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5절 14절 사랑하시는 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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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창 일본에게 고통을 당하며, 1919년 3,1 대한독립만세 운동을 하기 5년전에,
파타마 운하가 개통이 된 것입니다.
파나마 운하는, 스에즈 운하와는 차원이 틀린 대공사였습니다.
스에즈 운하는 사막에 걸설이 되었습니다. 공사할 때 모래를 퍼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파나마 운하는, 암반이 있는 돌산에 공사를 해야 합니다. 그 많은 바위와 산을 무작정 다, 들어낼수가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큰 배들이 산위로 올라가도록, 갑문과 인공호수를 산위에 만들어야 합니다.
산위로 올라간 배들은, 반대편에서는 산 아래로 내려오도록, 다시 물길과 갑문을 만들어 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발상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부정적인 여론이 었습니다.
“파나마 운하는 완성될수 없는 잘못된 공사입니다.”
“엉뚱한데 돈만 축내고 있습니다.”
뉴스와 신문에서, 연일 부정적인 보도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건설을 맡은 총책임자 ‘고르거스’는, 온갖 비난과 모략을 받았지만,
끝까지 침묵하며, 성실하게 계획대로 공사를, 차곡차곡, 진행하여 나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말합니다. "왜 그런 모함을 받고도 침묵합니까?"
그럴때면, 담담하게 말합니다. "때가 되면 말하겠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고르거스’는 웃으며 짤막하게 말합니다. "운하가 완공된 후 입니다"
드디어 그 어렵던 공사가 마무리가 되고, 파나마 운하가 완공되는 날이 왔습니다.
거짓말 같이, 큰 배가 파마나 운하로 들어 옵니다. 갑문을 통과하여, 반대편으로 무사히 빠져 나갔습니다.
파나마 공사를 완공시킨, ‘고르거스’는 조용히, 승리의 미소로, 파나마 운하 개통을 자축하였다고 합니다.
잘못됬다고, 않된다고, 부정적인 말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묵묵하게 자기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고, 칭찬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멀리하시고,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인정하고 높혀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높혀주시고,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으로 부터 멀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같이,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대하시는가? 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징계를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징계’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인가? 아닌가를 알수 있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징계가 없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그런 사람은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축복받고, 칭찬받고, 상급받고,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멀리하는 사람, 가까이 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믿고 구속사를 함께 맡겨주시는 사람등....4가지의 사람, 4단계의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용이 매우 어렵습니다. 믿음의 귀를 활짝 여시고, 귀를 귀울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사람은 하나님께서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께 버려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버려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그 사람 특징 있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마음이 평안 합니다.
아무리 죄속에서 살아가도, 형통합니다. 오히려 일이 잘 됩니다.
목사님 그런 사람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죄를 지어도 형통하고, 죄 속에서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 없이, 일이 척척 잘된다고 하니까, 좀 부러워 지십니까? 하지만 부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보통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짓고, 믿음생활 잘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징계’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나를 돌아보도록, 하나님께서 ‘싸인’을 주십니다.
그래서 생활에 어려움이 생기고, 병이 들고, 괴로운 일이 생기고...그러면서 내가 기도의 무릎꿀게 하시고, 나를 돌아보게 하시고, 십자가를 붙들게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이 잘 못되고, 곁길로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셔서, 나를 믿음의 길로 이끄십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죄속에서 살아가는데도, 도무지 어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즐겁게 살아갑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미 그를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사생자입니다. 사탄이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자녀가, 죄를 지으면, 사탄이 좋아합니다. 사탄이 더 잘되도록 도와 줍니다.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사탄의 자녀인데, 하나님께서 애써 징계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음식점에서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소리를 지릅니다.
심지어는 뜨거운 국물 앞에서, 위험하게 장난을 칩니다.
만약 그 아이들이 나의 자녀라면, 부모님은 당연히 징계를 할 것입니다.
