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편 4절 10절 하나님께 맡기는 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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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다는 것은, 성령님께 순종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북한에는 요즈음 강영실 동무들이 많다고 합니다.
북한의 군인들을 모아놓고, 강영실 동무, 손들어 보세요, 그러면 여기저기에서 손을 든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북한에는 강영실 이란 이름이 유행을 하고 있는가?
보았더니, 사람이름이 아니랍니다.
강영실 동무...강하게 영양실조, 걸린 동무... 그래서 이사람 강영실 동무인가? 그러면 영락없이 얼굴은 절인 배추마냥 하얗고, 몸은 바싹 마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맡겨도 좋은데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 에는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탄에 맡기는 사람은 어리섞은 사람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탄에 내 영혼을 맡기고,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은, 멸망으로 달려가는 것이요, 올무에 스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1. 하나님은 나를 제일 잘 아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나를 맡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드시고, 좋아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여섯째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면서, “심이 좋았더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대로, 나를 만드시고, 나를 조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내가 태어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심이 좋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심히 좋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기 까지 하시는,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나를 맡겨야 합니다.
이사야 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야곱은 이름처럼, 참 야비하고, 잔꾀를 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하여, 형인 척~~ 흉내를 내면서, 아버지를 속입니다.
나중의 형을 만나니까.. 형님의 얼굴을 뵈오니 하나님을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아첨스러운 말을 합니다.
자 이걸 나쁘게만 보면, 정말 정이 가지않고,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야비한 아곱이 집에서 쫒겨 납니다. 갈길을 모릅니다. 그럴 때 눈물이 납니다. 마음이 슬픔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나를 인도해 주시겠지요?
울면서 울면서... 돌베개를 배고, 들에서 잠이 들게 되었습니다.
상황으로 보면, 오히려 고소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도 바른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건으로 보면, 전혀 사랑을 받을 만한, 그릇이 않됩니다.
하지만, 그런 야곱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잠이 들 때, 하나님께서 꿈에 찾아오셨습니다.
사닥다리가 보이는데,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야곱의 간절의 기도를 가지고 갑니다.
야곱이 깜짝 일어나서,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혼자인줄 알았는데,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지금도 나를 내려다 보고 계시는 구나.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면, 나는 잘 될 수 있다. 나는 승리할수 있다. 확~신을 같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나를 용납하시고, 나를 불러 주신, 증거인줄로 알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야곱처럼, 불의한 것이 많고,
나는 야곱처럼, 의롭지 못하다 하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여 주시면,
나는 야곱처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게 될줄로 믿습니다.
나는 야곱처럼 언제 어디서 든지, 하나님께 나를 든든하게 붙잡아 주시고, 나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잘 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들 중에 말째입니다.
사울왕의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 제일 싫어하는 블레셋 땅으로 도망가기 까지 하였습니다.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는 길을 같던 사람이, 다윗입니다.
않되는 길로, 갈수 밖게 없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누구는 않되는 길로, 가고 싶어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얽히고 섥혀서, 이젠 끊을수가 없습니다.
꽁꽁 매여 버렸습니다. 되돌이킬수가 없습니다.
잘 한다고 했는데, 백성들은 좋아합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사울왕이 미워합니다.
사울왕은 죽일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께서 기름부음받은 자를, 사람이 헤할수 있으랴? 그리고 옷자락만 베고, 오히려 도망갑니다.
그랬더니, 쫓껴서 쫓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싫어하는 블레셋 땅에 들어가서,
완전히 미움을 받고, 완전히 잊혀진 사람이 되고, 버림받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의 믿음이 위대하였던 것은, 바로 그 제일 밑바닥에 있을 때, 하나님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내가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뻐하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보시고 기뻐해 주시면서, 나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의 신실함을 붙잡는 믿음,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않될 때, 상황이 않좋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상황이 좋으면,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상황이 않좋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근심걱정에 한숨만 쉬고, 원망만 합니다.
그러면 믿음 없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집에서 쫓겨나서 돌배개 베고 잘 때,
다윗처럼,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만, 갖가지 훼방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바로 그 어려움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잡아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게 앞에 현수막을 붙혀 놓았습니다.
글을 읽어 보았더니... 긍정적인 사람은 한계가 없고, 부정적인 사람은 한게 없다.
그럴듯 해서 고개를 끄득이게 되었습니다.
야곱과 같은 자리, 다윗과 같은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을 않붙잡을 이유는 너무마 많습니다.
앞에 막막해요. 힘이 빠져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요.
기도가 않나와요..
예배를 못드리겠어요.
기분이 않좋아요..
믿음이 떨어지는 이유를 찾으려면,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진짜..한게 없습니다. 기도도 없고, 찬송도 없고, 예배도 없고, 봉사도 없고..
하지만,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은...하는게 있습니다. 기도도 하고, 찬송도하고,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믿음의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기뻐 해 주시고, 그 사람의 소원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8절 9절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골 초등학교 앞에 구멍가게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할아버지입니다. 손님들은 아이들 밖에 뿐입니다.
