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3장 18절 26절 믿음은 돌풍을 일으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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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믿음에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은 돌풍을 일으킵니다. 라는 제목이 되겠습니다.
믿음은 조용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능력이 나타납니다.
믿음은 권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바람으로 설명하고, 성령님을 불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름이 한창 무르익고 있습니다. 초복, 중복...
여름이 되면, 빼놓을수 없는 것이 태풍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태풍이라고 하지요? 유럽에서는 ‘허리케인’ 이라고 합니다.
인도사람들은 ‘사이클론’이라고 합니다. 호주사람들은 ‘윌리윌리’라고 합니다.
태풍은 그야말로 큰 바람입니다. 태풍에 크기는 수천키로나 됩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도로의 표지판도 흔들흔들 거립니다. 심지어는 나무가 뽑힙니다.
태풍은 한나라에 큰 타격을 줄수 있는 어마어마한 바람입니다.
이렇게 큰 태풍을 움직이는 힘은, 태풍의 한가운데, 태풍에 눈에 있습니다.
큰 태풍이니, 태풍에 눈은 얼마나 바람이 심하고, 폭풍이 심할까?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입니다.
태풍에 눈은 고요합니다. 태풍에 눈은 그름이 한점도 없어서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바람도 불지 않습니다. 평안하고 고요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큰 바람, 태풍을 움직이는 힘이 집중된 곳이, 오히려 고요한 곳이라니...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돌풍, 봉사의 돌풍, 능력의 돌풍, 권능의 돌풍...
성령님이 힘있게 역사하는 곳에는, 믿음의 큰 바람이 일어납니다.
건강한 믿음, 온전한 믿음은, 믿음의 돌풍이 일어날수 밖게 없습니다.
초대교회에 120문도가 성령님 충만할 때, 수천명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소아시아로 복음을 들고나가자,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비롯하여, 그리스, 로마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제시대때,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찾아오자, 희망을 버렸던 우리나라가, 독립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부르짖을 때, 바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열심의 바람, 교육의 바람, 경제의 바람..
국토의 크기는 세계에서 109등 하는 작은 나라인데, 경제적으로는 11등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 믿음의 돌풍에는 그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18절로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말씀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이 지나고, 200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동안 남유다는 너무나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였습니다.
웃시야 할머니는, 아달랴입니다. 북쪽에 아합왕의 딸이 었습니다.
말이 할머니지, 너무너무 무서운 할머니였습니다.
처음에 시집올때는 조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곧 본색이 들어났습니다.
다윗왕의 후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스스로 여왕이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다윗왕의 대가 끊어질 뻔 하였습니다.
왕들도, 믿음생활을 잘 하기 보다는, 우상을 섬기고, 나라를 오히려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러기를 200년쯤 하니까...남유다 사람들은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윗왕 때처럼, 멋있는 일
솔로몬 왕때처럼, 자랑스러운 일들은, 꿈도 꿀수 없게 되었습니다.
힘이 빠지고, 맥이 빠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던 때가,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였습니다.
요즈음 바람이 않분다고 하지요.
옛날같은, 경제성장도 6%...7% 는 당연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조금만 힘을 내면, 바람이 불어 옵니다. 붐이 일어난다고 하지요.?
그때는, 학생들도,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물리학과 점수가, 서울대, 의과대학 점수를 앞지르기도 하였습니다.
핵물리학자가 되겠습니다.
세계에서 제일큰 배를 만들겠습니다.
전자, 반도체를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에, 붐을 일으키고, 사회 곳곳에서 신나는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바람이 않부는 것 같습니다.
학생...커서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공무원 시험에 합격 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이사야 선지자의 시대는 바람이 불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희망과 믿음이, 사라진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람 일으키리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신반의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새일을 시작하신단다...
이전 일을,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물을 내어, 동물들도, 사람들도, 남유다 백성들도 마시게 해주신단다...
만약 이대로만 되면, 다윗왕 시대는 저리가라입니다. 솔로몬왕 시대는 저리가라입니다.
이스라엘에 그 넒은 광야에, 강물이 흐른다면, 천지개벽할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신 것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목적은 너무나 분명하고 심플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올려 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하게 하시려고,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뒤집으면, 어떤 의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새일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올리도록 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의 비결, 새바람의 비결은, 바로 예배에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믿음이 전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열왕기상 11장에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으로 멀어지고, 여로보암이 반역을 할때에,
이스라엘에 모든 지파가, 여로보암에게 가버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루사렘에 성전을 위하여, 한지파 만은 남겨두기로 해 주십니다.