“예들아...음식점에서 뛰어 다니면 않된다. 그리고 뜨거운 음식앞에서 위험하게 뭐 하는 생동이냐? 조심해야지” 당장에 야단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내 아이가 아니고 남의 아이라면 이야기가 틀려집니다.
뛰어 다닌다고, 장난을 친다고 야단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장난치다가 음식을 업질르면, 오히려 속으로 고소해 할 것입니다. “그 봐라, 장난치다가 옷버리고, 참 잘 됬다.”
남의 자녀가 공부 안한다고, 애써 야단칠 부모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남의 자녀가 나쁜 짓 한다고, 애통해할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의 자녀이기 때문에, 공부를 않하면 징계를 합니다. 나쁜 짓을 하면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고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데도, 아무런 문제없이, 오히려 평안히 잘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부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생자요, 어두움의 자녀, 사탄의 자녀 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잘못하여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칭찬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6절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잘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였는데도, 하나님께서 무조건 칭찬해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면,..... 그 사람이 부러우 십니까?
분명히 큰 잘못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징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칭찬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목사님 제가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잘못해도 하나님께 무조건 칭찬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 부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가 등장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허랑방탕하게 탕진하고 낭비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거지가 되어, 부끄럽게 돌아 왔습니다.
자 생각해 보면, 이런 나쁜 아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아버지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리고,
아버지의 속을 썩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들을 향하여, 당연히 아버지가 징계하고 야단 쳐야 되겠지만,
성경을 보면, 왠일인지 전혀 징계하지 않습니다. 야단을 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를 잡아서 잔치를 엽니다. 그 아들에게 좋은 옷을 입힙니다.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 줍니다. 발에는 좋은 신을 신켜 줍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말씀합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탕자는 아버지의 친 자녀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버지가 즐거워 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은,
탕자가 잘하고, 탕자가 승리하고, 탕자가 큰 사명을 감당하였기 때문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죽을수도 있었는데, 살아돌아 왔으니, 너무나 다행 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아가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지,
탕자의 성실함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애지중지, 넘어지면 다칠까, 잘 못 먹으면 채할까...애지중지, 합니다.
신앙에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대충 기도만 하여도, 칭찬이 대단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기도를 잘 하여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신앙에 어린아이는 잘못해도, “그럴수 있지요.”
신앙에 어린아이는 믿음생활 잘 못해도..“괜찬습니다.” 오히려 다들 격려해 줍니다.
어린아이와 같으니까.... 그렇게 해주는 것이 당연 합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생활을 못하고 있는데도, 칭찬과 격려만 받고 있다면,
너무 부러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신앙나이는 얼마인가?, 한번쯤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맡아들 맡딸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9절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신났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배웁니다.
선생님이 문제를 냅니다. ‘디스 이즈 뉴욕’ 무슨 뜻인지 말해 보세요.~~
‘디스’는 ‘이것’이란 뜻입니다. ‘뉴욕’은 미국의 도시 이름입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용감하게 말합니다. “ 선생님 ‘디스 이지 뉴욕’ ‘이것은 새로운 욕이다.’ 뉴욕은...도시 이름인데, 아이가, 뉴를..새롭다.고 해석하고, ‘욕’은 그냥 ‘욕’으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틀리게 해석해도 어린아이는 칭찬을 해 줍니다.
하지만 장성하게 되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면 달라 집니다.
9절 말슴에, ‘육신의 아버지를 공경하거든’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공경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집안에서 해야할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맡아들, 맡딸은, 육신의 부모님을 공경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청소를 하면, 같이 청소를 거들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이 일을 하면, 옆에서 일을 도와 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앞에서, 맡아들 맡딸같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더러우면, 청소를 합니다.
예배에 봉사위원이 없으면, 대신 봉사위원을 섭니다.
구역에 시험든 성도가 있으면,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고, 돌봅니다.
맡아들과 맡딸 같이, 봉사하는 성도들입니다.
