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6장 15절 22절 삼손의 위기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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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입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
작품을 못 만드는 예술가,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영감이 없다.
혼사자시는 할머니는 영감님이 없습니다.
예술가는 예술의 영감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영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의 영적감동이 충만하게 살아갈 때, 위기를 큰복으로 바꾸는 생활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지난시간,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는 위기를 만날 때,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세상과 같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너무나 큰 위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구원의 방주 속에 들어갈 때, 불심판의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위기의 자리로, 스스로 걸어들어 갔던 삼손에 대하여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위기는 만나면 않됩니다.
위기에 잘 대비하여,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스스로 위기의 자리에 걸어 들어갔던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은 그리스도인도 위기를 만날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위기의 자리에 들어가면 않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사사기 16장 1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삼손은 한 기생을 보고, 스스로 자기발로, 들어 갔습니다.
잠언 7장 21절 22절에는 이렇게 하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하여 말씀 합니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삼손은 불행의 자리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위기가 닥칠수 밖게 없는 자리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러로도, 평안하고 형통하고 큰복을 받기를 바란다면, 정말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 아닐수 없습니다.
삼손이 처음부터, 불행과 위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가운데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삼손이 태어날 것에 대하여, 특별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구별한 특별한 아이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삼손은 태어나자,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사기 13장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성령님께서 함께 움직이는 아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아이..
얼마나, 부럽고, 복되고, 대단합니까?
삼손은 자라면서 보니까, 힘이 얼마나 쎈지 모릅니다.
성령의 영적감동이 충만 하니까...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힘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천하장사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어머어마한 힘이 납니다.
사사기 15장에 보면,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 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의 힘이 임하시니까...삼손은 묶여있던 밧줄을 끊어 버리고, 옆에 있는 나귀 턱뼈를 손에 잡고, 블레셋 사람을 천명을 죽입니다.
천하무적 삼손,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그 누구도 당할자가 없는, 이스라엘의 믿음직한 사사, 삼손....
삼손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블레셋 사람들을, 속 시원하게 이기고,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그 삼손이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갑니다.
자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연전연승하고, 어마어마한 힘이 계속 나오니까...
교만 하여졌는지, 나태 하여졌는지, 믿음이 떨어졌는지...알수가 없습니다.
하여튼 스스로, 기생에게로 걸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딱 한번, 그냥 재미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재충전을 위하여, 일탈행동을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재미도 아니고 일탈행동도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요, 멸망으로 달려가는, 위기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에는 축복속에 시작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공로를 값없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자, 사탄이 얼씬도 못합니다.
나쁜것이 일절 틈타지 못합니다.
신이나서 열심히 기도하면 응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권능이 나타납니다.
형통합니다. 평안합니다. 모든 것이 행복합니다.
그러다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스스로 불신앙의 자리에....... 걸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번쯤 불신앙의 길로 간다고, 무슨 큰일이 날라고...
그러면서, 그것이 불행의 시작인줄도 모르고, 위기의 길로 들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부름받은것 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구별해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특별하게 삼손에게 임하였던 것 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님이 특별하게 임하고 동행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이 사실의 귀함을 잊어버리고, 어떤 그리스도인은 삼손과 같이, 위기의 자리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죄악의 자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갈 때,
제일먼저 성령이 가슴아파 하십니다.
성령의 영감이 사라질 때, 삼손의 힘도 사라지고,
성령이 떠나가실 때, 삼손은 불행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2. 삼손은 어떤 실수를 범하였습니까?
18절 말씀입니다.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유머입니다.
왕이 평민 옷차림을 하고, 내시를 대리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백성들이 잘 살고 있는가? 어려움은 없는가?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식사를 하려고, 주막집을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 기둥에 큼지막하게 글이 쓰여 있습니다.
“손님은 왕이다.”
그 글을 보고, 내시가 말합니다. “마마, 들켰습니다. 마마가 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빨리 자리를 피하시옵소서”
어찌 되었던, 항상 조심하고, 항상 경계하는 것은, 나쁜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삼손은, 조심하고 경계하고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사사기 16장 2절 3절에 보면, 잠복해 있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죽을뻔 합니다.
이쯤 하면, 정상적이라면 다시는 그런데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가서, 들릴라라 이름하는, 이방여자를 흠모하고 사랑하기 까지 합니다.
삼손은 그렇게 위기속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입니다.
들릴라는 이방여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나실인이라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좋은 여자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삼손은 우상을 섬기고, 믿음이 없는, 이방여인을 마음에 흠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들릴라는 은 천백냥을 받기로 하고, 블레셋 사람들과 한편이 되어,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어, 삼손을 넘기려고 합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지만, 들릴라는 절대로 삼손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힘의 근원까지 가르쳐 주며, 믿었지만, 들릴라는 삼손을 믿기는 커녕, 삼손을 넘기고, 은 천백냥을 받았습니다.
한번, 기생에게 가서 죽을 뻔 하였으면 그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방여인 들릴라에게 찾아가서, 마음으로 흠모하고 사랑하였던은
삼손의 어리섞음이요, 가장 큰 실수가 아닐수 없습니다.