서울 사람이, 그 정겨운 모습을 보고, 구멍가게 할어버지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조용한 곳에 계시면, 화나는 것도 없고, 걱정 꺼리가 없으시겠어요”
그때, 어린이 세명이 가게에 들어옵니다. “할어버지 뻥튀기 하나 주세요”
하필이면, 뻥튀기가 제일 높은곳에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사다리를 가지고 와서, 올라가서...힘들게 내려 주었습니다.
두 번째 아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저도 뻥튀기 하나 주세요”
할아버지가 다시 힘들게 사다리에 올라가 뻥뒤기를 가져다 줍니다.
셋쩨 아이를 보면서 묻습니다. “혹시 너도 뻥튀기 하나 살꺼냐?” “아뇨”
할어버지가, 사다리를 제자리에 갔다 놓았습니다. “넌 뭐 먹을래..” “전, 뻥튀기 두개 주세요”
이 세상에 조용한 곳은 없습니다.
산골에 들어간다 해도, 화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속에서,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계획과 나의 욕심이 있지만, 그 모든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도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대로 안풀리는 것입니다.
원래계획은 터어키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터어키에 가는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자꾸 다른 일이 생기고, 자꾸 가는 길이 막히고...길이 열리지가 않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에게는 기도의 제목도 있었습니다. “나의 육체에 가시를 뽑아 주십시요.”
몸에 건강이 않좋은 것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도 병을 속히 낫게 하여 주시옵소서. 3번이나 작정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습니다. 낫지를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픈것을 위하여 기도하면, 척척 났는데, 사도바울 자신이 아픈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가 않습니다.
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욕심을 버리고 보니..
않되는 데도 이유가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이유, 더 큰 섭리가 있었습니다..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나에게 더 큰 복을 주시고, 않되는 것을 통하여, 않낫는 것을 통하여, 나에게 더 큰 유익을 주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터어키에 가서 전도하는 길이 막힐 때, 기도하였더니, 꿈에 그리스의 데살로니카 사람이 도와달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터어키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그리스로 갔더니,
사도바울의 그 발걸음을 통하여 유럽대륙이 기독교 대륙이 되고, 서구 문명전체가, 기독교가 밑바탕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약 사도바울의 가려던 길이 않막혔더라면, 지금 서구는 바바리안, 오랑캐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양 사학자들은, 사도바울의 계획이 않됨으로 인하여, 감사하게도, 서구문화 전체가 기독교 문화가 되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았던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말씀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병이 나아서 교만한것 보다, 약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더 큰 유익이라고...기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생활속에서 혹시나 않되는 일을 만나도, 너무 절망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나에게 허락하신 것은, 더 큰 유익을 주시고, 더 큰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에..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조금만 기다리면...하나님의 큰 뜻, 유익되고, 멋있는 뜻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8절,9절, 10절 말씀의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분을 그치고, 불평을 그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면..
조금만 기다리면, 악인이 사라집니다.
믿음의 사람이 역시 소망을 이루고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찾아가는 심방이 있지만, 어떨때는 찾아오는 심방도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집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얼굴보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시간입니다.
“목사님, 점심시간인데 식사를 하고, 출발 하겠습니다.”
“그럼 가까운, 홍익돈까스가 있습니다.”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나를, 교회까지 실어 주고, 출발하는 것 보다는.... 먼길인데 그냥 출발하도록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사님, 바로 출발하십시요..저는 그냥 걸어서 교회로 가겠습니다. 운동도 할겸..집사님 바로 출발하십시요”
억지로 보내고, 홍익돈까스에서 걸어서 출발하는데,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땡볕입니다.
걸어서 교회 올 일이 까마득 합니다.
물론, 우리 염동철 집사님은, 아침저녁으로 걸어가고 걸어오시니까..휙~ 하고 다니시지만…
저의 체력으로는 홍익돈까스에서 교회까지...보통 먼 길이 아닙니다.
약간 후회 생길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했으니, 뭐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출발하는데...갑자기 멋있는 차 한데가 서더니...창문을 내리면서 다급하게 말합니다.
“불로동, 어디로 가면 되요...도저히 길을 못찼겠네..”
그래서 제가 얼른 말했습니다. “불로동 가려면, 제가 일단 차에 타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그러십시요.”
그래서 좋은차에 타고, 교회 바로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나를 최고로 잘 아시는 분 이십니다.
제가 체력이 허 하다는걸 다 아시니까.....“순종 잘했으니, 그 다음에는 내가 책임지겠다.”
하나님께서 즉각 타고갈, 차를 보내 주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전 5장 6절 7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말씀대로 순종해 보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줄 믿습니다.
말씀대로 생활하면, 하나님의 큰 섭리하심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제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행동 하십니다.
나의 생활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큰 유익속에 살아가는, 큰 섭리속에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