믿음이 성숙하고...
믿음이 장성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옆에서 보고 있다가, 거듭니다. 봉사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께서 말씀 않하셔도,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맡아들, 맡딸이기 때문입니다.
성숙하여, 능히 그 일을 할수 있는, 믿음의 분량도, 믿음의 역량도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집에서, 이제는 높은데 있는 물건을 내릴 때, 전구를 갈 때, 창진이를 시킵니다.
‘창진아 이것 좀 내려라~~’ ‘창진아 이것은 좀 올려라’
무거운 물건을 옮길때는, 창인이를 부릅니다.
‘창인아 이것 좀 옮겨라... 창인아 무거운데 같이 좀 들자~~”
키가 이젠 저 보다가 큽니다.
힘도 이제는 저 못지 않습니다.
성숙하였기 때문에 능히 그 일을 잘 해냅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생활 하면서, 봉사하고, 헌신하고 있다면, 나의 믿음이 성장하였구나,
나의 믿음의 역량이 커졌구나
나의 믿음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믿음이 되었구나.....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맡아들 맡딸같은 성도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비교와 불평입니다.
탕자의 형도 ‘불평’ 하였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동생인 탕자를 향하여, 기뻐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고, 불평을 합니다.
동생인 탕자는, 잘못 하여도, 오냐오냐.. 잘했다고 하고, 소도 잡고, 잔치도 열어 주시고...
그런데, 나는 아버지를 위하여 일을 열심히 하여도, 나에게는 ‘오냐오냐, 잘했다’고 칭찬은 커녕, 소도 염서도 않잡아 주십니다.
아버지는........... 탕자 한테는, 왜 그렇게 잘 해주세요?
그럴 때, 아버지가 맡아들에게 말합니다. “예,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어, 나의 것이, 다 너의 것이다.”
사실 이 말씀은 아버지의 속마음을 들어낸, 중요한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자 생각을 해보면,
설마, 아버지가,..... 다시는...... 곳간 열쇠를, 탕자에게 맡겨 주시겠습니까?
아버지가 탕자에게 ‘그래그래 잘한다 잘한다.’고 하여도, 정말 중요한 일이 생기면, 탕자에게 의논 하겠습니까?
탕자는 집에 들어와 사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지, 집에서 책임있는 사람, 책임질 사람은 되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맡아들 맡딸 같은 성도들은, 겨우 구원받은 단계는 이미 넘어 선 성도들입니다. 급이 틀립니다.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상급을 가지고 경주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맡아들 맡딸 같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실 면류관을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단계, 네 번째 단계는 징계받는 성도입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큰일을 맡기려고 하는 성도가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를 연단하시고 징계하시며, 훈련시키 십니다.
요셉은 애굽이 총리대신이 되기전에, 먼저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종으로 팔리고, 심지어는 왕의 감옥에 까지 들어가는 엄청난 훈련과 연단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리앗 넘어 뜨린 것은, 오히려 고생의 시작 이었습니다.
너무나 눈물을 많이 흘리고, 고생을 많이하고, 회개도 많이 하고,
그러면서, 다듬어 지고, 겸손하여져서, 마침내 이스라엘의 기초를 놓는, 훌륭한 믿음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징계를 받는 성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크게~~~ 사용하실려고, 연단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징계는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슬퍼 보이기 까지 합니다만, 그러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성숙하여 지면,
하나님께서는 평강의 열매, 응답의 열매...하나님의 큰 그릇으로, 분명히 크게 들어 써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성경에는 네 단계의 사람이 있습니다.
죄악 속에 살아가도 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과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실수하여도, 격려와 사랑을 받습니다. 믿음이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이 성숙하고, 역량이 있어, 봉사와 큰일을 넉넉히 해 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맡아들 맡딸같은 성도입니다.
맡아들과 맡딸같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정말 크게 사용하시는 성도는, 징계하고 연단하여 주십니다.
우리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는, 훌륭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