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절 2절 복음을 위하여 택정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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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산타 스칼라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에는 예배당 본당으로 올라가는 27층개, 계단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예배당 현관의 계단은 5층계 이지요.
산타스칼라 성당 계단 앞에 서서 설명을 들으면, 누구나 눈물을 흘리며, 그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서 올라가게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계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받으시고, 직접 걸어 가셨던, 빌라도 총독의 집무실 계단이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의 있던 빌라도 총독의 계단을 로마로 옮겨와서, 산타스칼라 성당에 갖다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면류관에 홍포를 입으시고 걸으셨던 계단을...어찌 내가 뻣뻣하게 걸어서 올라갈수 있겠습니까?
열이면 열, 모든 사람들이 이 계단앞에 서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기 위하여, 무릎으로 기어서 그 계단을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계단이 또한 유명한 것은, ‘종교 개혁자 루터’의 계단으로 알려 졌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서 올라가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계단의 중간쯤에 이르러 성경구절 떠 올리게 됩니다.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루터는 구원은 공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계단에서 벌떡 일어서서, 로마서 1장 17절 성경구절을 외치며 걸어 내려 왔다고 합니다.
대단한 용기,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거대한 혼란속에서 복음을 재발견하고, 위기속에서 오히려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혼란 이라는 위기에 맞섰던, 바울, 루터...
오늘 말씀은 혼란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하여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1. 혼란 속에서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1절 말씀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사도바울이 보낸 서신서가 되겠습니다.
로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혼란의 도시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당시에도 혼란의 도시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방문 할때에도 혼란의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혼란의 도시입니다.
어떤 혼란이 있습니까?
먼저 질서의 혼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고,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고백합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에는 로마 황제를 주인으로 고백하고 섬기도록 강요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무릎꿇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듭니다.
모든 것이, 로마 황제를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 이러다 보니,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에서 살려면,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배생활 하기가 힙듭니다.
심지어 예배드리다 발각되면, 사자에게 던져지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교회는, 무덤 속에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무덤은 사람들이 무담스러워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로마군인들이 여기까지는 설마 잡으러 오지 않겠지....그래서 무덤속에 만든 교회를 “카타콤” 이라고 합니다.
또한, 로마에는 가치관의 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물질 만능주의입니다. 출세 만능주의입니다.
재물이 많은 것이 행복이다. 출세를 하는 것이 행복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천국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렇듯, 로마에서 살아가면, 질서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을 이기지 않으면, 믿음생활을 할수 없는 곳이, 로마 였습니다.
이러한 로마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써서 보내면서, 제일먼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도바울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질서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을 이기고 사도가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을 말씀을 보면..“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황제를 위하여 선택받고,
재물을 위하여 선택받고,
세상에서 출세를 위하여 선택받은 존재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존재가, 그리스도인 이라고, 사도바울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는데, 어떤 직분으로 택정함을 입었습니까? ‘사도’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도바울은,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습니다.’
‘사도의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세가지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바울은, 강력하고도 분명한 교훈이요,
또한, 먼저 본이 되어 보여준, 사도바울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도 유효한 질문이 아닐수 없습니다.
나는 혼란한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받은 직분이 있습니까?
오늘날도, 당시 로마 못지 않게, 질서의 혼란을 경험 하게 됩니다.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 합니다.
처처에 사건과 사고가 많습니다. 테러와 전쟁의 소문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1:25 말씀하셨습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혼란의 소식을 들으면, 곤고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않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가치관의 혼란은, 더더욱 그리스도인을 괴롭힙니다.
재물 때문에 근심걱정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출세 때문에 근심걱정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유머입니다.
본의 아니게, 일류대학에 가기 위하여, 재수를 하던 학생이,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과로로 죽게 되었습니다.
천국문 앞에 갔더니, 베드로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그동안 공부한다고 고생 했으니, 어서 천국에 들어 가자꾸나.”
그런데 이 학생이 천국을 보니까, 열두보석으로 빛나는 열두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순간...학생이 긴장하면서 하면서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저기요.. 문이 12개인데...혹시 정원미달 된 문은, 어느 문인가요?"
세상의 가치관은 천국에는 쓸데가 없습니다.
오히려 천국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혼란속에 살아가는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믿음의 가치관, 복음의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 하였던 것입니다.
시편 119:109 에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시편기자는, 위기속에 서 있었습니다. 그 위기가 얼마나 심하였는지, 항상 생명의 위기를 맞주하고 잇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습니다.
