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13절 15절 진리 가운데 걸어가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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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님의 강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님을 만나는 것은,‘필연’입니다.
육신에 할례를 쫓아 살아가는 사람이, 표현적 유대인인것 처럼, 성령님을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형식적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6월달을 마무리 하고, 올해 상반기를 마무리 하는, 6월 마지막 주일 입니다.
나는 성령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는, ‘이면적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1. 이면적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영어로 노숙하는 것을, bivouac (비부액)이라고 합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텐트를 치지 않고, 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을, ‘비박’이라고 합니다. 그 ‘비박’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비브액’이라는 단어가 되겠습니다.
왜 ‘비브액’을 말씀 드리는가? 하면,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비브액’을 할수 밖게 없는, 길에 내몰린 사건이, 67년 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67년전 그러니까..1950년, 6월 25일, 그 날도 주일이었습니다.
주일날 새벽에 북한군이 처들어와서 6.25동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왜 주일날, 전쟁을 일으켰는가? 나중에 북한문서를 보니까? 이유는 간단하였습니다.
남한에는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 다니는 군인들도 많습니다. 주일날은 예배드리니까,
아무래도 경계가 느슨해지는 틈을 노린 것입니다.
6.25 동란이 터지니까... 모두 피난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길을 나서는 것은, 살기 위한, 단 한가지 방법 이었습니다.
비브액을 하면서..., 길을 걸어가다가 잠을 자면서도...., 사람들은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김이봉 원로목사님도 그때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 주신적이 있습니다. 김이봉 원로목사님은 고향이 평안도입니다. 북한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에서도, 남쪽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때는 방향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남쪽을 향하여 가야 되는 것이지...북쪽을 향하여, 동쪽을 향하여, 서쪽을 향하여 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북쪽으로 가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봐야, 서쪽으로 가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남쪽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분몬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인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진리의 길을 갑니다.
방향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천성을 향하여서...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방향은 소용이 없습니다. 명예의 방향, 재물의 방향, 세상 열락의 방향으로 가봐야 그 끝은 멸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천국의 방향이, 지금 이 자리에서, 어느 방향인지 보이 십니까?
왼쪽입니까? 아니면 동쪽 입니까?
요즈음은 GPS,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길은 너무너무 쉽게 찾습니다. 스마트폰 T맵만 켜면, 금방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천국의 방향이 어느쪽 인지 쉽지가 않습니다.
천국의 방향은 가르쳐 주는 곳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몰라서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6.25 때도..북한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대동강에 막혀서 “그래, 니가 먼저 가서, 길을 먼저 찾아 보아라”
그래서 김이봉 목사님도 그때는, 아들이니까..길을 찾는다고 대동강을 건넜다가... 그길로 어머니와 헤어지고, 다른 가족과 헤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오늘도 각자, 길을 찾으려고 힘씁니다.
하지만 길을 모르다 보니, 중요한 갈림길,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음이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그 길이, 운명을 판가름 합니다.
그 길이, 성공을 좌우 합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자리에 서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곁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만, 생명의 길은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만, 진리의 길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13절 상반절...“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진리의 길을 잘수 없습니다. 찾을수 없습니다. 걸어 갈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생명의 자리’에 잘 나오셨습니다.
진리의 길로 잘 오셨습니다.
성령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때에, 그리스도인은 안전하고, 영광스러운, 진리의 길, 구원의 길을 걸어갈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매주 중요한 분기점이 아닐수 없습니다.
6월 25일, 주일, 6월달을 마무리 합니다. 2017년 상반기를 마무리 합니다만.
67년전, 6.25동난이 일어 났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민족적으로 중요한지..상반기가 끝 나는지, 다음주일이 맥추감사주일인지, 도무지 그 때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을 맞이할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애쓰는 것은,
수고와 노력에도 곁길로 가서, 예수님께 버림받고, 천국과는 상관없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경각심을 갖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6.25일 주일을 맞이하여,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죄악 세상을 보면서, ‘진리의 길’로 가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 어떤 길인지...관심을 가지고, 긴장을 가지고, 눈을 크게 뜨로 바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진리의 길로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2. 진리 가운데 걸어갈 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4절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미국, 버지니아, 섀넌도어 국립공원의 산림관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던, ‘로이 설리반’은 ‘인간 피뢰침’이란 별명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사람입니다.
30년 동안, 7번 번개를 맞고도 살아남았습니다.
보통 벼락을 맞으면, 큰일 납니다. 아니 평생에, 길을 가다가 벼락을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분은,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니고, 30년 동안 7번이나..벼락을 맞고도 살아 남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설리반과 같이 있으면, 벼락을 맞을까봐...일부러 설리반을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나중에 설리반이 죽었는데, 묘비에도 벼락이 떨어져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단순히...징크스 라고 해야 될까요?
아니면, 벼락과 매우 친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저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 주었습니다.
저는 맛있다 싶어서 가보면, 꼭 그 음식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폐업을 하였습니다.