죄악은,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행복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삼손의 실수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오늘 본문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들릴라가 살살 꾀웁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힘의 근원을 나에게 말하라”
처음에는 삼손이 이런 저런 말로 둘러 댑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꾀우니까... 삼손이 귀찬아 죽을 지경입니다.
나중에는 가르쳐 줍니다. “나는 모테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셔서, 나실인으로 태어났는데...
나실인은 독주를 금하고, 머리에 삭도를 대면 않되는데...
만약에 나의 머리카락을 밀면, 내 힘이 나에게서 떠나가고,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들릴라가 좋아라 하고, 얼른 삼손을 자기 무릎에 눞힙니다. 다정한 말을 하면서 잠을 재웁니다.
삼손이 골아 떨어지니까....들릴라가 얼른 삼손의 머리카락을 밀어 버립니다.
그리고 소리를 칩니다. “블레셋 사람이 왔어요. 블레셋 사람이 왔어요”
삼손이 잠에서 깨어나서, 몸을 떨치고 힘을 쓰는데, 힘이 젼혀 나지 않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가신 줄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의 머리카락이 없어진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그러면서 삼손을 묶어서 끌고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구별하여 주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별된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충만의 삶을 살때, 힘이 있고, 행복한 사람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생활, 믿음생활, 기도생활..., 평소에 구별된 생활은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거기에서 그리스도인의 힘의 근원이 있습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젊은 집사님이 이사를 왔습니다.
교회가 있는 동네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인사를 합니다. “이 시골에 이사를 왔으니, 앞으로 잘 지내 봅시다.”
그러면서 술잔치를 열면서 말합니다. “딱 한잔인데...시골에 왔으면 이거 마셔야, 우리 동네 사람이 된다네...”
그러면서 사근사근 하게, 정감있는 말을 하면서, 술을 권합니다.
그래서 이 젊은 집사님이 하는수 없이, 한잔 받아 마셨습니다.
나중에 그 마을에 소문이 났습니다. “새로온 젊은 사람은 집사가 아니고, 잡사야...
술도 잘 마시던데, 그게 뭐 교인이야.....
앞으로 같이 놀면, 잘 놀것 같던데....하하 호호”
사탄은 작은 것으로 믿음의 사람을 넘어지게 만듭니다.
기생에게 들어가고, 이방여인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사랑이 무슨 죄야... 지금까지 기도하면 바로바로 응답이 나타났는데,
들릴라에게 가르쳐 준다고, 그 힘이 어디 갈라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를 가볍게 여길 때,
성령님께서는 삼손을 떠나가시고,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큰복과 힘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3. 삼손의 회복입니다.
21,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이러한 삼손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회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회복의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머리털이 자라기 까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블레세 사람들이, 삼손의 두눈을 빼어 버렸습니다.
삼손은 눈봉사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옥에 가두고, 소처럼 큰 멧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이제 삼손은, 사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 멋있던 모습, 늠늠한 모습,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 하던, 그 힘있던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비웃고, 조롱을 하면서 괴롭힘을 받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다시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머리카락이 길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예전처럼 길게 된 어느날,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불러내어, 다곤신상 앞에서 재주를 부리게 하자...그리고 축제를 엽니다.
그럴 때, 삼손이 끌려나와서 재주를 부리며, 눈물로 기도합니다. 28절 말씀...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옆에 있는, 큰 기둥을 붙잡고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다시 성령님의 힘이 다시 삼손에게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 큰 기둥을 무너뜨려, 그 자리에 있는 블레셋 사람 3천명을 죽이고, 삼손도 최후를 맞이 하였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들릴라를 찾아가듯, 불신앙의 자리에 찾아 갑니다.
그 결과, 불행을 만나게 됩니다.
큰복을 잃어 버리고, 갖은 고생을 다 하게 됩니다.
나중에야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 오지만, 돌아 올때까지, 겪게 되는 불행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간증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서 불신앙의 길로 가다가,
하나님께서 나를 치셔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그제서 깨닫고, 이제 하나님께 돌아 왔습니다.“
그러면서 탕자의 삶와 같은 경험,
삼손같은 경험을 이야기 하며,
깊은~~~~ 믿음을 간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구별된 길을, 꾸준히 갔다면, 기드온 처럼 멋있는 일생, 여호수아 처럼 대단한 업적을 남겼을른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생을 찾아아고, 이방여인 들릴라 사랑하고, 나실인의 생활을 경홀이 여길 때,
삼손은 불행속에서 겨우, 사사의 직무를 마무리하는, 위기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분명히, 나를 구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떠나, 불신앙의 길로 걸어가면...
아무리 힘있는 그리스도인이라도, 탕자처럼, 삼손처럼,
불신앙 속에서, 불행의 골짜기를 지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믿음의 생활을 할때, 거기에서 힘이 나옵니다.
삼손이 머릴를 깍듯이, 성도는 해서는 않될 것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써
행복과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