다 마약중독으로 곧 죽고 말았습니다.
부모님들의 죽음앞에 어린 머레이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모님 같은 비극적인 인생을 살지 않겠습니다. 저는 바르게 살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옵소서. ’
그리고 머레이는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마약의 유혹을 이겨내었습니다. 생활이 힘들고 어려워도 이겨내었습니다.
더욱이 하루하루 살기도 힘들지만, 머레이는 기도한데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머레이는 돈 없이도 다닐 수 있는 뉴욕의 특수공립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힘든 생활속에서도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4년 과정을 2년에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리고는 결국 하버드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머레이의 사건 뉴욕타임스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여러 방송에서 머레이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많은 사람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머레이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오히려 세상의 유혹, 좌절의 유혹, 절망의 유혹을 이겨내고,
믿음의 능력, 예수님이 주시는 권세가 무엇인지를
세상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였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성도님들 한사람 한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 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복된 교회가 될줄로 믿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우리 성도님 한사람 한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능력있는 생활인이 되어 질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해 주셨습니다.
근심의 죄, 좌절의 죄, 절망의 죄,..... 이러한 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원죄에서부터, 예수님은 우리를 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심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수 있게 하셨습니다.
구원과 권세
능력과 은혜가
예수님 때문에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대강절을 맞이하며,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된 이 놀라운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고백하고,
그 이름의 권세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