그래서, 유다지파는, 남유다가 되어, 예루살렘에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지키며 예배를 드리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남유다가 망하고, 유다지파는 바벨론에게 끌려갑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에스겔 8:16 에 보니까..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남유다 백성들이, 예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성전을 등지고, 태양을 향하여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망하게 하시고, 바벨론에게 끌려가게 하시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지어진 목적, 즉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명을 잘 붙잡으면,
새바람을 일으키시고, 돌풍을 일으키시고, 새 일...놀라운 일을
다시 시작해 주시겠다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태풍에 눈이 있듯이, 믿음생활에도 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모든 힘이 집중되는 시간입니다.
모든 정성이 집중된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은혜롭지만, 예배의 힘은 너무나 대단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모든 믿음생활에 돌풍이 일어나게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관통하면, 나의 자리, 나의 가정, 나의 사업장, 나의 학업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과 업적이 대단한 웃시야 왕도, 예배를 잘못 드릴 때,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어도 온정성을 다하여 헌금할 때, 그 과부는 예수님께 제일큰 예물을 드렸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맡기시려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사람들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통하여 돌풍을 일으켜야 합니다.
22절에서 2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남편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면 내시경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더니,
눈을 껌뻑~ 껌뻑~ 거리며, 옆에 있던 아내에게 말을 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최고로 미인이야.”
아내가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정신을 드는지 남편이 이번에는 아내를 보고 말합니다.
“여보. 당신 파마좀 해야겠어. 머리가 많이 풀렸는네. 얼굴도 부시시 하고...”
아내가 이번에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이런데서 그런말을 꼭 해야 하나? “
그러자 옆에 지나가던 간호사가 말을 합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고, 있어서 그러니, 보호자분~...너무 상심 마세요.
본래.. 마취에서 풀리면, 제정신이 돌아 온답니다. ”
무엇이 제정신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은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외면하면...꿈이 달콤하고 즐거울수 있습니다. 하지만, 꿈에 취해서 살아가면, 발전이 없고, 성숙함이 없습니다.
일본은 30년 장기불황으로, 선진국들은 모두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데, 일본만 뒷걸음질 첫습니다.
일본의 국민소득은 만달러 가까이, 뒷걸음질 하였습니다.
일본에도 현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기불황 아니다. 한국이 환율을 조작해서, 일본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일본의 현실을 직시하고, 아픈 현실에서 교훈을 발견하여, 발전하는 기업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일본전산’은 각종 모터 부품업체입니다. 4명으로 시작하여, 13만명에, 8조원의 매출을 내는 큰 기업으로, 계속하여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창업자인 ‘나가모리 시게노부’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불황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이 움직여야 합니다.
불황에는, 사람놓고 돈먹기입니다.
좋은인재, 좋은기업 일수록, 어려울 때에, 더욱 힘을 발휘 합니다.”
믿음도 그런것 같습니다.
바람이 않불 때 일수록, 좋은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은, 더욱 힘을 발휘 합니다.
바람이 않불 때 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움직여야 합니다.
욥기 1:20 에는 말씀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은, 평안할 때는, 점잔하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혹시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으면,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점잔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욥의 집에 풍랑이 몰아 쳤습니다.
사고가 나고, 사건이 나고,
주위 족속들이 처들어와 욥의 가축을 몽땅 잡아가고..
나중에는 자녀들도 모두 사고를 당하고...
그럴 때, 욥은 점잔케 예배를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온정성을 다하여, 온 마음을 다하여,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옷을 찢었습니다.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간절한 예배가 있었기에, 욥은 망하지 않고, 오히려 욥기 42장에 보면, 더욱 갑절의 은혜와 복과, 자녀들과, 가축들과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악한 것과 맞서서 능력을 발휘하는 예배,
바람이 않부는 가운데, 돌풍을 일으키는 예배는,
점잔은 예배가 아닙니다.
나는 구경하는 관찰자가 되는 예배가 아닙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내가 한나처럼 울음을 참고 입술만 떨어서, 오해를 받을지언정...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예배가,
악한 것을 이기고, 믿음의 돌풍을 일으키는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예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찬양대도 예배를 위하여 있습니다.
예배위원도 예배를 위하여 있습니다.
항존직도 평생동안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라고, 특별히 구별해 주신 것입니다.
목사도 예배를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라고 구별해 주신 직분입니다.
교회에는 예배와 상관없는 직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축복의 통로, 돌풍을 일으키는 능력의 근원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22절 보니까..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예배때 하나님을 부리지 않았고, 예배 드리는 것을 괴롭게만 여겼습니다.
26절에 말씀합니다.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얼마나 하나님을 찾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다.
유다지파인가?...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이스라엘의 열지파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유다지파는 예루살렘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또렷이 기억하시도록, 하나님을 뵈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믿음의 돌풍을 일으킵니다.
예배를 통하여,....잠잠한 오늘날, 생활과 가정과 인생에 돌풍을 일으키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