위기가 심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열심히 붙잡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로마의 극심한 혼란을 맞주할 때,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임무, 인생목표를 잊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자이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다.
나의 직분은 사도 이다.
사도바울은 그 혼란한 로마에서, 이 세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복음전하는 것을 제1목표로 삼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혼란한 로마에서, 이러한 ‘복음의 정체성’과 ‘복음의 사명’과 ‘복음의 목표’를, 산타 스칼라 성당 계단에서, 다시 재발견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재발견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김포상도교회 계단을 발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마다, 우리에게도, 매주매주, 항상항상,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자입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나의 직분은 장로입니다. 안수집사입니다. 권사입니다. 집사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1장 1절에서 말씀한, ‘복음의 정체성’과 ‘복음의 사명’과 ‘복음의 목표’를 오늘 나도 분명히 고백할 때,
우리는, 혼란한 이 시대에, 성공적인 승리의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위기에 더욱 성경말씀을 힘써 알아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종교개혁자 루터는 베드로와 같이, 몸으로 부딪히는 삶을 살아 갔다면,
칼빈은 사도바울과 같이 펜으로, 지혜로, 종교개혁을 이루어 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루터 당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루터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당시 로마에는 성유물 전시가 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모세의 불타는 장작’, ‘예수님의 발자국 본 뜬 것’, ‘가롯유다의 은화 한 닢’...등등, 성유물을 요금을 받고 보여 주는 행사가, 여기 저기에서 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유물을 보면, 천년간 연옥의 고통을 탕감 받을수 있다고 선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은, 천년간 연옥의 고통을 탕감받기 위해서,.... 또한 호기심에서....성유물 전시장에 몰려 갔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고 하니, 성경의 내용을 잘 모르면, 누구나 이런 실수에 빠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으니까, 당연히 신천지가 잘못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신천지의 성경공부하는 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신천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민 중앙교회에는 젊은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다고 합니다.
만민 중앙교회에 가서, 이재록의 말을 들으면, 대학생이라도 고개를 끄뜩끄뜩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혼란스러운 로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바른 믿음은 이러한 것이다.
성경의 내용은 이것이다.
바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철저하게 기록한 것이, 로마서가 되겠습니다.
오늘 분문 2절에는, 간략하게 로마서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즉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 졌는데,
그 내용은 어떠합니까? 2절 하반절에 보니까..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즉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이요, 성경전체는 예수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재록, 이만희, 안상흥 등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모르다 보니, 당시, 가룟유다의 은화를 구경하자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듯이,
이제록에게 가서 아픈병이나 고치자고, 오늘날도 이단에게로 몰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성경의 내용을 모르다 보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생활에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호세아 6:3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의 내용을 확실히 모르다 보니,
북이스라엘에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를 벧엘과 단에 세웁니다.
“이 금송아지에게 절을 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너무 순진하다고 해야 합니까? 아니면 성경을 너무 모른다고 해야 합니까?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좋다고 몰려가서, 금송아지 앞에 절을 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고 좋아 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가당키나 한 것입니까?
출애굽할 때,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해낸 신이라고 절을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상 섬기는 것을 제일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모세를 향하여, 금송아지에게 절하는 이백성을 모두 진멸하고, 모세의 후손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럴 때, 모세가 대신 회개하며, 간절하게 간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하는 것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이 모든 사실이 다 기록되어 있는데,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금송아지를 만들고, 다시 금송아지에게 절을 하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고 좋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송아지에게 절을 하는, 북이스라엘 10지파를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출애굽기에 하나님이, 열왕기의 하나님과 동일하시고, 오늘날또 변함이 없으십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 멸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열왕기 상에서 다르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님니다.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말씀하신 그대로 결국 이스라엘 10지파는 열왕기 하에서, 멸절되어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10지파가 망하기 전에, 호세아 선지자가, 금송아지를 섬기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르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자..하나님을 힘써 알자..” 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창세기 때나, 로마서 때나, 오늘 지금도 동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상상, 나의 계획, 나의 뜻으로 살아가서는 않되겠습니다.
성경내용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내용 그대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생활을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절 4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사도바울은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살아나신 것을, 성경대로 전하기를 힘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요한복음 19장 28절에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요한복음, 13장에도, 17장에도 18장에도 19장에도,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더욱 열심히 알고, 성경대로 힘쓰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혼란한 시대에도, 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경말씀대로 큰 복의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현대는, 혼란한 시대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성경말씀 위에 서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과 같이, 복음의 부르심을 입고,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서,
혼란한 시대에, 오히려, 위기가 아니라 성경말씀대로 큰 복의 생활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