왜? 제가 맛있는 음식점 마다, 문을 닫게, 되는 것일 까요?
세상의 사람들은, 않되는 규칙, 않되는 방향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징크스...않좋은 상황이, 반복되는 경험입니다.
머피의 법칙...않좋은 상황이, 한꺼번에 발생하는 경험입니다.
상반기를 다 보내었습니다.
올해 상반기를 보내면서, 좋은 일이 많으셨습니까? 아니면 않좋은 일이 많으셨습니까?
진리 가운데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은, 꽃길만 걸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악세상에서 진리의 길을 가려다 보니, 사탄의 공격을 받습니다. 세상사람들의 훼방속에서 갈수 밖게 없습니다.
한 두번은 넘길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꾸 반복되는, 어려움과, 훼방과 박해를 받게 되면,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도 힘이 빠지게 됩니다.
낙심하게 되고, 심지어는 믿음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공급하시는 힘을 덪입지 않고서는,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갈수 없는 것이, 바로 진리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하기를 힘쓰셨습니다. 한적한 곳을 찾으셔서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새벽에, 어떨때는 밤늦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명절에, 회당과 성전을 찾으시고, 열심히 예배 드리 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들기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세상사람들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징크스로, 머피의 법칙으로 생각하면, 피하고 싶은, 제일 않좋은 길 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고난의 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이기에, 오히려 순종하며 온전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진리의 길은, 쉬운길이 아닙니다.
‘진리의 길’이 쉬운 길이라면, 아마도 ‘넓은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길을 ‘좁은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좁고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의 길은, 영광의 길입니다. 진리의 길은 승리의 길입니다.
성경의 많은 승리자들이, 바로 이, 진리의 길로 걸어 갔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 장’ 이라고 합니다.
진리의 길로, 걸어갈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에서 7절에 말씀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성령님은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직분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합하여져 사역이 완성되게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성령님이 각 사람을 유익하게 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길을 가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 받은 은사가 없이는, 내 힘으로, 진리의 길을 완주할수 없습니다.
또 진리의 길을 가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받은 직분이 있어야 합니다.
직분도 없이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이,... 나는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었습니다. 예수님 저를 칭찬해주세요. 저에게 상급의 면류관을 씌워 주십시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진리의 길을 가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은, 나의 사역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나는 찬양대가 나의 사명입니다.
나는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나는 구역의 식구들을 보살피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어야, 건강한 그리스도인이요, 영력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이요, 하나님깨서 불러 사용하시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는, 사역이 없이, 교회 왔다 갔다가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편하게 믿음생활하는것 같습니다. 하나 손해보는 것도 없고, 내가 하고 싶은것은 다 하고, 참 지혜롭게 믿음생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글쎄요... 불완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직분이 무엇인지?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충성되이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오후 찬양예배 때, 성경공부 시간에 예화로 배웠습니다만,
기도는 무엇인가?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군인이, 사령부에 무전을 하는 것과 같다.
기도로, 대장되신 예수님께 무전을 합니다. “예수님. 악한 사탄이 공격을 해 옵니다. 막아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영의 양식이 부족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 쳐 주십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건강을 주십니다. 물리칠 힘을 주십니다.
영의 양식을 주십니다. 힘을 차립니다.
그런데 사명이 없으면, 임무가 없으면, “예수님, 저에게 큰 영적 권능을 더하여 주시고, 물질의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뭐에 쓰려고 그러느냐? ...너의 사명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어디에 쓰려고... 구하느냐? ”
은사가 있으면, 신앙생활의 역량이 틀려집니다.
직분이 있으면, 봉사생활의 범위가 틀렵집니다.
기도가 틀려집니다.
감사가 틀려지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6:13절에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청소년 다윗이, 마음에 열심만 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믿음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겠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붙게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다윗에서 기름을 붙습니다.
기름을 붙으면, 기름이 머리카락에 뭍어서...머리카락이 반질반질 하게 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직분을 주시고, 은사를 주신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가.. 년초에, 부장으로 임명을 하고, 서리집사로 임명을 하고...교회의 직분자를 세웁니다만...그것이 겉으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목사님, 이름 부르고, 대충 형식으로 그러는 것이 아닌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않되겠습니다.
기름을 사무엘이 붙지만,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다윗이 성령님께 크게 감동 되기 시작합니다.
은사를 주십니다. 직분을 주십니다. 사명을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16장에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17장에 가서 골리앗을 넘어 뜨립니다. 18장에, 다윗은 군대의 장이 됩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이 먼저이고,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이 그 다음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윗은 이스라엘의 희망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모든 역경을 이기고,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을 통하고, 주위의 대적들을 평정하고, 이스라엘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은, 단순히 힘든길이 아닙니다. 영광의 길이요, 승리의 길이요,
역경을 이기고,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복음의 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직분과 사명을 붙잡고, 영광의 길,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하여,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다시한번 힘있게 출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